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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38화 (138/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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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화

습격당한 관동군 검역급수부의 소식은 일본 제국의 관료망이 뻗어 있는 곳에 스믈스믈 퍼져나갔다.

그 존재와 목적이 극비임에도 불령선인들이 무적 관동군 부대를 습격하여 사령관을 사살하고 부대의 기밀문건을 탈취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심지어 그곳에서 이루어졌던 천인공노할 실험에 대한 내용은 사람들을 경악게 했다.

이에 조선총독부는 날로 흉포하게 날뛰며 ‘불순분자’며 좌익 세력들을 찾아내 처단하려 했다.

그러나 밟으면 밟을수록 그들은 들불처럼 번져나갈 뿐이었다.

“…그대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하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으하하하!”

조선공산당의 비밀 연락소. 제법 큰 건물을 빌려 무슨 무슨 상사요 하고 팻말을 달아 놓았지만, 그 안은 온갖 공작이 준비되는 총독부로서는 마굴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한 중년과 세 청년이 그 안에서 대화를 주고받았다.

“여기 권총이 있네. 폭탄은 건준에서 보낸 조가라는 친구가 가져올 것이네. 아마… 소련에서 보내 준 유명한 총잡이라는데?”

“알겠습니다. 한 놈 잡는데 많이도 준비했군요.”

“인민의 적을 응징하는 일이네. 빠득….”

일제는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발악을 하는 법. 그들은 조선반도를 날로 가혹하게 수탈했다. 집에 있는 쌀 한 톨마저 박박 긁어내어 빼앗아 갔다. 조선의 아들딸들은 전쟁터로 하나둘씩 끌려갔다. 총알받이로, 징용 노무자로, 정신대로.

“우리의 표적인 그자는… 학병 특별지원제도의 선전에 앞장서는 제국주의의 첨병과도 같은 작자일세. 반드시 그자를 처단해야 해! 이번 강연에 오는 빈객들이 여럿 있으니 그자들도 같이 끝장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자네들도 함께 죽겠지. 중년의 공산당원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저격과 테러는 사회주의자들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저지른 자들은 보통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청년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선생님, 걱정 마십시오. 우리들이 몸을 바쳐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민족을 해방시키고 또 세계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이끌어 가는데 목숨이 아까울 리가 있겠습니까?”

“…목숨을 아까워하시게. 다들. 자네와 같은 끓는 피 젊은 청년들이 살아 있어야 해방 조국을 위해서 일할 것 아닌가?”

“그 말 아십니까 선생님?”

“음? 무슨 말인가?”

청년들은 씨익 웃었다. 요새에 젊은 인테리겐치아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유행했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 * *

“자, 줄 서세요 줄 서! 다 들어가실 수 있을 테니 줄을 서시오! 이렇게 무질서하다간 더 늦어집니다그려?”

가야마 미쓰로는 조선에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문학가였다.

무정(無情), 단종애사 등의 소설을 써낸 그는 동경삼재의 첫머리에 꼽힐 정도로 드높은 명성을 지니고 있었다. 경성에서 글줄이나 읽는다 하는 이들 중 무정을 읽어 보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런 그는 본디 가졌던 조선식 이름인 이광수에서 일본식 성씨인 가야마 미쓰로(香山 光郞)로 개명하고 이즈음에는 제국을 위하여 젊은이들이 학병에 지원할 것을 독려하고 있었다.

대문호로 유명한 그가 무슨 말을 하나 궁금하여 조선극장에는 경성의 청년들이 와글와글 운집했고, 극장의 수위는 연신 고깔에다 대고 줄을 서라고 외쳐야 했다.

“햐, 이거 대단하구만. 도대체 이광수라는 자가… 저렇게 인기가 있단 말인가?”

“원체 유명한 글쟁이니 말이지?”

인파의 가장자리에는 세 청년이 극장의 커다란 간판을 바라보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풍파깨나 겪었을 법한 그들은 다들 기다란 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담배를 질겅질겅 피웠다.

“그나저나, 온다는 사람은… 아!”

