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142화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국민 여러분, 공습이 시작되었습니다. 각자 침착하게 지정된 방공호로 대피하여 주십시오. 이것은 실제 상황입니다. 국민 여러분….]
공습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익숙한 방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거리를 피해 건물 속으로, 지하로 숨어 들어갔다. 아스라이 먼 곳에서 쾅! 쾅! 폭음이 들려 왔고 사람들은 땅의 흔들림을 느끼며 떨어야 했다.
“그 강력한 루프트바페는 다 어디로 갔지?”
사람들은 물었다. 위대한 제국 공군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독일 본토에 폭격이 떨어지게 만드나?
처음에는 루르 공업지대와 슈바인푸르트 공장들에 대규모 폭격이 가해졌다. 마른하늘에 뜬금없이 수십 대의 비행기들이 날아와 폭탄을 쏟아붓고 가는 꼴에 시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저 비행기는 어디서 온 비행기란 말인가?
“우리 전투기들은 저 폭격기들을 요격하지도 않고 다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동부전선의 상황이 좋지가 못하다는데….”
“이봐! 무슨 소리들 지껄이는 거야!”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토록 쉽게 끝날 것 같던 전쟁이 이렇게 길어지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이유는 전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증거가 바로 대도시에 한두 번씩 떨어지기 시작한 폭격이라고. 독일 유수의 대도시들, 그리고 독일인들은 정보통제 때문에 잘 모르고 있었지만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의 산업도시들에도 폭격은 가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수군거림으로만 끝났다. 게슈타포들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시민들이 떠드는 소리를 주의 깊게 듣다가 덮쳐 어디론가 사람들을 끌고 갔다.
적잖은 사람들이 사라졌다. 아무도 그들이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전장일까? 아니면… ‘공장’일까?
* * *
“대체 우리 공군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총통 각하. 진정하십시오….”
공군 원수 괴링과 전투기대 총감 베르너 묄더스는 펄펄 날뛰는 총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을 삐질삐질 흘려야 했다.
미국이 개발한 거대 폭격기들은 저 멀리 대서양에서 날아와 독일 도시들에 폭탄을 뿌리고 쌩하니 저 동쪽의 소련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쪽에서 날아와 또 폭탄을 뿌리고 도망쳤다.
독일 방공망은 이런 폭격에 도무지 대응하지를 못했다.
“워낙 높은 고도에서 접근해 오기에 우리 전투기로는 도무지 그 고도까지 올라가 폭격기를 요격할 수 없습니다. 또, 동부전선으로 차출된 전력으로 인해 제국의 동맹령 전부를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게나 많이 예산을 받아 처먹었으면서도 빌어먹을 폭격기 하나 못 막아? 젠장, 무능한 놈 같으니라고….”
“총통 각하, 말씀하시는 와중에 죄송하지만 예산 중 많은 부분이 각하께서 명령하신 최신형 전투기 연구개발 및 제작에 쓰이고 있습니다.”
묄더스가 그렇게 지적하자 총통은 빠득, 이를 갈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혁신적이고 뛰어난’ 신무기를 개발해 전선에 배치하라는 총통의 명령으로 공군은 상당한 예산을 그에 할애해 왔다.
아직 결과물들은 별달리 나온 것이 없었는데, 그사이에 미국이 먼저 신형 중폭격기를 개발해 배치한 것이다.
사실 이런 중구난방은 전군이 다 비슷했다. 십수 개의 개량안들이 나오면서 규모의 경제, 숙련으로 인한 생산성은 증가할 줄을 몰랐다. 숙련공들이 인력부족으로 전장에 끌려가고 비숙련공이 그 자리를 채우면 이들이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으나, 또 금방 징집되어 사라졌다.
“또한, 전투기에서 불량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근로의욕이 심각하게 부족합니다!”
“그걸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공군 소속의 공장의 숙련공들을 전선으로 끌고 가지 말고, 노예노동에 가까운 학대를 당하는 이들 대신 제대로 된 일꾼들을 배치해 달라는 것이겠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다를 것이 없었다.
