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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56화 (156/300)

# 156

156화

“우리 안에는 지금 ‘제5열’이 수십 명씩 숨어 있습니다! 국무부의 205인 스파이들! 국방성의 118명! 심지어….”

젊은 상원의원, 조지프 매카시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며 숨을 골랐다. 그가 일부러 뜸을 들이며 물을 한 잔 마시는 동안 기자들이 삼킨 침만 해도 아마 한 바가지는 될 것이다.

조금 더 목소리를 낮추고, 짐짓 사악한 표정을 지으며 매카시는 이야기했다.

“우리 미국에서 가장 미국적이어야 할 그곳에도, 수십 명의 좌익분자, 공산주의자, 용공분자들이 숨어 있습니다!”

허어어억! 다들 기겁해서 숨을 집어삼켰다.

매카시는 명백히 백악관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실로 대담한 주장이라 할 만했다.

일본을 점점 서태평양에서 몰아내며 현 대통령, FDR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절정을 구가하고 있었다. 비록 FDR이나 그의 부통령, 월리스가 친공-친소라는 것 때문에 고까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련은 미국에게 선제공격한 독일을 상대로 막대한 피를 흘려 가며 싸워 독일을 끝장내기 직전까지 가고 있었다.

이러나저러나 미국과 소련은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그,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대체….”

“여기, 여기에 그 공산주의자들의 목록이 있습니다.”

젊은 기자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하자 매카시는 기다렸다는 듯 자기 서류 가방에서 웬 종이뭉치를 하나 꺼내 들었다.

흰 종이뭉치는 매카시의 손 위에서 펄럭거렸다. 카메라맨들은 연신 플래시를 펑펑 터트렸고, 기자들은 뻑뻑 담배를 피워 가며 매카시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적어 내려갔다.

그야말로 일대 특종이었으니.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 누가 공산주의자입니까? 스파이의 정체를 공개하십시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제가 이 명단을 공개한다면 그들은 증거를 숨기고 잠적하거나 본격적인 사보타주 활동을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매카시는 묘한 미소를 씨익 지으며 연단을 탕 내리쳤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국가 안에 기생충들이 너무나 많이 숨어 있습니다! 그들은 국가 기밀을 유출시키고, 우리의 방어태세를 해이하게 해 막대한 피해를 유발했습니다. 이들의 이적 행위를 반드시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매카시 상원의원님, 그 방법은 어떻게….”

“저는 이 자리에서 ‘반미활동 감시위원회’를 하원에 설치하고 그에 대한 입법부의 청문회를 열 것을 요구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시다시피?”

“행정부에는 너무나 많은 공산 간첩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 때문에 우리가 이 전쟁에서 이리 많은 피를 흘렸겠습니까? 파나마! 진주만! 기억하십시오!!”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매카시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기자들의 손이 다시 빨라졌다.

그에 따르면 파나마와 진주만에서 기습을 당한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이 미국인들의 굳건한 안보 태세를 흩트려 놓아서였다. 수백 명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과 크렘린, 그리고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오직 스탈린만이 지금 웃고 있었으며, 미국인들의 피땀으로 만든 수많은 물자들이 소련으로 건너가 사악한 공산주의자들을 살찌우는 데 쓰이고 있었다.

“그… 그렇다면 전쟁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일단 즉각 소련으로 들어가는 모든 물자 지원을 중단해야 합니다! 독일, 소련, 두 전체주의 국가가 서로 상잔하다 죽게 하십시오. 우리는 일본을 끝장내고, 두 국가의 손으로부터 유럽 역시 해방시켜야 할 것입니다!”

명백히 동맹국인 소련에게 할 말은 아니었지만 몇몇 반공 반소주의자들은 환호했다.

집권당인 민주당에까지도 소련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깔려 있었는데 하물며 공화당이라면?

당장 민주당 상원의원 해리 트루먼은 매카시의 발언에 대해 지지 비슷한 것을 표명하며 짧게 코멘트했다.

“싸우다 죽게 두시오. 두 개새… 아니, 둘 다 우리 적이오.”

물론 꽤 많은 사람들은 매카시의 말을 그저 관심병자의 거짓말로 치부했다. 애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파이라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어찌 되었거나 촌구석 위스콘신 출신의 젊은 의원이 전국구로 알려진 것은 정치인으로서 나쁜 일은 아니었다.

그의 사무실에는 각종 고발장들과 후원금, 그리고 인터뷰 요청이 쏟아졌다.

* * *

“이 새끼는 지금 우리가 빨갱이라고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빌어먹을, 하!”

“…송구합니다, 대통령 각하.”

“아니, 조지. 자네가 미안할 필요는 없네. 후….”

루즈벨트는 뒷목이 뻐근한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뒷목을 연신 주물렀다. 다른 각료들 역시 얼굴이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직접적으로 소련과 ‘협력’했기에 용공 혐의를 집중적으로 받던 부통령 월리스라던가, ‘몰로토프에게 놀아났다’라는 마셜 등이 그러했다.

“그리고 트루먼. 이자도 혓바닥을 주의할 줄 모르는군. 뭐? 서로 싸우다 죽게 내버려 두라고? 우리가 독일과 직접 싸웠다면 400만 명이 죽고 다쳤겠지. 제기랄!”

“….”

“그까짓 물자, 그까짓 기름이며 기술 좀 던져 주고 수백만의 목숨을 살렸으면 된 것 아닌가?”

“…맞습니다, 대통령 각하.”

독일과 소련의 저 전쟁은 실로 끔찍하고도 거대했다. 두 국가가 서로 죽여 댄 군인만 해도 600만을 넘어 700만에 이를 지경이라는 통계를 접한 국방부와 국무부의 정보분석가들은 소름이 돋는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전쟁, ‘태평양 전쟁’에서 중상을 입거나 전사한 군인을 다 합쳐도 아직 50만 명도 되지 않았다.

