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146화
시내에서 보병과 보병이 격돌하는 피 튀기는 시가전이 벌어지는 동안, 소련군은 민스크를 우회하여 후방을 강타하기 위한 두 번째 공세를 시작했다.
소련군의 작전 교리의 기본은 바로 <종심 작전>이었다. 전 전면에서 제병협동공세를 꽂아 넣고, 적의 예비대가 갈팡질팡하는 사이 강력한 기갑전력을 동원하여 방어선을 돌파, 적의 종심을 타격하는.
독일군의 중전차는 소련군의 기갑부대를 앞세운 돌파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5호 전차 판터를 사용하는 중전차대대들은 결국 소련이 신형 ‘부됸늬 중전차’를 등판시키며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6호 전차 티거가 편성된 대대들이 다시 그 역할을 넘겨받았다.
티거는 대전차전에서는 무적에 가까운 성능을 자랑했다.
“아하하하! T-34쯤이야… 장전되는 대로 발사!”
비트만 대위가 지휘하는 601중전차대대 2중대는 민스크 북쪽의 자슬라카예 저수지를 우회하여 후방으로 진격하려는 소련군을 저지하고 있었다.
울리차 소베츠카야라는 작은 다리를 막아서고 티거 13대라는 일당백의 전력을 투입하자 소련군은 쩔쩔맬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부됸늬 중전차로도 1천 거리에서 한 방 맞으면 장담을 못 한다니….”
“어디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해당 다리를 점령해 진격로를 확보할 임무를 맡은 전차연대의 연대장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미 선발대로 투입한 기갑수색대의 중전차들이 펑펑 터져나가는 것을 본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 방법을 써야 하나?”
* * *
“어?
전차의 우렁찬 엔진소리 사이로도 독일 전차병들은 알 수 있었다.
소련군은 목숨이나 전차 몇 대 정도는 아깝지 않다는 듯 연속적으로 전차부대를 투입했다. 아까 전 네 번째 대대급 전차부대의 공세를 격퇴한 2중대는 이제 막 대대의 보급대로부터 탄약을 공급받은 차였다.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전차병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몰라서는 안 되는 소리가.
“씨발! 공습이다!”
끼이이이이익! 빼애애애애애액!
소련군의 신형 불곰 전투기들은 슈투카를 모방한 나팔을 달고 자기네들의 행차를 동네방네 광고하곤 했다.
비록 군사적인 측면에서 아주 유리하지는 않다 하나, 병사들을 겁먹게 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 주는 효과만큼은 톡톡히 하고 있었다.
수십 번의 혈전을 거쳐 살아남은 에이스들조차도 공군의 공습이라는 말에 허겁지겁 전차를 지그재그로 기동시키기 시작했다.
“제길! 제길! 공군 새끼들은 뭘 하는 거야!”
아마 Bf109를 비롯한 전투기들은 민스크 상공에서 죽어라 싸우고 있었겠지만 당장 공군에게 머리통이 터지게 된 전차병들은 그쪽 사정을 이해하고 너그럽게 넘어가 줄 상황이 아니었다.
“자 이거나 먹어라! 하하하!”
이번엔 반대로 소련 공군이 독일 전차들을 사냥할 때가 되었다.
아무리 중장갑으로 무장한 ‘중전차’라 해도 상면장갑이나 엔진룸마저 두터운 장갑으로 방호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면장갑이라면 웬만한 전차포 정도는 그냥 튕겨내고 버텨내지만,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폭탄은 전차의 약점을 정면으로 타격했다.
타타타타타타탁! 타타타타타타! 콩 볶는 듯한 폭발음이 전차병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얏호! 저것도 격파 전적에 포함되지?”
“솔직히 편대장님이 격파한 겁니까? 집속폭탄이 다 했네.”
공격기 조종편대는 가벼운 농담을 하며 아래의 전차부대를 바라보았다.
‘대전차 항공폭탄’, 약자로 하면 PTAB라고 부르는 이 폭탄은 2kg가량으로 작았지만, 꽉꽉 폭약을 내장하고 있어 어지간한 전차의 상부장갑 정도는 갈가리 찢어 버릴 수 있었다.
“자, 한 발 더 간다!”
불곰 폭격기들은 이 2kg짜리 PTAB를 50개씩 꽉꽉 채워 넣은 집속폭탄을 8발씩 탑재하고 하나하나씩 떨어트렸다.
