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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30화 (130/300)

# 130

130화

자기들이 폐허로 만든 그 회색 도시 속에서, 독일군은 재빨리 발을 빼려 했다.

처음에 그들은 핀란드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레닌그라드의 북부에서 독일군과 합동 공세를 펼치던 저 겨울전쟁의 승리자들에게!

하지만 핀란드의 대통령이자 총사령관인 만네르하임은 영악했다.

[우리 핀란드군의 전력은 지금 전면적인 공세를 위해 적절하지 못하오.]

그는 핀란드군을 추가적인 공세에 투입하기를 거부했다. 만약 독일이 어떤 ‘잡스러운 수작’을 부린다면 얼마든지 독일군에게 총구를 돌릴 듯 말듯.

만네르하임은 독일의 특수부대가 살라자르와 호르티에게 무엇을 했는지 잘 알고 있었으며, 스스로 세 번째 희생양이 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북부지역에 반쯤 고립된 독일군 부대들이 헬싱키항을 통하여 발트 지역으로 후퇴를 시도할 때도 핀란드군은 레닌그라드 방향보다 독일군이 향하는 방향을 더 삼엄하게 경계했다. 독일군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도 어찌할 줄을 몰랐다.

“빌어먹을 핀란드 새끼들….”

“저놈들하고 동맹을 맺는 게 아니었어.”

물론 그 말은 핀란드인들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소련을 순식간에 밟아 버릴 것처럼 큰소리는 떵떵 쳐서 손을 잡았더니 이런 참패라니?

이제 저 붉은 괴수는 핏발 선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복수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핀란드가 그 희생양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만네르하임은 소련과 스탈린의 비위를 맞추려 했다.

* * *

“싸워! 응사해라! 응사해!”

후퇴하는 아군의 후방을 ‘엄호’하기 위해 남겨진 독일군들은 필사적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련군에게 저항했다.

타타타타 타타타타타! 콩 볶는 소리를 내며 기관총을 긁어 댔지만 부됸늬 전차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않고 그 거대한 포신을 건물 2층을 향해 들이댔다.

“피해! 씨발….”

“잘 가라, 더러운 파시스트 새끼들아!”

소련군 병사는 감히 레닌 동지의 이름이 붙은 도시를 흙발로 짓밟은 파시스트들에게 걸쭉한 욕설 한 바가지를 퍼부으며 조종간을 당겼다.

부됸늬 전차의 포구에서 휘황한 붉은 화염이 솟구치며 독일군이 숨어 있던 2층 창문으로 불어닥쳤다. 열폭풍에 휘말린 독일군들은 화염에 타 버리고, 질식하며 하나하나 죽어 갔다. 자기네들이 태워 버린 수많은 레닌그라드의 건물처럼.

“전차부대, 앞으로!”

쿠콰콰콰콰쾅… 스테레오로 울려 퍼지는 수백 대 중전차의 엔진소리는 독일군의 중장비들이 멈춰 버린 레닌그라드를 지배했다.

시가전용 화염방사 전차로 개조된 부됸늬 중전차부대는 건물을 하나하나 소탕하면서 천천히 독일군의 퇴로를 압박했다.

보급의 부실로 인해 대부분의 중장비를 상실하고, 기관총이나 소총 따위에 의존한 채 걸어서 후퇴하는 독일군 병사들은 도무지 소련군의 기갑부대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씨발… 우리 대전차포는 어디 있어! 여기 숨을 데가 얼마나 많은데!”

독일군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분명히 곳곳에 건물이 무너지고 수직과 수평으로 수많은 장애물이 있는 시가전은 대전차포가 매복하기에는 좋은 환경이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기름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력으로 견인해 건물 폐허 속에 대전차포를 매복시킬 수 있진 않았다.

소련군 특수부대 소속 저격수들은 야음을 틈타 각종 수단을 동원해 건물에 침투하고 고지를 차지한 채 독일군을 감시하고 또 압박했다.

자기네들이 건물을 점령했다 생각하고 방심한 채 잠을 청했던 독일군은 옥상을 통해 침입한 스페츠나츠의 수류탄 몇 발에 떼죽음을 당했다. 대전차포를 낑낑대며 밀어 숨기려 하던 독일군들은 저격수의 소총탄에 옆통수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루프트바페의 전투기들이 사라진 하늘에서는 소련의 불곰 전투기들이 날아다녔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이 쓸려나간 길목은 소련의 부됸늬 전차들이 진군했다.

