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134화
부대 습격이라는 돌발 상황을 맞아 일본군은 잠시 우왕좌왕하다가도 다시 침착하게 대처하기 시작했다.
“사령관님이 저 안에 인질로 잡혀 계신단 말이지… 으음….”
“이미 정체불명의 병력들이 연구시설을 습격했습니다! 기밀 문서들이 탈취당한 것 같습니다!”
731부대 경비연대장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저놈들이 여길 안 거지?
이곳이 관동군의 최고 기밀시설이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부대 내부의 시설이며 부대장이 누군지까지 안 거지?
그리고 저 안에서 울부짖는 사령관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살려다오! 살려 줘!”
인질로 잡힌 지 이십여 분간 지치지도 않는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살려달라, 총을 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이시이에 연대장은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여기에 붙들려 시설을 공격한 자들이 누구인지, 어디까지 털렸는지 등 상황을 전혀 통제할 수가 없었다.
쾅! 부대 외곽 쪽에서 거대한 폭음이 들렸다.
“뭐야! 빌어먹을….”
“어,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 짜증을 내고 싶었지만 자기가 연대장인 걸 어찌하랴? 이 빌어먹을 구석에 처박혀 전공을 세우지 못하는 것도 짜증이 나는데, 후방에서 안전하게 꿀이나 빤다 싶었더니 이젠 군 경력도 끝장이 나게 생겼다.
“들어라! 일본 제국주의의 개자식들아!”
안에 사령관을 인질로 잡고 있던 이들이 뭔가 외치기 시작했다. 유창한 일본어였지만 어쩐지 연대장은 억양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너희들의 천인공노할 악행을 알고 왔다. 네놈들은 단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고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우리가 힘이 없다는 것이 비통할 따름이다!”
“…조센징?”
세 명의 습격자들이 사령관을 질질 끌고 나왔다. 한 명은 사령관을 잡고 그의 머리통에 권총을 겨누고 있었고, 둘은 비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말투를 보아 조선인 같았다. 조선인들이 여기를 대체 어떻게 알고…. 연대장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저들이 그런 것을 말해 줄 일은 없었다.
푸시시시시… 펑! 습격자 중 한 사람이 하늘을 향해 조명탄을 발사했다. 그것이 총소리인 줄 안 이시이 사령관은 더욱 크게 울먹이며 쏘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붉은 조명이 밝은 하늘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으하하하! 죽는 게 두려우냐! 대한 독립 만세! 개새끼들아, 대한 독립 만세!”
“조센징들아, 사령관님을 풀어 주면 너희들은 무사히….”
탕. 총성 한 발이 울렸다. 방금까지 울부짖던 이시이 시로의 머리통은 수박처럼 터져 뇌수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죽여!”
“대한 독립 만세!”
인질극에서 인질을 죽인 자들의 말로는 항상 똑같았다. 하지만 저들은 끝까지 당당하고 용맹했다.
이시이 사령관처럼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대한 독립 만세 구호를 외치며 죽음을 맞이한 세 사람을 연대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제길… 일 났구만. 빨리 나머지 새끼들도 잡아!”
“예엣!”
사령관의 시체도 습격자들과 함께 걸레짝처럼 변해 있었다. 머리통이 박살 나고 몸뚱이는 걸레처럼 찢겨 있으니 유족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연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도 내 머리통만은 안전하니 다행이군.’
* * *
“하… 대장님께 경례!”
“….”
붉은 조명탄이 저만치에서 치솟는 것을 본 특공대원들은 대장을 향해 경례를 붙였다.
작전에 돌입하면서, 윤세주는 애초에 그렇게 선언했다.
‘나는 그놈을 죽이고 같이 죽고야 말겠다. 황천길 길동무라도 있으니 외롭지는 않겠지.’
사령관 이시이 시로를 포로로 잡아 탈출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붉은 조명탄을 쏘겠다. 가능하다면 초록 조명탄을 쏠 테니 너희들도 초록 조명탄을 쏴라. 대장은 그렇게 명령했지만 기어코 저편에서는 붉은 조명탄이 치솟았다.
