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168화 (168/300)

# 168

168화

세계인의 이목이 베를린에 집중되었다.

그러나 베를린은 무언가를 밖에 전달할 상황이 아니었다. 먼저, 정부기능이 집중된 수도의 중요 관공서들이 핵폭발 앞에 증발해 버렸다. 대부분의 권력자들과 함께.

먼저 가장 중요한 총통의 행방은 찾을 길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밀 지하벙커’에 숨어 있으리라 예측했으나 비밀 지하벙커는 비밀이었기에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알 법한 사람들, 예컨대 나치의 고관인 괴링이나 괴벨스, 힘러, 토트와 슈페어 같은 자들은 거대한 폭발에 휘말려 실종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실종’된 이유는 전적으로 사망을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죽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정부기능이 마비된 독일에서 그나마 제 기능을 하는 것은 군부였으나, 명목상 군 총사령관인 총통은 유고 상태였으며 동부전선 총사령관 모델, 육군참모총장 요들, 해군 총사령관 되니츠, 공군 총사령관 괴링 같은 인물들에게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다.

“항복? 항복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총통이 계시지 않는다 하여도 항전은 계속되어야 하네! 저 야만적인 소련군에게 독일인들을 모조리 팔아넘길 셈인가!”

[스탈린 서기장은 서한을 통하여 저항 없이 항복할 경우 신사적인 처우를 약속했소. 그는….]

“저들은 독일을 약탈할 것일세! 우리 민족이 이룩한 이 부와 번영을 저들의 손으로 다 때려 부술 걸세!”

명목상 전 육군의 참모총장인 요들과 육군의 거의 전부라지만 아무튼 일개 전선의 사령관인 모델의 상하관계는 명확하지 않았다.

모델은 계급이 더 높았고 총통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었으나, 총통은 이제 없었다. 요들은 참모총장이라는 직위 때문에 총사령관 유고 상태인 현재 육군을 통솔할 권한이 있다고 봐도 좋았다.

그 누구도 지금의 상황을 예측한 바 없었다. 그 누구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항복을 주장하는 모델은 결사 항전을 주장하는 요들과 계속 말싸움을 벌였다. 지휘통제실의 장군과 장교들은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그들의 논쟁을 들을 수 있었다.

[부와 번영은 이미 다 부서졌소! 보면 모르오? 항전하면 저들은 우리 도시들을 하나하나 잘게 부숴 버릴 거요!]

“그런 폭탄이 많으면 몇 개나 있겠소이까! 소련이 그렇게 많은 폭탄을 가지고 있었다면 사용을 했겠지, 저렇게 말뿐인 협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 것 같으시오! 모델 원수, 항복은 불허하오. 참모본부는 절대 항복에 동의할 수 없소.”

[요들 상급대장!]

쾅. 소리 나게 수화기를 내려놓은 요들은 참모본부의 인원들이 들으라는 듯 외쳤다.

“항복은 없소! 베를린의 전쟁성이 임시로 공백상태인 이상 육군의 최고 기관은 우리 참모본부이고, 참모총장으로서 나는 전쟁을 지속할 것이오. 도이치 민족 만세! 하일 히틀러!”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를 히틀러지만 아무튼 군인들은 오른손을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도이치 민족 만세!”

물론 이들에게도 생각은 있었다. 소련이 진짜 그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폭탄을 몇 개씩이나 가지고 있다면 이미 몇 번이고 사용했을 것이다.

아직 참모본부의 손에는 항전을 주장할 만큼의 병력은 남아 있었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짜내어 소련군 앞에 세울 것이다. 도이치 민족이 세상을 가질 수 없다면, 열등인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도이치 민족이 떠나야 하는 법.

‘아직 독일은… 버틸 수 있다….’

모델과 같은 패배주의자들이 득세하는 이유는 전적으로 총통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요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총통의 신임으로 득세한 모델은 총통이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총통을 발견하여 다시 전쟁을 이끌어 가도록 국민들을 독려한다면… 여기서 소련군을 멈추어 세우고 독일 국가를 보존해야 했다.

저 늑대, 승냥이 같은 유태-볼셰비키들이 위대한 독일 민족을 시기하여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기 전에.

* * *

핵폭탄의 효과는 베를린에서보다 다른 곳들에서 더 강력하게 나타났다.

