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136화
“이… 이게 무슨….”
“하….”
독일의 관료체계만큼은 여전히 그 어느 때보다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있던바, 동부전선으로 향하는 열차에는 그 관료체계에 의해 징집된 병력들이 가득가득 들어차 있었다.
단 3주 만에 국민돌격대 100만을 징병해 낸 참모부의 노고에는 실로 경의를 표할 만했지만, 결과물은 빈말로라도 좋다 하기 어려웠다.
전차와 야포, 항공기로 잔뜩 무장한 소련군을 상대로 군사훈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잡병 100만을 보내어 무엇 할 것인가?
일선의 인사참모들과 군수참모들은 이마에 손을 짚고 깊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후방에 있던 교육부대들은 다 일선 전투부대로 끌려가지 않았습니까? 그럼 없는 교관들을 데리고 100만이나 되는 병력들을 훈련시키란 말입니까?]
“….”
후방사령부에 따져 보아도 저런 퉁명스러운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진 일선부대장들은 그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다. 병기나 장비에 대해 가장 이해도가 높았던 교관들은 전황이 어려워지자 전선의 구멍을 틀어막을 정예부대로 편성되어 차출되었다. 기갑교도사단 같은 부대들이 그 예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고 격전지에서 가장 빠르게 소모되었다. 그리고 독일군은 다음 세대를 길러낼 고참병들이 사라진 채 밀려오는 소련군을 맞이하게 되었다.
여기에 병력의 질에도 문제가 있었다.
“아저씨이~ 나 오줌 마려워여….”
“아이쿠, 한스. 저쪽이다 저쪽.”
“…?”
국민돌격대 중대를 지휘하기 위해 파견 나온 육군 상사는 어리둥절했다. 일단 사지 멀쩡한 젊은이가 군대에 징집된 것이 아니라 국민돌격대에 있다는 것이 하나였다.
그리고 어쩐지 저 청년은 이상해 보였다. 같은 동네에서 왔는지 서로 알고 지내는 듯한 중년이 그를 데리고 허둥지둥하는 것까지. 주위의 다른 돌격대원들도 흘끗흘끗 이쪽을 쳐다보는 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거기! 당신들 뭐야!”
“헤헤, 안녕하세요오.”
“아… 그게… 이 녀석이 살짝 모자란 녀석이라….”
중년 돌격대원은 안절부절못하며 순박한 인상의 청년을 감싸고 돌았다. 상사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런 놈을 군대에 끌고 온단 말입니까?”
“제가 끌고 왔나유? 나라에서 끌고 왔지.”
하… 상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치들은 정권을 잡은 이후 장애인들을 ‘아리아인의 순수한 혈통을 더럽히는’ 열등한 자들로 보아 모조리 죽여 없애고자 했다.
하지만 칼같이 딱 너는 정상, 너는 장애! 이렇게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모두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살짝 모자라는데 여차저차 사회생활이 가능한 자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
물론 그런 이들을 구분하기 위한 검사들이 존재했고, 정상적으로는 병역 의무 대신 후방근로를 명령받았다. 하지만 그도 익히 보아 알 수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정상 징집연령 이상의 중노년층, 전투가 가능한 젊은 경상자, 신체 허약자, 경도의 정신박약자. 총통은 국민돌격대를 편성하며 이런 부류들을 모조리 쓸어 넣었다. 물론 곱게 말해 저러한 것이고, 보통 거친 병사들은 이들을 표현할 때 다른 단어들을 사용했다.
‘노인네, 병신, 돌대가리.’
이들을 지휘하랍시고 고참 하사관들을 몇몇 섞어 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일이 해결될 리 없다. 국방군 부대에도 부족한 하사관들을 어느 부대장이 마음대로 차출해 줄까? 그리하여 지금 분대장 견장을 달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지난 전쟁의 참전용사들이었다.
땅을 파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투덜거리는 중늙은이 둘이 이쪽을 보며 수군댔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실실 웃는 청년을 보며 상사는 골치가 아팠다.
미쳤군, 미쳤어. 이들을 기관총 밥으로 던져 줄 생각이란 말인가?
* * *
“그러니까 이런 병사들은 차치하고서라도 보급을 보내 달란 말입니다!”
