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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23화 (123/300)

# 123

123화

독일군은 레닌그라드에 비로소 발을 디뎠다. 이제 소련은 한 팔이 덫에 끼인 독일군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준비했다.

“그렇소, 대서양에 있던 전함 네 척이 아직 발트해에 있소이다.”

[후…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소련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과연….]

루즈벨트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육체적 나이는 나보다 네 살 어리지만 소아마비 때문에 생사의 고비를 넘긴 이후 건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술을 줄이고, 건강 식단과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관리하는 나와 비교하면 훨씬 나쁜 것 같았다.

또, 독재자인 나와 달리 루즈벨트는 국내 정치와 선거, 그리고 국민 여론까지 신경 써야 했다. 대통령이라지만 국민들이 내뱉는 말에 상처 입고 힘들어할 것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반면 나는? 음… 감히 ‘스탈린’에게?

“아니오, 아니오. 미국이 없었더라면 우리 소련 역시 훨씬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오.”

렌드리스가 없었더라면 아마 천만 명은 더 죽었겠지. 렌드리스를 빨리 당겨온 덕분에 소련 인민들과 군인들은 훨씬 더 잘 먹고 잘살고 잘 무장할 수 있었다. 빈약한 무장으로 원래 역사보다 강력해진 독일군에 들이박으라니….

내가 서기장의 권력으로 개조한 소련군으로도 피해는 여전히 컸다. 내 손이 닿지 않았던 미국은? 훨씬 더 아프게 당하고 있었다.

아조레스에서 두 번 격퇴당했던 미국은 전함 네 척이 레닌그라드로 돌려진 사이 세 번째 상륙전을 성공시켰다.

대서양의 중간에 있는 기지라 할 수 있는 아조레스 제도는 독일이 포르투갈로부터 강탈한 이후로 불침항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이젠 아니지만.

유보트가 설치고 루프트바페가 대서양을 제집 안방처럼 날아다니는 것은 반쯤은 아조레스 기지 덕분이었다. 미국은 항모가 진주만에서 모조리 격침 혹은 대파당했고, 섬에 활주로를 깔고 지상발진 항공대를 마음껏 사용하는 독일과 핸디캡을 안고 싸워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 어드밴티지는 미국의 손에 들어갔다.

[후… 소련이 진주만 공격 계획을 알려 주었을 때 그걸 믿었어야 했소. 월권을 저질러서라도….]

루즈벨트의 한 마디마다 깊은 후회가 담겨 있었다. 아마 밤마다 후회를 거듭할 것이다. 조금 일찍 유럽에 개입할걸, 소련이 말해 준 진주만 공격을 믿을걸!

만약 영국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개입했더라면 코앞에서 압도적인 공군력으로 독일을 두들겨 팰 수 있었을 것이다. 진주만 공격 계획을 미리 알고 대비했더라면 태평양에서 전함 몇 척 가지고 버티는 꼴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쳤다. 히틀러와 도조는 과감하게 선제공격을 했고, 미국은 가지고 있던 으뜸패를 허무하게 날려 먹었다.

“아무튼 우리가 승리할 것이오. 나는 그것만은 믿고 있소이다.”

[말씀만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물론 기술은 발전하는바 새로운 으뜸패가 생길 것이다. 아마 루즈벨트도 알면서 내 앞이니 저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

인사치레를 대충 하고 전화기를 내려놓자 통역사는 쪼르르 내 집무실에서 달려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베리야와 몰로토프가 일어나 다가왔다. 주코프도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야전에서 군을 지휘하는 중이고, 신임 총참모장이 된 바실렙스키가 둘의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준비가 되고 있는가?”

“예, 서기장 동지. 다만 아직은 시간이….”

그 정도면 충분하지. 못해도 1년 반쯤?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돈과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돈을 생각해 보면… 크흠, 어쩐지 미안해졌다.

내가 가르쳐 준 미래의 ‘구리’, 즉 플루토늄 정제 기술로 몇 달은 개발시한을 단축했다. 코룔로프가 빨리 굴라그에서 나와 로켓 개발에 매진한 덕분에 잘 하면 최초의 핵무기는 탄도 미사일에 실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함대 뽑는 데도 부족한 예산 때문에 맨해튼 프로젝트가 느려졌으면 느려졌지, 빨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즉, 결국 우리가 선보일 핵무기가 최초가 된다.

