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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43화 (143/300)

# 143

143화

영원할 것만 같았던 독일의 천년왕국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먼저 구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수도 베오그라드가 소련군과 파르티잔들의 공세 앞에 포위되었다. 발칸에 주둔한 2선급 부대들로는 사투를 거쳐 정예화되고 풍부한 기갑장비와 항공기로 무장한 소련군의 공세를 이겨낼 수 없었다.

독일 발칸 야전군은 결국 베오그라드를 포기하고 헝가리와 이탈리아 방면으로 후퇴했다. 베오그라드에서 결사 항전하라고 남겨진 것은 제16SS사단 ‘자유 우크라이나’와 발칸에서 모집한 신병들로 구성된 제21SS사단 ‘스칸데르베그’.

나치즘에 투항한 이들의 말로는 독일인들의 후퇴로를 열어 주기 위한 버림패가 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잡히면 반역자로 더 혹독한 대우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필사적으로 소련군에 저항했다.

“하나, 둘, 셋, 발사!”

콰콰쾅!! 소련군의 152mm 중포가 불을 뿜었다. 건물에 틀어박혀 농성하는 SS 병사들에게는 불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시가전에서의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그리고 최대한 빨리 베오그라드를 해방시키기 위해 연합군은 극단적인 방법을 채택했다. 각 군단과 사단에 가득가득 편제된 곡사 야포들을 소규모 제대들에 배속시키고 직사로 사용할 것을 명령한 것이다.

일개 중대가 1문 내지 2문의 중곡사포를 할당받았다. 트랙터로 야포를 견인해 각자 할당된 구역과 건물로 진입한 소련군은 일단 적이 숨어 있다 싶은 건물에는 대뜸 대포부터 한 방 쏴 갈기고 시작했다.

비명은 없었다. 포격에 걸려든 불운한 적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사실 파악할 수가 없었다. 152mm 포탄에 꽉 들어찬 7킬로그램의 폭약은 건물의 벽돌이나 콘크리트와 함께 파시스트들을 갈아 버리는데 탁월한 효용을 발휘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폭발의 충격파로 인하여 산산이 부서진 창틀 사이로 기관총탄이 날아왔다. 도시 안에서 저항하는 SS 부대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그 정도가 다였다.

구식 Kar98 소총과 몇 정의 기관총들, 끽해야 수류탄 몇 발로 무장한 채 전투기와 중야포로 무장한 소련군을 상대하라고 남겨진 이들. 그러나 그들에게 연민을 느낄 시간은 없었다.

“3층 창문에 적 기관총! 각도 조절하고 120mm 박격포로 쏴 버려!”

“예! 장전!”

합계 100만 명에 가까운 소련군, 파르티잔, 그리고 불가리아군이 베오그라드를 포위하고 함락시키는 데에는 2주가량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3만여 명의 무장친위대원들이 필사적인 저항을 펼쳤지만 티토의 파르티잔들은 복수심에 불타며 더 철저하게 저항을 분쇄했다.

“이자요! 이자가 내 아내와 아이를 죽였소!”

“개만도 못한 새끼들! 모조리 쳐 죽여 버려야 해!”

저항하는 무장친위대들은 잘 알고 있었다. 세르비아인들의 골수에 사무친 원한을. 독일 점령군에 의해 가족을 잃고 학대당하던 베오그라드 주민들은 포로로 잡힌 독일군에게 돌을 던졌다.

“유고슬라비아 공화국 만세! 티토 원수 만세!”

“스탈린 서기장 만세! 형제의 나라여 영원하라!”

파괴되었으나 해방된 베오그라드의 중심가에서 군대가 행진했다.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은 시민들이 던져 주는 꽃가루를 맞으며 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소련 군인들 역시 위풍당당하게 탱크를 타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그 뒤로는 소련의 붉은 깃발과 새로 건국된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삼색기가 함께 휘날렸다. 짓밟히고 찢겨 누더기가 된 하켄크로이츠를 든 무장친위대들과 함께.

스탈린이든 티토든 적군을 국제법에 따라 대우할지언정, 국가의 반역자들을 온전히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자유 우크라이나 사단의 반역자들은 곧 시베리아 어딘가의 수용소로 끌려갈 운명이었다. 발칸 출신의 반역자들은 죄질에 따른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고.

티토는 대독항전을 일종의 ‘민족’ 형성의 기회로 삼으려 하고 있었다. 민족의 적 독일, 피로 맺어진 맹우 소련, 그리고 하나 된 민족! 이를 위해선 그동안 쌓여 온 적대감정을 잠재울 제물이 필요했다.