[여기도 없는 것을 어찌하겠나? 최선을 다해 군수공장에서의 생산을 독려하고 있으니 전방도 역시 최선을 다하도록. 삐- 삐-]
“아니, 이런… 개….”
유능하기 이를 데 없는 독일 관료체계는 국민들 속에 숨어 있는 병력을 짜내 전방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일선에서는 때아닌 기초 군사훈련들을 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유능한 관료들이라 하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
“작년에 그렇게 데여 놓고도, 올해도 동계 피복이 부족하다고?”
“…그렇습니다.”
군수참모들은 이제 패닉에 빠질 지경이었다. 100만 명이 넘는 병력들이 열차에 실려 전방에 도착했다. 이는 안 그래도 부족한 열차의 수송 용량을 거의 다 잡아먹는 수준이었다.
100만 명의 병력을 유지하기 위한 식량과 식수. 보급해 줄 장비, 탄약에 이미 주둔해 있던 병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수천 량의 열차와 수만 대의 트럭이 필요했다.
“수송 트럭이 파르티잔들의 공격을 받고 파괴되었습니다. 3대가 완전히 폭발하여….”
“철로에 소련군 공격기가 공습을 가해 열차 차량이 파괴되고 선로 역시 수리가 필요합니다. 식량 배급을 줄이지 않는다면 사단의 비축 식량이 2주분으로 줄어들 것으로 사료됩니다.”
논리는 간단했다. 보급에는 우선순위가 존재했다.
없으면 죽는 물자와 없어도 죽지 않는 물자. 군수장교들은 물자를 이렇게 두 종류로 분류했다. 그리고 많은 독일군 장병들에게는 불행하게도 동계 피복은 후자에 해당했다.
이러니 장병들은 차라리 소련군의 공격을 기다릴 지경이었다.
“이리 와라 개새끼들아! 옷 내놔!!!”
“돌격! 돌격 앞으로!!”
소련군과의 전투가 끝나면 일단 아군의 사망자가 발생한다. 그 결과 분모가 작아지기에 일 인당 돌아가는 배급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
또한 소련군은 이 전장에서 지극히 귀중한 물건들을 가지고 있었다. 두툼한 외투와 장갑, 튼튼한 군화, 훌륭한 무기까지. 그야말로 잡기만 한다면 온갖 보물들을 뱉어 내는 전설 속 괴수라 할 만했다.
문제는 소련군이 국민돌격대한테는 전설의 괴수 같은 상대였다는 데 있었다.
“이리 오지 마… 제발….”
소련군 정찰분대를 발견하고 습격한 국민돌격대 소대는 완전히 교전에서 패배한 채 달아났다. 쓰러진 병사는 아까 그들을 향해 달려갈 때의 기세는 어디에다 두었는지 겁에 질려 들판을 뒹굴었다.
기습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반격은 침착했다. 재빨리 엄폐한 후 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하자 국민돌격대 병사들은 혼비백산했다. 후퇴할지, 아니면 교전할지 잠시 고민하던 소련군 병사들은 훨씬 적은 수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선택했다.
그 결과는 인원수에서 몇 배나 많은 독일군의 패배였다. 제대로 된 지원화기도, 사격 경험도, 전투 경험도 부족한 국민돌격대 병사들은 결코 전투로 단련된 소련군을 상대로 이길 수 없었다.
* * *
“총통께서 직접 명령하신 사항입니다! 제국지도자 각하. 동부전선의 모든 장병에 대한 명령권은 저에게 있습니다.”
“…잘 알겠소.”
모델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마치 그의 조국 독일이 처한 상황처럼, 모델 역시 양면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내부의 무능한 아군과 외부의 유능한 적군.’
친위대 제국지도자 하인히리 힘러는 욕심이 많았다. 그의 라이벌인 공군 제국원수 괴링만큼은 아니었지만, 힘러 역시 더 많은 병사들과 더 많은 부대들을 자기 손안에 쥐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힘러는 한 가지 떼를 쓰기 시작했다.
“국민돌격대는 국방군이 아니니 그 지휘권은 내게 있어야 한다!”
