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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51화 (151/300)

# 151

151화

“자! 가자! 좆같은 쪽발이들한테 한 방 먹이러!”

“킬 잽스! 킬 잽스! 킬 모어 잽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의 승조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높아져 있었다.

“우리는 우리 혼자서도 일본을 상대했다. 하지만 이제 전우들이 돌아왔다. 잽스 새끼들을 지져 죽일 전우들이!”

물론 진주만에서 살아남은 전함 3척이 있기는 하였으나, 엔터프라이즈야말로 일본 항모부대를 하나하나 궤멸시킨 일등공신이었다.

간발의 차로 일본 해군항공대의 공습에서 살아남은 엔터프라이즈는 항공모함들을 하나하나 침몰시켰다. 엔터프라이즈를 럭키 E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로.

일본 해군은 아직도 해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분산되어 있었다. ‘함대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 일부를 뒤로 빼돌려놓지를 않나. 영국령 인도를 찝쩍거려 보겠다고 또 함대를 차출하지를 않나.

그렇게 일본군의 손해가 누적되어 가는 가운데, 새로이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진수되기 시작하자 점점 저울추는 기울었다.

물론 어디나 ‘균형의 수호자’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 * *

“제길, 우리가 유리한 전장으로 저들을 끌어내는 것이 상식 아닌가?”

“…그거야 미군에게 유리한 전장이지, 맥아더 장군에게 유리한 전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

“내 생각이 짧았군 그래. 제기랄!”

해군의 고위급들은 맥아더의 전횡에 이를 박박 갈았다.

미군은 해군에서 분명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아직까지는.

엔터프라이즈와 고속기동전단이 일본 해군을 역으로 ‘점감요격’하고 있었고, 밤낮없이 돌아가는 조선소에서는 새로운 배를 말 그대로 찍어 냈다.

그러나 맥아더는 이 함대를 곧이곧대로 남태평양의 섬들을 하나하나 수복하는데 쏟고 있었다. 육상 비행장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어차피 본토를 괴롭힐 수 있다면 대체 왜… 아니지. 맥아더 장군은 그 빌어먹을 새로운 감투에 욕심을 내고 계시니.”

니미츠 제독은 침을 칵 뱉었다. 맥아더는 원수 자리를, 그리고 그 위를 탐내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화려한 전과가 필요했다.

도쿄를 불태웠다, 일본을 굶겨 죽인다 같은 것은 전쟁의 승리에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맥아더의 경력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FDR은 3선을 넘어 4선을 노리고 있었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이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통령이나, 아무튼 대통령을 노린다면 후자가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맥아더는 ‘전과’를 원했다. 어느 섬을 탈환했고, 몇 명의 주민을 구조했다. 어떤 전투에서 승리했고, 어디에서 미군이 이겼다!

그 과정에서 미군이 죽어도 그다지 나쁠 것은 없었다. 전쟁 중에 사람이 죽는 것은 너무 많이 죽지만 않는다면 장군의 잘못이라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러나 전쟁에 나라를 끌고 들어간 정치인의 잘못이 될 수는 있었다.

화려한 전공으로 자신을 포장하면서 과는 모조리 정치판에 떠넘기는 것. 이만큼 정계 진출에 유리한 게 있을까? 물론 그 밑에서 닦달당하는 하급자들은 그에게 진저리쳤지만.

맥아더는 자기 필리핀 파벌들과 밀실에서 온갖 군의 사무와 작전을 논의한 뒤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을 좋아해 불만이 있는지 없는지 알 도리도 없었다.

그나마 그의 부관인 아이젠하워 장군이 해군을 어르기 위해 보내졌을 뿐.

“아무튼 우리가 승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각하.”

“불필요한 피가 너무 흐르고 있어….”

니미츠는 뭔가 욕설을 뇌까린 것 같았지만, 마침 발사된 전함의 발포음에 묻혀 버렸다.

아이오와급에 탑재된 9문의 16인치 포는 쾅쾅 천지를 진동하는 거대한 포성을 울리며 일본군이 주둔한 섬을 두들겼다.

