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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41화 (141/300)

# 141

141화

전쟁이 남겨 놓고 간 폐허를 재건 중인 레닌그라드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 가운데에서 니콜라이는 그저 멍하게 중얼거렸다.

“하하….”

“왜 그러십니까? 싱겁게.”

니콜라이는 어쩐지 헛웃음이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의 목깃 사이로 에이고 들어왔지만 몸이 떨리는 것은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레닌그라드에 와 있었다. 부대원들과 함께. 하지만 니콜라이가 온 목적과 부대원들이 온 목적은 조금 달랐다.

“나 같은 놈도… 장교가 된다는 말인가?”

전쟁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엄청난 수의 하급 장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신병들과 하급 장교들은 대부분이 첫 전투에서 죽어 갔으며, 군 내에 거대한 공백을 남겨 놓았다.

이 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야 했기에, 스타브카는 용기와 재능을 보인 병사들을 선발하여 속성으로 교육, 장교로 임관시켰다.

물론, ‘속성’이라고는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이에게 완장과 계급장을 채워 주고는 자네 오늘부터 장교요! 라고 할 수는 없었다. 레닌그라드를 탈환한 북부전구 사령부에서는 선발된 병사들을 모아 놓고 교육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니콜라이의 분대원들, 소대 정치장교, 그리고 어쩐지 안 끼는 데가 없는 중대장까지. 모두가 부대를 떠나 장교 교육과정에 들어가는 니콜라이를 축하하기 위해 나왔다.

“인민 영웅, 니콜라이 표도로비치 만세!”

“우라! 우라!”

“분대장님, 꼭 돌아오셔야 해요!”

부하들은 시커먼 사내들답지 않게 눈물을 훔쳤고, 중대장은 그의 팔목을 잡고 우렁차게 환호했다. 주변을 지나다니는 병사들도 뭐가 그리 우스운지 이 촌뜨기들 한 무리를 보고 휘파람을 불고 환호성을 질렀다.

몇 달만에 고향에 돌아와 그저 즐거운 사람들은 지나가다가 하하 웃으며 박수를 쳐 주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고향을 다시 탈환해준 군인들을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진심으로 존경해 주었다.

“와아아아아!”

그 모든 것이 니콜라이는 그저 어색하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병사였던 그는 볼로쟈 병장의 공로를 훔쳐 훈장도 받았고, 분대장도 해 보았다. 그리고 이제는 이렇게 장교가 되러 가게 되었다.

‘나 같은 사람이 장교가 되어도 되나?’

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묻곤 했다. 그저 공로를 몇 개 도둑질했을 뿐인데.

겸손한 니콜라이는 볼로쟈 병장의 공로만 생각했을 뿐 이후에도 몇 대씩이나 전차를 격파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분대원들은 그를 좋아했다. 니콜라이가 장교가 되면 좋은 장교가 될 것이라고, 분대원들은 하하 웃으며 그를 격려해 주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장교가 되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

장교는 리더십이 필요하지만 분대원들의 인정 비슷한 무엇은 리더십의 증명이 아니었다.

그는 꽤 우수한 성적으로 장교 선발 필기 시험에 통과하기는 했다.

또 그렇다고 그것 역시 좋은 장교의 자질은 아니다. 아마 전쟁 전에 임관했던 많은 이들은 그보다 더 어려운 시험을 보고 더 우수한 성적을 받았을 것이다.

좋은 장교들만 있었나? 전혀. 비겁자들도, 개새끼들도 수두룩했다. 무능하기 짝이 없는 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들에게 장교 계급장을 달아 주고, 병사들에게 나가서 싸우다 죽으라 명령할 권한을 내렸다.

“으하하하, 우릴 빼놓고 가면 곤란하지!”

“어~ 군의관 선생!”

뜬금없이 지프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의 생니를 잡아 뽑았던 돌팔이 군의관이 문을 열고 휙 뛰어내려 중대장과 인사하고는 니콜라이의 손을 붙잡았다.