아마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료만큼은 가지고 나가야 한다. 사령관 집무실에 있던 자료들은 저쪽에 있으니 실험시설에 있던 자료만이라도 반드시 세상 빛을 보아야 한다.
특공대원들 중 많은 수가 돌아오지 못했다. 아마 일본군과의 총격전 와중에 전사했을 것이다.
트럭 두 대를 빼곡히 채울 수 있던 대원들은 다 어디로 가고 장갑차에는 여유공간이 남아돌았다. 대원들은 말을 잊었다.
“….”
“아무튼 대원들의 복수는 할 수 있을 거요. 이 자료만 가지고서라도….”
다행히 저 실험시설을 찍은 카메라 두 대가 돌아올 수 있었다. 자료 한 뭉치도.
대원들은 동료의 목숨과 바꿔온 소중한 자료들을 알아볼 수 없을까, 조심조심 서류뭉치들을 다루었다.
“스탈린 서기장이… 꼭 복수해 줄 겁니다….”
“암, 암… 그럼….”
* * *
“이 개새끼들에 대해 최대한 널리 알리도록 하시오. 베리야! 즈다노프! 몰로토프!”
“옙! 서기장 동지!”
조선인 특공대는 성공적으로 731부대를 습격하고 돌아왔다. 물론 꽤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미 독립전쟁에 투신한바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731부대의 악행에 대해 세상에 알릴 만한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 영국, 중화민국에 모두 알리게. 이 자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빠득….”
“알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저들은 조금 일찍부터 731부대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벌써 수천 명의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자료들이 튀어나왔다. 사람 목숨에 상대적으로 무덤덤한 소련 고위급들도 경악할 정도로.
아마도 나치의 생체실험시설, SS 방역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같은 절멸수용소를 운용한 놈들이니까. 작년 초부터 유태인들을 어디론가 끌고 갔는데 과연 노동만 시켰을까?
“고인의 용맹한 행동은 길이 기억될 것이오. 내 다짐하오.”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특공대장 윤세주는 이시이 시로를 죽이고 같이 죽었다고 했다. 그와 같은 의열단원이었던 윤세주의 동지, 김원봉은 소식을 듣고 뜨거운 분루를 흘렸다. 조선인 특공대원들은 전원 소비에트 인민영웅 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이들은 죽은 동료들을 그리며 눈물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모두 유언장을 쓰고 떠났다. 영전에서 김원봉은 사망한 대원들의 유언장을 하나씩 낭송했다.
“조선이 해방된다면 내 고향 정주 여우난골에 내 잿가루를 묻어 주시오…. 크흑….”
영정 앞에 무엇을 놓는다 한들 고국의 독립조차 보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을까? 훈장과 꽃다발이 수북이 쌓이고, 소련 정치국원들과 고위 장성단이 방문해 이들을 위로했지만 조선인 부대원들은 이를 박박 갈았다.
“그 빌어먹을 일본 놈들과 싸우는 데 저희가 반드시 앞장을 서게 해 주십시오!”
“좋소이다, 홍 장군. 꼭 그렇게 될 것이오. 들었나 바투틴 대장?”
“예! 알겠습니다 각하!”
늙은 홍범도 장군은 주름진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극동전선군 사령관 바투틴에게 약속할 것을 명령했다.
조선의용군은 이제 기갑군단급으로 증강되어 훈련을 받고 있었다. 유럽 전선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지만 고국을 해방시키는 전쟁에서는 선봉에 설 수 있도록. 그때까지 늙은 홍범도 장군이 살아 있을는지….
이 세계에서의 상황은 미묘하게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루이 마운트배튼의 폭사, 윤세주의 전사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윤세주는 42년에 사망했다. 루이 마운트배튼은 훨씬 더 오래 살았지만 아일랜드인들에 의해 폭사했다는 것이 비슷했고.
물론 조선 독립의 희망을 본 홍 장군이 더 오래 살 수도 있겠지만….
힘내자. 그래도 전후 잘 먹고 잘살았던 이시이 시로가 처참하게 죽었다. 그놈의 죽음을 당장 조롱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기다리면 때가 올 것이다.
“다음 공세는 언제쯤 시작할 수 있겠나?”
