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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21화 (121/300)

# 121

121화

부됸늬의 죽음은 독일이 예상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을 뿐.

중부전선, 북부로 차출된 4군의 빈자리를 메우는 이탈리아와 프랑스군은 부됸늬가 누군지 몰랐다. ‘소련군이 뿌리는 삐라에 있는 몽골인처럼 생긴 콧수염쟁이’가 그들이 가진 인식에 불과했다.

소련군 원수를 사살했다는 대전과를 듣고도, 그들은 그저 광활한 동유럽의 벌판을 가득 메우는 소련군에 겁먹을 뿐이었다. 형편없는 보급, 시원찮은 무기들과 개 같은 식사 사정이 이에 일조했다.

반면 소련군은 장군부터 병사까지, 복수심과 분노로 일치단결해 더러운 파시스트를 징벌하고자 했다.

“우라, 우라, 우라아아아아!!”

“으아아아악!!”

눈에 핏발이 선 소련군 하나가 참호 속에서 벌벌 떨던 이탈리아군의 가슴팍에 대검을 꽂아 넣었다. 비명을 지르던 이탈리아군의 목소리가 울컥, 울컥 터져 나오는 피에 먹혀 사그라들었다.

푸른 하늘을 가르고 몰니야, 그러니까 ‘불곰’ 비행기들이 지상을 강습했다. 500kg 폭탄이 토치카에 박혀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토치카에 막혀 진격하지 못하고 있던 소련군들은 장애물이 제거되자 다시 벌떼처럼 진격을 시작했다.

“돌격, 돌격! 파시스트를 쳐부숴라!”

병사들은 제각기 검은 완장을 하나씩 두르고 있었다. 서기장은 가능한 한 전군이 49일간 조의를 표하는 검은 완장을 찰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이 명령은 상당히 잘 지켜지고 있었다.

하급 병사들로부터 장교들까지, 이들은 어릴 적부터 군대에 온 지금까지 부됸늬 원수와 그의 전설적인 기병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사악한 지주들과 전제군주를 붉은 군대의 기병들이 무찌르고 농민에게 땅을, 노동자에게 공장을 주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군대에 온 이후, ‘원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소탈했고 병사들과 함께했다는 것을 새로이 알게 된 병사들은 부됸늬를 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파시스트들은 사악한 계략과 술수로 부됸늬를 죽였다.

서기장은 복수를 천명했고, 어머니 조국을 짓밟은 저 더러운 파시스트 군대에 대한 복수심은 많은 병사들의 가슴속에서 활활 타올랐다.

* * *

안 그래도 고향에서 머나먼 곳까지 끌려온 이탈리아 병사들은 전투의욕이 심각하게 낮았다. 몇몇 병사들은 아예 소련군을 보자마자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항복했다.

“항복! 항복!”

소련군들은 순식간에 이탈리아어를 배울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항복한다!’(Mi arrendo!) 한 마디뿐일지라도.

전투기들은 종종 삐라를 뿌렸다. 독일이나 프랑스, 스페인 진영에는 보통 악랄한 파시스트 정권의 만행들을 비난하며, 소련에 투항하여 고국을 해방시키자! 라고 되어 있었다.

이탈리아인에게는 러시아어로 항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한 삐라를 뿌렸다. 이탈리아 장교들은 군 내부에서 도는 러시아어 지식을 단속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물론 러시아어를 단속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또한, 군에 징집당해 동부전선까지 끌려온 각국 공산당이나 사회당 소속의 좌파들은 소련군을 만나면 바로 항복했다.

자신의 사상적 입장이나, ’대조국전쟁에서 소련 인민의 위대한 투쟁을 지지하며 동참하고자 한다!’를 러시아어로 말하는 것은 어려웠으나 이들에겐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Compagni avanti il gran partito Noi siamo dei lavorator. Rosso un fiore in petto c'e fiorito~”

“어? 저거….”

소련군 병사들이 총격을 멈추고 응시하자, 이탈리아인 병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더 힘차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무식한 놈도 자기네 나라 국가는 아는 법. <인터내셔널>을 들은 소련군 병사들은 서로 쳐다보더니 겨누던 총을 내리고, 손을 들고 걸어 나오는 이탈리아 병사에게 다가갔다.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무솔리니와 페탱은 국내의 불온좌익 세력으로 낙인찍힌 청년들을 강제로 입대시켰다. 국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보다는 머나먼 동부전선에서 사고를 치는 것이 낫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놈들이 소련군에 투항을 하건, 뭘 하건, 그건 독일이 신경 쓸 일이지 우리 일인가? 아마 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이력 상 ‘불온단체 활동’ 같은 것이 딱 박혀 있는 이들은 중요한 위치에 오르려야 오를 수가 없었다. 그저 말단 병사로 전선에서 총질이나 할 뿐.

