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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4화 (114/300)

# 114

114화

프리퍄티 습지로 분리되어 있는 남부를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면, 북부와 중부에서 벌어지는 접전은 권투처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왼팔은 북부, 오른팔은 중부집단군이라고 하자. 오른팔이 노리는 목표물, 모스크바로 가는 길이 너무 험난하다는 것을 깨달은 저들은 상대적으로 가깝고 먹음직스럽기는 매한가지인 레닌그라드를 선택했다.

“비유하자면, 오른쪽 방어가 튼튼하기에 왼손으로 강펀치를 날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놈들은 어느 손으로 펀치를 날릴지 이미 다 알려 준 것이 아닌가?”

“바로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총참모장 바실렙스키는 간만에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소련은 작년과 같은 대대적인 전략적 기습을 피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독일의 공세 방향을 살폈다.

똥칠 작전과 장님 작전에 제대로 얻어맞은 독일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온갖 정보들을 질질 흘리고 다녔다.

5월, 공세가 시작되기 전 이미 소련군이 겹겹이 방어선을 축조할 수 있을 정도로.

“170만의 아군 병사들이 전 구간을 요새화하고 적의 공세에 대항할 것입니다. 저들은 결코 이 구간을 돌파할 수 없습니다!”

독일군 100만에 대항하는 소련군 병사들은 170만. 개전 후 1년 동안 생사를 가르는 전장에서 살아남아 베테랑이 된 이들이었다. 이들의 지휘관이 된 코네프는 큰 소리로 호언장담했다.

여기에 4천 대의 전차와 장갑차, 2만 대의 야포까지. 독일군이 숙련도와 정교한 전술적 운용을 통해 우리를 압도하고자 한다면 일단 저 막대한 규모의 물량부터 제압해야 할 것이었다.

우리의 계획은 간단했다. 겹겹이 쌓은 방어선에 독일의 초기 공세가 돈좌된다면, 기동예비대인 세 개 전차군을 투입해서 공세 역량을 파쇄해 버리는 것.

레닌그라드를 저들이 감히 욕심낼 수 없도록, 아예 저들의 창끝인 기갑군을 끝장내 버리고자 했다.

나치들은 이제 어머니 조국의 대지에 발을 들인 것을 후회할 것이다.

“이런 우리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서는 전 전면에 걸친 기만작전이 필요하오.”

41년 동계 공세의 성공에 고무된 실제 역사의 스탈린은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전 전선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광대한 소련의 영토에 빠져, 동장군에게 호되게 큰코다친 독일군은 어찌 보면 만만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야심차게 시작한 공세는 중부에서는 발터 모델의 르제프 고기분쇄기에 갈려 버렸다. 남부에서는 흑해함대의 모항인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을 상실하고, 또 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 깨져 버렸고.

이렇게 대판 깨진 소련군은 어마 뜨거라를 외치며 독일군이 노릴 거라고 생각한 모스크바 전면에 방어를 굳히는 데 집중한다.

물론 독일군의 목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모스크바가 아니라 석유 산지인 남부의 카프카스. 이런 두 번의 실수를 기회로 삼아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나머지 우크라이나 지역을 석권하고 카프카스의 관문인 스탈린그라드로 진군했다.

42년 하계에 소련이 패배한 이유는 이렇게 두 가지 실수를 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예, 서기장 동지. 각 전선군별로 야전군급 공세를 통해 아군의 전략 목표를 숨기는 기만작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주 좋네.”

가장 큰 규모의 기만작전은 바로 루마니아, 유고 파르티잔들과 함께하는 남부의 기만작전이었다.

“호르티 미클로시는 아마 지금쯤 애가 타고 있을 걸? 으하하하하!”

유고 파르티잔들이 2선급 장비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수십만. 또 루마니아군이 아무리 약체라 해도 50만. 여기에 41년 작년 주공으로 발칸을 정복한 ―사실 정예들은 다 북부로 갔지만― 남부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이 120만.

이 병력이 어디로 쏠리냐에 따라 추축국의 본토를 노릴 수 있으니 그 앞에 서 있는 헝가리는 덜덜 떨 수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헝가리는 지금 포르투갈을 거쳐 미국을 통해 저희에게 협상을 타진해오고 있습니다만….”

