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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5화 (115/300)

# 115

115화

마침내 독일군의 육중한 진군이 시작되었다. 갈망의 도시 레닌그라드를 향해 북부집단군은 전진하기 시작했다.

반드시 레닌그라드를 우리가 점령해야 한다! 만슈타인 원수는 전군에 엄명을 내렸다. 이미 한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엮인 그는 총통의 총애를 회복하기 위해 히스테릭하게 부하들을 닦달했다.

“공세를 시작하라!”

소련군의 최일선 전초기지에 설치된 기관총들이 불을 뿜었다. 우거진 숲과 빽빽한 관목들 사이에 숨겨진 수십 개의 진지들에서 일제히 사격이 시작되었다.

투타타타 타타타타!!

선두에 서 있던 병사들은 하나둘씩 허물어졌다. 나머지 병사들은 십자포화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납작 엎드려 전진했다.

소련군이 독일군의 전차전을 배워 온 것처럼, 독일군 역시 소련군의 박격포 운용을 배워 왔다. 일선 병사들이 포복 전진하는 동안, 적 진지의 좌표를 산출한 박격포병들은 한 발씩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박격포탄이 떨어진 전초기지는 침묵했다.

이미 사전포격이 지뢰와 철조망을 어느 정도 청소한 바 독일 보병들은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전진할 수 있었다.

땅은 곳곳이 패여 있었지만 한 발짝 떼기도 힘든 진창은 아니었다. 군장과 기관총을 둘러멘 병사들은 구덩이에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조심 걸었다.

지표가 어느 정도 굳어 있기는 했지만 포격이 떨어진 구덩이에는 흙탕물이 찰박찰박할 정도로 고여 있었다. 습한 땅에서 배어나온 것인가? 아무튼 그곳에 얼굴을 박고 싶어 하는 이는 없었다.

익숙한 사이렌이 울리고 하늘을 비행기가 가로질렀다.

빼애애애액 끼에에에에엑!

“슈투카다! 슈투카!”

작은 탄성들이 병사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강철의 맹금들은 소련군의 참호를 지원하는 직사포대를 덮쳤다.

쾅! 폭음이 지나가자 남은 것은 화염과 연기를 꾸역꾸역 토해 놓는 잔해들. 휙 하니 날아온 슈투카들은 다시 휙 하니 날아가 버렸다. 병사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소련군 기관총들은 종종 하늘을 겨누고 탄약을 흩뿌렸으나 별 성과는 없었다. 상공을 엄호할 전투기가 없는 한, 지상에 배치된 경기관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터져나갈 뿐.

한 곳, 한 곳. 구축해 두었던 특화점들이 제압당하고, 밤새 공들여 깐 철조망들은 사전포격에 의해 걸레짝이 되었다. 병사들은 제각기 지급받은 총기를 움켜쥐었다.

참호에 온 몸을 숨긴 채 머리만 내밀고 기관총과 신형 소총을 긁어 대는 소련군 병사들은 하나하나 제거당했다. 박격포, 공습, 혹은 눈먼 소총탄이나 수류탄에. 살아남은 자들은 곧 전우들을 뒤따랐다.

상부에서는 단호한 명령이 내려졌다.

‘포로는 잡지 마라’

병사들은 그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소련군이 머리에 뿔이 돋은 악마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다고 전우를 기관총탄에 갈린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린 빌어먹을 운터멘쉬를 살려 두고자 하는 이 역시 없었다.

“죽어! 개새끼야, 죽어!”

“흐억… 억, 억….”

야삽이, 대검이 소련군 병사의 가슴팍이나 목덜미에 파고들었다.

뜨뜻미지근한 피가 뿜어져 나와 군복을 적셨지만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적절할까. 바로 다음 순간에 함께 있던 소련 병사들에게 반격당해 사살당하는 이들은 군복을 빠는 문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죽어! 죽어!”

“…그놈, 아마 죽었을 거야.”

한 병사는 트렌치 나이프로 소련군 병사의 얼굴에 몇 번이고 칼질을 꽂아 넣었다. 옆의 병사가 제지하자 그제서야 그것이 소련군 병사가 아니라 병사였던 시체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잡고 있던 멱살을 뿌리친 그는 시체가 입고 있는 군복에 트렌치 나이프를 닦았다.

탕! 그를 제지하던 병사는 참호에서 올라서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무너진 병사는 축축한 참호 속에 처박혔다.

방금까지 그가 말리던 이등병은 함성을 지르며 참호를 박차고 돌격했다.

“지크 하일! 독일 만ㅅ…!”

펑!