부다페스트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화살십자당의 잔당들은 더 이상 저항하기를 포기했다. 이미 소련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이후에도 호르티를 지지하던 이들이나 왕당파들이 소수 남아있었지만 핵폭탄의 놀라운 위력을 보고 모두 입을 닫고 고개를 숙였다.

소련군은 저항 없이, 신속하게 진군했다. 한때 오스트리아였던 ‘오스트마르크주’, 한때 체코였던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으로, 그리고 서쪽으로는 라인강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소련군과 총칼을 맞대고 있지는 않은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제각각의 반응이 나타났다.

[스승님! 스승님! 저들이 결국 스승님을… 스승님에게 모든 책임을 씌울 작정입니다!]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 그러면 된 것 아닌가?”

스페인의 통치자 프랑코는 울부짖었다. 하지만 늙은 원수는 담담했다. 이미 그가 주스페인 대사에서 비시 프랑스의 수반으로 갈 때부터 프랑코는 그의 발걸음을 만류했었다. 모든 책임을 페탱에게 떠넘기고 그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라고.

하지만 페탱은 이미 각오한 바 있었다. 그는 위대한 프랑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괴뢰국의 수반 직위를 떠맡아야 했다. 이제 퇴물이 된 노인 하나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갈 수 있다면 후일 국가를 재건할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하나 더 생긴다. 페탱은 그것을 각오하고 사약을 받아들였었다.

물론 그도 이렇게 빨리 끝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뒤바뀌리라고는 도무지 상상한 적도 없었다.

“하하하….”

어쩐지 헛웃음이 계속 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랑스 군인들을 동부전선으로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 드 골과 같은 젊은 항전파들의 싸움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어야 한다.

끝까지 싸우겠다는 일념으로 소련에 가서까지 항전하겠다던 드 골은 문전박대당하고 내쫓기고 말았다. 식민지들이 단 하나라도 도와주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근거지도 병력도 잃은 자유 프랑스군은 무엇 하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틈을 타 파리에서는 좌파, 공산당 레지스탕스들이 일제 봉기를 일으켰다. 파리 주둔 독일군은 최정예였으나,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계속 항전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파리의 해방자는 공산당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소련은 이제 프랑스를 조종할 것이다. 그를 비롯한 지난 대전의 군인들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모조리 반역자가 되어 버렸고, 이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삶은 단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네….”

그는 변명하듯, 그를 바라보는 각료들에게 말했다. 각료들 역시 얼음장 같은 표정으로 굳어 있었다. 군데군데 빠진 자리가 보였다.

‘도망갔나 보군….’

페탱 그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젊은 관료 한 사람이 그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다면 그것은 프랑스의 손실이다.

“우리가 단죄당해 프랑스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하세나. 자네들은….”

“각하….”

몇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몇은 그저 얼어붙은 듯 멈추어 있었다.

페탱은 천천히 일어나 걸어 나갔다. 아흔에 가까운 노인에게 지금의 사태는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옆에서 부축하는 젊은 비서에게 페탱은 나직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국가수반으로 명령하네. 군대에 무장 해제를 명령하게.”

“예? 예! 즉각 전달하겠습니다.”

물론 남은 군대라고는 한 줌도 되지 못했다. 북프랑스는 나치의 군정 주둔지였고, 그곳에는 페탱이 명령할 수 있는 군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이 들을지는 둘째치고.

파리의 젊은 공산당원들, 아니 프랑스인들이 흘릴 피를 줄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장 스스로 죽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그를 죽여야 분통이 풀릴 이들에게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

노원수는 천천히 힘들게 걸음을 옮겨 집무실로 향했다. 그를 찾으러 올 이들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하여.

* * *

“나는 그저… 질서를 유지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

파리 군정청 사령관 디트리히 콜티츠는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는 공산당원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고자 고개를 숙였다. 그의 변명은 수많은 동지들이 죽은 데 분노한 이들에게는 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할 말은 있었다. 군인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점령지를 내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질서 유지’를 해야 했고, 봉기군과의 교전 과정에서 아름다운 도시 파리를 가급적 덜 파괴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의 부하들은 화염방사기로 건물 안에 숨어 있는 레지스탕스 봉기군을 소탕하기 위해 뿜어 댔지만, 그것은 불가피했다고 애써 그는 주장하려 했다.

“알겠소. 그러나 우리 역시 항복을 받을 수 있는 명백한 법적인 지위가 있는 것은 아니니….”

“…호의에 감사드리오이다.”

