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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29화 (129/300)

# 129

129화

만슈타인은 처절한 저항을 통해 소련군의 진군을 늦추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방어선을 구축할 수도 없었던 북부집단군은 아예 싹싹 바닥까지 긁어모아 만든 병력을 공세에 투입해 소련을 막아내려 하는 것 같았다.

“적의 공세 규모는 군단급, 아니면 그 이상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전투의지만은 강력하여··· 자칫하면 노브고로드까지 돌파당할 수 있습니다!”

“돌파당하면 어쩔 건가. 노브고로드를 점령이라도 할 수나 있겠나? 하하핫.”

공세종말점에 이르른 군대는 멈춰야 한다. 백수십 km를 순식간에 전진한 소련군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하다 멈추고 말았다. 독일군은 자기네들의 퇴로인 나르바 강변을 죽음을 각오하고 사수했다.

그리고 추정 2개 군단급 공세를 통해 소련군의 공세방향 측면을 강타, 노브고로드 방향으로 진군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공세들이 무섭지는 않다. 정예 전투병력을 모조리 레닌그라드에 꼴아박고 돌아온 북부집단군 ‘따위’ 가? 레닌그라드 전선군 사령관 코네프는 내게 호언장담했다.

“서기장 동지! 파쇼들은 결코 맘 편히 도주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적군은 레닌그라드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

다만 뭔가 마음에 쏙 들지는 않았다. 얼마나 포위해서 잡아낼 수 있을까? 포위망 안에 들어있는 독일군을 정보부에서는 대략 60만 정도로 추정했다. 아마 아직까지는 저들이 우월한 공군을 이용하면 몇만 단위로 인력은 빼낼 수 있을 것이다.

30만? 40만? 레닌그라드의 기회를 이용하기 위해 잠시 뒤로 미루어둔 스몰렌스크의 9군이 대략 30만명 정도 되니 딱 본전치기, 혹은 약간 이득이다. 미끼로 건 레닌그라드를 폐허로 만들면서까지 낸 전과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아쉽다.

“으음··· 아무튼 뭔가 더 챙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계속 욕심이 났다. 사실 10만 명이 빠져나가든 20만 명이 빠져나가든 전차나 야포 같은 무거운 물건들은 다 두고 가야 한다. 그렇게 무장해제된 20만 명의 알보병, 피로하고 다친 자들도 많을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 다시 전선에 돌아올 수 있는 자들은 얼마 없다.

이제 곧 라스푸티차가 올 때가 됐으니 잠시 쉬었다가 겨울에 공세를 펼쳐 중부집단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하면 될텐데··· 어딘가 조급해졌다. 아군 피해도 적지 않아서인가? 아무튼 잘 생각하면 어디엔가 묘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서기장 동지, 그렇다면 혹시 이런 방법은···.”

“오! 바실렙스키 동지!”

바갈공명, 바실렙스키가 특유의 그 신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항상 바실렙스키가 저런 식으로 제안을 할 때는 뭔가 괜찮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다.

“아주 획기적이라 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만··· 미국이 아조레스를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으니 이제 대서양 방면에서 제 2전선을 열라고 요구하면 어떻겠습니까?”

“제 2전선 말인가?”

그렇다. 미국은 결국 피 튀기는 싸움 끝에 대서양 가운데에 있는 아조레스 제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대서양의 잠수함 및 공군 거점을 상실한 독일의 방어선은 카나리아 제도나 유럽 대륙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그러니 제 2전선이 가능하기는 하다.

동부전선에서 소련이 독일 전력의 8할을 상대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나머지 20%는 서부전선에 있었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이탈리아 전선에서, 그리고 프랑스 전선으로 차출된 독일 병력은 확실히 동부전선에 가해질 부담을 작게나마 덜어주었다.

“제 2전선이 있으면 좋겠지··· 있으면 말이네. 어디까지나.”

그러고보니 실제 역사대로라면 지금쯤 북아프리카 전선이 정리되었어야 한다.

42년 11월, 미군과 영국군은 ‘횃불 작전’으로 프랑스령 알제리 식민지에 상륙한다. 저만치 동쪽 리비아에서 영국군과 싸우고 있는 독일 북아프리카 군단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갈긴 것이다.

비시 프랑스의 총독이던 프랑수아 다를랑은 본국을 배신하고 연합국에 협력한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연합군은 진격할 수 있었고, 나치 독일은 앞뒤로 포위당한 끝에 롬멜을 북아프리카에서 불러들인다. 곧 독일군은 고립당하여 항복하고 만다.