지뢰가 터지며 그의 오른 다리가 산산이 부서져 붉은 피보라를 만들었다. 흙바닥에 넘어져 어머니를 찾으며 버르적거리는 것도 잠시. 곧 마지막 버둥거림이 멈추었다.

전장의 대지는 마음껏 피를 탐닉했다. 독일인과 소련인의 것을 가리지 않고 끝도 없이 젊은 피는 무익하게 흙바닥에 쏟아졌다. 피로 피를 씻는 혈전이 계속되며, 소련군의 참호는 하나하나 회색 물결에 휩쓸렸다.

* * *

독일군은 오래간만에 전장에서의 수적 우세를 즐겨볼 수 있었다.

지금 이 전장에서만큼은 그들이 수적으로 우세한 것 같았다. 보통 소련군은 이렇게 참호선을 돌파할 쯤 되면 예비 병력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전장에 남은 것은 참호 속에서 죽음을 도외시하고 마지막 총탄을 쏴 갈기는 몇몇 기관총 사수들뿐.

아스라이 먼 곳에서 묵직한 포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포격이다! 숨어!”

선임하사가 외치자 병사들은 개미 떼처럼 소련군이 파둔 참호망 사이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불운한 몇몇 병사들이 몸을 던진 곳에는 아직 끈적한 피를 흘리는 시체들이 그들을 반기고 있었다. 살아 있었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품었는지는 모르나, 이제는 그저 시신일 뿐.

병사들은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떨어질 포격에 대비해 진창 속에서 머리를 숙였다.

“으으으으….”

쉘 쇼크. 이 명칭은 일개 말단 병사들의 머리에까지도 쿡쿡 박혀 있었다.

‘포탄이 터지는 큰 소리를 하도 많이 듣다 보면 미쳐 버린다더라.’

막사에서 병사들은 그렇게 소리 죽여 이야기하곤 했다. 군의관은 소리도 충격이기에 폭음이 뇌를… 어쩌구 하는 어려운 말로 설명했다.

하지만 병사들에겐 좀 더 직관적인 무엇으로 알려져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총통만세!!! 아아아아아!!”

“빌어먹을, 한스!”

미쳐 버린다, 정신이 나간다.

아직 소련군 포격은 끝나지 않았다. 포탄이 비 오듯 떨어지는 참호와 참호 사이 무인지대로 정신이 나가 버린 병사 하나가 돌격했다.

고폭탄의 파편이 눈보라처럼 불운한 한스를 덮쳤다. 그 자리에는 이제 붉은 물감을 찰흙에 비벼 적당히 내던진 전위 예술작품과 비슷한 무언가만이 남았다.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병사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쉘 쇼크는 그런 것이었다. 멀쩡하던 놈이 서서히 맛이 가더니, 제 골통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던가. 전장에 가지 않겠다고 전우에게 총질을 하거나, 아니면 방금처럼 저렇게 뛰어나가 버리거나.

한때 전우였던 것을 지나 병사들은 진격했다.

“돌격! 돌격 앞으로!”

장교의 목소리는 어쩐지 맥이 빠져 있었다. 발터 권총을 두 발, 하늘로 땅, 땅 쏘자 병사들은 흘끗 그를 보는 듯 하면서도 관심은 두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한 걸음씩 앞으로 옮길 뿐. 그 어떤 것도 그들을 자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부됸늬다!”

“뭐?!”

저만치 앞에서 묵직한 엔진의 굉음이 들려 왔다.

“우라! 우라!”

희미하게 소련군의 전투 함성도 함께. 고목 같이 찌푸린 채 굳어 있는 병사들의 얼굴은 색이 바뀌었다. 누군가는 하얗게, 누군가는 시커멓게.

“부됸늬 전차다! 부됸늬가 왔다!”

“제기랄··· 판처파우스트 사수! 사수!”

병사들은 민첩하게 포탄 구덩이와 소련군이 파 둔 참호 사이로 몸을 숨겼다. 따당, 따당,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46.5톤짜리 강철의 준마를 겨우 소총탄 따위로 막을 수는 없었다.

“끼얏호!”

“휘릭, 휘릭, 끼요오오옷!”

“우라, 우라!”

쾅! 쾅! 중전차의 거대한 포가 화염을 뿜었다. 그 사이에 섞여 들려오는 기괴한 전투 함성들. 소련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보병소대 따위에도 몇 정씩 주어지는 경기관총이 아니라 진짜배기 중기관총의 총성은 흘려 들어도 알아볼 수 있었다. 트럭과 장갑차에 실린 박격포도 불을 뿜었다. 본격적인 기갑차량을 상대할 방법이 마땅찮은 보병들은 그저 벌벌 떨었다.