그나마 남편이나 아들이 일찍 전사해 가계의 생계를 이을 방법이 없어 공장에 나오기 시작한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공장에 있었던 데다가 정신박약아, 눈이 침침한 노인들, 코찔찔이 어린애들, 말도 안 통하고 학대당하는 외국인 노예노동자들에 비교하면 제일 나은 인력들이기에 그랬다. 나치당의 보수파들은 게르만 여인들이 가정을 버리고 일터에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입을 다물었다.
“···최소한 더 많은 희귀금속이라도 배당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강재의 부족과 품질 하락으로 엔진 불량이 계속 빈번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각하, 루프트바페의 정예 조종사들을 이렇게 헛되이 죽게 하지 말아 주십시오!”
“···고려하겠네.”
이번엔 묄더스가 이를 빠득 갈았다. 루르 지방의 발전을 담당하는 수력 댐이 부서지고, 전력이 부족해져 알루미늄 생산에 차질이 잔뜩 생겨 버렸다. 폭격기는 가능하면 목재로 만들라는 명령까지 내려올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중해를 얻었지만 발칸과 터키는 소련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바람에 크롬이 부족해졌다. 베어링 공장이 불타고 내마모성 강재 생산에 필수적인 크롬이 부족해지자 불량 베어링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왔다.
항공기 신뢰도는 이런 요인들이 겹쳐 확확 떨어져만 갔고, 당국은 기다리라, 고려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총통까지 이럴 줄이야?
“···감사합니다.”
* * *
미국인들은 무한한 악의에 불타고 있었다.
미국으로 모여든 수많은 망명정부의 대표부들이 미국 내 자국계 이민자들을 움직여 반독, 반일 여론을 조성했다. 돈 냄새와 광고의 냄새를 맡고 몰려든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내보내며 이를 부추겼다.
[새로운 잔혹행위가 공개되다! 추축국의 인체 실험 잔혹사!]
[인간 실험체 ‘통나무’들의 고통스러운 죽음! 혹시 미국인도?]
싸구려 타블로이드들은 하루하루 터져 나오는 충격적인 소식들에 입이 귀에 걸릴 정도였다. 그냥 사실만 곧이곧대로 받아 적어도 너무나 눈길을 끌고 자극적이기에 잘 팔릴 정도인데, 여기에 상상의 양념을 조금만 쳐도 평소의 수 배가 팔려 나가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까지 가세해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 선봉에는 연합국의 태평양 지역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있었다.
자기네 가문의 영지나 다름없던 필리핀을 지키지 못하고 일본인들에게 쫓겨 치욕스럽게 도망쳐야 했던 맥아더는 일본인들, 추축국에 대한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는 지금처럼 ‘폭격기 몇 대’로 깔짝거리며 저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빨리 태평양을 건너 일본 본토를 짓밟고 싶어 했다.
“우리는 필리핀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곳에서 개 같은 일본 놈들의 궁둥이를 걷어차 몰아내고 성조기를 휘날릴 것입니다. 미국 만세! 자유 만세!”
“와아아아아아!”
맥아더 원수의 기자회견장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마치 배우와 팬클럽이 만나는 자리 같았다. 각지에서 모여든 맥아더의 지지자들은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환호했고, 기자들이 펑펑 터트리는 플래시라이트는 여기에 열광을 더해 주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옥수숫대 파이프를 질겅질겅 씹으며 어떻게 일본군을 때려잡을지에 대해 떠드는 맥아더 원수는 그야말로 신문의 대스타였다.
* * *
“우리는 필리핀으로 진격해야 합니다!”
“···.”
물론 그가 대스타였다고 항상 옳은 작전만을 펼치는 것은 아니었다. 해군 제독들은 다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거나 머리를 움켜쥐었다.
맥아더는 어떻게든 필리핀으로,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었다. 스스로의 명성을 이용하고, 언론과 대중의 지지를 이용했으며, 그와 가문이 가진 군부에 대한 영향력 역시 아낌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해군은 그에게 제동을 걸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한 해군 제독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 하느님, 저 개새끼를 어떻게 좀 해 주십시오.
