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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35화 (135/300)

# 135

135화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은 세상의 온갖 흉악한 것을 만들어 낸단 말이야. 로버트,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하하하… 그들이 우리 편임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 제305폭격전대의 전대장, 커티스 르메이 중령은 부하의 말에 코웃음쳤다. 그는 ‘빨갱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러운 잽스들은 더더욱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이렇게 빨갱이들의 ‘개수작’에 놀아나 주는 게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분석한 내용은 지극히 효율적입니다. 이대로라면 일본의 인프라를 가장 적은 소티 수만으로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습니다!”

“자네는 효율성을 따지지. 나는 지휘관이기에 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로버트 맥나마라는 다시 멋쩍게 웃으면서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르메이 중령은 부하들에게 내린 임무를 영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스탈린이 직접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알려 주었다는 이 계획은 분석 결과 일본의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파괴할 수 있으리란 결론이 나왔다.

아직 제대로 된 폭격기 거점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편도비행을 통해 소련으로 탈출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애초에 필요한 소티 수가 그냥 폭격보다 훨씬 적었기에 그 정도는 감내할 만했다.

“다만 이 작전은… 민간인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무고한 민간인은 없네. 자네도 그걸 잘 알지 않나?”

“하하하….”

또 한 번의 일장 연설이 시작될까 봐 맥나마라는 다시 작전계획 검토에 몰두했다. 이 작전은 솔직히 사악하다 말해도 별로 할 말이 없었다.

피를 묻히지만 않을 뿐. 차라리 피 흘려 죽게 해 달라고 할 만한 작전이라니.

* * *

한창 곡식이 익어 가는 도치기현(栃木県)의 시골 마을에는 때아닌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빼애애애애애액! 빼애애애애애액!

[귀축영미의 폭격기가 지금 날아오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각자 안전한 장소로 대피하여 공습을 피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농민들은 얼떨떨해졌다.

“미국 귀축놈들이 어디에서 여기다 비행기를 날린단 말인감?”

“여기에 뭐가 있다구 그려?”

아무튼 경보는 경보인지라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각자의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이렌은 그렇게 잠시 울려 퍼지다 곧 꺼졌다.

[아, 아, 알려드립니다. 폭격기가 지나가기는 하였으나 폭탄이 투하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정찰기가 아닌지 의증하에 알려드립니다. 주민들은 각기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하여 주십시오.]

마침 날아가는 폭격기의 뒤꼬리가 보였다.

“근디 저게 뭐시여?”

“엥?”

폭격기는 폭탄이 아니라 뭔가를 흩뿌리고 있었다.

대공포에라도 맞아 연료가 떨어지는 것인가? 아직 농민들은 폭격의 무서움을 잘 모르고 있었다. 저것이 무엇인지 알기에는 이들의 배움은 너무 부족했다.

미국은 산발적으로 일본 본토에 공습을 가하기는 했으나 항속거리와 폭장량의 문제로 제대로 된 피해를 주지는 못해 왔다. 그마저도 항구나 공장이 위치한 대도시에 집중되어 농민들에게는 아예 남의 나라 일 정도에 불과했다.

“뭐… 아무튼 됐고, 우리 타로 녀석일랑 몸 성히 돌아오면 좋겠구먼?”

“그려, 그려. 싱거운 양키 놈들의 콧대를 우리 무적황군이 콱! 밟아 줄 테니, 타로 녀석도 어디 훈장이라도 받아가지고 오지 않것어?”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일본 각지에서 일어났다. 수많은 폭격기들이 날아와 무언가 이상한 액체를 뿌리고 날아갔다.

농촌의 사람들은 처음 보는 귀축미제의 폭격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또 하루를 보냈다. 미군 폭격기들은 논밭이나 저수지 같은 곳에, 아니면 산등성이 같은 곳에 별 요상한 것을 뿌리고 휙 날아가 버렸다.

사람들은 당장 폭탄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뭔가가 파괴된 것도 아니기에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바로 얼마 후까지는.

“하, 하하, 하하하하….”

“대, 대체 이게 무슨…?”

“아이고, 아이고! 우린 다 망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금빛으로 익어 가던 논밭이 순식간에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것을 본 농민들은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로! 고로! 얘야, 눈 좀 떠 봐라!”

“으으….”