니콜라이는 얼떨떨하게 손을 마주 잡고 흔들었다.

“소식은 들었네! 축하하오. 꼭 좋은 장교가 되시길 바라오!”

“아! 감, 감사합니다.”

“자, 이만… 우리 불청객들은 사라져 주어야지. 다들 갑시다!”

잡은 손을 힘차게 흔든 군의관은 다시 병사들을 우르르 끌고 사라졌다. 지프에 한가득 올라타면서 병사들은 손을 흔들었다.

“분대장님, 잘 가요!”

“편지하세요!”

“어? 어… 그래! 다들 잘 있어!”

아니, 그런데 저 양반은 대체 왜….

겨울바람에 에이던 손에 뭔가 물컹하고 따뜻한 게 들어왔다. 뭔가가 그를 확 잡아끌었다.

“…!”

“잘 있었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니콜라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숨을 쉬는 것조차 까먹었던 것 같았다.

카티아는 물기 어린 눈과 발그레한 뺨으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색하게, 짧은 한마디를 건넸다.

“….”

뭐라고 말해야 하나? 어떤 말을 해 주어야 하나? 그가 그동안 읽어 왔던 책들의 수많은 문장이 별똥별처럼 그에게 쏟아져 내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니콜라이는 카티아를 와락 끌어안았다.

“잘… 잘 있었구나….”

“응….”

이게 얼마 만인가? 니콜라이는 가늠조차 되지 않아 그녀를 끌어안고 손으로 하루하루를 세어나갔다.

고작 몇 주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수십 년을 떨어져 지낸 것만 같았다. 카티아도 같은 마음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묻고 싶어도 뭐라 물어야 할까?

가슴이 쿵쿵 뛰는 것을 카티아도 느낀 것 같았다. 뺨에 쪽, 쪽, 입 맞추고 니콜라이의 품을 빠져나온 그녀는 날렵한 아기사슴처럼 통통 튀며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자! 여기 있지만 말고! 어디든 가보자!”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도시에서 젊은 연인이 즐길 만한 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니콜라이와 카티아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군홧발이 보도블럭에 부딪히는 딱딱 소리만 들어도 그것이 그리 우스운지, 카티아는 깔깔 웃으며 니콜라이의 팔에 매달렸다. 불어오는 바람에도, 휘날리는 나뭇가지의 푸릇푸릇하게 돋아나는 잎사귀에도.

그 모든 것에 둘은 행복해했다.

“거기 군인들! 그림 한 장 그리고 가시겠소?”

“예?”

“아! 하하하하하! 좋아요!”

빵모자를 눌러쓴 거리의 화가 한 명이 도시의 정경을 그리다가 연인들을 소리쳐 불렀다. 니콜라이가 당황한 사이에 카티아는 또 명랑한 웃음을 터트리고는 화가의 캔버스 앞으로 니콜라이를 끌고 갔다.

“잠깐만… 내가 돈이 있나 좀….”

“에잉, 무슨 돈을 받겠소? 보기 좋아서 그런 것이니 걱정일랑 말고 저기 앉아서 자세나 취해 보쇼.”

“네! 감사해요!”

작은 앉은뱅이 의자에 냉큼 앉은 카티아는 주머니를 뒤적이던 니콜라이의 손목을 휙 잡아끌었다. 어, 어, 하면서 끌려온 니콜라이는 얼떨결에 부동자세를 취하고 정면을 응시했다.

“아니, 그거 말고 좀 음… 연인들끼리 그림 아니오?”

“예? 어….”

“이렇게요?”

카티아는 다시 폴짝 뛰어 일어나더니 니콜라이의 목에 매달리며 뺨에 입을 맞췄다. 흰 수염이 부숭부숭 돋아난 화가는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풍성한 수염을 푸들거렸다.

“잠시만 기다려 보시게. 그대로! 옳지! 그대로!”