골목 사이사이와 담벼락 틈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로는 맹훈련을 받고 시가전의 달인이 된 소련군 부대들이 돌아다녔다.

투타타타 투타타타, 그들은 아군이 아니어 보이는 모든 것에 자동소총을 퍼부어 댔고, 독일군은 구식 Kar98 소총으로 몇 발 응사를 하다가 결국 포기해야만 했다.

[항복하거나, 죽거나, 선택하라!]

‘최선의 인도적 대우’를 보장한다던 항복 권유 방송은 이제 항복이나 죽거나를 선택하라는 위협으로 바뀌었다.

독일 병사들은 가장 눈치 없는 말단 병사들까지도 전황이 뒤집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반대로, 가장 생각이 없는 소련 병사들조차도 독일의 대패가 가까웠노라 알 수 있었다.

“레닌그라드를 탈환하라! 수도를 탈환하라! 혁명의 심장이여, 우리가 왔노라!”

“아아, 내 고향… 내 고향 레닌그라드여!”

독일군에 의해 흙발로 짓밟혔던 옛 유적들과 건물들을 하나하나 탈환하며 병사들은 기뻐하면서도 탄식했다.

아름다운 루스의 영광이, 표트르 대제가 세운 이래로 수많은 예술가들과 문인들이 거쳐 갔던 이 도시가 폭격과 포격 아래서 폐허가 된 것이다.

다시 우리 손에 들어왔지만 예전의 영광은 찾아볼 수도 없이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어 버린 도시를 보며 병사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붉은 군대여! 파시스트 침략자들을 몰아내자!”

“우라! 우라! 우라! 소비에트 연방 만세!”

레닌그라드를 탈환하는 소련군들은 유달리 잔혹해져 갔다. 비록 알맹이라 할 만한 것들, 시민들부터 에르미타쥬의 예술품들과, 시의 공장 설비 등은 다 미리 빼내어 전혀 손해 본 것이 없었지만.

“그냥 쏴.”

“예? 저놈들 항복하는 것 아닙니까?”

특히 부됸늬 전차를 모는 전(前) 기병대 출신의 병사들은 더더욱 그러했다. 그토록 존경하던 부됸늬 원수는 독일군의 손에 처참히 죽어 버리고 말았다.

그 치욕을 매일 원수의 존함이 붙은 전차를 몰면서 되새기는 판에, 폐허가 된 도시를 마주하기까지 했으니 과연 자비를 둘 수 있을까?

유독 부됸늬 원수를 존경했던 전차장은 경멸 어린 표정으로 누렇게 때가 낀 백기를 휘두르는 파시스트 병사들을 보다가 툭 하고 명령을 내렸다.

“빌어먹을, 알 게 뭐야. 못 봤다고 하면 그만이지.”

“…예! 알겠습니다.”

속옷을 엮어 막대기에 매단 채 휘두르던 독일군 병사들은 포신이 자기네들을 향해 끼리리릭 들어 올려지는 것을 보며 기함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항할 수단이 없었다.

4군에게 보급할 물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나르바강 방면으로 돌아 들어오는 철도선의 용량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을 간신히 가져다주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물자가 모두 일선의 병사들에게 정확하게 전달되기조차 어려웠다.

사실 백기를 휘두르는 그 병사들 역시 그랬다. 식량과 탄약이 부족하여 싸우기조차 어려운데, 그들이 받은 보급물자에서 나온 것은 대체 어디에 쓰라는 것인지 모를 콘돔 몇 박스였다.

“씨발… 야, 이거 진짜 끝까지 못 써보고….”

그렇게 전투의지를 상실한 독일군 병사 몇은 소련군에게 항복하려 했다. 물론 돌아온 것은 부됸늬 전차의 우렁찬 굉음과 화염의 폭풍이었지만.

* * *

“공중보급을 하면 될 것 아닌가! 공중보급!”

“총통 각하! 그만한 규모의 공중보급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루프트바페의 파일럿을 그런 자살 임무에 밀어 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레닌그라드 내부에는 마땅한 비행장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 거기로 물자를 나른다 해도 낙하산을 통한 공수 보급 정도나 가능할 따름입니다.”

