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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28화 (128/300)

# 128

128화

1SS 기갑군이 중부로 내려가기가 무섭게 소련군은 다시 노브고로드 방면에서 공세를 시작했다.

집단군 전략 예비를 모조리 레닌그라드에 밀어넣었거나, 혹은 중부의 위기를 구원하기 위해 보낸 북부집단군은 속수무책으로 말려들었다.

“작전은 성공하였는가?”

[성공입니다! 저희는 지금 페이푸스 호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 영광을 서기장 동지께 돌립니다!]

“우라! 승리 만세!”

성공이다! 레닌그라드에 매달려 측면의 방어를 소홀히 한 북부집단군은 방어선을 돌파당했다. 단 3일 만에.

방어선의 독일군 사단들은 대부분 지쳐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포병대는 거의 대부분이 상급 사령부에 차출된 상태였고, 보병연대들은 정수로 완편된 부대를 찾기가 더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독일군의 퇴로는 점점 숨통이 조여지고 있었다. 돌파선 이북의 60만에 이르는 독일군에게 보급을 해 줄 수 있는 철도는 이제 단 한줄기만이 남아 있었다.

레닌그라드의 군대를 꺼내보려 하던 만슈타인은 이제 제대로 물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도망가려 해도 도망갈 수 없다. 진창에 빠진 놈을 꺼내려다 아예 굴러떨어진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북부집단군의 마지막 출구는 이제 한 곳만이 남아있었다.

우리가 지금 막 다다른 페이푸스 호수는 나르바 강이 되어 북쪽의 핀란드 만으로 흘러들어갔다. 나르바 강변까지 막아버린다면 이제 북부집단군은 완전히 고립되는 것이다.

“반드시 나르바 강까지 최대한 빨리 가야 하네! 60만 명을 포위해서 무너트린다면 우리의 승리야! 승리!”

“예! 서기장 동지!”

베를린 국회의사당 위에 노동자 농민의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장엄한 광경을 상상했다. 위풍당당하게 브란덴부르크 광장을 행진할 붉은 군대!

현재 레닌그라드의 전황은 어찌 보면 스탈린그라드와도 비슷했다. 기간은 훨씬 더 짧았지만 끔찍한 시가전을 치르다 측면의 방어를 소홀히 해 도시 안에 포위되어버린 양상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판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 역사에서 스탈린그라드에 갇힌 독일 6군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왔던 것은 만슈타인. 이번엔 레닌그라드에 병력을 꼴아박다가 갇혀버린 바로 그 장군이다.

이제 예정된 파멸 앞에서 만슈타인은 끝까지 저항을 할까? 아니면 스탈린그라드의 사령관 파울루스처럼 부하들의 참혹한 꼴을 보다가 항복할까? 그도 아니라면 마술사와 같이, 신묘한 계책으로 소련군을 따돌리는 데 성공할까?

예비대를 모으고 있었다는 보고까지는 받았지만 어떻게 대처할 지가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갇혔군.”

만슈타인은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복선 철도들이 뚫려 병사들을 꺼내오기만 한다면 쭉쭉 후퇴할 수 있는 프스코프 방면에 비해, 나르바 방면에는 철도선이 부족했다.

이제는 레닌그라드의 생지옥에서 병사들을 꺼내더라도 도망갈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이미 패닉은 부대 안에 확산되고 있었다. 일반 병사들에게까지 포위당했다는 소문이 퍼지지 않았으나 장교들은 부대의 불온한 기운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보급이 부족해진 이상 식량 배급량은 줄 수 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부실한 식단과 혹독한 전투에 대해 불만을 터트렸고, 또 탄약과 화기의 부족 때문에 싸울 수 없는 현실에 상부를 비난했다.

“싸우라고 던져놓고, 무기도 밥도 안 주면 어떻게 싸웁니까?”

“명령은 명령이네 상사.”

고참 부사관들은 군의 팽창 덕분에 순식간에 소대장, 중대장이 된 초급 장교들을 경멸했다. 유능하고 용감한 장교들은 압도적인 물량의 소련군에 맞서 싸우다 하나하나 전사했다. 그들의 빈 자리는 덜 용맹하고 더 비겁하거나, 자격미달인 이들이 채워갔다.

물론 장교들의 불만도 있었다.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들어 자꾸 반항하고 자기네들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하급자들을, 장교들은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보급? 그걸 내가 만들어서 주나?

같이 쫄쫄 굶는 처지에 비난받는 것이 곱게 들릴 리 없다. 이렇게 장교와 병사들 간에는 계속 감정의 골이 깊어져갔다.

[투항하라! 투항하는 이들에게는 최선의 인도적인 대우를 보장한다!]

[전우 여러분! 파시스트 정권을 위해서 싸우지 마십시오! 저는 소련에 투항한 이후 죽음만이 기다리는 전장이 아니라 안온한 곳에서 미래를 위해···]

[병영 앞 대문 앞에 가로등이 서 있고~ 그녀는 여전히 그 앞에 서 있네~]

이제 소련군은 수십 대의 스피커를 설치해놓고 본격적인 심리전에 나섰다. 만슈타인 원수는 다음 작전을 위한 예비대를 확보하기 위해 산발적인 포격을 제외하면 공세를 제한했다.

