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157화
“미친놈들….”
“제정신이 아닙니다! 히틀러는 미친 자임이 분명합니다!”
“더욱 철저하게 응징하여야 합니다!”
독일을 공습하러 갔다가 돌아온 파일럿들의 보고는 순식간에 스타브카로 전해졌다. 기가 막힌 사람들은 나치 파쇼들을 성토했다.
대공포를 전투기의 공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거기에 전쟁포로나 민간인을 매달아 놓아 죄책감을, 그리고 약간의 증가장갑 효과를 유도한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생각인가?
대체 뭐 하는 인간이기에 이런 발상을 떠올릴 수 있었을까. 나는 고민하면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델이 지휘하는 독일군은 후퇴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지극히 느렸다. 전선이 뒤로 밀리면서 보급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졌고, 애초에 소련 땅이 아니었던 곳에는 파르티잔들이 없어 사보타주도 어려웠다.
스페츠나츠를 투입한다 해도 현지 지리를 꿰고 있는 파르티잔들에 비해서 효율이 낮았다. 현지 주민들이 협조해 주는 것도 아니었고.
독일군의 질은 낮아져 갈지언정 그 방어선이 무력해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소련군은 단 1km를 전진하기 위해서도 막대한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장군들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독일군을 분쇄할 것을 주장했고.
하지만 나는 고민해야 했다.
‘핵을… 써야겠지?’
장군들의 말대로 수만 소련군을 갈아 넣어 베를린에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지독한 시가전 속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죽겠지만 가능은 하다.
그러느니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역사에 남길 오명을 감수하고서라도.
내 명예와 수만 소련군의 목숨 사이에서 끝까지 고민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기는 했다. 이것을 숨겨 놓고 비밀 병기로 쓸 것이냐? 아니면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나을 것인가?
독일을 위성국으로 만들겠다면 핵을 맞았다는 원한을 남기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아니면 핵의 공포로 그들을 위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인가? 앞으로 화해하고자 할 때, 소련군이 저지른 독일 영내에서의 약탈이 더 나쁘게 작용할까? 아니면 핵폭탄이 더 나쁠까?
이제 전쟁이 거의 끝나 가고 미래를 바라볼 때가 되었다. 그 미래를 설계하는데 핵폭탄이라는 에이스 카드를 어떻게 쓸 것이냐라는 고민은 끝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다 해도 핵폭탄은 실제 역사에서는 단 두 번, 그것도 한 나라에만 사용되었다. 일본과 미국이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모든 것을 연역해 낼 수는 없었기도 하고.
내 심각한 표정을 본 공군 사령관 노비코프는 웬일인지 유독 우물쭈물하는 것 같았다.
“노비코프, 자네 또 무슨 일 있나? 숨기는 것을 남기지 말게!”
“아… 서기장 동지! 그… 그게….”
사람들의 눈길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공습 작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노비코프의 표정이 울먹일 듯 일그러졌다.
“…바실리 스탈, 아니, 주가슈빌리가 베를린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 * *
41년 프스코프에 대한 독일군 대공세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출격한 바실리 주가슈빌리는 격추당했다고 알려졌었다. 그와 함께 출격한 비행편대 중 돌아올 수 있었던 비행기는 단 한 대뿐이었고, 생존자는 다른 모든 비행기들이 격추되었다고 이야기했다.
형벌부대에게는 따로 낙하산이 지급되지 않았던바, 우리는 그들을 전사자로 처리해 왔다. 그런데 격추되었던 바실리가 살아 있었다니?
“정확한 사실은 확인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비행사들의 말에 따르면, 독일은 플래카드와 확성기를 통해 ‘서기장의 아들을 포로로 잡았다, 대공포탑에 묶어 두었다’라고 선전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머릿속에서 무언가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베리야, 자네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에게 지시를 내리도록 하게. 몰로토프, 자네는 미국에 연락하도록 하고….”
“예! 서기장 동지!”
“그리고 노비코프?”
“예, 예!”
