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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9화 (119/300)

# 119

119화

붉은 군대도 조직이고 사회인 만큼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있었다.

부됸늬 원수 동지께서 아무리 집에서 엉덩이 긁고 있는 우리 아부지같이 행동한다 해도 일군의 원수이며 소비에트 연방 영웅이셨다.

일개 사단장이 명령을 해도 산이 옮겨지고 물줄기의 흐름이 바뀌는 법인데, 하물며 원수 동지임에야?

그래서 제1근위기병군의 병사들은 가끔 고달팠다.

“으하하핫! 받아라!”

부됸늬는 가슴팍의 방탄 훈장을 휘날리며 독일군들에게 총탄을 흩뿌렸다. 그의 애마, 로지나는 앞발을 들고 히히힝! 울부짖었다.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탄약도 거의 다 떨어진 상태였던 독일 병사들은 하나둘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부됸늬 원수는 수류탄을 한 방 던지고 마지막 남은 독일군이 저항하는 참호를 향해 칼을 뽑아 들고 돌격했다.

“소비에트 연방이여 영원하라! 우라! 우라!”

“우라!! 우라!! 우라!!”

부하들은 원수 각하의 영웅적인 활약을 보고 팔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 삼창을 했다.

종군 기자들은 대포 같은 카메라를 들고 플래시를 펑펑 터트렸다.

아마 내일쯤이면 조간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실릴 것이다.

<어머니 조국을 침략한 적병을 베어 넘기시는 인민 영웅 부됸늬 동지!>

<파시스트 군대여 두려워하라! 부됸늬 원수의 기병이 간다!>

물론 베리야의 NKVD가 퍼트린 몽골 칸의 이미지를 덮기에는 약간의 부족함이 있었다.

또, 군대 역시 사회는 사회인바 항상 깊은 사정이 있는 법. 사실 방금까지 ‘격렬한 전투’를 치르던 독일군 병사들은 이미 수많은 소련군들이 포위한 채 압박해 탄약을 소모하게 만들었던 이들이었다.

총알은 다 떨어져서 원수 동지를 해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우고자 하는 독일군 병사들을 기병군의 참모들은 어떻게든 수소문했다. 그리고 그 전장으로 부됸늬 원수를 긴급히 모시고 가서 소위 말하는 ‘그림’을 만들었다.

물론 그런 것 따위 생각하지 않는 우리 인민 영웅 부됸늬 동지는 이젠 웃통을 확 까고 하늘을 향해 돌격소총을 든 채 포효할 뿐.

각종 정치질과 공작에 답답해진 늙은 기병은 그저 전장에서 싸울 수 있음이 즐거울 뿐이었다.

“우라아아아아!!”

“와아아아아!”

풍성한 콧수염이 푸들대고, 단추를 확 끌러 버린 셔츠 사이로 무성한 가슴 털이 드러났다. 야성미 넘치는 원수 동지의 포스에 병사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다음은 어딘가?”

“예! 원수 동지. 여기서 대략 4km 떨어진 곳에도 한 무리의 적병이 아직 저항하고 있다고 한데… 오늘은 이만 쉬셔도….”

“아니네! 이왕에 전장에 나온 거, 사나이답게 끝까지 가보자고! 이럇!”

막 땀을 식히려던 병사들은 의욕 넘치는 원수 동지의 뒤를 따라야 했다. 인정 넘치는 원수 동지께서 명령하시기 전까지는.

“이봐! 오늘 아침부터 날 따라왔던 동무들은 다들 쉬고 있게. 이 정도는 나이를 먹었어도 할 수 있다고! 으하하하하핫!”

아까 전보다 조금 더 열렬해지고 기분 좋은 듯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병사들은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고, 장교들은 당황해서 그들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부됸늬는 손을 내저었다.

“자네들도 알다시피, 병사는 쉬어야 진격하네. 말들도 그렇고. 이번에는 나와… 자원자들만 받겠네!”

“자원합니다! 자원!”

“저도 자원합니다!”

순식간에 사오십 명은 되는 병력들이 모였다. 다들 땀을 줄줄 흘리고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전설적인 기병대장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일생에 다시없을 영광. 그들 중 젊고 체력이 좋아 보이는 이들 스무 명을 고른 부됸늬 원수는 말에 휙 하고 올라탔다.

그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따르라! 칼을 뽑아 들고 휘두르며 외치는 그의 뒤를 병사들이 따랐다.

“우라! 우라! 우라!”

* * *

초연이 매캐했다. 로지나도 기분이 나쁜 듯 꼬리를 좌우로 연신 흔들었다. 전장에 깔린 무거운 공기는 그동안 부됸늬가 봐 온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흐음… 어쩐지 이상하군….”

기묘한 감각이 노병의 뒷목을 긁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이 감정. 그를 따라온 풋내기 병사들은 뭣도 모르고 부스럭거리는 풀숲에 대고 드르륵, 소총을 긁었다. 그러나 놀란 야생 새 몇 마리만 흐린 하늘로 날아오를 뿐.