연합군에게 항복할 것을 스탈린은 명령했다. 그렇지 않으면 루르 지역의 대도시들을 때려 부수겠다며.

하지만 프랑스 땅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연합국은 없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아직 주요국들로부터 연합국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굳이 항복한다면 미군이나 소련군이 되겠지만 그들은 한참은 떨어진 곳에 있었다.

아마 지금쯤 미군이 유럽 대륙 내에서 최소한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겠지만…

어쨌든 프랑스는 프랑스인의 손으로 해방시켜야 했다. 콜티츠는 그 정당성을 프랑스 공산당에 넘겨주기로 하며, 자신의 부하들을 안전하게 귀국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공산당의 모리스 토레스 서기장은 그 조건에 동의하여 협상을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수많은 동지들의 피를 흘리고서도 결국 사흘 만에 기회를 움켜쥔 것이다.

“조국 해방 만세! 프랑스 만세!”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

콜티츠 장군의 명령하에 파리 주둔 독일군은 이제 막 파리 소비에트 지구를 형성한 프랑스 공산당에게 항복했다. 공산당은 자체적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전 세계에 프랑스 제4공화국을 선포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서는 독일군의 항복을 자력으로 받아 내었다는 명분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카메라 플래시라이트가 펑펑 터졌고, 종이에 도장을 찍는 콜티츠의 사진이 순식간에 신문 지상에 실려 파리 시내를 뒤덮었다.

시민들은 밖으로 나와 열띤 만세를 불렀다. 붉은 기를 휘두르는 공산당원들은 무장을 해제당한 채 시가지를 행진하여 파리 밖으로 나가는 독일군들을 이끌고 인터내셔널 가를 목청껏 불러제꼈다.

“어떠한 높으신 양반 고귀한 이념도, 허공에 매인 십자가도 우리를 구원 못 하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강철같은 이 두 손! 노예의 사슬 떨쳐내고 해방으로 나가세!”

그 누구도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지 못했다.

우파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고, 사회당계는 공산당의 일제 봉기에 개인 혹은 소단위별로 합류하였기에 공을 주장할 수 없었다. 독일군이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가 아니라 아예 공산당에게 항복했으니 더더욱.

“이제 프랑스는 저들의 것이군….”

골목에서 대로변을 바라보던 몇은 그렇게들 중얼거렸다. 이 기쁜 해방의 날에 울적한 얼굴로. 소련이 조종하고 소련이 후원한 봉기를 통해 프랑스는 해방되었다.

‘독일이 가고 소련이 오는군….’

힘찬 목소리로 단상에서 파리 소비에트의 창설을 선포하는 토레스 서기장을 보며, 수많은 우파들은 그렇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입 밖으로 냈다간 당장에 린치를 당해 죽을 수도 있었으니.

* * *

공황은 유럽에만 불어닥친 것이 아니었다. 핵폭발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극동에서도 외교가는 충격에 빠져들었다.

일본의 내각은 지금 말 그대로 혼돈이었다.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는 사퇴를 선언했고, 내각 역시 현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통감하며 총사퇴를 발표했다. 식자들은 이를 책임 회피를 위한 수작이라 비난했지만, 그들 역시 책임을 지지 않는 자리에서 편하게 말한다는 점은 차이가 없었다.

히로히토에게 새로 총리로 지명받은 늙은 남작, 스즈키 간타로는 여전히 뻣뻣하게 구는 군부를 상대로 새로운 계획을 제안해야 했다.

“우리는… 미국을 막을 책략을 세워야 하며 그 핵심은 바로 소련과 친하게 지내는 데 있습니다.”

그의 논리는 간단했다. 공동의 적인 독일이 이제 패망에 이른 이상 소련은 세계를 놓고 미국과 일전을 벌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명백히 생산력이라는 측면에서 소련보다 우수하고, 또 소련이 기묘한 술수로 강력한 폭탄을 만들어 냈다 하나 미국 역시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즉 세계 제2의 열강인 소련으로서는 제3열강인 일본을 맹우로 삼아 미국을 견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소련과 친하게 지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늙은 총리대신이 내놓은 계략이었다.

그가 말을 하다 숨이 차서 잠시 멈추었을 무렵, 한 청년 장교가 회의실의 문을 벌컥 박차고 들어왔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무례하다!”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급보입니다!”

“거 무엇인데 그러는가?”

헐떡이는 숨을 잠시 고른 청년 장교는 지극히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품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소련이 조선의 독립을 승인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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