그 틈을 눈치챘는지 소련은 독일군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한 방송들을 쩌렁쩌렁하게 틀어 댔다. 투항하면 인도적 대우를 보장한다는 방송, 파시스트 ‘짝불알’ 히틀러를 비난하는 방송, 그리고 고향에 두고 온 연인이나 어머니를 그리게 하는 노래들까지.

간드러지게 심금을 녹이는 목소리로 부르는 연가(戀歌)를 듣는 독일군들은 점점 심적으로 극한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증원은 없지, 먹는 것은 부실하지, 언제라도 죽을 것 같은데 소련군은 계속 투항을 종용했다.

“하··· 진짜 투항할까?”

“한스, 너 미쳤어?”

머리를 빡빡 깎은 신병 둘이 보초를 서다 잡담을 나누었다. 한스라 불린 병사는 소련군이 수시로 살포하는 삐라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저만치의 소련군 스피커에서는 마침 또 그가 좋아하는 노래인 릴리 마를렌이 나오고 있었다. 어색한 러시아식 발음으로 소련군들이 노래를 따라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그만큼 가까이 있었기에 경계가 삼엄할 법도 했지만 싸움에 지친 병사들에게 그런 명령이 지켜질 리 없었다.

“여기 있으면 죽고, 가면 끽해야··· 시베리아 아니야? 혹시나 모르지. 진짜 여기 말하는 것처럼 잘해줄지.”

“….”

다른 병사는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한스의 말에서도 빠진 내용은 있다. 소련군 진지로 가다가 죽는다면? 소련군이라고 경계를 하지 않겠는가? 밤에 수상한 이들이 슬금슬금 오면 그게 투항하려는 병사들인지 아니면 잠입하는 적군인지 알 게 뭔가.

또, 독일이 승리한다면…? 아마 투항한 독일인들부터 쥐 잡듯 색출해 죽일 것이다. 총통 각하께서는 국방군 내의 배신자들을 처단하시며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보여주셨다.

“배신자들이 어떻게 되는지 못 봤어…?”

“프리츠, 너 진짜 바보냐? 그분들이 진짜 배신한 것 같아? 그 많은 장교들이? 롬멜 장군까지?”

프리츠는 의아해졌다. 그럼 아무 죄도 없는 장군들을 수십 명씩 총살하고 그 가족들까지 수용소에 끌어다 쳐넣었단 말인가? 아프리카의 정복자 롬멜마저도?

매일 같이 롬멜 원수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던 일간지에서는 이제 그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는척하기 좋아하는 병사들은 롬멜 원수가 어떤 방식으로든 반역에 연관되어 그런 것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장교들은 그런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에 굉장히 민감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말은 바람보다 빨랐다. 롬멜 반역론을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도통 내놓지 못하는 것도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에 한몫 했다.

이 소문은 병사들의 사기에 꽤 영향을 미쳤다. 롬멜 원수와 같은 사람마저도 배신할 정도면 뭔가 크게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너 진짜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저놈들은 전차만 수천 대라고! 우리는 고작···.”

“쉿! 패배주의로 몰린다?”

흡. 한스는 과장된 손짓으로 자기 입을 덮고는 익살스럽게 SS 장교들의 흉내를 냈다. 총통 각하께 경의를 표하라! 총통 각하의 명령이시다! 패배주의자는 처형이야!

프리츠도 그것만은 우스웠는지 낄낄 웃었다. 빌어먹을 SS 새끼들. 변변한 직업도 없고 배워먹지도 못한 동네 건달패들에게 완장까지 쥐어주니 별 깽판은 다 저지르고 다녔다. 특히 장교랍시고 거들먹거리는 놈들.

“씨발··· 진짜 생각하면 할수록 좆같네.”

“그래, 그냥 튀자니까?”

“….”

가자니 무섭고, 남자니 불안하고. 한스는 프리츠가 같이 가지 않을 경우 혼자라도 도망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마 투항하면서 본인이 스파이가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려면··· 함께 보초를 서던 전우를 쏘고 도망쳤다, 이런 게 ‘증거’ 겠지? 어쩐지 Kar98 소총을 만지작거리는 한스가 무섭게 보였다.

물론 둘의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소련군의 포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피유우우우우! 휘익, 휘리릭 휘유유

“로켓이다! 카츄샤다!”

“빌어먹을…!”

최소 몇 톤은 나가는 크기의 야포를 가지고 도시로 들어오기엔 운반 수단이 마땅찮다는 것을 깨달은 양군은 도시 내에서는 곡사포를 그다지 많이 운용하지는 않았다.

대신 소련은 따로 떼어서 운반이 가능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 가능한 로켓포를 애용했다. 독일 놈들이 이미 한번 때려부순 도시, 더 때려부수는 데 거리낄것이 없다는 듯 그들은 독일군이 있을 법한 곳이면 어디든지 로켓포 포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런 포격은 포격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스, 적이다!”

“…!”