심약한 노비코프는 이 상황이 지극히 두려운 듯했다. 하지만 나는 분노가 일지 않을 정도로 분노가 차올랐다. 보로실로프가 저쪽에서 뭐라 말하려는 듯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고 싶지는 않았다.
“반드시, 반드시 그 ‘바실리 주가슈빌리’를 사살하도록 출격하는 모든 파일럿들에게 명령을 내리게. 알겠나?”
“코바?”
“예?!”
“반드시! 반드시 확실하게 그 포로를 사살하도록! 이것은 서기장의 명령이네! 감히 불복종하려 하는가!”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보로실로프는 깜짝 놀라 내 별명을 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타타타 쏘아붙였다.
뭔가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코바, 대체 무슨….”
“몰로토프, 자네는 빨리 루즈벨트에게 직통 전화를 연결하게. 그리고 다 나가!”
스탈린은 결정을 내렸다.
* * *
“루즈벨트 대통령. 오늘은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해 주려 합니다.”
[오, 무슨 소식입니까? 소련이 혹시….]
“그렇습니다. 곧, 근시일 내로 대일전에 참전하고자 합니다.”
전화기 저편에서 루즈벨트는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지난번 매카시의 헛소리 때문에 직통 대화를 했을 때는 피곤한 것 같았던 그의 음성이 활기차게 바뀌었다. 어지간히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전화통 이편은 그다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붉어진 내 눈가와 안절부절못하는 몰로토프를 보며 통역사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똑바로 통역이나 하라는 명령을 듣고서는 더더욱.
“독일이 항복하고 한 달의 기한을 준다면 대일 선전포고와 개전을 하겠습니다. 이로써 태평양에서 일본군을 축출하려는 미군의 진격이 조금 더 편해질 것입니다.”
[그것 참 좋은 소식입니다. 어휴,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군요.]
눈을 지그시 감고 소파에 기대자 푹신한 소파는 내 늙은 몸뚱이를 받쳐 주었다.
손으로 눈을 가리고, 나는 내가 하고자 했던 말들을 이어 나갔다.
“독일을 정리한 이후에는 회담을 통하여 앞으로 다룰 의제들을 정리해 보면 좋겠습니다. 장소는… 포츠담 정도가 적절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데 이쪽에서 전해 듣기론 베를린까지는 아직 한참이 남았다고 알고 있었는데 벌써 그걸 논할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까? 이제 바르샤바를 향해 진군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소이다. 대통령께서는 기대하여도 좋습니다.”
[하하하하하하! 알겠습니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서도 루즈벨트는 소련이 대체 뭘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일국의 지도자라면 당연히 그렇겠지.
뭐,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몰락하면 대서양 루트에서 추축국을 배제할 수 있게 되니 이쪽으로 미국이 보내 줄 수 있는 렌드리스 물자라든가, 일본의 전쟁 지속 의지라든가, 이런 시답잖은 문제를 잠시간 논의했다.
곧 깨달을 수 있겠지. 소련이 핵폭탄을 개발하고 실전 사용하려 한다는 것을.
몰로토프는 대충 내 의중을 직감한 것 같았다. 프랑스 공산당계 레지스탕스들에게 내릴 지령을 들고 방금 들어온 베리야도.
통화를 끊고 통역사를 내보내고 나자, 남아 있는 사람은 나를 빼고 세 사람이 있었다.
전선에 나가 있는 주코프를 제외하고 핵무기에 대해 알고 있는 셋. 몰로토프, 베리야, 그리고 바실렙스키.
아까 내가 흘린 눈물을 본 바실렙스키는 조심스레 물었다.
“서기장 동지…. 포로 교환을 제의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저들이 그따위 수작에 응하겠나?”
“….”
당연히 그럴 리 없다. 독일은 그 어떤 것을 준다 하더라도 자기네들의 으뜸패(혹은 그렇게 생각하는)를 내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를 통해 사보타주하고 있었지만, 저들은 핵개발을 위해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 하고 있었다. 유겐트 소년들과 국민돌격대 노인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독가스와 세균병기를 만들어서라도.