어린아이, 노인, 임산부 등 가장 약한 사람들이 먼저 앓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아이들은 픽픽 쓰러졌다. 노인들 역시 앓아누웠고, 임산부들은 하혈을 하고 유산을 했다.

이것을 불과 며칠 전에 있었던 미군기의 폭격 ‘미수’와 연관시키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지 몰랐다.

“신께서 노하셨다! 귀축 미제놈들이 이 신성한 야마토 민족의 땅을 범하신 데 노하신 것이다!”

“아이고, 신이시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난리가 일었다. 각지 신사의 무당과 신관들은 이 일이 무엇인지 순박하고 무지한 시골 사람들에게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설명해야 했다.

물론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체 이게 무슨 변괴란 말인가!”

“천, 천황 폐하! 그것이….”

내각을 방문한 천황 앞에서 총리대신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내각의 모든 대신들은 일제히 일어나 경례를 올렸다.

각지에서 농작물이 말라 죽고 사람들이 구토와 혈변을 쏟아내며 죽어 나가는 변고는 구중심처 궁궐 내에 있는 천황에게도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을 사실상 나라를 틀어쥔 군부가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려지자 히로히토는 직접 내각을 찾았다.

“저 귀축 미국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건가! 지금 알고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인가!”

“그것이… 저….”

다른 대신들이 예의상이든 아니면 진심이든 벌벌 떨고 있는 동안, 농림대신이 저어하며 손을 들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일종의 제초제로 사료되옵니다.”

“뭐? 제초제?”

“그, 그렇습니다. 주로 농지와 임야에 집중되었고, 식물들이 말라 죽는 것이 포착되었습니다. 일부가 저수지 등의 수원(水原)으로 흘러 들어가 사람들도 중독시킨 것으로….”

히로히토는 탄식을 내뱉었다. 다른 대신들은 할 말이 없어 우물쭈물하며 앉지도 못한 채 식은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대공포는 무엇하고 있단 말인가! 황국의 그 많은 전투기들은 다 어디에 있었는가!”

“송, 송구하옵니다. 다만 대부분의 전투기들은 저기 남방과 태평양의 전장에 나가 있었고, 소수를 격추시키기는 하였으나 워낙 폭격기들이 넓게 퍼져서 곳곳으로 들어온 바람에….”

“허허….”

공격이 집중될 만한 곳에는 방어체계 역시 집중되어 막아 낼 수 있다. 만약 도시에 공격을 했더라면 도시는 충분히 갖추어진 무장체계로 공습을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의 공격은 전국적으로 넓게 퍼져 들어왔다. 대공화망을 넓은 국토에 모조리 뿌릴 수도 없을뿐더러, 미국이 그전까지 농촌을 공격할 리도, 공격한 적도 없었기에 이번에 당한 곳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해독제가 될 것은 없는가? 아니, 그리고 식량 자급은 어찌한단 말인가!”

“해, 해독제에 대해서는 연구중입니다만….”

흐린 말꼬리 뒤에는 ‘그렇다고 이미 죽은 사람을 살려올수는 없다’가 붙어 있어야 했다. 그것을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지 히로히토는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 예상치도 못한 곳에 이리… 우리가 반격할 방법은 없는가?”

“황송하오나, 미국의 본토까지 황군의 폭격기가 날아가기에는 항속거리가 부족합니다 천황 폐하….”

으드득, 히로히토는 이를 꽉 깨물고 의자의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안 된다, 못 한다! 경들은 그것밖에 할 말이 없소? 미군 함대를 박살 내놓았다면서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이오!”

“송, 송구하옵니다!”

“한번만 더 송구했다간 이 황국의 운명이 존폐의 기로에 달리겠군.”

“급보입니다!”

연락장교 한 명이 회의실의 문을 열고 들이닥쳤다. 천황 폐하께서 직접 계신 것을 보고 장교는 화들짝 놀라며 앞으로 굴러 넘어질 뻔했지만 다행히도 반사신경이 빨랐는지 엎드려 절하는 척하는 데 성공했다.

“무슨 급보란 말인가!”

“미, 미국 폭격기가 대거 몰려와 기뢰를 투하했다고 합니다!”

“뭐라!”