‘독일군은 보이지 않았다. 벌써 섬멸한 것인가?’

부됸늬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그도 대강은 알았다. 기병의 시대가 갔다는 것을.

기병은 참호를 파고 방어태세를 갖춘 보병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소련 기병군에는 다수의 경전… 보병전투차, 야포, 전차까지 배치되어 있었기에 말을 탄 기병들을 데리고도 얼마든지 참호선을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고작 순수 기병 20여 명뿐. 수류탄과 신형 돌격소총으로 무장했다지만 인간의 몸은 피륙으로 되어 있다.

그동안 경멸해 왔던 쇳덩어리들이 부됸늬는 어쩐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흐음… 이거 참….”

불길하다. 그의 직감은 그런 경고를 날리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무전기도 가져오지 않아 부하들에게 연락하려면 몇 킬로미터나 달려가야 하는 판.

부됸늬는 자신의 섣부른 돌출행동을 자책했다.

‘빌어먹을… 나도 정말 늙었구만.’

솔직히, 요새 머리에 피가 올라 무모한 짓을 자주 저지르기는 했다.

서기장과 NKVD, 그리고 정치국은 붉은 군대의 최고 베테랑인 그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적백내전 시절부터 복무한 장군들은 내치고 젊은 주코프나 바실렙스키 같은 장군들을 요직에 올렸다.

그들은 이제 기병의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말 엉덩이밖에 모르는’ 부됸늬의 시대는 이미 갔다고, 그렇게 속삭이는 말들을 그는 모른 체하면서도 듣고 있었다.

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기병에 대해서는 정통했으니, 이제 몰락이 다가왔다는 사실은 모를 수가 없었다.

애써 부정하고자 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기병이 이렇게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치스러운 선전물을 찍으면서도 베리야의 방해를 받지 않고 전장에 나가려 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멋지게, 기병의 위대함을 보여 주었다고 자부했다.

한 번이라도 더,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탕!

수풀에서 기관총의 총구가 튀어나왔다. 여섯 정의 기관총이 스물한 명의 기병대를 향해 불을 뿜었다.

“으아아악!”

젊은 병사 하나가 풀썩 땅으로 쓰러졌다. 그에게서 튄 피와 살점을 뒤집어쓴 다른 병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병사들은 이런 기습에 잘 대응하지 못했다.

“로지나!”

부됸늬를 노린 기관총들은 빗나가 말을 꿰뚫고 지나갔다. 다리가 화끈했지만 그것보다는 로지나가 중요했다. 옆으로 쓰러지는 말에서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왼쪽 다리가 깔려 버렸지만 부됸늬는 그 순간에도 애마의 이름을 불렀다.

“이반, 유리! 당장 돌아가서….”

더 말하려고 해도 솟구쳐 오르는 통증 때문에 더 말할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기억한 두 젊은 병사의 이름을 외쳤다.

그래도 그들의 반응은 빨랐다.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왔던 방향을 향하는 젊은 병사들을 보며 부됸늬 원수는 이를 악물고 총을 뽑았다. 기관총이 발사되는 곳을 향해 그는 돌격소총을 발사했다.

탕! 탕! 탕!

그러나 적군이 몇 명이나 있는 것인지, 순식간에 스물한 명은 한 명으로 줄어들었다. 익숙한 Kar98 소총의 총격음이 울릴 때마다 부하들이 하나씩 쓰러졌다.

그는 절망했다.

살아서는 말과 함께해 왔다. 그리고 죽음이 그에게 온다면 말 위에서 죽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뭔가. 말을 먼저 보내야 하는 기수의 가슴은 찢어지고, 이제 한발 늦게 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위장해 있던 독일군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낄낄 웃었다. 뭐라 말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들이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데 독일어 지식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 원수 세묜 부됸늬?”

어색한 러시아어로, 독일군 하나가 말을 걸었다. 그를 둘러싼 이들은 만면에 가득 웃음을 짓고 낙마한 부됸늬를 둘러쌌다. 부됸늬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것을 뭐라고 해석했는지, 독일군들은 푸하핫 웃음을 터트렸다.

“그 콧수염만 봐도 알겠구만. 훈장하고.”

“아이고! 원수 나리 계급장부터 좀 떼고 모른 체하시지… 낄낄낄!”

“….”

프리덴탈 특공대의 최정예 대원들은 푸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그들은 독일어로 한참 대화를 했다.

“생각보다 덩치가 큰데요? 그냥 생포해서 가기에는 좀 버거울 것 같은데….”

“머리통만 있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 필요하다면 얼굴 가죽이라도 벗길까요?”

“네가 무슨… 야만인이냐? 스키타이들도 그런 짓은 안 한다.”

무슨 만담처럼 주고받던 독일군들은 대강 방침을 결정했는지, 고개들을 끄덕였다. 특공대원의 솥뚜껑만 한 손이 부됸늬의 목덜미를 더듬더니 군번줄을 찾아 뜯었다.

“에잇!”

“아이고, 어르신. 무슨 반항이….”