슬금슬금 소련군은 로켓포를 피해 엄폐된 골목골목으로 기어들어왔다. 정예 병사의 상징인 돌격소총과 유탄발사기를 들고서. 그들은 이렇게 독일군 소진지를 덮쳐 점령한 후 전우가 아직 저쪽에서 잘 막고 있으리라 안이하게 생각하는 진지들을 하나하나 집어삼켰다.

프리츠는 빌어먹을 ‘통곡의 벽’ 을 바라보았다.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던 그 건물은 이제 조용해졌지만 소련군은 어둠을 틈타 꾸역꾸역 밀려나오고 있었다.

“야, 안 쏠···.”

“프리츠, 미안해.”

한스는 소련군이 아니라 프리츠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의 얼굴에는 미안함은 그다지 섞여 있지 않았다.

“미안하니까 손 들어. 항복할거야. 너도 같이 항복하자.”

“야! 너 미쳤··· 히익!”

총구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완강히 고집을 피우던 프리츠는 조용해졌다. 탈영병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지느니 그냥 따라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가 고민하는 동안 한스는 아예 대놓고 소련군을 끌어왔다.

“쓰다챠! 쓰다챠! 항복! 나 항복!”

소련군은 가까이 오더니 곰발바닥 같은 손을 내밀었다. 씨익 웃는 소련군은 옆의 프리츠에게도 눈짓했다.

“어떻게 발음하는거야··· 항복!”

만슈타인은 모든 걸 다 포기하고만 싶었다. 가까스로 어느 정도 예비대를 확보하여 탈출과 후퇴를 시도해 보고자 했더니, 소련군은 다시 레닌그라드에서 적극적으로 교전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리로 가야하나, 저리로 가야하나. 하지만 사실 소련이 열어준 퇴로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르바 강을 넘어 그나마 독일에 친화적인 발트로 도망친다. 거기서부터는 항구가 있고 철도가 있어 후일을 기약할 만 하다. 여기까지 밀고 올라오면서 잃은 병사들, 헛되이 죽은 병사들의 목숨은 안타깝지만···

“내 목숨으로 사죄해야겠지.”

이미 그 쪽으로는 마음을 굳혔다. 총통을 기만한 죄, 패전한 죄, 또 무슨무슨 죄. 총통 주위의 아첨꾼 개새끼들은 온갖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울 것이다.

아마 유폐당하거나 처형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를 믿고 따른 60만 명, 아니 100만 명을 고스란히 짐승같은 소련군의 손에 가져다 바칠 수는 없었다.

밖에서는 소련군의 로켓 날아가는 소리와 포성이 들려왔다. 저들은 이미 공세를 시작했다. 이제는 반격할 차례가 돌아왔다.

“소련군에게 분단당한 북부집단군의 남쪽 부분은 이제부터 프스코프 집단군이라고 부르겠다. 현재 레닌그라드에 갇··· 주둔중인 우리는 에스토니아 집단군이다.”

만슈타인은 준비한 작전 계획을 예하 지휘관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함께 전략 수립에 참여한 참모들은 분주히 명령서를 배부하고 지도에 계획을 그려넣었다.

“고트하르트 하인리히 상급대장이 지휘하는 4군이 후위를 맡는다. 4군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레닌그라드와 일대를 사수하며 아군의 후퇴를 엄호한다.”

“……알겠습니다. 각하.”

“우리가 확보한 예비대는 홀리트 대장이 지휘한다. 홀리트 분견군은 소련군의 허술한 옆구리인 이곳, 노브고로드 방면으로 공세를 가한다. 우리는 대승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노브고로드를 실제로 점령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저들이 더 이상 아군의 퇴로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예! 각하!”

지휘관들은 다들 비장했다. ‘4군’ ‘홀리트 분견군’ 이라고 해봐야 그것은 문서상으로나 무엇으로나 실제 야전군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무엇이었다. 너무 많은 피를 레닌그라드에서 뿌린 바 모든 부대는 정규 편제를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끽해야 일개 군단 수준은 될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50만 병력 전부가 레닌그라드에서 고사당할 상황이었다. 장군들은 이를 악물었다.

“아군의 탈출은 크릭스마리네가 지원할 것이네. 지금 대서양의 상황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에야 그들도 우릴 방치하지는 못할 거야.”

짧은 한숨, 긴 탄식, 손에 얼굴을 파묻는 자들. 뭣만 하면 패배주의자, 반역자들을 처단하겠다고 설치던 SS 장교들도 이때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중얼거렸다. 1기갑군만 있었더라면···

그 말을 들은 만슈타인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1기갑군이 중부로 가지 않았더라면 9군이 통째로 포위당했겠지.”

어쩐지 뼈가 있는 한 마디. 억지 목표를 자꾸 강요한 총통이 만슈타인은 어쩐지 원망이 되었다. 처음에 총통은 그런 명령을 내려놓고는 신묘하게도 목표를 달성할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어느샌가부터 총통은 신비한 예언가에서 그저 떼를 쓰고 땡깡을 부리는 심술궃은 어린아이처럼 변해 버렸다. 대체 무엇이 그를 바꿔놓은 것인가?

“자, 시간이 없네. 각자 위치로 가서 작전을 준비하도록!”

“예! 사령관 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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