“반갑소. 나, 블라디보스톡에서 온 조가요.”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이가 도착했다. 묵직한 가죽 서류가방을 든 그는 어쩐지 기묘한 억양이 섞인 조선말로 이야기했다.

노령(露領), 블라디보스톡에서 오래 살아 그것이 별명이 된 조가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소개해준 일종의 객장이었다.

“다들 준비는 되셨소?”

“어, 그렇소이다. 저기 막 들어가는 저자, 저놈이….”

“미쓰론가 밑구녕인가 하는 작자란 말이지?”

어색한 조선말을 하며 블라디보스톡 조는 품에 큼지막한 주먹을 넣고 어딘가를 주물럭거렸다. 당에서 온 세 사람 역시 각자의 안주머니며 허리께를 만지작거렸다.

극장 내부의 보안은 허술했다. 수많은 사람이 밀려온바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일일이 내방자를 몸수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단 위에 고상하게 앉아 있는 여러 내빈들은 그런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반갑습니다. 본인은 오늘의 진행을 맡을 아오키 진에이(靑木 沈影)라고 합니다. 이렇게 제국의 앞날을 위해 충의로 모여 주신 청년 여러분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와아아아아아!!”

강연이 시작됨에 앞서 사회자, 진에이는 각지에서 왕림한 내빈들을 소개했다. 오늘의 주인공 가야마 미쓰로 선생에 이어 총독부 경무국장이자 동척의 임원이며, 조선 최초의 여류 박사 아마기 카쓰란(天城 活蘭)까지.

총독부가 이 강연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알 만한 인선이었다. 물론 그들은 제국의 전황을 교묘한 말로 잘 포장하여 이야기했다.

‘우리의 충의 넘치는 황군은 드넓은 동아의 대지와 해양을 모두 천황 폐하의 은덕으로 비추기에는 그 인원이 부족한 감이 있으니….’

그들의 혓바닥이 되어 젊은이들을 꼬여내는 자가 바로 이광수나 김활란 같은 자였다.

하지만 객석의 관중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경성에 불온한 분위기가 돈다는 것이 의심이 갈 정도로. 수천 명의 청년들은 다들 천황 폐하를 향한 ‘충성’을 가감 없이 내보이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강연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보고 다시 벗들과 왔습니다. 감격에 벅차 울었습니다!”

“고맙소, 고맙소. 청년들은 우리 일본 제국의 미래요!”

학생들의 열광은 강연의 주인공 가야마 미쓰로, 이광수가 등장하자 배가 되었다. 이광수는 하나하나 손을 잡고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눈 후 우렁차게 연설했다.

“여러분! 님은 누구입니까! 언제나 우리가 사모하는 이름입니다. 우리의 빛이자 따를 길입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며 오랜 세월을 목말라해 온 이름입니다!”

“와아아아아!!”

“님은 바로 대동아 공영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우우운!!”

대문호가 토해내는 열변에 극장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박수만이 터져 나온 것은 아니었다. 몇 사람의 덩치 좋은 청년들이 불쑥 관객석의 앞줄에서 일어났다.

“개소리 집어쳐! 무슨 대동아 공영권이냐!”

모든 청중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밖에서는 순사들이 한 무리나 와글와글했지만 원체 많은 인파 때문에 달려와 몽둥이로 두드려 패 버릴 수 없었다. 그 틈을 타, 이들은 권총을 꺼냈다.

단상 위의 인사들은 급변한 상황에 충격을 받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광수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말문이 막혀 뒷걸음질 쳤다.

“거짓으로 조선 청년들을 우롱한 너희들을 오늘 단죄하러 왔다!”

“대한 독립 만세! 일제는 물러가라!”

“뭐? 불령선인이다! 경관! 경관…!”

탕, 탕, 탕, 블라디보스톡 조는 민첩하게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 권총을 쏘았다. 조선공산당 출신의 세 청년들 역시 각자 권총을 꺼내 들고 일제의 고관임이 분명한 내빈들에게 권총을 쏘았다.

총소리에 인파는 자지러졌다. 극장에서 달려나가려는 사람들이 마구 넘어져 뒤엉키며 서로를 짓밟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극장에 주둔하던 경찰들이 호각을 불며 진입했지만 블라디보스톡 조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갈했다.

