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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7화 (117/300)

# 117

117화

“레닌그라드의 대피는 예정대로 전개되었는가?”

“예!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그 아름다운 도시가 파괴되는 것은 안타깝지만….”

공장의 기계들은 뽑아서 옮길 수 있지만, 건물 째로 옮겨 버릴 수는 없지 않나? 그 말이 생략되어 있었다.

레닌그라드와 일대 도시군에 배치된 공장 설비들은 이미 다 철거되어 야로슬라블이나 고르키, 우랄산맥에 위치한 공업도시들로 옮겨졌다.

그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방어선에서 필사의 저항을 하던 소련 병사들은 이제 최대한 전투력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전투 방식을 전환했다.

“후퇴한다! 작전상 후퇴다! 집결지로 후퇴하라!”

북부에는 독일이 가진 비대칭 전력이 투입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크릭스마리네의 전함들과 루프트바페를 대량으로 투입해 도시와 거기 안에 있는 병력째로 때려 부숴버리겠다는 무식한 전략.

이미 프스코프와 스몰렌스크에서 화끈한 맛을 본 소련은 레닌그라드를 끼고 농성전을 벌이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아무리 단단하게 방어선을 축조하려 해도, 불지옥에 휩쓸려 건물과 함께 폐허가 될 수 있었으니.

대신, 더 크고 맛있는 먹잇감을 노리기로 했다.

“스몰렌스크에 주둔한 적군은 전력이 다수 차출된 바람에 포위망이 완성된다면 이를 자력으로 돌파할 여력이 부족합니다. 저희는 지금 마지막 한 대의 전차까지 돌파에 활용하여 저들을 스몰렌스크에 가둘 것입니다!”

저들이 노리던 레닌그라드는 이제 깡통이 되었다. 안에 함정을 숨겨 둔.

시가전 훈련을 받고 시가전에 필요한 무기로 무장한 수십만 병력이 폐허로 다시 들어가 독일군의 발목을 꽉 물어 버릴 덫이 될 것이다.

독일의 주력군이 레닌그라드에서 지옥 같은 시가전을 치르는 동안, 소련군은 중부집단군을 박살 내고 진군할 것이다.

“어머니 조국의 이름을 걸고, 단 한 놈도 돌려보내지 않는다!”

* * *

“공습이다! 공습이다!”

독일군 항공기가 벌떼처럼 나타나 하늘을 쭉 메웠다. 막대한 수로 적을 압살하는 것이 장기였던 소련군이 그 엄청난 물량에 겁을 먹을 정도로.

지상의 대공포가 불을 뿜었지만 흠집조차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투기들은 지상의 대공진지들을 덮쳤다.

“으아아앗!!”

대공사수들은 하나하나 기관총에 찢겨 죽었다. 마지막 기관포 진지의 사수까지 두 대의 전투기들을 격추시키며 전사한 끝에, 하늘에는 길이 만들어졌다.

전투기들이 만들어 준 이 길로 폭격기들이 돌입했다. 날아오르면서 휘청거렸을 정도로 대량의 항공폭탄을 적재한 폭격기들은 하나하나 폭탄을 흩뿌렸다.

마치 비가 내리듯, 폭탄이 지상에 쏟아졌다.

레닌그라드는 불타올랐다.

고색창연한 석조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콘크리트 건물들은 박살 나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떨어지며 옆의 건물마저 박살 냈다. 목조건물들은 활활 불타며 숯검정이 되었다.

화염의 폭풍이 몰아치며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포효하는 맹수처럼, 허공에서 불꽃이 춤췄다.

“다 때려 부숴라! 으하하하하하하핫!”

리히트호펜의 광기에 찬 목소리가 무전망에서 터졌다. 그 계급을 달고서도 꼭 직접 레닌그라드를 때려 부수겠다고 직접 조종간을 잡은 그는 비행단에 명령을 전달했다. 이제 폭탄을 모조리 다 퍼붓고 나서 기지로 귀환해야 한다고 진언하는 단장에게 그는 외쳤다.

“안 돼! 안 돼! 이 광경을 놔두고 어떻게 가라는 거야!”

“각하….”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도시 위에 폭격기들은 몇 번이나 왕복하며 폭탄을 쏟아부었다. 건물들이 형체를 잃을 때쯤 새로운 공격이 시작됐다.

쾅! 쾅! 쾅!

네 척의 전함과 여섯 척의 순양함이 주포를 일제히 발사했다. 항공폭탄이 휩쓸고 간 자리 위에 화약으로 가득 찬 포탄이 작렬했다.

