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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74화 (174/300)

# 174

174화

“얼마나 갈망했습니까! 얼마나 기다렸습니까! 조선인이 다시 이 땅의 주인 되는 해방의 세상을!”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일제는 부두노동자들의 파업은 진압할 수 있었지만 파업과 시위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은 막지 못했다.

조선은 더 이상 ‘고분고분한’ 식민지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지나대륙과 태평양에도 투입하기 모자란 군대를 집어먹는 블랙홀이 되었다.

수시로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시위대가 일제가 설치한 경찰서와 관공서들을 습격했고, 온갖 파괴공작과 암살이 뒤따랐다.

‘경성의 낮은 황국의 것이지만 경성의 밤은 조선인의 것이다.’

총독부의 관료들 중 암살시도를 당해 보지 않은 자가 더 적다. 일본인 관료들이나 친일파들은 이제 날아올 총알을 피해 대로변에서도 시선을 피해 전전긍긍하여야 했다.

여기에 소련에 의해 일제의 동맹, 독일제국이 패망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한반도는 열광에 휩싸였다.

“이제 소련이 우리 피압박 민족들의 해방을 지원할 것이오!”

“와아아아아! 소련 만세! 조선공산당 만세!”

조선공산당은 44년 지금에 이르러서는 조선 내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정치조직으로 성장해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부두노동자 파업을 조직하여 일제의 쌀 공출을 저지하였으며, 철도 총파업으로 만주 관동군의 보급을 차단하고 중국에서 국민혁명군의 승리에도 기여하였다. 조선공산당 휘하의 암살단, ‘적의사’의 손에 죽어 나간 일본의 고위급들은 두 손 두 발을 다 합쳐도 셀 수가 없었다.

“소… 소련과 일본은 동맹관계입니다! 소일불가침조약은 아직 유효하며….”

일제는 애써 진실을 손바닥으로 가리려 했다. 일제의 관료들은 항상 해 오던 이야기를 반복했다. 당황과 두려움이 조금 더 섞이기는 하였지만.

소련은 일본과 불가침을 맺은 동맹국이며, 지나와 태평양의 전선들에서 충용무쌍한 무적황군의 용사들은 미국과 중국을 최종적으로 무너트릴 결전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악화되어 온 경제상황, 점점 더 많이 끌려가는 노동자들, 그리고 죽거나 병신이 되어 돌아오는 병사들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리고 소일불가침조약의 파기가 알려지자 일본 정부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가장 열렬히 이날을 기다려 온 자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세상에….”

“맙소사….”

구름 같은 인파가 경성에 운집했다. 흰 띠를 머리에 두른 청년들이나 양복을 빼입은 신사부터 보따리를 지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 남들이 다 나가니까 따라 나온 코흘리개 어린애들, 새근새근 자는 아기를 업은 새댁까지.

경성역 광장은 말 그대로 수만의 인파로 북적거렸다.

“대체 이들이 다 어디서 모인 것인가!”

“…파,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사들은 순전히 인파의 규모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조선 팔도의 인구가 삼천만이 채 못 되었다. 경성부 인구가 60만인데 이만큼 많은 인파라니?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본 적이 없는지, 군중들은 마냥 즐거운 것 같았다. 사이사이에서 팔뚝이나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질서를 유지하는 이들이 몇 있기는 했지만 그들의 통제 없이도 대중은 놀랍게도 질서정연했다.

경찰들이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사이, 한 남자가 급조된 연설대 위로 올랐다.

천지를 뒤흔드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워낙 뒤에 있어 앞에 누가 있는지도 보이지 않는 이들 역시 그저 남들이 환성을 터트리니 함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도 알았더라면 똑같은 반응을 했을 것이다.

풍채 당당하고 잘생긴 중노년 한 사람이 단상에 올라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일제의 경찰들은 기함했다.

“여운형! 저자가 왜 여기 있나!”

“송, 송구합니다!”

“에잇! 그놈의 송구!”