쓰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잘하고 있네. 그대로만 열심히 하도록.”

베리야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물러났다. 어쩐지 요새 내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고 직관적으로 알아채기는 했을 것이다. 방법이 없었을 뿐. 하지만 이렇게 신뢰를 재확인받은 이상 그만큼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뭐, 나라고 비장의 한 수를 안 숨겨 둔 게 아니다만…. 베리야의 아들이 뭘 하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보고받는 내 입장에서는 그의 과장된 리액션이 어떻게 돌변할지가 기대되었다.

“코룔로프 동지는 부디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하게. 대체 뭘 했길래 그렇게 사람이 수척해졌는지… 쯧쯧.”

굴라그에 있던 때보다 훨씬 비쩍 마르고 퀭해진 코룔로프가 문득 떠올라 말하자 베리야는 화들짝 놀라면서 굽신거렸다. 분명히 일과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뭐, 로켓 기술이 발전하는 데에는 별문제 없으니 괜찮으려나?

“이제 바실렙스키 동지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 파쇼 9군의 포위는 가능하겠는가? 로코솝스키 대장은 뭐라고 하던가?”

그놈의 작전명만 아니었어도 불안은 훨씬 덜하겠는데… 공세작전을 위한 기갑병력은 없지만 저들에겐 뛰어난 장군과 여전히 소련군보다 숙련도가 높은 보병진을 갖추고 있었다. 발터 모델이 어디 전차가 많아서 르제프에서 소련군을 갈아 버렸나?

“예. 로코솝스키 대장은 이제 막 2차 공세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경과 보고서를 상신하도록 명령하겠습니다.”

* * *

“돌격! 돌격이다! 으하하하하!!”

이제 병사들은 그러려니 했다. 한때 북부전선에서 종군했던 병사들이 퍼트린 미친 사단장의 전설은 그 사단장이 군사령관으로 영전함에 따라 점점 더 살이 붙고 불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허언이 아님을 로트미스트로프 휘하의 병사들은 깨달았다.

“뒈져라! 더러운 파쇼 돼지새끼들!”

검은 완장을 두르고, 군복 상의 가슴팍을 열어젖힌 채 특제 지휘장갑차에 탄 로트미스트로프는 참호에 숨어 저항하는 프랑스군의 머리 위로 유탄발사기를 텅, 텅 갈겨 댔다.

두꺼운 장갑재로 둘둘 두른 중전차도 아니고, 아예 상부가 열려 있는 장갑차였다.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옴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분노에 불타고 있었다.

“부됸늬 원수의 복수다!!!”

“우라! 우라! 복수를 위하여!”

유탄발사기를 한 손으로 발사하다 말고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무선망에다 대고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질렀다.

부됸늬 원수의 복수! 그 소리를 듣는 모든 소련군 병사들의 피가 끓었다.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 돌격했던 노원수와 같이. 이제는 젊은 로트미스트로프가 병사들의 앞에서 진두지휘했다.

“돌격! 돌격!”

이탈리아군만큼은 아니지만, 프랑스군 역시 전투의지가 높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독일군에게 전차 맛을 보며 철저하게 패배했던 프랑스군은 소련군의 기갑차량은 더더욱 두려워했다.

소련군이 열등 인종이라는 선전도, 게르만족이 아닌 프랑스인들에게는 그다지 먹히지 않았다.

“2시 방향에 백화점 3대! 장군님 조심하십시오!”

“백화점? 으핫핫하하하! *까라 그래!”

프랑스 전차 3대가 보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나타났다. B1 보병전차는 프랑스군이 현재 가지고 있는 전차들 중 가장 강력한 물건이었다.

하지만 로트미스트로프는 아랑곳 않고 탄약이 다 떨어진 유탄발사기를 한쪽으로 던져 놓고 보병들에게 기관총을 갈겼다.

파편에 스쳤는지 뺨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으나 그는 여전히 광소를 터트리며 적병의 가슴팍에 총탄을 박아넣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화점, 격파!”

“것 봐! 부됸늬 원수께서 우리들과 함께하신다! 우라!”

“우라!”

물론 부됸늬 중전차는 그런 허접한 구형 전차 정도는 가볍게 깨부술 수 있었다. 애초에 백화점이라는 멸칭이 붙은 이유가 포탑에 47mm, 차체에 75mm 포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구식 설계와 20년대식 ‘중장갑’으로는 부됸늬 중전차의 전차포 앞에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부됸늬 전차의 100mm 대전차포가 불을 뿜자 마지막 B1 ‘백화점’이 터져나갔다. 로트미스트로프는 작고한 원수의 이름을 외치며 하늘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자, 앞으로! 앞으로!”