퍽! 특공대원은 의장용 단검을 휘두르며 반항하던 부됸늬의 뺨을 한 대 정통으로 갈겨 버렸다.

짝 하는 소리도 아니고, 퍽 하고 묵직하게 일격이 박혔다. 독일군 병사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지, 아니면 깨물어서 피가 나는지.

팔목을 비틀어 단검을 빼앗은 특공대원은 군번줄의 인식표를 뜯어내고는 가슴팍의 훈장을 하나하나 떼냈다.

“이거 금이겠지?”

“와… 그걸 또 금으로 바꿔서 팔아먹으려고?”

특공대원들은 제압당한 부됸늬를 특정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챙겼다. 군번줄과 훈장, 견장에 원수의 정모까지.

“어르신, 우리가 솔직히… 어르신을 잡아 놓고 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낄낄낄낄낄.”

“빌어먹을 파쇼의 사냥개 새끼….”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제각기 할 말만 했다. 퉤, 부러진 이빨을 뱉어 낸 부됸늬는 자기 몸을 뒤지는 특공대원을 빤히 노려보았다. 대원은 어쩐지 미안한지, 나름 부드럽게 말을 하려 했다.

죽이는 것으로 충분하지. 굳이 머리통을 들고 간다든가, 얼굴 가죽을 벗긴다든가 할 생각은 없었다.

포로로 잡으면 제일 좋겠지만 소련군 구역이니 언제 뺏길지 모르니… 죽이는 것이 제일 깔끔했다.

말의 사체 밑에서 독일군 병사들은 부됸늬를 꺼냈다. 팔이 탈구되고 다리가 부러진 부됸늬는 저항하지 못했다. 저항하려 했으나, 턱을 걷어채였을 뿐.

“자! 마지막 할 말이 있소이까?”

“….”

프리덴탈 특공대원들은 지금까지 저지른 짓은 생각하지도 않고 나름 예우를 한답시고, 땅바닥에서 구르고 훈장을 뜯어내느라 구겨진 부됸늬의 제복을 가다듬어 주었다.

양어깨를 붙들려 무릎 꿇려진 채, 뒤통수에 총을 겨눠지고 묻는 말 따위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수 동지, 유언 말입니다! 유언!”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병사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부됸늬는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예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온 병사 하나가 부됸늬의 뒤통수에 권총을 겨눈 프리덴탈 특공대원을 연신 촬영했다. 터지는 플래쉬에 둘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

“이야… 이거 진짜, 대단한데요? 한 장만 더!”

“유언 안 말할 거예요? 대장, 아무 말도 안 하는데요?”

철컥, 권총이 장전되었다. 머리에 와 닿는 싸늘한 금속의 감각에 부됸늬는 생의 마지막을 직감했다.

“…소련을 위해, 우리는 혈전을 치렀다! 승리 만세!”

“예엡. 유언 기록했습니다!”

러시아어를 하는 병사는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지막 말은 <부됸늬 행진곡>의 한 소절. 평생 동안 소련을 위해 혈전을 치러 온 노장의 유언으로는 적절했다.

* * *

“일단 아조레스를 수비하기 위해 정박해야 할 전함들이 다 레닌그라드를 때려 부수는데 동원되었으니 대서양 방면의 방비에 대거 애로사항이 발생했을 거요. 저들이 다시 돌아가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테니… 미국인들에게 연락을 해 두시오.”

“예! 서기장 동지.”

“음, 나머지는 코네프 장군이 잘 하겠지.”

대서양 한가운데, 천혜의 해양기지인 아조레스를 차지하기 위해 미국이 얼마나 피를 흘렸던가!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양면전쟁을 치르며 그들은 규모만 작을 뿐, 처절함에 있어서 동부전선에 못지않은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미국의 추축 폭격기지가 되었어야 할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는 영국이 함락당하면서 가능한 옵션이 아니게 되었다. 영국이나 노르웨이에 주둔한 독일군 육상발진 공격기들을 도무지 감당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래서 미국은 차선책으로 아조레스를 채택했다. 이제 레닌그라드를 때려 부순 대가로 독일은 대서양을 내주어야 하리라.

“미국과 더욱 긴밀히 협조해야 하네. 장거리 대형 폭격기 개발은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반드시 빠르게 폭격기를 개발하겠습니다!”

B―29 같은 대형 전략폭격기를 개발할 경우 아조레스에서 베를린이나 라인강 주변, 루르 지역의 공업지대를 폭격할 수 있다. 또, 소련 영토에서도 독일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

“그래. 그래. 아주 좋소. 그나저나… 북부는 그렇다 치고, 중부는 어찌 되어가고 있소?”

“예! 부됸늬 원수가 진두지휘하는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가 매우 높습니다. 스몰렌스크의 파쇼 9군은 아직 포위를 예측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하… 역시 부됸늬 원수로군!”

까악, 까악, 까악. 갑자기 밖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에 까마귀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불길하게… 훠이! 훠이!”

창문을 쾅쾅 두드리자 까마귀들은 몇 번 더 까악거리더니 날아가 버렸다. 하늘은 이상하게 흐려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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