억장이 터지는 것은 이렇게 야금야금 손실을 입다가 방어구역이 붕괴되어 포위당할 위기에 처한 독일군뿐이었다.

* * *

“프랑스 3군과 이탈리아 7군의 방어선이 돌파당했다고 합니다! 후퇴를….”

“멍청한 새끼들! 개만도 못한 것들! 그것들도 군인인가?”

중부집단군의 최전선은 독일 9군이 사수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스몰렌스크를 어떻게든 탈환해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할 교두보를 없애고자 했다.

반대로 독일군은 레닌그라드를 정리한 이후, 모스크바로 가기 위해선 어떻게든 스몰렌스크를 사수해야 했다. 보급망의 중심이자 소련 서부전선군을 압박하는 전진기지로서 스몰렌스크는 결코 내줄 수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북쪽 좌익의 프랑스 3군과 남쪽 우익의 이탈리아 7군은 제 몫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북부집단군으로 차출된 4군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게 다가왔다.

독일 9군 사령관 아돌프 스트라우스는 탁자를 쾅쾅 내리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후퇴 명령을 내려 달라고 상신은 했나? 여기서 그저 포위당할 수는 없지 않겠나!”

“저… 집단군 사령부에서는 후퇴는 불가능하다고….”

스트라우스는 뻐근해 오는 뒷목을 잡았다. 개새끼들.

이탈리아와 프랑스 출신의 잡병들은 슬금슬금 자기네 방어구역을 포기하고 뒤로 가고 있는데, 혼자 적진에 남겨져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구데리안 원수 같은 명장이 이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9군이 증발하고 외인부대 2개 야전군까지 붕괴하면 중부전선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린다. 구데리안이 그렇게 좋아하는 ‘기갑군’ 두 개로는 막을 수 없는.

아마 더 윗선의 눈치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단군 사령관의 윗선이라고 하면 누구인지 뻔하다. 감히 이름을 입에 담기도 어려운 ‘그분’.

스트라우스는 SS 장교들의 눈치를 쓱 보고 참모에게 말을 걸었다.

“후퇴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양익의 두 공세를 우리 혼자 깨부수란 말인가?”

“….”

한때 동부전선의 하늘을 주름잡던 루프트바페는 이제 스펙업이 되어 돌아온 소련 공군과 엎치락뒤치락 맞붙어야 했다. 공군의 정예 비행단들을 하나하나 대서양으로, 북부로 빼 먹힌 중부집단군에서는 서서히 격차가 줄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독일 정찰기들은 소련군 하늘에서 날뛸 수 없게 되었다. 아직 정보국에서는 소련 공세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1근위기병군이 부됸늬의 죽음 이후 뒤로 물러났다고 하는데도 공세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몇 개 야전군 규모는 되는 것 같았으나… 9군 사령부에서는 모두 답답해하고 있었다.

“우리 예비병력을 차출한다고 북이든 남이든, 한쪽이라도 깨부술 수 있겠나? 후… 2기갑군과 3기갑군은 대체….”

그렇게 말하면서 스트라우스도 알고 있었다. 1기갑집단은 지난겨울 소련군의 공세 앞에 중장비를 대부분 상실하고 유명무실로 전락했다. 하지만 북부 공세를 위해 재배치되며 보급의 우선순위에 놓이며 다시 살아났다.

물론 그만큼 다른 기갑군들이 지원을 덜 받은 것은 당연한 일. 북부의 4기갑과 1기갑을 위해 중부의 2, 3기갑은 각기 군단 하나씩을 차출했다.

지원 및 재편성에서도 후순위에 밀려, 북부군으로 기갑군단 하나씩 차출한 데다가 SS인지 scheisse인지… 그것들까지 전차부대를 달라고 징징거리는 바람에 중부집단군의 기갑전력은 전성기 바르바로사 작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초라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9군이 포위당할 판이다. 내가 한번 연락해 보지. 스트라우스는 참모들을 내쫓으며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 * *

“각하, 이대로는….”