그 기능에 있어 다른 점이 하나도 없는데 국방군의 프로이센 융커 놈들이 어쩌고, 도이치 민족의 군대가 어쩌고 하고 떠들며 독자적인 명령체계를 유지하는 SS는 동부전선의 단일 사령관인 모델의 명령에 은근슬쩍 덤비곤 했다.
모두에게 부족한 보급에 있어서도 끝까지 자기네 몫이 더 많아야 한다며 빼앗아 가질 않나, 은근슬쩍 자기네들의 권한은 늘리며 임무는 국방군에게 넘기는 등 꼴사나운 짓들을 SS는 태연하게 저질렀다.
모델은 총통에게 직접 건의해 그들에 대한 수위권을 인정받았으나, 힘러는 마지막까지 발악했다. 총통 명령이라는 말을 듣고는 물러났지만, 그는 아직도 입맛을 쩝쩝 다셨다.
* * *
이렇게 무능한 아군과는 별개로 소련군은 지극히 유능해져 있었다.
“3314 진지, 3314 진지, 응답하라!”
독일 64사단의 방어선에는 그야말로 비 오듯 포격이 쏟아졌다. 전방의 대전차진지들을 향해 퍼부어진 포격은 소련 전차들을 막아 낼 수 있는 방벽을 제거했다.
[부됸늬 10대 이상이 몰려오고 있다! 대전차포가 필요ㅎ… 치지지직….]
항공정찰을 통해 대전차진지를 파악하고 나면 그 좌표에는 공격기의 폭격이나 포병의 포격이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반격을 가하려 해도 소련군은 항상 예비 전력을 남겨두었다 반격에 반격을 가하곤 했다.
포격에 의해 약화된 방어선으로는 소련군이 자랑하는 중전차들이 파고들었다. 막강한 맷집을 가진 중전차들은 거리낌 없이 방어선을 돌파해 후방을 휘저어 댔고, 이들이 파고든 뒤로는 기갑부대나 기계화보병이 후속했다.
“우리 공군은 대체 어ㄷ….”
끼이이이이익 쾅! 가까이에서 뭔가 터졌는지 야전 지휘막사가 흔들렸다. 물론 독일군은 그에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기는 했다.
그 익숙해짐이 견뎌 낼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령부의 모든 사람들은 공습을 피하기 위해 책상 밑으로 숨었다가 아군 전투기들의 엔진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책상에서 기어 나왔다.
“빌어먹을 불곰! 빌어먹을 충격탄!”
누군가가 욕설을 뇌까렸다. 불곰 전투기들은 대지공격에 나설 때면 500kg짜리 항공폭탄을 들고나와 마구 떨어트렸다. 그 폭탄에는 슈투카와 비슷한 나팔이 부착되어 있어 독일인들이 반대로 노이로제에 걸리게 했다.
소련군들이 슈투카한테 당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독일군은 이제서야 소련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근처까지 소련군이 다다랐을 겁니다. 저희도 후퇴해야 합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네.”
사단장은 단호하게 후퇴 건의를 묵살했다. 후퇴하면 어디로 갈 것인가?
후방으로 도망치면 아군 대공포 역시 같이 후퇴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전투기들은 대공포 지원 없이 소련 전투기들하고 싸워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후퇴를 엄호해 줄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제공권을 상실하고 나면 길과 철도를 집요하게 노려 파괴하는 소련 전투기에게 무방비하게 노출된다. 방어선을 버리고 도망치는 아군의 뒤꽁무니를 노려 쫓아온 적 전차부대에게 습격당하거나.
이러나 저러나 포위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귀중한 전투기들을 지상에서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싸우는 것이 낫다.
“싸우자! 싸우다 죽자! 증원은 올 것이다! 모델 사령관을 믿어라!”
“승리 만세! 총통 만세!”
무전을 향해 대책 없는 낙관을 쏟아낸 사단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소련군은 너무 강력해져 있었다. 정확한 포격, 효과적인 근접 지원, 대담한 전차 전술과 그를 후속하는 압도적인 물량까지.
하지만 거의 모든 독일군 병사들은 사령관을 믿었다. 남부의 그 전장에서도 승리를 얻어낸 모델 원수는 결국 저 악랄한 소련군들을 격퇴해 줄 것이다.
“총통 만세! 모델 원수 만세! 만세! 만세에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