현재 조선의 독립운동을 누가 영도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열 명 중 대여섯 정도는 아마 여운형이라고 답할 것이다. 뭘 좀 안다 자부하는 사람은 조선공산당 서기장인 박헌영을 짚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누구는 조공의 조직위원장인 조봉암을 들겠지만,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유명한 지도자는 바로 여운형이었다.

어디서 났는지 수십 대의 스피커가 설치되어 대중에게 그의 목소리를 쩌렁쩌렁하게 전달했다.

“세계의 전쟁은 이제 추축국의 패배로 결정지어지고 있습니다. 조선 인민 여러분. 그동안 이 한반도를 불법적으로 강점해 온 일제는 결국 소-미-중 삼국 연합군에 의해 패망할 것입니다. 바야흐로 한반도에는 해방의 봄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빨리 가서 해산시켜!”

경찰들이 기겁하든 뭐라 하든, 수백 명의 경찰들로 수만 명의 군중을 진압할 수는 없었다. 당장 경찰들마저 공산당의 암살자들이 어디선가 겨누고 있을 총구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판인데 어찌 감히?

“…그리하여 우리 ‘건국 동맹’은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고 조선인의 자유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만세!”

“만세에에에에에!!!”

“만세! 만세!!”

“건… 건국 동맹?”

그동안 암암리에 조선인들의 지하조직으로 소문이 돌았던 그것이 조선공산당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 수뇌는 입을 쩍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은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짓밟혀 대다수가 조선인 운동의 최종목표를 ‘일본 제국 내에서의 자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인들의 자치권과 참정권을 확대하고 종국에는 대등한 하나의 지역이 되는 것.

하지만 아예 건국이라니? 점점 몰락의 날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막아! 막아라! 저자가 하는 말이 더 퍼지지 못하도록…!”

* * *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아이고… 아이고… 고향이라니….”

야음을 틈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남부여대하고 길을 나섰다. 이들을 이끄는 것은 건장한 청년 하나.

하나같이 초라하고 마른 사람들. 속삭이는 말씨로 보아 조선인들이었다.

도쿄 구석구석부터 시작하여 오사카, 나고야, 교토 등 일본의 주요 대도시에서는 이렇게 조선인들이 무리를 지어 탈출하고 있었다.

조선공산당은 일본공산당과 합작하여 재일 조선인들의 탈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할 것이고, 강력한 소련 육군은 만주와 한반도를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해군은 등뼈가 부서지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해도 소련 극동해군보다는 강력했다.

그렇기에 소련은 미국과 합작하여 일본 열도를 폭격으로 불태워 버릴 것이니 탈출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조선인들은 화들짝 놀라 도시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말들이 일본공산당의 조직원들과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돌았고, 그들 역시 정든 고향과 직장을 버리고 농촌으로, 혹은 시골로 도망쳤다.

“뭐야! 다들 어디 갔어!”

“…숙소에서도 보이지 않는뎁쇼?”

“에잉… 빌어먹을 조센징 놈들….”

그렇게 말한 관리자 역시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소문은 발이 없이도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조선인들의 독립선언이나 독일의 몰락 등은 숨기려 하여도 각종 경로로 알려졌기에 가장 세상 돌아가는 것에 어두운 이들조차도 알고 있었다.

또 입이 있고 머리가 있는 자들은 추측할 수 있었다. 조선은 소련의 후원을 받고 있으니만큼 조선인들도 모종의 지령을 받고 있을 것이다. 소련이 조선인들을 일본의 도시들에서 빼내고 있다면….

번쩍하고 빛나는 불길의 사진은 적잖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베를린 위에 거대하게 피어오른 버섯구름은 특종을 노리는 언론인들에 의해 동네방네 까발려졌다.

“이봐, 다나카.”

“엥? 무슨 일이여?”

“우리도 피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본인 노동자들도 저들끼리 속삭이며 각자가 알아낸 것들을 떠들어 댔다. 자기 형님의 처조카가 어디 공산당과 연줄이 있는데 그들도 귀중품만 가지고 저기 북쪽으로 도망쳤다. 우리 팔촌이 위에 아키타에서 농사를 짓는데 거기로 사람들이 몰려든다더라.