하지만 여기서는 북아프리카 전선이 순식간에 종결되었고, 스페인이 추축국으로 참전했으며 영국마저 항복하고 말았다.

제 2전선을 만들 상륙지가 없는 것이다. 스페인이 중립국이고, 지브롤터 기지가 영국의 손 안에 있었기에 실제 역사에서는 이탈리아에 상륙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별 의미는 없었지만.’

지중해의 제해권을 피튀기게 싸워 손에 넣으면 뭐하나. 독일군은 이탈리아 중부의 산악지대에서 우주방어를 치고 끝까지 막아냈는데. 결국 노르망디 상륙으로 북프랑스에 입성, 파리를 해방시키고 히틀러의 삽질에 힘입어 독일의 절반이나마 연합군이 해방시킬 수 있었다.

“어디에 2전선을 열어야 하겠나? 기탄없는 의견들을 듣고 싶네.”

“당장 생각할 수 있는 곳은 네 곳입니다. 북아프리카, 영국,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 이렇게 네 곳 정도가 미국이 상륙 가능한 곳이 아닐런지요?”

내 생각도 그 정도다. 하지만 넷 다 하자가 있는 곳이다.

“북아프리카는 이미 전략적 의미를 상실한 지역입니다! 그곳에 상륙해서 수에즈 운하까지 미국 놈들이 진군하겠습니까?”

“영국 역시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끔찍한 피해를 입히는 상륙 작전을 한번 더 해야 할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뭐, 독일군이 북프랑스를 경계하기 위해 예비 병력들을 잔뜩 빼놓는다면 가능할 법도 합니다만···.”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으로 나머지 유럽 대륙과 막혀 있어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습니다. 아마 거기에 제 2전선을 열면 십수 개 사단만으로 방어선을 형성해도 미국은 대서양을 건너 보급을 해 주느라 골머리를 앓을 것입니다!”

곳곳에서 반론이 터져나왔다. 다들 생각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었다. 말을 꺼낸 바실렙스키도 다시 침울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프랑스, 프랑스는 어떻겠습니까?”

“프랑스? 위로는 독일 놈들 점령 하의 영국, 아래로는 파쇼 스페인 사이에 끼어 있지 않나? 그리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히틀러라고 생각하지 못할 리가 없지.”

뭐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 어떤 작전도 불가능하겠지만, 프랑스 상륙이 위험한 이유는 나만이 알고 있었다.

히틀러가 미래에서 온 이상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모를 수는 없다. 조건과 상황이 달라졌지만, 나만 해도 제 2전선 이야기를 들었을 때 노르망디를 떠올렸지 않나?

미국이 상륙을 준비한다고 하면 아마 히틀러는 프랑스에 상륙을 격퇴할 병력을 배치할 것이다. 상륙을 지원할 배후 거점이 3천 킬로미터는 떨어진 코딱지만한 아조레스 제도인 상황에서 빵빵한 지원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미국 놈들의 주특기는 공군 호출인데, 공군 지원도 못 받는 병력들이 힘이나 쓰겠나?”

“…송구합니다.”

“아닐세. 항상 좋은 의견만 제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으음··· 영국 상실은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다. 상륙 작전이나 전략폭격 거점으로서 대륙에 가까이 붙어 있되 강력한 해군으로 방어를 구축한 영국은 가장 이상적인 기지나 다름없었다. 특히 독일 해군이 실제 역사에선 탈탈 털렸으니.

“항공모함에서 폭격기를 날릴 수는 없나…? 독일 본토에 타격을 가할 수 있으면 좋겠··· 아!”

번뜩,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이러면 되겠다!

“몰로토프, 자네는 루즈벨트 대통령과의 핫라인을 준비해 주게. 그리고 베리야, 자네는 미국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장거리 폭격기들과 개발중인 대형 폭격기에 대한 자료를 있는 대로 가지고 오게. 30분 후 내 집무실에서 보도록 하세나.”

“예! 서기장 동지!”

“그리고 바실렙스키 동지? 아주 고맙네.”

따봉을 날리며 윙크를 하는 나를 바실렙스키는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후훗, 나의 상큼함에 감탄··· 크흠. 흠흠.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노쇠한 몸뚱어리에도 힘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서기장 동지, 이 자료는 어떻게 사용하시려는 생각이신지···?”

“쉿! 잠시만 기다려 보게.”

[아, 스탈린 서기장. 오래간만입니다. 이번에는 무슨 일입니까?]