붉은 군대가 찬란하게 빛나는 만큼 독일군의 몰골은 처참해져만 갔다.

“헝가리의 호르티는 납치되어 행방을 모른다고 하는데… 헝가리로 진격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국의 판단은 스타브카에서 내려올 뿐입니다. 서기장 각하의 명령이 아직 없었습니다.”

이제는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주석이 된 티토는 ‘미수복지구’, 즉 이탈리아 점령하의 크로아티아 괴뢰국을 수복하기 위한 공세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전 섭정 호르티 미클로시를 독일이 납치하고 파시스트 괴뢰 화살십자당이 집권한 이상 헝가리가 루마니아처럼 편을 바꾸는 것은 요원한 일. 추축의 본토인 이탈리아로 진격하는 것이 저들을 더 흔들어 놓을 수 있지 않나? 이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발칸 전선군 사령관 말리놉스키 대장은 침묵했다. 소련군은 지금 발칸뿐만 아니라 북부와 중부에서도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적장 모델 원수는 대대적 공세에 맞서 효율적인 방어로 소련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고 있었고.

그렇기에 서기장은 전선을 너무 확대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 일개 전선군만을 가지고 알프스를 넘어 깊게 파고 들어간다? 그것은 너무 명백한 무리수였다.

“단 한 번의 결정적 공세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군대를 재편성하시지요. 저희 역시 그때를 대비하겠습니다.”

“으음… 좋습니다!”

파르티잔을 본격적인 ‘군대’로 재편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서기장은 결정적 한 방을 이야기하며 전 전선군이 급속기동할 것을 준비하라 명령했다.

재편될 유고 인민군과 루마니아군, 불가리아군, 그리고 발칸 전선군까지. 추축의 남부국경을 노리는 묵직한 공세를 기대하며 말리놉스키는 애써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

* * *

“독일과의 방위조약은 리스토 뤼티 전 대통령, 아니, 반역자 뤼티의 이름으로 체결된 것이며 핀란드 의회는 결코 그것을 비준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핀란드 과도정부는 소련과의 종전을 희망하며 반역자 뤼티를 전범재판에 세울 의향이 있습니다.”

“귀국 정부의 공식 의향은 그것뿐이오?”

“…여기 저희 측이 가져온 협상안이 있습니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독일이 대패하고 물러난 이상 핀란드에게는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었다. 단순히 패배한 정도가 아니라 북부의 소련군을 저지할 북부집단군 자체가 반 토막이 나 버렸다.

분노한 소련이 그동안 독일에 붙어 간을 보던 핀란드를 징벌하러 올라오기 전에 빠르게 항복해 피해를 줄이자는 것이 핀란드 정부의 의견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핀란드군을 사실상 자신의 사조직으로 만들어 버린 만네르하임의 의견이었다.

이미 소련군의 고보로프 대장이 이끄는 카렐리야 전선군은 겨울전쟁 때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은 핀란드 제2의 도시 비보르크를 함락시키고 수도 헬싱키로 진군하고 있었다.

핀란드군은 더 이상의 손실을 감당할 수 없었다. 독일 20군은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1개 군단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양 카렐리야를 몰아쳐 진격하는 70만 소련군은 30만 규모의 핀란드군으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39년 겨울전쟁에서 핀란드군은 절반 정도의 규모로 지형과 겨울 날씨, 소련군의 무능함이라는 이점을 살려 첫 공세를 막아 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소련이 침략군을 두 배로 증강해 몰고 오는 데에는 방법이 없었다.

순식간에 전군의 사분지 일을 상실하고 항복한 악몽 같은 지난 패배를 정부의 모든 요인들은 잘 기억하고 있었다.

“무엇을 내주더라도 우리 국민들의 생명을 더 낭비하지는 말게 해 주시오….”

뤼티 대통령은 만네르하임이 내세운 허수아비였지만 그의 책임감만큼은 진짜였다. 뤼티는 소련이 자기 목숨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줄 것을 명령했다. 핀란드측 협상단장인 외무장관 탄네르는 피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을 기억했다.

세 번째 만나는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이제는 승자의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었다.

“카렐리야는 소련의 적법한 영토라고 우리는 생각하오. 비보르크 역시 우리 영토고….”

“….”