“뒤에 조심해! 간다!”

소련군의 로켓포를 보고 따라 만든 신병기, 판처파우스트를 든 용감한 병사 하나는 벌써 수백 미터 거리까지 접근한 부됸늬 전차를 겨냥했다. 기관총탄이 날아드는 와중에도 그는 전차를 겨누고 판처파우스트를 발사했다.

“와아아아아!!”

“만세! 만세! 돌격하라!”

연기와 화염을 뿜으며 날아간 판처파우스트는 소련군의 전차에 정확히 명중했다. 곧, 전차는 정지했고 승무원들은 허우적거리며 탈출했다.

이 작은 막대기 하나만으로도 저 거대하고 강력한 전차를 상대할 수 있다! 물론 우리 전차 역시 소련군의 로켓포 한 발에도 폭발할 수 있지만, 알보병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몇 발은 튕겨나가기도 했고, 몇 발은 전차의 장갑을 관통했다. 폭음과 발사화염, 연기로 인해 판처파우스트를 발사한 병사들은 기관총의 집중 포화를 맞고 곧 사망했지만 독일군 병사들의 사기는 전차가 나타난 직후보다는 올라 있었다.

“공격!”

젊은 중위 하나가 돌격을 외치고는 멈춰선 전차에 올라섰다. 기관총을 잡고 미친놈처럼 그는 고함을 쳤다. 공격! 공격!

그의 함성에 맞추어 슈투카가 다시 날아왔다. 그 끔찍한 나팔 소리를 내며. 소련군에게는 끔찍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독일군에게는 구세주가 부는 구원의 나팔과도 같았다.

슈투카들은 이번에는 소련군 기갑부대를 습격했다.

“개새끼들아아아!”

전차의 대공기관총들이나, 지금까지 불운한 독일군을 향해 불을 뿜던 대공장갑차들이 일제히 총구를 슈투카를 향해 돌렸다.

한 병사가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기관포의 방향을 후욱 하고 돌리자 조준선 안에 정확히 슈투카가 들어왔다. 그가 숨을 멈추는 순간에도 수십 발의 기관총탄이 발사되었다.

“잡았다!”

불똥이 튀며 급강하한 폭격기가 기우뚱거렸다. 소련군 전차를 향해 위에서 내리꽂히다가, 대공기관총에 날개가 걸레짝이 된 슈투카는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는 몇 초 간에도 팽그르르 돌았다. 피와 쇠가 튀고 전차와 비행기가 격돌했다.

* * *

겹겹이 쌓인 방어선에 독일군의 공세는 대부분 흡수되었다. 일부 정예 부대들, 용맹한 부대들이 소련군의 참호선을 돌파해 목표 지점까지 진군하는 데는 성공했다. 옆에 있어야 할 다른 부대들이 뒤로 처지는 바람에 다시 후퇴해야 했을 뿐.

막대한 사상자를 내면서도 진군해 온 독일군은 소련군의 역습에 한 방 크게 얻어맞았다.

“개 같네, 이거. 아군 전차들은 어디 있는 거야?”

부됸늬 중전차를 앞세운 소련군의 역습에 대부분의 독일군은 물러서야 했다. 수천 명의 피를 흘려 가며 점령한 참호를 그저 내주고서.

슈투카 지원은 실컷 받았지만, 정작 전차를 투입해 잡아야 할 전차 앞에서는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 ‘전장의 꽃’이라는 전차부대를 모조리 어디론가 끌고 가고, 윗대가리들이 던져 준 것은 쬐깐한 판처파우스트뿐. 제법 효과가 있어 부됸늬 전차도 잡아내기는 했지만….

‘대체 어디에 있지?’

통신장교들과 참모들이 종합하여 올리는 보고를 듣던 만슈타인은 관자놀이를 매만졌다.

[공세를 가했던 지점에서 소련군의 역습을 받아 패퇴 중. 적의 신형 전투기와 공중전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피해가 큼. 증원이 없다면 현재 위치를 더 이상 사수할 수 없음.]

전투가 개시된 지는 이미 한참이 지났다. 전선에서 올라오는 보고들을 들으며 반개한 눈으로 때를 기다리던 만슈타인은 그제서야 결정을 내렸는지, 앙다물었던 입술을 떼었다.

“두 개 기갑군을 이제 투입한다.”

“!!!”

부정적인 보고에 한껏 긴장해 있던 참모들이 드디어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낫질 작전’의 만슈타인이 또 한 번의 낫질을 선보이려 등장했다.

물론, 소련군은 이전의 그 풀숲더미 같은 무엇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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