그 10배가 넘는 희생자를 과연 미국인들이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마 정권이 뒤집혀도 몇 번은 뒤집혔을 것이다.

그만한 피를 대신 흘려 준 소련에게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미 행정부가 직접 한 짓은 아니지만 스탈린은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간신히 대일전 참전 약속을 받아 내었는데 일이 이렇게 어그러지다니!”

“각하, 스탈린 서기장에게 참전에 대한 재확인을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래야겠지. 빌어먹을 매카시. 그자 때문에 오히려 협상에서 우리가 불리한 위치에 서게 생겼군. 그나저나….”

루즈벨트는 잠시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가 다시 앞으로 숙여 은근히 질문을 했다.

“그거 근거 있는 소린가? 그렇다면 문제가 또 달라지네만….”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무장관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에서 걸어 나갔다. 루즈벨트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을 흔들었다.

“모든 게 엉망이야. 난 이럴 때 참 스탈린 서기장이 부럽단 말이야. 만약 스탈린 서기장이었다면….”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어 땅! 땅! 쏘는 것처럼 동작을 해 보인 그는 장난스럽게 손끝을 후 불었다.

“매카시 같은 놈은 이렇게 하지 않았겠나? 그, 누군가. 트로츠키는….”

“그자는 머리를 얼음 깨는 곡괭이로 내리쳐 죽였다고 합니다.”

“그래! 내 마음이 딱 그건데.”

루즈벨트는 쌓인 것이 많았는지 긴 팔을 휘두르며 고함을 쳤다. 매카시는 머리통을 깨 버리고!

“그리고 맥아더 그 새끼는 그 누구야, 소련의 장군 말일세.”

“주코프 원수 말씀이십니까?”

“아니, 아니, 그 처형당한….”

“투하체프스키 말씀이시로군요.”

그 사람인가? 루즈벨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튼 처형, 그게 중요한 걸세. 그 반역자 새끼는 내가 총사령관이었다면 처형이야!”

“각하, 쌓이신 게 많은 것은 알지만….”

“그래, 그래. 나는 미합중국의 대통령이지 소련의 서기장이 아니지. 나도 알고 있네. 그냥 답답해서 해 본 소리일세.”

다들 그 마음이 무슨 뜻인지는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탈린과 같은 강철 권력을 휘두르는 전제적 통치자를 꿈꿔 본 적 없는 정치인이 있을까?

그가 거둔 놀라운 성공, 신화적인 공업화로부터 전쟁 승리까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견제와 정쟁을 거치며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소련은 쭉쭉 앞서 나갔다.

비록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지고, 미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던 FDR로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네거티브를 받을 때는 체제에 대한 회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장 부러운 것 하나.

“스탈린은 베리야가 있는데 우리는 왜 이 꼴인가?”

“크흠… 각하….”

“후버, 그자의 전횡을 내가 언제까지 두고 보아야 하겠나? 자네들 말대로, 그자가 텐트 밖에서 안으로 오줌을 싸는 것보다는 안에서 밖으로 싸는 것이 낫다는 것은 나도 안다만… 솔직히 그자가 이번 일을 꾸민 게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드네.”

FBI 국장 존 에드가 후버는 미국 정계에서 가장 유명한 반공주의자 중 한 사람이었다. 20년대부터 거의 20년간 FBI 국장을 지낸 그는 미국의 첩보를 한 손에 쥐고 정치인들의 약점이며 사생활을 들추어 자기 자리를 공고하게 지켰다.

해외 스파이를 색출한답시고 곳곳을 도청하는가 하면 자기 사람들을 시켜 미행을 붙이는 행적을 지적받은 적도 있었다.

그 문제를 제기한 정치인의 약점을 잡아 좌익으로 몰아 매장했던 것이 문제지.

지금 전쟁으로 인해 첩보부문이 막대하게 팽창한 것을 기회로, 후버는 제 끝모르는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매카시와 후버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려면 첩보능력이 필요했지만, 그게 다 후버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이 문제일 뿐.

스탈린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NKVD 국장, 베리야가 부러울 만도 했다.

“아무튼 매카시가 지껄인 소리가 진짜 근거가 있는지나 좀 알아보게나. 이미 스탈린 서기장은 이 내용을 전해 들었을 테니….”

루즈벨트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마 스파이가 200명씩 있지는 않겠지만, 스탈린은 놀라우리만치 미국에 대한 내용을 많이 알고 있었다. 도날드 덕이나 미키 마우스까지 아는 것에 루즈벨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 철저히 조사해 밝혀내겠습니다.”

* * *

“베리야! 당장 이리 달려와! 빌어먹을! 제기랄!”

“예!? 예! 서기장 동지! 무… 무슨 일이십니까?”

“이걸 좀 보라고. 하… 자네 첩보 활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나 보군?”

베리야는 내 분노를 느꼈는지 허둥지둥하며 달려왔다. 웬만해선 베리야에게 화내지 않고, 혹시나 나를 경계하지 않도록 잘 대해 주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탁자 위에 던져둔 문서를 본 베리야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을 더듬었다.

“이, 이럴 리 없습니다! 서기장 동지! 절대 아닙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래, 당연히 아니어야겠지. 하….”

그 문서에 적혀 있는 내용은 별다를 게 없었지만 미소 관계를 끝장낼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위스콘신 상원의원 매카시: 미 국무부에 205명의 스파이가 숨어 있다!>

“절반이나 들켰다고?! 우리 첩보망이며 외교 관계가 끝장날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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