아마 저 작은 섬의 벙커 안에는 일본군들이 옹기종기 숨어 언제 포격이 끝날지 내기를 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포격이 그치고 미군이 상륙 및 돌격을 실행에 옮길 때쯤 기어 나와 총질을 해 대겠지.

해군은 이런 구도를 원하지 않았다.

“이제 일본 놈들은 저 넓은 전장을 유지하려다가 제풀에 지쳐 떨어질 수밖에 없어. 결정적인 함대 결전으로, 우리가 유리한 곳으로 저들을 끌어내서 밟아 줄 수 있는데….”

공군 작전만으로도 일본의 경제에 효과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공군의 기뢰 살포와 고엽제 투하는 일본 제국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는 첩보가 접수되었다.

소련의 배후조종이 있었다지만, 식민지에서 총파업이 터지고 자국 노동자들도 파업이며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전쟁에 이로울 리 없었다. 굳이 섬에 틀어박혀 악을 쓰는 일본군을 일일이 청소할 필요 없이, 성큼성큼 건너뛰어 본토를 괴롭히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자 보게. 여기를….”

니미츠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손가락으로 짚어 나갔다.

“맥아더 장군은 이렇게 필리핀으로 빙 돌아치기를 원하지. 하지만 그건 아예 돌아가는 것 아닌가! 차라리 이렇게, 이렇게….”

미군이 사수하는 데 성공한 파푸아뉴기니에서 북으로 직상할 경우 괌과 마리아나 제도가 있었다. 장거리 폭격기들을 활용하면 이곳에서도 일본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 함대는 이 전진기지를 제거하기 위해 바글바글 몰려오겠지만, 미국은 일본이 숨지 않고 밖으로 튀어나와 함대 결전을 벌이도록 유도할 수 있었다.

함대 결전이야말로 일본이 바라고 바라던 것이었지만, 그들은 애초에 작전의 전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었다.

이제는 미 해군의 함대 하나가 전멸하더라도 일본군은 이길 수 없었다. 41년 말부터 건조에 들어갔던 전함들은 이제 완성되고 있었다. 비슷한 피해를 누적시킨다면 미국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괜히 섬을 공격하겠다고 하다가 자폭 어뢰에 당하는 게 아니라.

“일단… 말씀은 드려 보겠습니다.”

“하! 그자가 우리가 말한다고 들을 사람이었으면 이쯤에서 끝냈겠나.”

“하하하하….”

아이젠하워는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멋쩍게 지어 보였다.

‘저 정도는 되어야 그 밑에서 부관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 * *

미군은 맥아더의 독단을 비롯해 이러저러한 불만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이 이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군이 삽질을 하면 일본은 그 두 배로 삽질을 한다! 아마 그런 말이 가장 잘 어울렸을 것이다.

아무튼, 일본이 섬에 박아 놓은 병력을 이용해 피해를 강요한다지만, 온갖 수단을 끌고 와 두들겨 패는 미군을 삽질로 땅을 파서 막아 내야 한다면?

함대 결전을 위해, 혹은 인도양 진출을 위해 거함들이 다 따로 놀고 있는 사이 일본군은 고립된 채로 싸우다 결국 죽거나 포로가 되어야 했다.

“자, 이걸 받아라!”

“예?”

“받으라니까!”

얼떨결에 긴 나무막대기 끝에 묵직한 물건이 달린 것을 받아든 병사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소대장을 바라보았다.

소대장은 지극히 엄숙한 얼굴로 선언했다.

“자네는 무적 황군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예! 그렇습니다!”

상급자의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 일본군은 그것을 주입하느라 무진 애를 썼고, 거의 성공했다.

병사들은 이제 누군가가 뭔가를 물으면 ‘예’라고 대답했다. 그게 무슨 질문이든 간에. 파블로프의 개처럼, 막대기를 받은 병사 역시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럼, 저기를 보게. 무엇이 보이나?”

“저, 귀축 영미 놈들의 전차가 보입니다!”

