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159화
“하나, 둘, 셋…!”
“붉은 군대 만세!”
“어머니이이이이!”
수십 대의 전투기 편대의 경호를 받으며, 마찬가지로 수십 대의 수송기들이 어둑어둑해져 가는 하늘을 가르고 비행운을 그렸다.
수천 명의 공수부대원들은 낙하산을 타고 강하하기 시작했다. 한 명씩, 비명을 지르거나, 용맹하게 만세를 외치거나, 혹은 집에 두고 온 어머니를 찾거나 하며 강하를 시작했다.
소련군이 팽팽한 전선을 뒤집기 위해 사용한 것은 바로 공수부대 투입이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10개 공수군단 중 절반 이상은 근위소총병사단으로 재편되어 전장에서 소모되거나 했지만, 인력만큼은 넘쳐나는지라 새로 훈련병들을 뽑는 데에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원래는 비장의 패로 숨겨 두려 했으나, 스탈린 서기장은 직접 명령을 내렸다.
“독일군을 짓밟는데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좋다. 최대한 희생을 줄이며, 최대한 빨리 오데르강을 점령하라.”
“예! 서기장 동지!”
이 명령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장군들은 새로이 병력의 투입을 고민하다가 결국 공수부대를 투입할 것을 결정했다.
이미 바르샤바 주위에는 수십만 병력과 수천 대의 전차, 그리고 만 단위의 포병대가 진을 치고 있었기에 추가적인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보급과 기동에 혼선만 가져올 뿐.
하지만 적의 후방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소련군의 장기인 기갑부대를 활용한 전선돌파를 통해 공수군과 연계한다면 포위 섬멸이 쉬워질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렇게 독소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 소련군 공수부대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 * *
공수부대는 최대한 거치적거리는 것을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개인무장만을 소지한 채 적지로 강하했다.
“하… 제기랄, 여기가 어디냐?”
“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강하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발생했다.
독일군 역시 눈뜬장님은 아니었기에 공수강하를 보고 대공포와 기관총을 쏴제끼며 최대한 강하를 막아내려 했다.
그 과정에서 다수의 정예 소련군 공수부대원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몇몇은 투입 직후 하늘에서 사망해 땅에 떨어졌고, 또 몇은 강하하다 나무에 잘못 걸리거나 땅에 잘못 떨어져 사망하기도 했다.
그 모든 불운을 피하고 무사히 착지한 공수부대원이라고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에구구… 내 허리….”
“으으… 저는 다리를 접질린 것 같습니다.”
사방에는 적군, 여기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으며, 무장조차 극히 빈약한 수준에 불과했다. 이 상태로 적군을 만난다면 바로 전멸당하거나 포로가 될 것이다.
딱 조금 힘이 센 민간인. 이들의 현재 상태를 조금 과장 섞어 말하면 그 정도였다. 민간인들에 비하면 힘이 세고 권총을 가지고 있어서 전투력이 조금 높지만 대신 현지 상황이나 지리를 모른다는 약점이 있었다.
“뭐, 싸우기는 최고의 환경이로군! 어디로 쏘든지 적군이라 맞아 죽을 것 아닌가?”
하지만 이들은 테스토스테론이 넘쳐 흐르는 소련에서도 가장 마초미 넘치는 이들이었다. 몸에 딱 붙여서 들고 온 권총 한 자루와 열 발짜리 탄창 두 개만 가지고도, 그들은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마침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 저기 무장캡슐이다!”
“어디… 아! 오는군요!”
그렇다고 상부가 이들을 그저 권총에 총알 몇 발 쥐여 주고 적지 안으로 던져 넣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엔 소련 장성들 역시 ‘아까움’이라는 감정을 알고 있었다.
바르샤바 봉기군에게 각종 장비가 든 상자를 낙하산으로 뿌려 주었듯, 공수부대를 위해서도 즉각 무장 장비가 투하되었다. 봉기군에게 준 것보다 더 내용물도 충실하고, 종류도 다양한 것들이.
하늘에서 천천히 사각형 상자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안전하게 착지한 공수부대원들은 상자를 향해 달려갔다.