“카… 카티아?”

“쉿! 그림 그리시잖아.”

쪽. 카티아는 다시 니콜라이의 뺨에 한 번 더 입을 맞췄다. 달큰하고 향긋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니콜라이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허허… 젊은 친구들이라 그런지 대담하구만?”

아예 고개를 돌려 입을 맞추는 니콜라이를 보며 화가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을 화폭에 담으려는 듯 화가의 붓은 캔버스 위에서 움직였다.

“자! 여기 있소이다. 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소중하게 그림을 트렁크에 챙긴 니콜라이는 화가에게 꾸벅 인사했다.

“내가 할 말을! 도시를 지켜 줘서 고맙네. 젊은 친구들. 자네들이 있어 우리 소련의 미래는 밝다오!”

* * *

겨울이 온 북국의 낮은 짧았다. 또 젊은 피가 끓는 밤은 길었다. 순식간에 아침은 다가왔고 이제 두 연인은 작별을 준비했다.

“니콜라이?”

“응?”

배시시 웃은 카티아는 니콜라이의 뺨에 입을 맞췄다. 비누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작별. 이제 곧 작별이다. 그녀는 이제 다시 전장으로 돌아간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가장 무심한 이들이라 할지라도 전운이 다시 드리우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리고 니콜라이, 그는 이제 한동안 후방에 있을 것이다. 다음 배치될 곳이 어디일지는 모른다. 기적적인 확률로 둘은 수백만 명이 오가는 전선에서 만났지만 또 그 기적이 따라 줄 것인가?

“….”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니콜라이는 죽어간 전우들을 떠올려 보았다. 1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꼭 살아남아야 해….”

“응….”

손 안에 있던 어린 새처럼 어느샌가 날아가 버린 동생 카챠. 카티아도 어느 순간엔가 그렇게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전쟁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을 모르는 아귀처럼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내일은? 모레는?

* * *

“자네, 이제 신수가 참 훤하구만?”

“감사합니다, 중대장 동지.”

기차역 플랫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작별하는 가운데, 마지막까지 그를 배웅하러 나온 것은 뜻밖에도 중대장이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니콜라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글을 배우고, 산수를 배우고, 장교가 될 기회를 만들어 준 것도 중대장이었다. 맘씨 좋은 동네 형처럼 중대장은 웃었다.

이런 시대에 좋은 사람은 흔치 않은데.

“이봐, 내가 간단히 충고 하나 할까?”

“예? 아, 얼마든지요.”

흘끗 카티아를 본 그는 두 젊은 연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속삭였다. 은근한 그의 표정에 니콜라이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가, 귀를 기울였다.

“제일 용맹한 장교들이 먼저 죽어. 비겁한 놈은 살아남지. 나처럼.”

“….”

그는 쓰게 웃고는 니콜라이의 등을 탕탕 두들겼다. 살아남으라고, 저 여군 동지를 위해서라도.

비겁한 이들은 항상 남들을 전쟁이 쩍 벌린 아가리 속으로 던져 넣고 살아남았다. 용맹한 이들은 그런 자들을 위해 앞으로, 앞으로, 돌격하다 죽었다.

카티아는 무슨 말을 들었냐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편지할게.”

“하루에 한 장씩 보내. 그걸로 봐줄게.”

[모스크바행 열차, 모스크바행 열차는 이제 곧 출발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즉시 탑승하여 주십시오.]

애써 웃으려 하는 듯했지만 눈가가 붉어진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가지 마, 나랑 함께 있어 줘. 부둥켜안은 채 그렇게 속삭이던 그녀는 이제는 당당하게 니콜라이를 보내 주려 하고 있었다.

기차는 연기와 굉음을 내뿜으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각자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을 배웅하는 가운데 니콜라이는 목청껏 외치며 손을 흔들었다.

“카티아! 잘 있어! 나, 꼭 돌아올게!”

카티아는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애써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살아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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