남아 있던 건물들마저 모조리 허물어 버리겠다는 기세로 포탄은 계속 떨어졌다. 800kg의 포탄, 수십 문의 주포, 그리고 분당 2발의 발사속도. 수십 대의 폭격기가 쏟아부을 폭약을 비스마르크와 전함들은 몇십 분만에 레닌그라드 위에 끼얹었다.

레닌그라드에 단 한 채의 건물도 서 있게 놔두지 않겠다! 그들은 작정하고 도시를 파괴했다.

저 도시, 빨갱이 괴수의 이름이 붙은 도시의 이름을 우리 총통의 아름다운 존함이 붙은 도시로 다시 재건하겠다.

그러니 때려 부숴라, 모조리 죽여라! 파괴하라!

불타오르는 시가지는 수 km 밖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밤이 될 때까지, 도시는 활활 찬연하게도 불타올랐다. 병사들은 감탄을 하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이제 저 불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저 속에서도 살아남은 소련군을 소탕해야 한다는 것은 아직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저 속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그렇게 많을까? 설마 저것들도 사람인데….’

소련군은 방어선을 버리고 도망쳤다. 가족의 완전한 면책과 훈장 수훈자 대우를 약속받은 형벌부대원들만이 기관총에 몸을 묶고 진지를 지켰다.

물론 그 진지를 점령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타타타타타타 투타타타타 쾅!

고개를 숙이고 전진하던 병사 하나가 산산조각이 났다. 무식하게도 강력한 저런 지뢰를 저 정도 감도로 박아 놓다니. 주위에서 지뢰 파편과 피를 뒤집어쓴 병사들은 땅바닥을 굴렀다.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의무병이 달려와 응급처치를 시도했으나, 날카로운 파편을 온몸에 잔뜩 박고 있는 부상자를 쉬이 처치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몇 명의 병사들이 들것을 들고 와 그들을 후송했다.

죽은 자 한 명. 중상자 서너 명. 그들을 후송해 가는 병력 10명. 그리고 사기가 잔뜩 떨어진 병사들 수십.

대체 소련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몇몇은 생각했다. 결국 피투성이가 된 참호 안에 축 늘어진 형벌부대원들을 보며, 그들은 의아하게 아스라이 멀리 떨어진 저 레닌그라드를 응시했다.

정규병력들은 다 어디로 갔지? 레닌그라드로? 아니면 도망쳤나?

지금까지 소련군은 결사적으로 저항했다. 물론 결사적이라는 것이 항상 죽음을 뜻하지는 않았다. 죽기 직전까지 싸우다 마지막 순간에 도망칠 뿐. 그러나 지금 저들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형벌부대만을 최후 방어선에 남겨두었다.

장교들은 일선 병사들의 불길함을 함께 몸으로 느꼈다.

“각하,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로는….”

“지금 그게 중요한가? 총통 각하께서는 반드시 다음 달까지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라고 명령하셨네!”

그러나 만슈타인은 철저히 일선의 보고를 무시하고 레닌그라드의 점령을 명령했다.

부족한 철도 수송용량에도 불구하고 사령부는 북부집단군에 시가전을 위한 예비병력을 투입해 주었다. 벌써 신편 4개 사단, 6만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레닌그라드 공방전만을 위해 동유럽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

“하우서 장군, 뭔가 불편한 게 있으십니까?”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만슈타인은 그렇게 물었다. 총통의 총애를 받는 이들에게 만슈타인은 지극히 온화하고 친절했다. 그가 딱히 부하들에게 엄격하거나 딱딱한 이는 아니었지만 유독.

물론 상대는 하우서였다. 신편 SS 기갑부대들을 배속받아 북부집단군의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이 된 1기갑집단의 사령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퇴직해 계급은 빠르게 출세한 만슈타인보다 낮았으나 군력만큼은 전군에서 비할 자가 없었다.

그런 그가 어쩐지 언짢은 표정으로 전황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만슈타인은 어딘지 조급한 것 같았다.

“중부집단군이 위험합니다. 레닌그라드를 우리가 가져가더라도 중부집단군의 주력이 궤멸당한다면….”

하우서는 손끝으로 9군의 양익에서 집결하는 소련군 대부대들을 짚어냈다. 돌파당한 야전군들까지 3개 야전군이 무너지면? 차분한 그의 눈은 만슈타인에게 그렇게 묻는 것 같았다.