아직 독일군들은 공수부대의 강하를 막느라 적극적으로 병력을 투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무장을 회수하고, 방어진지를 구축해 나가야 했다.
‘상황은 나쁘지 않다….’
상부에서 공수부대에게 요구한 것은 간단했다.
“기갑부대와 조우할 때까지 버텨라!”
아군의 기갑전력은 적과 비교할 경우 압도적이었다. 수백 대의 부됸늬 전차와 천 단위의 T-34를 운용하는 소련군과는 애초에 비교부터가 불가능한 수준.
이 압도적인 전력을 전선돌파에 투입하고, 공수부대는 그동안 후방에서 적 예비대를 교란하며 붙들어 놓는 전략단위에서의 모루 역할을 해 주면 되는 것이었다.
물론 말이야 쉽지만, 잘못하다간 역으로 망치와 모루 사이에서 빠개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수부대는 작전을 속행했다.
“와! 로켓포입니다!”
“운이 좋군.”
수송기들은 공수부대를 위해 다양한 무장을 떨어트려 놓고 갔다. 예컨대, 돌격소총 몇 정과 탄약 수백 발이라던가, 중기관총이라던가, 혹은 지금처럼 로켓포 같은.
장병들의 사기가 꺾일까 봐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사령부가 의도한 공수부대의 역할은 바로 적의 기갑부대 기동 저지 및 지연이었다.
곳곳에 흩어진 규모 미상의 적 병력을 격퇴하기 위해서 소중한 기갑 예비를 돌려 격멸에 사용하는 동안 기갑부대는 전선을 돌파한다! 다른 말로 하면 경무장한 공수부대를 기갑부대와 비벼 시간을 끈다는 말이었지만.
어쨌든 아무 무기도 없이 전차에 맨몸으로 대항할 수는 없는 노릇. 보병이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는 대전차화기인 로켓포를 상자 가득 실어 보내 최소한의 방비를 할 수 있도록 상부에서는 다수의 로켓포탄을 투하했다.
보병전이든, 대기갑전이나 차량을 상대로 하든 로켓포는 유용했기에 이를 받아든 공수부대원들은 좋아했지만 소대장만큼은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을 받아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일단… 이동하자고.”
날은 점점 저물어 가고 있었다. 일단 어딘가에 위장 엄폐를 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몸 누일 곳만큼은 만들어 두어야 했다.
이제 공수부대는 한 명 한 명이 귀중한 인력이었다. 적 전면의 10명보다는 후방의 1명이 소중한 법. 최대한 많은 전력을 보존해 가며 싸워야 했다.
* * *
“뭐? 공수부대? 만 단위라고?”
“그,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제기랄… 한 방 먹었군.”
소련군은 기존 10개 공수군단을 재편해 6개 공수사단으로 편성하여 이 중 3개 사단을 바르샤바를 지키는 독일군 방어선 후방에 강하시켰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공수작전을 해 본 독일 측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어려우며, 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소련이 소규모로 침투시킨 스페츠나츠만 해도 얼마나 많은 독일군 장성들의 뒷목을 잡게 했던가!
도로와 철도를 폭파하고, 보급차량을 공격하고, 지뢰를 설치해 멋모르고 길을 가던 보병들 수십 명을 떼몰살시키고.
이제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들이 만 단위로 후방에 떨어졌다.
물론 커진 만큼 실체를 확인하고 잡아내기는 쉽겠지만 지금처럼 단 한 명의 전력조차 부족한 상황에서는 실로 치명적이라 할 수 있었다.
“9기갑척탄병 사단의 기갑부대와 차량화부대를 중대전투단 단위로 쪼개어 투입하도록 하지. 어차피 경무장한 보병들이라 기갑부대에 대항할 수단은 제한적일 것일세. 그리고….”
모델 사령관은 이마를 붙잡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침착하게 대응방법을 명령했다.
“비스와강 동안의 아군은 최대한 빨리 후퇴시키게. 그들이 후퇴한 이후에는 강을 건너는 교량들을 모조리 폭파시켜 버리고. 소련군들이 다수 부교를 투입했다 해도 교량이 없으면 방해를 좀 받을 걸세.”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뭣들 하는가! 빨리 가 보게! 한시가 급하네.”