프랑스군은 많은 것이 구식이었다. 독일한테 단 6주 만에 패배한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자동화기도 부족했고, 전차도 부족했고, 대전차 병기들도 소련 전차들의 위용을 겪어 보고 빠르게 발전시킨 독일에 비해 훨씬 구식이었다. 이런 쉬운 놈들이라니….

5근위전차군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는 멧돼지처럼 방어선을 돌파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목표지점에는 이르지 못했다. 양익에서는 언제 독일군의 파쇄 공세가 시작될지 모른다. 스몰렌스크를 장악하기 위해 주둔 중인 파시스트의 1개 야전군이 아직 닫히지 않은 포위망 속에 펄펄하게 살아 있었다.

남쪽의 8전차군과 만나 포위망을 닫으려면… 아직 50km는 더 가야 했다. 몇 겹일지 모를 프랑스군의 방어선을 뚫고.

뭐, 아무래도 좋다.

“돌겨어어어어어억!!! 저 *새끼들의 대가리를 터트려 버려!”

* * *

“…빌어먹을, 다 이쪽으로 몰려 왔구만.”

북부에서 프랑스군을 상대로 공세를 펼치는 5근위전차군에 비해 남부 공세의 선봉인 8전차군은 완강한 저항에 맞부딪혔다.

이탈리아군이 만든 방어선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본 중부집단군과 9군은 가지고 있는 예비대를 모조리 차출해 남부 방어선에 투입했다. 그 결과, 8전차군은 그동안 상대해 왔던 허접한 잡병들이 아니라 전투로 단련된 독일군 최정예들을 상대해야 했다.

정보부에서 수집한 자료에 비해 적이 너무 많았다. 죽여도 죽여도 줄지 않는 것 같은 적병 앞에서 8전차군은 점점 그 기세가 꺾여 나갔다.

마지막 예비대로 남겨 둔 야전군 직할 중전차 연대의 투입명령을 내린 8전차군 사령관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더 이상은 예비대가 없네. 이제는 뒤에서 약진해야 할 텐데….”

그동안 공세가 시작된다면 예비대가 하나도 없는 지휘관은 전투의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다. 후속하는 4충격군과 2근위전차군은 아직 80km 정도 후방에 있었다.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는 8전차군을 후속하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로트미스트로프처럼 직접 총이라도 잡고 싸워야 하나?’

빌어먹을, 그럴 깡은 없는데. 사령관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겁이 많아 장군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용맹한 전우들은 대부분 적백내전 때 죽었다. 대담하고 총명한 이들은 거의 다 숙청당했다.

이제 그처럼 고개를 숙이고 시류를 따라 산 사람들이 승진해 군단장이 되고 야전군 사령관이 되는 시대가 왔다. 서기장은 여전히 쿨리크 원수와 파블로프 대장을 숙청하고, 총애하던 흐루쇼프나 리셴코 박사까지 숙청하는 듯, 매서운 칼날을 휘둘렀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서기장의 총애를 입어 고속 승진했다. 새파랗게 어린 체르냐홉스키, 또라이 광전사 로트미스트로프 같은 이들. 하지만 군사령관의 직까지 올라온 이상 그는 보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서부전선군 사령부에 증원 요청하게. 적들이 남부에 증원을 대거 투입했다. 규모는….”

“예, 각하?”

“규모는… 2개 군단 규모. 대대적인 역습이다.”

2개 군단 규모일지, 아니면 그보다 더 작을지. 그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적군의 많은 수가 몰려나온 것은 확실했으나 어떻게 편제까지 추측하겠는가?

하지만 적의 규모를 과장하는 것이 맞다. 패배하면 좋은 변명거리가 될 것이고, 승리한다면 그의 전공이 될 것이다. 그도 공을 세워야 직위를 보전하고 승진할 것이 아닌가? 그것이 부하들에게도 좋다.

정치장교가 의미심장한 눈길로 그를 응시했지만, 사령관은 스스로의 공상에 빠져 전혀 그 시선을 자각하지 못했다.

“어서! 보고하게.”

“예! 보고하겠습니다. 사령관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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