편대장이 이끄는 불곰 편대는 100m 수준의 저고도까지 급강하해 폭탄을 2발씩 떨어트리고는 다시 급상승해서 혹여나 모를 기관총 공격을 회피했다.
집속폭탄은 확 터지면서 한 발만 맞아도 치명적인 작은 폭탄들을 전차병들의 머리 위에 휙 뿌렸고, 중전차들은 육중하고 느린 그 거체를 끌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숨을 곳을 찾아야 했다.
[제길! 구동계가 퍼졌습니… 치지지직….]
“9호차! 9호차! 씹….”
쿠쾅! 폭음이 들리며 9호차로부터의 무전수신이 끊겼다.
티거 전차는 강력하기는 했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70톤이라는 거체를 움직이면서 고작 700마력 엔진을 얹어 놓은 바람에 야지 주행속도가 형편없었다.
거기에 저질화된 연료, 희귀금속이 고갈된 바람에 형편없어진 금속재 때문에 엔진이나 구동계가 툭하면 말썽을 부렸다.
9호차도 얼마 전에 엔진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징징댔는데, 소련 공군이 철도를 폭격한 바람에 그 엔진을 대충 손봐서 그대로 달고 나와야 했다.
“하….”
공습이 지나가자 13대 중 4대가 격파당해 있었다. 구동계가 퍼져서 회피기동을 하지 못하고 집속폭탄에 엔진룸이 터져나간 9호차, 항공폭탄을 정통으로 얻어맞은 부중대장의 2호차와 14호차, 퇴각 중 부됸늬 전차에게 후면을 잡힌 11호차까지.
쾅! 쾅! 쾅! 육중한 포성이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비트만 대위는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리려 했다.
텅! 쿠쾅! 폭음을 듣기 전까지는.
“뭐야! 빌어먹을….”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멍해져 있던 그는 전차장 큐폴라를 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와….”
한때 티거 전차였던 것이 거기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거인이 망치로 콱 한방 내리찍은 것처럼 찌그러진 전차는 활활 귀중한 연료를 불태우고 있었다.
아까의 육중한 포성은 분명히 203mm Br-4 중포였을 것이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련 놈들이 자주포에다 실어서 쏘는.
그놈들은 그 자주포에다가 ‘즈베라포이’(야수 사냥꾼)이라는 별명을 붙여 놓고 독일 전차들에게 펑펑 쏴 대곤 했다.
“그냥 찌그러졌는뎁쇼….”
그리고 그 중포의 육중한 포탄들은 전차를 말 그대로 ‘격파’했다. 장갑판은 끝끝내 관통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용접선이나 볼트로 연결된 부분들이 터져 나가고, 궤도가 벗겨지고, 아니면 현가장치가 그냥 폭삭 내려앉아 버렸다. 그것이 중포에 직격당한 전차의 최후였다.
그 안에 갇힌 승무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중대장님, 후퇴해야 합니다.”
“…알겠다. 후퇴!”
다리를 넘어 몰려올 소련군 전차들이 벌써 눈에 선한 것 같았다. 민스크에서 벌어지고 있을 혈전을 뒤로하고, 중전차들은 후퇴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다하여서….”
얼마 전의 그 웃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전차병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비트만 대위 역시 명령을 내릴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입에 붙은 가사만을 읊조렸다.
“우리가 고향을 다시는 보지 못하고, 적의 포탄에 맞아 운명이 다하거든… 우리의 전차는 강철로 된 관이 되어 주리라…!”
강철의 관에 전우들을 또 장사지내고 중전차들은 후퇴를 시작했다.
내일은 또 내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 * *
나치들이 착각한 것은 몇 가지가 있었다. 착각한 것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광기와 용맹은 동의어가 아니었다. 광기 어린 눈과 목소리로 민간인을 즐거이 학살하던 그들은 결코 전장에서 용맹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자기네 부대가 제3제국에서 가장 용맹하리라 자랑하던 SS 상급집단지도자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흐스키는 이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는지 허둥지둥했다.
“왜 그곳이 뚫린단 말인가! 아인자츠그루펜은 뭘 하는 거야!”
“그것이….”
손발 묶어 놓은 민간인들이나 쏴 죽이던 병신들이 지옥 같던 레닌그라드에서 단련된 소련군 병사들과의 접전에서 이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무기도, 훈련도, 그리고 정신무장마저도 덜떨어진 주제에 소련군이 레닌그라드에서 만슈타인군을 격파한 것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SS 군단은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으… 으으으….”