“굳이 그걸 받아 줄 필요가 있나?”

우리의 동맹국인 루마니아에서 추축국의 ‘본토’로 가려면 일단 크게 두 가지 경로가 있다.

서쪽으로 가면 독일과 이탈리아가 갈라먹은 유고슬라비아가 나온다. 다뉴브강만 건너면 바로 반대편에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가 나오고 괴뢰국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까지 아무런 자연 방어선이 없다.

그뿐인가? 이쪽으로 파고 들어갈 경우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슬로바키아 ―지금은 모라바 보호령이지만― 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까지. 유수의 대도시들이 다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독일의 ‘부드러운 아랫배’가 정면에 노출되는 것이다.

또 북쪽으로 카르파티아를 넘으면 유고가 아니라 헝가리부터 치고 마찬가지로 독일의 아랫배를 후벼 파 줄 수 있다.

이러니 헝가리의 독재자, 호르티 미클로시가 애가 안 탈 리가?

아마 히틀러의 결정 ―레닌그라드를 공격한다!― 를 두고 뒷목을 잡으며 제발 우리부터 지켜달라고 하겠지.

여기에 소련군이 유고 파르티잔, 루마니아군을 끌고 산맥을 넘냐 마냐 깔짝대면….

“헝가리, 크로아티아를 방어하기 위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게 되겠군요.”

“바로 그것일세!”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한 독일은 동맹국들을 지키기 위해서 또 다시 인력을 할애하게 될 것이다. 지금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을 상대하는 데만 일개 야전군, 30만에 가까운 병력을 박아 두었는데… 그 몇 배가 되는 병력이 넘어온다면?

루마니아를 점령한 이유는 간단하다. 소련과 협력할 마음이 가득한 미하이 국왕도 있었고, 추축국의 기름을 담당하는 플로에스티 유전도 있었고, 50만에 달하는 대병력을 차출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헝가리는 끽해야… 20만? 30만?

동수의 독일군보다 훨씬 덜 쓸모 있는 헝가리군 30만 명을 전선에 참여시키기 위해 독일군 수십만을 산맥에 박아 놓게 강요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전력은 중요하지 않네. 저들이 우리를 얼마나 강력하다고 생각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여차하면 넘어가서 부다페스트를 짓밟아 버리겠다, 뻥카를 뻥뻥 치면서 정작 주공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것이 남부의 전략이었다.

“아, 그리고 중부에는… 우리의 칸! 부됸늬 원수!”

“으하하하하, 서기장 동지,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독일군의 눈길을 끌 ‘뻥카 로 중부에는 부됸늬를 배치했다.

사실 소련 최고의 명장이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주코프를 뽑겠지만, 독일에게도 그랬을까?

오만하고 야심도 큰 주코프가 너무 크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하기 위해 정치국은 주코프의 대항마로 부됸늬를 내세웠다. ‘민스크의 구원자’, ‘불패의, 그리고 전설적인 기병대장’ 부됸늬 원수!

기병은 이미 시대의 저편으로 가고 있었지만, 강렬한 상징성만큼은 살아 있었다.

독일군도 5성 원수가 직접 말 타고 총질하면서 야전에서 뛴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포로로 잡힌 병사들을 조사한 결과 소련군 장군이라고 하면 다들 그런 인간인 줄 알더라….

아무튼 중부에서 대공세가 있을 것처럼, 부됸늬를 배치해 온갖 프로파간다를 해서 블러핑을 쳤다.

독일군이 과연 기병대를 진짜 무서워할지, 원수의 우라돌격을 두려워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눈길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41년 공세의 선봉이었던 제1근위기병군이 중부에 배치되었다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는데, 독일이 과연 그쪽으로 눈길조차 안 줄까?

어디가 진짜고, 어디가 가짜인지. 아마 골머리 좀 앓을 거다.

* * *

“모두 개만도 못한 것들이야! 너희들이고 저놈들이고 모조리 다!”

총통의 고함을 이제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와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은 SS에게 끌려갔다. 직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총애 받는 이들은 다들 전장으로 나가 일군의 사령관이 되었다.

남은 자들은 모두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하나에 벌벌 떠는 겁쟁이들이나 면종복배하는 자들 뿐. 그들은 멋쩍게 웃으며 총통이 고함치고 짜증을 낼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싹싹 비벼 댔다.