유언비어와 낭설들이 열도를 휩쓸었다. 그렇게 혼란에 빠진 사람들 위에 미군의 폭격기는 오늘도 폭탄을 쏟아부었다.

* * *

“우리는 지금 몇 개의 핵폭탄을 준비할 수 있나?”

“예! 서기장 동지. 쿠르차토프 박사의 연구팀은 베를린에 떨어트린 위력의 핵폭탄은 1달 내로 20여 개가량 준비할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베리야의 숙청 이후 그 자리를 이어받은 NKVD 신규 국장 크루글로프는 베리야 대신 회의에 참석해서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물론 이제 NKVD는 NKVD도 아니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해외 첩보, 국내 사찰, 경찰에 준군사조직으로까지 기능하고 있지만 이 기능은 갈가리 찢어서 여러 기관에 분산해 버릴 테니.

일반 경찰기능은 내무부 경찰청, 비밀경찰 부문은 대폭 축소해 버리고, 국내정보는 연방보안국, 해외정보는 해외정보국, 그리고 수용소 관리 등은 교정본부로 최대 4조각 이상으로 찢어 버릴 것이다.

군대의 쿠데타를 염려하기엔 이미 정치장교 제도가 있는 데다가, 오히려 정보기관에 의한 쿠데타 가능성이 높았다. KGB 출신들은 소련 시절 안드로포프나, 혹은 소련 붕괴 이후에도 푸틴과 올리가르히들을 배출하는 등 권력의 근처에서 고인물이 되었고.

“20여 개라….”

크루글로프는 그런 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베리야처럼 권력에 욕심을 내고 전 부서를 장악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상부의 조직 개혁 시도에 협조했다.

이런 자세라면 꽤 오래 권력의 상층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베리야는 너무 권력에 큰 욕심을 냈고, 가만히 둘 수만은 없었다.

가만히만 있었더라면 최고의 영광을 누렸을 텐데. 욕심을 너무 내는 바람에….

“핵폭탄을 투하할 일본의 도시 위치에 대해서는 분석해 보았나?”

“예! 관련 자료는 여기에 있습니다.”

미국과의 핵무기 공유, 일본과의 전쟁 등 여러 사안에 관련해서 정치국에서는 갑론을박이 오갔다.

우리 개발사와 비추어 보았을 때 시행착오는 있지만 미국이 근시일, 즉 5년 내에 핵폭탄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자 정치국은 두말없이 원조를 대가로 핵무기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

왜냐면 준다는 돈이 많았기에. 그것도 상당히.

물론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최고 기밀로 감추어 둘 몇 개를 제외하면 대부분 일본에 투하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사토 대사는 제국 해체냐 전쟁이냐라는 소련의 통보에 대하여, ‘전쟁’이라는 본국의 방침을 전달하고 귀국했다. 우리는 일본의 어디에 몇 개를 떨어트리느냐를 고민하고 있었고.

“흐음…. 도쿄 인구 600만가량, 오사카가 300만, 나고야 130만, 교토 100만에 요코하마, 고베가 근소하게 100만이 되지 못한다…. 그 밑으로는 고만고만하군?”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가급적 핵 투하는 여기 36도선 이남에만 집중시키도록 하지.”

일본열도를 고엽제와 방사능 뒤범벅이 된 지옥도로 만들어 버린다 하여도 결국 거기에는 누군가가 살아야 한다. 미국과 함께 일본을 남북으로 분할통치한다면 적지 않은 수의 소련인들을 열도 안에 배치해야 할 것이다.

“나머지는 가리지 말고 모조리 불태워 버리게.”

“예!”

36도선 이남이라면 도쿄가 간신히 걸쳐 들어간다. 대부분의 일본 대도시들, 혼슈 서부나 규슈, 시코쿠에 위치한 도시들은 다 포함될 것이고.

“구출작전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가?”

“예! 이제 주요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소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만 완강하게 거부하는 자들은….”

“어쩔 수 없지.”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 이후는 어쩔 수 없다.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할 뿐.

“이긴 전쟁이라 생각하지 말고 만반을 기하게.”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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