“살… 살려줘!”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격 앞에서 학살을 일삼던 독일 병사들은 무력했다. 그들이 겪은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장의 공포 앞에서 하나하나 무너져 갔다.
“으악, 아아아아악! 아아….”
철모를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며, 총마저 내던지고 도망치던 병사 하나는 이마에서 붉은 피를 흩뿌리며 철퍼덕 엎어졌다.
PTSD, 이 당시 독일군이 알고 있는 용어로는 ‘쉘 쇼크’에 시달리던 병사는 발작하며 도망가려 했지만 장교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처치한 적군보다 아군이 더 많고, 그 몇십 배는 되는 민간인을 죽인 권총을 훅 불며 장교는 바짝 약이 올라 고함을 쳤다.
“후퇴는 즉결 처형이다! 총통 각하와 도이치 민족을 위하여 싸워라!”
“…총통 각하 만세에에에에!”
곳곳에서 ‘사기를 올리기 위해’, 혹은 ‘열등한 슬라브인들의 공세를 분쇄하기 위해’ 자살적인 돌격이 이루어졌다.
병사들의 자질 미달만큼이나 장교의 자질 미달 역시 두드러졌다. SS 장교들은 총통이 그토록 역설했던 이상적인 아리아인의 자질들을 갖추고 있었다. 건장한 체구에 금발 벽안, 그리고 퉁퉁 불어터진 간덩이까지.
다만 그 ‘이상적인 아리아인’의 자질에 유능한 두뇌는 없었기에 이들은 휘하의 병사들에게 국가와 당과 총통을 위하여 그들이 아는 유일한 전술을 강요했다.
“돌격! 돌겨어어어억!”
“파쇼 돼지들을 갈아 버려라! 기관총 쏴!”
타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 무너진 담벼락 사이에서 두 정의 기관총이 십자포화를 쏟아부었다.
기관총의 화망에 걸린 독일군 분대는 순식간에 분쇄되었다. 소련군의 뭐라뭐라 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수류탄을 던지려던 선두의 분대장이 피보라 사이로 쓰러졌다. 대열의 후미에 남아 있던 신병은 따라가던 선배 병사들이 모조리 갈려 나가는 것을 보다가 마찬가지로 기관총의 화망에 걸려 쓰러졌다.
등 뒤에는 장교가 권총을 겨누고 협박하고, 앞에는 소련군의 기관총이 납탄을 빗방울 퍼붓듯 쏟아붓는 사이에서 병사들은 가지각색의 선택을 했다.
누군가는 묵묵하게 총탄 사이로 돌격하다 죽어 갔다. 누군가는 미쳐 발작하다가 사살당했다. 또 어떤 병사들은 ‘최선’을 찾고자 했다.
“걱정 마라! 열등한 슬라브인들이 만든 무기가 우리 도이치 민족의 무기보다 우월할 리 없다! 곧 재밍 때문에 사격이 그칠 테니 그 틈을 노려 돌격하라! 돌격!”
“…씨발 새끼!”
병사들에게 돌격을 명령하던 중대장의 등판에 총격이 작렬했다. 소련군 방향을 보고 손가락질하며 돌격! 돌격! 외치던 그는 입에서 피를 뿜으며 앞으로 쓰러졌다.
그를 쏜 하사는 이를 갈며 몇 발의 총알을 더 발사했다.
“뭐 하는 짓이야! 상관 살해는… 악!”
“개새끼들아! 우리가 그냥 이렇게 뒈질 줄 알아?”
깜짝 놀라 권총을 빼든 소대장이 무엇을 해 보기도 전에 그의 뒤통수에도 총알이 한 발 박혔다.
상관 살해는 생각보다 빈번하게 행해졌다. 거친 병사들은 가망 없는 돌격만을 명령하는 무능한 장교를 살해하고 탈영하거나, 혹은 뻔뻔하게 소련군의 행각으로 탈바꿈시켰다.
공명심에 가득 찬 중대장과 가혹한 폭력으로 병사들을 대한 소대장을 살해한 이들은 저기 구석에 그들의 시체를 처박은 후 아직도 벌떡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저기 골목 쪽에서 소련군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들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담배를 한 모금 쭉 빨아들이고 다 타오른 성냥을 바닥에 던졌다.
“퉷, 뒈지느니 차라리 시베리아가 낫다. 항복! 항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