몰로토프의 굵은 손가락이 어느새 펼쳐진 양국 간 국경선 근처를 훑었다. 소련은 레닌그라드의 안전 보장을 위해 최대한 많은 완충지대를 원했다.

물론 그 완충지대는 핀란드의 핵심 산업구역이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지난 전쟁에서 수만 명의 젊은 목숨을 무익하게 잃은 핀란드 정부는 완전 합병만 아니라면 웬만한 조건은 모두 수용해도 좋다고 했다.

“또한, 파시스트들이 점령한 노르웨이와 그들에게 협력하는 스웨덴으로 들어가기 위해 라플란드 지역을… ‘조차’ 하고 싶소.”

라플란드라는 이름을 들은 탄네르는 머리가 띵해졌다.

소련은 40년 겨울전쟁으로 핀란드 영토의 11%, 산업 생산의 3할을 차지하는 알짜 영토인 카렐리야를 강탈했다. 그렇게 해서 줄어든 영토의 다시 3할, 1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라플란드를 내놓으라고?

몰로토프는 당장이라도 웃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표정으로 탄네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차’라고 해도 언제까지일지 모른다. 아예 집어삼키고 나 몰라라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핀란드는 기댈 곳 하나 없었다.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상대하기 위한 파트너로 소련을 선택했고, 뤼티 대통령이 계속 기대려 한 영국은 몰락해 버렸다. 라플란드를 내주면 육상에서 접한 국경선이라고는 소련밖에 없는 사실상의 섬이 되겠지만….

“의회에 조약의 비준을 요청하겠습니다….”

“오, 그리고 하나 더.”

“예?”

점점 몰로토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염병으로 한참 조롱당했던 그는 핀란드를 물 먹이는 이 상황이 너무나 즐거운 것 같았다.

“조약을 비준하면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거를 실시하시오. 현 핀란드 의회 역시 침략전쟁을 방관한 전쟁범죄의 동조자로 우리는 판단하고 있소. 만네르하임 씨의 정부를 우리는 협상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소이다. 새로이 행해지는 총선거는 만네르하임과 그 일당의 ‘선거 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우리 소련에서 감시단을 파견하고자 하는데… 어찌하시겠소?”

“….”

끝났다.

소련의 ‘감시단’ 이 다 무엇인가. 새로이 총선거에서 당선될 이들은 소련의 꼭두각시들일 터, 핀란드를 아예 속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이다.

이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광소를 터트릴 것 같은 몰로토프를, 탄네르는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았다. 핀란드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아예 국체를 바꿔 버리라고 하지 그러나?

차라리 고위급 몇 사람이 전범재판으로 처형당하고 말 것이면 가능하다. 탄네르 그 자신도 뤼티 대통령의 자기희생 선언을 보며 필요하다면 본인도 그럴 것을 다짐했지만 개죽음이 된다면?

“생각해 볼 시간을 주십시오…. 개죽음과 굴종 사이에서….”

“음? 뭐라고 하셨소?”

마지막 말은 씹어 삼키듯 속으로 중얼거렸기에 몰로토프는 과장된 제스처로 다시 말해 보라는 듯 귀에 손을 대고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 생각해 볼 시간을….”

“아! 일주일 드리겠소! 서기장께선 인내심이 요새 부족해지셔서….”

“…알겠습니다….”

패자는 말이 없다. 수십만 붉은 군대가 철의 대화를 이어갈 준비가 된 상태에서 핀란드인들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 * *

붉은 군대는 적극적으로 모델 지휘하의 독일군에 싸움을 걸기보다 전장의 주변부를 먼저 정리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의 동맹국들은 본국의 불온한 기류 때문에라도 적극적으로 병력을 차출할 수 없었다.

이런 와중 동유럽 동맹국의 이탈은 막대한 손실이 예정된 교전 없이도 독일군을 약화시키는 강력한 수단이었다.

“유고와 발칸 야전군, 아웃. 핀란드, 아웃. 프랑스, 아웃….”

지도에서 검정색으로 표시한 추축 동맹국들은 하나하나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붉게 칠한 우리의 동맹국만이 남았을 뿐.

발칸, 터키, 핀란드에다가 수복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지역까지! 헝가리는 괴뢰정부가 되었지만 자국 방어도 못 할 지경이니 논외로 치면 남은 것은 추위에 시달리고 보급에 쪼들리는 독일군 본대뿐.

이제 마지막 발악을 위해 국민돌격대까지 차출해 별의별 수작을 다 부리고 있었지만 전쟁의 끝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파시스트들에게 공포를 맛보여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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