“아주 좋아. 우리 무적 황군은 이… 섬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나 귀축만도 못한 양키들은 비겁하게도 상륙을 위해 전차를 동원했다!”

전쟁에 비겁한 게 있다면 선전포고도 안 하고 선빵을 친 것이었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서 아니오, 라고 말할 경우 개처럼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기에. 병사는 장교가 무엇을 말하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걸로 가서 전차를 파괴해라!”

“예…?”

“자! 가라!”

저 쇳덩어리를 이 막대기로 파괴하라고? 병사의 얼굴에는 명백하게 그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끝에 달린 것을 자세히 보니 얼핏 지뢰같이 생기긴 했다. 하지만 지금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전차의 기관총과 보병의 사격을 피해 저기까지 가라고?

“이… 이것을 던지면 되는 것입니까?”

“빠가야로!”

퍽, 소위는 그의 뒤통수를 퍽 하고 갈겼다. 어이쿠, 하며 막대를 떨어트릴 뻔했지만 그랬다가는 무사 정신이 부족하다고 개 처맞듯 맞을 것이 뻔해서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예전에는 선임들이 때리는 동안 총을 놓쳤는데, 그걸 지나가던 장교가 보더니 두들겨 패는 걸 말리는 게 아니라 ‘천황폐하가 하사하신’ 총을 떨어트린 것을 두고 혼쭐을 냈었다.

뭔가 좀 이상했지만, 윗사람이 시킨 것은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자돌폭뢰다!”

“예!”

그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를 설명해 주어야 했지만 소위는 당당하게 아무 말이 없었다. 이제 안 뛰어가고 무엇 하냐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 병사를 한 대 더 패 주어야 하나 잠시 고민한 그는 자비로운 마음을 발휘하기로 하고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끝에 있는 폭탄을 저어기 전차에 들고 콱! 찌르면 전차를 격파할 수도 있네. 그러니까 달려가서 찌르면 된다. 일본 건아의 용맹을 보여 주고 오게!”

다시 돌아올 수는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것을 물어봐야 아마 몇 대 더 맞고 끝날 것임은 과거의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아무튼, 돌격을 한다면 죽어서 야스쿠니 신사의 영령이라도 될 수도 있고, 부모님도 무사하실 것이다.

여기서 도망쳐 봐야 무엇을 하겠는가? 아마 이 소대장은 길길이 날뛰며 비겁죄랍시고 전우들을 더 괴롭힐 것이다. 상부에 보고해 가족들에게 빨갱이, 비국민 딱지 정도는 손쉽게 붙일 것이다.

어린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차라리….

“덴노 헤이카 반자이이이이이!!”

“자 보라! 저 용맹을!”

이것이 용맹인가?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초졸 무식쟁이인 그 자신도 어렴풋이 알 만했다.

“어? 어?”

“쏴라! 쏴!”

미군은 몇 번 이런 일을 겪어보았는지 그에게 총을 쏘아 대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전차, 최소 15톤은 되어 보이는 저 쇳덩어리는 다른 곳에 포를 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으윽!”

쾅! 뒤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폭발의 충격 때문에 병사는 휘청였다. 폭발은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터진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가 달려 나오기 시작했던 참호는 아예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소위와 그의 이십여 명 가까이 되는 소대원들은 연기에 가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휘청이다 앞을 보니 전차는 엄청나게 가까이 와 있었다.

이 폭탄을 찌르면 전차를 ‘터트릴 수’도 있다고 소대장은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과연 나는 멀쩡할까? 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철판을 찌그러트리고 전차를 때려 부술 수 있으면 이 가까운 거리에서 그 폭발을 받을 나는?

원래대로라면 그냥 찔렀겠지만, 이제 뒤에 지켜보는 그 악랄한 소대장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꼴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재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예전에 보았던 내용을 기억해 내기 위해.

그 내용은 바로 영어로 항복이라는 단어를 외치는 법이었다. 벌써 몸은 자돌폭뢰가 달린 장대를 내던지고 있었다.

“항복! 항복! 살려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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