해군은 진주만에서 겪은 대참사 이후로 발언권의 많은 부분을 상실했다. 가진 함대 전력도 빈약해졌거니와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맥아더의 말이 언론에 실려 해군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물론 맥아더라고 필리핀을 철저히 잘 경계한 것은 아니었다. 10만 명이 넘는 병력을 가지고도 바탄반도에 갇혀 있다가 부리나케 도망쳐 온 그의 추태를 알 만한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문제는 군대의 사기 하락을 우려하여 정부가 이를 영웅적인 결사항전 끝에 분루를 삼키는 명장의 퇴각으로 포장한 데 있었다. 이렇게 맥아더는 순식간에 국민 영웅이 되었고 해군은 반대로 경계에 실패한 게으르고 나약한 이들이 되었다.
필리핀으로 진격하는 것은 태평양을 빙 돌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를 지적한 이들은 나약한 겁쟁이로 매도당했다. 일본군은 동남아 해역의 수많은 섬에 갖가지 방어진지를 설치해 놓고 미국이 덤벼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셜 제도, 마리아나를 거쳐 진격하는 것이 훨씬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맥아더 원수.”
“희생을 줄이고 싶었다면 진주만에서 경계를 더 잘 하셔야 하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기니의 시민들은 미국이 자유를 가지고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희생을 더 이상 늘릴 수 없습니다!”
“….”
직설적으로 해군을 비웃는 저 말에 아무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었다. 맥아더는 뻑뻑 파이프를 피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코딱지만 한 섬들에 고립시키겠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습니다. 우리는 중요한 섬들을 먼저 해방시키고, 치고 올라가 저들의 생명줄인 석유 산지를 공략할 것입니다! 저는 이만 기자들과의 약속이 있어….”
“해군의 목숨으로 말이지….”
어떤 제독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섬을 공략하고, 상륙하여 점령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해군의 지원이 필요했다. 상륙하는 데에도 육군뿐만 아니라 해군부 산하의 해병대를 차출해 상륙을 지원했으니 해군 쪽의 인력이라고 봐도 좋았다.
재주는 해군이 넘고 공은 맥아더가 받아먹는, 그런 꼴을 해군은 그동안의 전적 때문에라도 두고 보아야 했다.
대중은 맥아더를 사랑했기에. 그가 아무리 군 내에서 개차반이고 사실은 졸장이라 할지라도 대중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영웅’ 맥아더 원수를 찬양할 뿐.
전략폭격으로 유럽 전선에서 소련이 쏠쏠한 재미를 보는 것을 아는 인사들은 빨리 일본 근처의 교두보를 확보해 일본을 괴롭히고 싶어 했지만 맥아더는 기어코 필리핀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대체 맥아더 장군이 왜 저러는지 아는가?”
“난들 아나? 소문으로는….”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하고 맥아더 원수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귀 밝은 이들은 다들 한두 마디쯤은 맥아더의 의도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필리핀에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는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군인으로 남아 있겠다고 이야기했다더군? 그래서 최대한 빨리 필리핀, 그리고 일본을 항복시키고 내년 대선에….”
“그게 사실인가?”
“공화당이 맥아더 원수와 물밑에서 접촉했다는 말이 있네. 다른 후보감인 듀이는 너무 자유주의적이고….”
이제 슬슬 대선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었다. 루즈벨트는 44년 11월에 예정된 대선의 후보로 또다시 출마할 것을 결의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문제는 반대편 공화당의 후보가 누구냐는 것인데 그것이 맥아더라면?
어쩐지 무리하는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기자들과 대중 앞에 대선 후보로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려면 당연히 폭격으로 일본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굵직한 섬들을 해방시키는 모습이 더 알맞으니.
아무튼 간에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쪽발이들을 박살 내버릴.
소련이 훨씬 전부터 독일을 몰아붙이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한참 늦은 감이 있지만… 수 척의 전함을 진수하려면 그 정도는 기다릴 만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쪽발이들을 죽이고, 쪽발이를 많이 죽이고, 더 많이 쪽발이를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