“야! 이 친일파 새끼들아! 이것은 바로 폭탄이여!”

“으아아아악!!”

쾅! 콰콰쾅! 서류가방으로 위장되어 있던 폭탄이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던 단상 위의 빈객들 위에서 폭발했다. 극장 천장의 판재가 충격파에 의해 떨어져 사람들을 덮쳤다. 아수라장이 된 극장 안에는 비명과 신음소리만이 가득했다.

“죽었나?”

“아마도? 우린 이제 뺍시다.”

극장을 무너트린 넷은 이제 퇴로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단상 위 양편에 배우들의 대기실로 나가는 문이 보였다.

막 달려 올라갔을 때, 웬 놈이 하반신에서 피를 흘리며 출구로 기어가고 있는 꼴이 보였다.

“이놈…? 이놈 거 사회 보던 놈 아닌가?”

“어흑… 어허헉… 살려 주십시오… 컥!”

친일파를 살려 둘 생각은 없었지만, 가져온 물건이 권총뿐인지라 탄환이 부족했다. 해 준 거 없이 밉상인 그의 허리께를 청년들은 한 방 걷어찼다. 진에이는 하복부를 부여잡고 바닥을 굴렀다.

“너, 친일파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하겠습니다, 다시는 안 하겠습니다…!”

진에이는 아래에서 올라오는 통증과 불령선인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들부들 떨면서 비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청년들은 꼴 좋다는 듯 그를 내리깔아 보았다.

그사이 사람들이 뒤엉킨 좌석을 뚫고 단상 가까이까지 달려온 경찰들이 외쳤다.

“거기 서라! 불령선인 놈들!”

탕, 탕. 경찰들은 권총을 쏘았지만 사격술이 부족한지 한 발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을 탄이 때리는 바람에 걸음이 꼬인 블라디보스톡 조는 찌릿, 경찰들을 노려보았다. 아직까지 저놈들 제압할 정도는 남아 있다.

“안 되겠소, 쏩시다!”

탕, 타탕, 역시. 유명한 총잡이는 달라. 조선공산당 청년들은 그의 사격 솜씨를 보며 감탄했다. 경찰들은 한 발에 한 명씩 가슴팍이나 이마, 목덜미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대한 독립 만세! 만세!”

일경들이 들으면 치를 떨 구호를 외치며 넷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 * *

“빌어먹을 멍청이들! 내가 그렇게 주의하라고 일렀거늘….”

하루아침에 총독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극장 테러사건을 진두지휘해서 처리해야 할 경무국장 단케 이쿠타로는 테러리스트 놈들에게 벌집이 되었다. 강연자로 중히 모시라고 했던 가야마 미쓰로나 아마기 가쓰란도 죽었다.

조선공산당 놈들을 주의해야 한다고 그토록 이야기했건만, 현장의 증언을 들어 보면 빨갱이들이 와서 난장을 놓고 간 것이 분명했다.

“사망 10명에 부상은 25명이라… 이거 제대로 당했군. 빨갱이 새끼들이….”

제멋대로 날뛰다 엉켜 죽은 조선인들은 그렇다 치고 고관들과 조선의 핵심 친일파들이 여럿 죽고 다쳤다. 최소한 그네들의 치료비 정도는 총독부가 대야 할 터, 안 그래도 빠듯한 재정 생각에 그는 골이 지끈거렸다.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이 사건으로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 불령선인들은 더 가열차게 날뛰기 시작할 것이다. 일벌백계를 보이기 위해 반드시 처단해야 할 암살자들은 혼란을 이용해 도망가 버렸고… 후. 보고서를 훑어 보던 그의 눈에 기묘한 글자가 들어왔다.

“강연 사회자 아오키 진에이. 하복부 파편 관통 및 타격으로 남성을… 으으….”

파편이 영 좋지 못한 곳을 지나갔기에 남성을 상실한 자가 있었다. 청목… 심영? 안타깝게 됐군. 상황이 이 꼬라지가 됐어도 건재한 스스로의 남성을 생각하며 고이소 구니아키는 어쩐지 약간은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아니, 젊은 친구가 고자라니?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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