총통은 바락바락 악을 쓰며 부하 장군들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공군 총사령관 괴링, 그리고 북부집단군 소속의 항공함대 사령관인 볼프람 폰 리히트호펜까지 나서서 말리기 시작하자 총통은 씨익, 씨익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방금 레닌그라드라고 했나? 너희들이 점령해서 아돌푸스부르크로 개명하겠다 한 것이 아닌가?”

“송, 송구합니다! 총통 각하!”

리히트호펜은 순식간에 아연실색해 용서를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르핀을 끊고 살이 빠지며 ‘제정신으로 돌아온’ 괴링은 여전히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분통을 터트리는 총통을 만류했다.

“총통 각하. 각하, 부디 재고하여 주십시오. 차라리 보급을 포기하고 최대한 많은 병력을 빼내거나… 차라리 소련군이 치고 들어온 곳에 역습을 가하는 데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것입니다!”

“수십만 명을 그곳에 버리고?”

‘그곳에 그 병사들을 꼬라박은 것은 당신이 아닌가!’

괴링은 마치 그렇게 속으로 외치는 것 같았다. 물론, 총통의 말대로 수십만 정예 병사들을 레닌그라드에 버린 이상 독일군의 미래는 없다 해도 좋았다.

이미 200만에 육박하는 손실을 입고 있었다. 레닌그라드에 고립된 이들까지 포함하면 200만이 넘을 것이다.

물론 소련군에게 그 두 배에 가까운 피해를 입히기는 했지만 소련은 기본적으로 인구가 그들보다 세 배는 더 많았다.

여기에 독일군은 이미 공세역량을 대부분 소진한 후였다. 방어측이 전술적으로 유리하다 하여도, 전략적으로 보면 공세를 해야만 적의 손실을 강요할 수 있는데 공세라는 선택지가 없어진 이상….

‘끝없는 소모전일 뿐이지.’

이제는 육군이나 해군뿐만 아니라 공군, 루프트바페에서도 손실률이 치솟고 있었다. 육군이 한 걸음 물러나면 하늘에서 싸우다 격추당한 파일럿은 적지가 되어 버린 곳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동부전선에 뼈를 묻은 파일럿이 대체 몇 명일까? 괴링은 빠득, 이를 갈았다.

차라리 소모전으로 가면서 몇 배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면 모를까, 1:2 정도, 혹은 그보다도 못한 교환비로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았다.

괴링은 몇몇 빈 자리들을 바라보았다.

“….”

롬멜, 모델,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은 유폐당했고, 모델은 남부집단군 사령관에서 보직해임 당한 채 저기 한 구석에서 입을 꾹 닫은 채 회의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슈타인은 북부에, 구데리안은 중부에 사령관으로 가 있었기에 이 자리에서 대전략에 개입할 방법이 없었다.

신규 남부집단군 사령관은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총통의 신임을 받기에는 능력이든 출신성분이든, 여러 면에서 한 끝씩은 처지는 자였다.

총통은 이제 도무지 저지할 수가 없었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을 종합한다면…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총통 각하,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 참모부 쪽에서 총통이 총애하는 요들은 조용히, 나직한 목소리로 진언했다.

그의 말은 정론이었다. ‘특단의 대책’ 따위가 없는 것을 제외한다면. 물론 그것을 내놓지 못하는 이가 요들 한 사람만은 아니었으니 꼭 참모장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만슈타인에게 증원을 보내게. 최소한 지금 기획하는… 그 무슨 분견군? 그 공세만큼은 성공시켜 보라고 하게.”

총통은 힘이 쭉 빠졌는지, 혹은 약기가 쭉 빠졌는지, 의자에 푹 기대어 앉은 채 눈을 감았다. 페르비틴, 그놈의 페르비틴. 괴링은 속으로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 자신에게 모르핀을 끊으라고 그렇게 난리를 치더니 무슨 페르비틴을 그렇게 처먹고 저렇게 됐는가? 맥주홀 폭동 시절의 그 연설능력도, 요 얼마 전 갑자기 보여 주었다 또 갑자기 사라진 예언 비슷한 능력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약의 힘인가?’

사람들은 점점 총통에 대한 신뢰를 잃어 갔다. 더 이상 믿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충분히 많은 이들은 여전히 총통에 대해 무한한 광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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