루즈벨트와의 핫라인은 금방 연결되었다. 영국이 몰락한 이상 미국의 최’대’ 우방국은 소련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실제 역사보다 대우가 더 좋기는 하겠지. 전황이 나아져서인지, 루즈벨트는 그래도 좀 덜 피곤한 것 같았다.

“제안을 하고 싶은것이 있어 이렇게 연락을 했습니다. 대통령. 먼저··· 아조레스 점령을 축하하고 싶습니다. 우리 소련 인민들은 동맹국 미국의 승리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반파시스트 전선에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서기장. 후···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그렇지. 갈 길은 멀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 점은 동의합니다. 아주 할 일이 많지요.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우리에게 독일을 아주 효과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귀중한 정보가 들어왔는데 제안을 들어 보시겠습니까?”

[아, 어떤 제안입니까?]

“바로··· 독일 본토 타격입니다!”

몰로토프와 베리야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아니 이 양반이? 상륙작전도 안된다고 했으면서 무슨 본토 타격인가?

폭격기에 관한 문서들을 가지고 오라고 했으니 아마 폭격기를 사용하겠지만 어떻게 대서양의 절해고도에서 유럽까지 날아가겠나? 현재 미국이 사용하는 B-17 플라잉 포트리스나 B-24 리버레이터로는 아조레스에서 독일까지 왕복할만큼 항속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걸 봤으면서도 미국 대통령한테 핫라인을 바로 쳐서 제안을 하다니. 당황할 법도 하다.

[아니, 독일 본토를 타격할 방법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B-17과 B-24 폭격기의 항속거리가 우리가 알기로는 추가적인 연료탱크를 부착하면 5천 km 정도 낼 수 있지요?”

전화기 저편에서 폭격기 자료 가져와!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5천 km정도론 턱없이 부족하다. 일단 아조레스에서 독일의 베를린까지가 대략 3500km 정도. 왕복 7천 km면 약간의 개조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아, 예, 뭐 비슷한 수준일 것입니다.]

“좋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이 폭격기의 약간 부족한 항속거리로는 독일 본토를 타격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독일 본토에서 아조레스 기지를 왕복하기에는 영 부족하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이 시대에는 둘리틀 특공대가 없었다. 미군의 항모들은 모조리 진주만에서 침몰한 바 일본 본토를 항모 발진 육상용 폭격기로 타격한다는 발상은 나와도 애초에 실행에 옮겨질 수 없었다.

물론 그런 폭격기 조금을 가지고 독일을 뒤흔들 수는 없다. 기지에서 수백 대씩 날아올라도 전략폭격을 가하기에는 부족한데?

“자, 독일 본토에서 아조레스까지 귀환하려면 3500km를 날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기수를 남쪽으로 틀어 날면 우리의 동맹국,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가 나옵니다.”

[…!]

“베를린으로부터 계산하면 1200km 가량. 삼분지 일로 줄어든 거리입니다. 조종사들의 안전도 담보할 수 있지요.”

그렇다. 둘리틀 폭격대는 일본을 폭격하고 다시 항모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인 중국과 소련으로 즉시 향했다. 이 경우에도 일본이 독일로 바뀌었을 뿐 기본 개념은 똑같다.

불침항모인 아조레스에서 날아오른 폭격기들은 독일의 주요 산업시설들과 도시를 파괴하고 소련이나 루마니아로 쌩하고 달아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떨어지는 떡고물-비행기들!-은 우리가 줏어 먹고.

B-29처럼 미국 본토에서도 대서양을 오가며 폭격이 가능한 물건이 나오면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아직 B-29는 개발단계였다.

[으음··· 조종사들은 그럼 지구를 한 바퀴 돌아 태평양을 건너 돌아오겠군요. 비행기들은···?]

“가능하면 돌려주고 싶지만 일본이 그것을 허락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엄청난 수의 폭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시설들만 확실히 부수어 놓으면 될 것입니다.”

[예컨대··· 어떤 목표물을 생각합니까?]

“우리가 알아낸 독일 산업생산의 병목은 바로 슈바인푸르트의 볼 베어링 공장입니다. 또, 루르지역의 중공업단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댐을 타격하여 파괴한다면 저들의 산업능력을 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우리 측에서 검토하여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원··· 서기장은 어째 모르는 것이 없군요.]

하하··· 저쪽에서 우리 첩보능력을 과대평가하는게 아닌가 모르겠다. 베리야는 어떻게 저런걸 다 알고 있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몰로토프와 베리야 둘다 표정에 나에 대한 경외심을 가득 담고 있었다.

우상화를 하지 말라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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