“11월이 되면 기갑부대의 기동에 적합할 정도로 땅이 다시 굳으리라 추측됩니다, 서기장 동지.”
“11월… 11월이라.”
아직까지 질척거리는 진흙탕 때문에 소강상태는 지속되고 있었다. 공군 교전은 블리자드가 몰아닥쳐 비행기 이륙도 어려워지는 겨울이 오기 전 마지막 절정을 맞고 있었지만 지상은 고요한 정전 상태였다.
“그런데 서기장 각하… 독일군 내의 인사동향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런가? 뭐지?”
베리야는 안경을 매만지며 두툼한 보고서 뭉치를 또 하나 꺼내들었다. 독일군 내의 인사변동이라… 만슈타인이 처참하게 패퇴해서 북부집단군이 개편당했나? 애초에 이제 그쪽은 집단군이라 불리기도 어려운 수준이 되었으니.
하지만 베리야의 표정이 어쩐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보고입니다. 작년 겨울 남부의 공세를 막아 내었던 독일군 사령관, 발터 모델이 동부전선을 총괄하는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보고입니다.”
“뭐어어!?!?”
* * *
발터 모델은 휘하의 야전군 사령관들을 모두 불러모았다.
다들 한가락 하는 군력을 지닌 이들로서는 젊은 상관에게 반발할 법도 했지만, 총통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데다가 작년 겨울 화려한 지휘력을 보여 준 모델에게 감히 반기를 드는 이는 없었다.
지난 1주일간 모델은 전 전선에 걸쳐 일선과 후방을 넘나들며 전황을 파악했다. 이제 그 결과물을 풀어 놓을 때가 되었다.
“우리는 후퇴할 것이오.”
“예?”
그리고 이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현재 점령지들을 모두 방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력이 부족하오. 이 넓은 전선에 고작 이 정도 병력으로는 점점 뒤로 밀려날 뿐이오. 먼저….”
모두가 알고 있었으나 총통의 서슬에 밀려 하지 못했던 그것. 철수. 그러나 모델은 총통에게 허락을 받아 공식적으로 작전계획에서의 자율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스몰렌스크 돌출부에서 9군을 후퇴시키고, 프랑스군과 이탈리아군의 잔해를 끌어모아 새로운 작전예비대를 만들어 내고. 그 모든 계획들이 모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장군들은 그를 구원자로 여겼다.
그리고 병사들은 그를 그 이상의 무엇으로 여겼다.
“사자가 왔다! 방어의 사자가!”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부실한 보급이나 강력한 적군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절망이다.
더 이상 이길 수 없다, 무익한 작전이다, 두려워하고 포기하는 그 마음은 전력을 빠르게 좀먹었다.
하지만 남부전선의 영웅 모델이 도래한 이상 그 불안감은 빠르게 씻겨 나갔다. 불리한 전황에서도 열 배의 적을 없애 버린 모델 원수! 단 한 명의 증원군으로도 모델은 전군의 사기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총통은 더 많은 증원군을 약속했다.
“‘국민 돌격대’를 조직하여 보내겠소.”
“감사합니다! 총통 각하!”
괴벨스가 그동안 쩌렁쩌렁 떠들던 ‘국민돌격대’가 라스푸티차가 끝나기 전에 도착할 것이다. 총통은 모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가 바랬던 50만 증원군보다 더 많은 150만을 이야기하며.
‘그런데 대체 150만 명이나 되는 병력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이미 병력 자원이 바닥나고 있다는 것은 그도 익히 알고 있었다. 작년에도 그래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동맹국을 쥐어짜 병력을 억지로 만들어 온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한계까지 쥐어짰음에도 150만을 추가 징병한다고? 대체 어떻게?
물론 그로 인해 방어계획을 짜고 역습을 기획하는 것이 훨씬 쉬워진 것만은 다행이다. 기갑총감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구데리안 역시 전차 생산 및 개발을 총괄하여 모델 원수를 위해 최대한 많은 전차들을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안심이 되게 하는 요소였다.
이제 소련군을 막아 내는 것은 온전히 그의 두 어깨에 달려 있었다.
“반드시, 독일 국민을 위해서 우리는 승리해야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