“이미 이쪽에 배치된 병력을 돌리기에는 철도 용량이 부족합니다. 여기서 저쪽까지 행군을 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도 아니지요. 중부집단군은 도시를 사수할 뿐인데….”

“그렇다면 만슈타인 원수, 혹시 1기갑집단이 중부로 남하하여 지원하여도 좋겠습니까? 레닌그라드를 청소하는 데에는 기갑부대가 필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계급상 상급자를 대하는 만큼 하우서는 공손했지만 만슈타인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소련군이 후퇴했다 하여도 언제 공세가 다시 시작될지 모르며, 그때 저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분쇄하기 위해 기갑군이 필요하다… 는 사실 핑계였다.

그는 두려웠다. 소련군이 어디 있는지, 무슨 의도인지 전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중부가 주공인가? 북부 방어전이 주력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카르파티아산맥을 넘어 남부에?

소련이 언제 공세를 펼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한 명의 전력이라도 더 가지고 있는 것이 낫다. 하지만 이미 사령부를 움직여 가용한 모든 지원을 닥닥 긁어온바, 그는 차마 하우서를 말릴 수는 없었다.

“뜻대로 하시지요. 제가 가능한 권한 내에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감사의 뜻으로 하우서는 겸손히 고개를 숙였다. 계급 낮은 선배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만슈타인은 어딘가 가슴 한편이 석연찮았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총통의 서슬 퍼런 명령에 불복할 자는 전군에 손에 꼽을 만치 적었다.

‘나, 구데리안 원수, 모델 원수… 롬멜?’

롬멜 원수는 총통에게 가장 총애받은 장군이었으나 반역 음모 가담 혐의로 유폐되었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그가 자살을 강요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이상은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끽해야 해군의 총아 칼 되니츠와 귄터 뤼첸스 정도? 그렇게 다섯 명. 총통에게 감히 직언할 수 있는 이였다. 그리고 만슈타인은 그마저도 포기했다.

“118사단과 36사단을 네바강을 건너 도하시킨다. 바로 내일이니 공세에 만전을 기하도록!”

“예! 각하!”

해군 육전대, 독일 20군과 핀란드 카렐리야 야전군, 그리고 만슈타인 본인의 북부집단군까지.

네 개 집단이 각자 상륙대를 차출하여 화마가 사그라질 레닌그라드로 진입할 것이다. 가능한 한 시간을 맞추어 돌입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조율이 필요했다.

레닌그라드는 도시를 끼고 거대한 네바강이 흘러 시를 남북으로 분할했다. 그리고 레닌그라드 남부에는 위성도시들이 위치한바, 남쪽에서 진군하는 북부집단군은 본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더욱 먼 길을 진군해야 했다.

심지어 강이라는 장애물 역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안에 살아남아 있는 소련군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 폭격과 포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면 보통 독한 악바리들이 아니리라.

쾅! 콰쾅, 콰콰쾅!

“아, 포격이 시작되었군.”

이전의 포격이 도시를 때려 부수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진군로를 개척하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무너진 건물로 온통 폐허가 된 도시는 방어자에게 지극히 유리한 전장이었다.

돌입로가 제한되는바 공격자는 반드시 한정된 길만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공격 중 방어자의 집중포화가 돌입로에 떨어진다면 막대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지금의 공격은 저들의 반격을 유도하고, 이후 저항능력을 거세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다.

포성을 감상하듯 의자에 기댄 만슈타인에게 젊은 참모 하나가 말을 걸었다.

“저… 각하? SS 방역대에서 군수물자 이용에 관해 각하의 인가를 요청하였습니다.”

“뭐? SS 방역… 아.”

독일군은 수송을 위해 수만 필의 말을 운용했다. 그리고 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염병이나 이, 벼룩 등의 기생충을 방제하기 위한 방역대가 있었다.

물론 그 방역대는 국방군 소속이었다. SS는 별도의 보급계통으로 인해 발생할 비효율을 이유로 국방군에게서 보급을 받고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방역대를 가지고 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일종의… 은어였다. SS 소속 방역대는 국방군 내 방역대와 비슷한 물자를 사용했고, 그것을 이유로 ‘방역대’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물론 이는 기밀사항으로 만슈타인 수준의 고급 장교들이라면 아는 내용이었지만 저 젊은 대위 같은 경우에는 모를 것이다.

“음, 필요한 것은 모두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게. 전염병은… 막아야지.”

“예! 각하.”

전염병을 막는다는 측면에서나, 그러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나. 둘은 상당히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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