모델의 참모들은 척 하고 경례를 붙이고 후닥닥 달려나갔다. 그들은 사령관이 안에서 끊어질 듯한 한숨을 토하고 있다는 것을 듣지 못했다.
“제기랄… 빌어먹을, 씨발!”
어린 당번병만이 남은 사령관 막사에서 모델은 낮게 욕설을 토했다.
총사령관으로서 그는 알 수 있었다. 이 전쟁은 이길 수 없다.
소련군은 그저 너무 많았고, 독일군은 수적으로, 질적으로 너무 열등해졌다.
독일군에게도 공수부대는 있었다. 전투기와 파일럿을 상실하고 제공권마저 밀리는 나머지 활용할 일이 없어졌을 뿐이지. 그렇게 위험한 작전에 병력을 털어 넣기에는 독일군은 한 명의 병사가 아까웠다.
하지만 소련은 겁도 없이 이렇게 대규모로, 양성하는 데 값비싼 병력을 털어 넣었다. 그만큼 판돈을 많이 들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임을 그는 잘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그는 총사령관이었다. 어떻게든 이 전선을 막아 내야 하는.
‘더 이상 후퇴하면 우리 민간인들이 소련군에게 노출된다….’
이미 소련군이 쾨니히스베르크 앞까지 진군한 만큼 동프로이센 민간인들은 저들의 마수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한 걸음 후퇴할 때마다 수만 명이 그럴 것이다. 더 이상 전선은 외국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개새끼들이 소련 민간인들에게 악랄하게 굴지만 않았어도 이 정도로 걱정할 필요는 없었겠지만… 이미 저지른 일을 사죄할 방법은 없었다. 아니, 있기야 하겠지만 그런 것을 죄 없는 민간인들이 당하게 둘 수는 없었다.
“전사의 피가 마른 이후에야 백성의 피가 흐르게 하소서….”
눈이 당장이라도 감길 것만 같았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각종 보고를 읽고 지시하기 위해서 벌써 몇 번이나 밤늦도록 보고서를 읽고 명령을 내렸다.
잠시 쪽잠이라도 자야 견딜 수 있었다. 눈을 감고, 모델은 신에게 짧은 기도를 올렸다.
죄를 지은 것은 군인들과 정치인들이었다. 일반 대중들은 그들을 지지한 죄밖에 없었다. 소련이 그들을 그저 내버려 둘지는 모르겠으나 살아서 참상을 지켜보고 싶지는 않았다.
문득, 그와 친분이 있던 목사 하나가 떠올랐다.
마르틴 니묄러 목사. 결혼할 당시 주례를 서 주었을 만큼 절친했지만… 나치당의 집권 이후 끌려가 5~6년째 생사를 알 수가 없었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 만큼 이 정권은 수많은 죄업을 쌓아 왔다. 총통의 광기는 그 아무도 말릴 수 없었고, 그 와중에도 총통이 하는 말이라면 신의 계시처럼 따르며 옹호하는 자들이 있었다.
선전장관 괴벨스, 당 책임비서 보어만, 친위대 사령관 힘러 같은 작자들. 총통도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총통의 눈과 귀를 가리고 다른 이들이 직언을 할라치면 패배주의, 반체제라며 몰아가곤 했다.
모델은 롬멜 원수 같은 참 군인이 총통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킬 음모를 꾸몄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무슨 계략에 걸린 것이 틀림없었다.
나치당이나 어딘가에서 군부를 견제하고자 한 이들이 꾸민 것이 아닐까? 그는 어렴풋이 그렇게 의심했다.
“….”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몇 번이고 속으로 되뇐 그 말만을 모델은 곱씹었다.
‘군인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의 사령부는 후방으로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안전한 곳에 있었지만, 눈을 감자 포성이 들려오고 도시가 불타는 광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리며,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일어나며 그는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꿈에서 본 불타는 도시는 과연 어느 도시일까? 바르샤바? 쾨니히스베르크?
‘아니면…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