하지만 하이젠베르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저들은 깨달을 것이다.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더더욱 바실리를 내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시간을 끌 수 있는 수단을 포기하려 하지는 않을 테니. 간단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었다. 독일은 결코 협상에 응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핵개발을 하는 동안 시간이나 끌려 하겠지.
“그렇다고 사살까지….”
“인간이 가장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나?”
“예?”
뜬금없는 내 질문에 바실렙스키는 의아한 표정으로 날 보았다. 베리야는 어쩐지 눈이 반짝이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소살(燒殺)이라네. 소살.”
“저… 그것이… 아!”
“결정하신 것입니까? 서기장 동지?”
총명한 바실렙스키는 금방 깨달은 것 같았다. 베리야는 다시 한번 눈을 반짝이며 내게 캐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베리야는 작게 탄성을 터트렸다.
“두 발을 준비하게. 한 발은 베를린, 한 발은….”
“흐흐흐흐….”
“예비용으로 남겨 두지. 혹시나 독일이 항복하지 않는다면….”
낮게 웃다가 한 발은 예비라는 말에 약간 시무룩해진 것 같은 ‘사람’이 하나 있었지만 무시했다. 아, 사람이 맞긴 한가…?
아무튼 핵의 불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느니, 최소한 고통 없이 빨리 죽을 수 있게는 해 주어야겠지. 내 안의 스탈린도 이견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이 핵폭탄을 떨어트리라고 충동질할 뿐. 제 아들이 죽어야 하는 것은 이해했지만, 그만큼 피의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베를린 가지고 되겠나? 베를린, 쾨니히스베르크, 뮌헨, 프랑크푸르트… 수많은 독일 도시들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과연 히틀러는 스탈린의 바람을 들어줄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해서?
“투하일은… 크리스마스로 하지. 미국인들에게는 그 며칠 전부터는 폭격을 중단해 달라고 통고하게.”
“예! 서기장 동지!”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은 그 사흘 전에는 일제 봉기를 일으키도록 하게. 아마 그 정도 시간은 있어야 유의미한 정도로 구역을 접수하고 파리 주둔 독일군에게 항복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명심하게. 파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반드시 우리 명령을 듣는 레지스탕스 조직이어야 하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번 가을은 독일인들에겐 아주 화끈한 겨울이 될 것이다. 화끈한 맛을 보고도 항복하지 않겠다면 연말연시도 화끈하게 장식해 주면 되는 것이고.
“모델 원수에게는 항복 권고를 보내고… 우리는 적 전선이 혼란에 빠지면 돌파하여 베를린, 그리고 그 이후까지 전진할 수 있는 기갑부대들을 준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베를린이 불타 없어지면 전선의 독일군은 우왕좌왕할 것이다. 수도가 갑자기 폐허가 된다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존재하지도 않게 된 범죄 정권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선택을 할까? 아니면 병사들을 위하는 선택을 할까? 실제 역사에서 모델은 최후의 최후가 다가오자 용맹히 싸워 온 장병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탈영병으로 처벌받지 않도록 전역증을 써 주기까지 하면서.
그리고 범죄 정권을 위해 싸워왔다며 자책하는 유언을 남겼다.
‘고대의 패장은 이럴 때 독을 마셨다지?’
그에 대해 평전을 저술한 부하 장교는 모델의 마지막 말을 그렇게 기억했다. 차마 항복하여 살아가는 삶을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권총 자살을 택했다.
왠지 아까웠다. 그의 실력이든, 전쟁에서 보여 주었던 인간적인 조치들이든.
“모델 원수에 대한 항복 권유는 내가 직접 작성하도록 하지.”
“아… 알겠습니다.”
손을 훠이훠이 젓자 셋은 쪼르륵 나가 버렸다. 호위병들도 함께.
이제 이 집무실 안에는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내 안에서 울부짖는 것 같은 스탈린과 함께.
상처 입은 짐승이 울부짖듯 그는 내 안에서 포효했다. 그 개만도 못한 것들을 끝장내 버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