젊은 참모는 말꼬리를 흐렸다. 이대로는? 이미 공세는 실패했다. 겹겹이 들어찬 소련군의 방어선을 돌파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은 사실 북부집단군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말하지 못할 뿐.

“1기갑군과 4기갑군의 장비 상태는 어떤가?”

북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는 애써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했다. 참모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만슈타인 원수는 지난해의 총통 암살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에 휘말린 이후 과도하게 정치적으로 행동했다. 주도적으로 국방군 내 반나치 인사들을 몰아내는 데 개입했고, 총통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충성을 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총통의 명령,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라’에 목을 매고 달려들었다.

“전체적 가동률은 5할 이하입니다, 각하. 더 이상의 공세작전은….”

“다시 공세를 준비하게. 소련군의 피해는 우리 이상으로 크고, 레닌그라드는 저 앞이야!”

몇 번의 화려한 전술적 기동과 섬세한 포병 운용으로 소련군은 십만 단위의 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견고한 방어선을 돌파하면서도 이 정도의 피해밖에 입지 않았다니, 사실 다른 전장이었다면 이미 승리를 가져왔을 만한 전과였다.

하지만 소련군은 달랐다. 독일 역시 십만 단위의 피해를 입었고, 그 정도면 족하다는 듯 방어선이 돌파당하면 또 방어선을 축조했다.

이제 레닌그라드까지는 50km. 그야말로 지척에 다다랐다. 총통은 지도를 보며 얼른 전진해 레닌그라드를 점령하고 ‘아돌푸스부르크’로 도시의 이름을 바꿔 달 것을 원했다.

“알겠습니다 각하!”

“그래. 핀란드군과 공세 일정을 조율해야 하니 계획의 초안이 잡히는 대로 보고하게.”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이었다. 착 가라앉은 참모들의 의욕을 북돋아 주려는 듯, 만슈타인 원수는 극비로 내려온 사항들을 몇 가지 알려 주었다.

“북방에 있던 20군이 남하할 것이네. 핀란드군과 함께! 저 빌어먹을 도시를 갈아 버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크릭스마리네의 전함들이 할 것이고. 뭐가 그리 두려운가?”

“아닙니다 각하!”

빌어먹을 도시. 북부집단군 장병들은 레닌그라드를 그렇게 불렀다. 그 도시 하나를 점령하겠다고 수십 겹의 참호선을 넘어야 했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아무튼 핀란드가 본격적으로 남하할 것이라는 고무적인 소식을 들은 참모들은 표정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소련은 크릭스마리네의 활약 덕분에 끊긴 북방 렌드리스 루트를 포기했다. 무르만스크와 동카렐리야를 순순히 내주고 그들은 쭉 후퇴해 방어선을 건설했다.

핀란드군은 그 방어선에 들이박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레닌그라드에서 대략 몇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아예 진을 치고 방어만을 고수했다. 여기까지만 얻더라도 빼앗긴 땅은 모두 찾았다는 생각인지, 그들은 북에서 레닌그라드의 숨통을 끊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제 독일군이 무려 7개 야전군이나 몰려오는바, 그들은 전리품에 욕심을 내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길 수 있네!”

원수의 독촉에 따라 독일군은 무거운 진군을 시작했다. 사실 일선 병사들도 희망 비슷한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 먼 지평선에는 끝없는 평야가 아니라 회색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마주치는 소련군 방어선은 점차 급조한 티가 나는, 덜 견고한 무엇이었고, 그들은 포위당할 것 같으면 필사의 저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련 없이 내뺐다.

정보국은 이제 소련의 전략적 예비대가 바닥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독일군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소련군 역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저들은 이제 레닌그라드를 방어하기 위해 배치할 병력이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복잡한 시가지에 다수의 병력을 배치하고 저항하려 할 것이나, 루프트바페의 폭격기들은 한 번 더 대공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시를 아예 폐허로 만들어 버릴.

저 아름다운 고도를 파괴하는 것은 어쩐지 아쉬웠으나 만슈타인은 그런 감정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다.

도시 안에 남겨져 죽고 죽이는 싸움을 거듭하다가 결국 포로가 되어 죽어갈 소련군들 역시 안타까웠으나 그런 감정도 잊기로 했다. 그의 아들은 아직도 소식이 없었고, 아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준비가 그는 되어 있었다.

비록 수백만의 소련군을 죽여야 한다 할지라도. 그는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힐 것이다. 만슈타인은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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