해군대신이 어전인 것도 잊고 고함을 버럭 치면서 자리에서 튕기듯 박차고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시뻘게졌다가, 새하얘졌다가, 다시 거무튀튀해지며 다채로운 색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었다.

“어, 어디라고 하던가?”

“그것이… 세토 내해, 이세만 앞바다, 도쿄만 앞바다 등에 모두….”

으억, 비명 소리를 내며 해군대신은 뒷목을 잡고 다시 주저앉았다. 지명을 들은 다른 대신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당장 이름이 나온 세 곳만 해도 일본의 명줄이 걸려 있는 중요한 지역들이었다.

“그곳에 기뢰가 투하되면 어찌한단 말인가! 안 그래도….”

세토 내해는 일본을 구성하는 큰 섬 4개 중 3개, 혼슈, 규슈, 시코쿠에 둘러 쌓인 바다였다. 예로부터 육지 길이 험하고 큰 강이 적어 연안수운에 의존했던 일본의 물류유통로로서 중요했던 곳이었다.

그곳이 기뢰로 인해 봉쇄당했다면….

“아니, 관동 평야에 온통 제초제를 뿌려서 이쪽 수확은 공치게 생겼는데 거기가 막히면 어쩐단 말인가!”

“송, 송구하옵니다 천황 폐하!”

“송구, 송구, 그놈의 송구!”

농촌에서 생산된 식량이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연안수운이 필요했다. 하지만 기뢰가 이렇게 다수 투하되었다면 사실상 수운을 통한 물류의 운송은 완전 정지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일본 최대의 평야인 관동 지역에 온통 제초제를 뿌려 관동의 농사마저 망쳐 두었으니 일본의 식량사정은 유사이래 최악으로 몰릴 것이 뻔해 보였다.

“어디 식량을 수입할 곳이 없겠나? 빠드드득….”

“송구하오나 식량을 수입한다고 해도 그것을 운송할 길이….”

한 번만 더 송구라는 단어를 쓰면 네놈 모가지를 쳐 버리겠다는 얼굴을 천황이 하자 대신들은 다 같이 입을 합죽이처럼 다물었다.

“함대를 잡았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었어…. 그 전장으로….”

“….”

미국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일본의 약점을 찌르고 들어왔다. 차라리 물자가 생산되는 도시를 불태우면 불태웠지, 먹을 것을 가지고 목을 졸라 버리리라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동맹국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당한 영국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 강대한 영국이 독일의 힘에 밀려 감자나 통조림 따위를 악착같이 모아다 배급을 해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그도 비웃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비웃음을 일본이 덮어쓸 차례가 되었다.

“…일단 가지고 있는 식량을 어떻게든 잘 모아서 배급하도록 하게. 불만이 일지 않도록….”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천황 폐하!”

목소리만큼은 우렁찬 내각의 각료들을 보며 히로히토는 한숨을 푹 쉬고 걸어 나갔다. 저들의 주전론에 끝까지 제동을 걸었어야 했다고 후회하며.

‘사방이 적이로다.’

중국을 마치 일거에 무너트릴 것처럼 쳐들어간 지가 벌써 5년이지만 저 넓은 지나대륙에서 육군은 허우적대고 있었다.

그보다 강대한 미국 역시 한 방으로 함대를 섬멸하고 굴복시킬 수 있을 것처럼 굴더니 이제는 이리 비열한 방식으로 반격이 돌아왔다.

그다음은 누구란 말인가? 저 멀리 서쪽에서 동맹국인 독일과 엎치락뒤치락하던 소련은 이제 완연히 승기를 잡은 것 같았다. 독일 대사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시뻘건 적기를 휘두르는 강철의 인간 백정이, 독일을 최종적으로 정리하고 나면 과연 일본과 계속 평화를 유지할까?

상상하자 등골에 소름이 확 끼쳐 왔다.

스탈린은 너무나도 유능했다. 덩치만 컸지 허약하고 허술하던 러시아를 순식간에 저런 강대국으로 탈바꿈시켜 버리다니.

중국, 미국, 소련. 세상에서 인구가 많기로는 손에 꼽는 세 나라를 상대로 일본이 혼자서 버텨 낼 수 있을까? 독일의 히틀러는 친서를 통해 그럴 수 있는 신무기가 있으며 개발 중이라 이야기하는 것 같았지만 히로히토는 도무지 그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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