그러면 총통은 곧 페르비틴의 약기가 떨어져 털썩 주저앉아 대강의 명령만 내리고 모두를 내보냈다. 남은 문제들은 재량대로, 알아서 하도록.

오늘은 운이 좋았다. 총통이 집어던진 집기에 맞아 어딘가를 다친 사람은 없었으니. 고급 참모들은 삼삼오오 모여 앞으로의 방침을 상의했다.

“미클로시와 헝가리 외교관들이 이렇게 징징대는데 모르는 척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북부집단군의 주력을 돌리는 것은….”

“모델 원수가 헝가리군을 통솔해야….”

루마니아가 넘어가는 것은 도미노처럼 발칸의 정세를 뒤흔들었다.

50만 병력을 가진 루마니아가 소련 편에 붙자, 불가리아도 ‘슬라브 민족주의’를 떠들며 소련의 편을 들었다.

유고 파르티잔들도 소련에게 물자와 무기를 받아 무장하고 크로아티아와 헝가리를 위협했다. 붉은 전염병이 발칸에 퍼져 나가 추축국의 패권을 위협했다.

이젠 헝가리의 섭정인 호르티 미클로시가 독일에게 본격적으로 대들기 시작했다. 우리를 지켜 줄 수 없다면 군대라도 내놔라. 헝가리는 대략 10만 명가량의 병력을 남부집단군 휘하로 참전시켰었다.

적잖은 수가 지난 1년간 사라졌기에 호르티는 자국의 안보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며 독일이 ‘배반자’들로부터 헝가리를 지켜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티토와 파르티잔들을 진압하는 것만 해도 부담스러운 와중에 수천 킬로미터나 되는 헝가리 국경을 지켜라? 소련과 루마니아의 정규군을 상대로? 방어의 사자, 모델 원수라 해도 무리였다.

그걸 아는 호르티는 여차하면 추축국을 탈퇴하고 소련 편에 붙을 것처럼 살짝씩 간을 보기 시작했다. 총통이 날뛴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최대한 빨리 승리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더 이상 동맹국들이 이탈한다면….”

덜컥. 총통의 집무실에서 검은 친위대 제복을 입은 힘러가 걸어 나왔다. 국방군의 장성들은 하던 말을 일제히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노려보았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까? 지난 ‘반란 진압’에서 크나큰 전과를 세운 무장친위대의 위상은 날로 커져 가고 있었다. 국방군을 제치고.

보수적인 장군들에게 그것이 마음에 들 리 없었다.

“총통께서 명령하셨습니다.”

“… 무엇을 말입니까?”

힘러는 가늘게 째진 눈으로 장군들을 쓱 둘러본 뒤, 휙 던지듯 명령서 몇 장을 보여 주었다.

“어차피 국방군이 아니라… 저희 친위대에 내려진 명령입니다만, 작계를 세우실 때 참조하시지요.”

“!!!”

모노클을 끼고 있던 한 장군이 안경을 바닥에 떨어트려 쨍그랑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안경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명령서에는 휘갈겨 쓴 필체로 몇 가지 지시사항만이 적혀 있었다.

“호르티 미클로시… 납치?”

“소련이 안토네스쿠를 쿠데타로 짓밟아 버린 것처럼, 호르티가 전쟁에서 이탈하려 한다면 똑같이 해 줄 뿐입니다. 하하핫.”

엄연히 달랐다. 안토네스쿠는 적국의 지도자였으며, 루마니아 국민들은 미하이 1세를 지지했다. 하지만 호르티는 배반하려 간을 보고 있다지만 ‘동맹국’의 지도자였고, 파시스트 세력을 탄압했기에 세울 만한 파시스트들도 몇 없었다.

물론 크고 시원하게 그려져 있는 총통의 사인을 보고서도 그런 ‘사소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하일 히틀러! 승리 만세!”

“하일 히틀러!”

갑자기 누군가가 오른팔을 치켜들고 나치의 경례 구호를 외쳤다. 하일 히틀러!

힘러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마찬가지로 하일 히틀러를 외쳤다. 한 명씩, 국방군의 장성들은 오른팔을 치켜들었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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