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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2화 (112/300)

# 112

112화

쿠르르릉… 거대한 차체의 엔진은 우렁찬 굉음을 내뿜었다. Br―4 203mm 중곡사포를 자주화시킨 ISU―203은 그야말로 육중한 야수 같았다.

전군에서 이 ‘자주포’를 36문이나 운용하는 집단은 단 하나뿐. 자주포의 행렬을 지켜보는 장병들은 환호하며 손을 흔들었다.

적성훈장과 적기훈장을 수훈한 영웅 부대, <독립 조선인 포병연대>의 연대장 무정은 참모장교가 전달하는 내용을 듣고 있었다.

“기래? 요기로 파시스트 간나새끼들이 몰려온다는 말이간?”

“그렇습니다, 연대장 동지. 이 방면으로 백만에 달하는 파쇼 군대가 진격해 온다고 합니다. 조선인 연대는 그 중에서도 가장 격전지에 배치된다고….”

“알갔다! 요놈 손맛 좀 봐야겠구만 기래?”

적이 몰려온다는 말을 듣고서도 연대원들은 지극히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이들은 자기들의 솜씨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전군 최고의 무기를 보급받았고, 또 실력으로도 최고였다.

‘선비는 알아주는 이를 위해 죽는 법이지’ 같은 고색창연하고 봉건적인 개념이 섞여 있지 않다고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소련의 절대 권력자인 스탈린 서기장은 그들의 활약에 찬사를 보내며 해방된 조선을 재건하는 데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들이 여기서 다치고 죽는다면 그 피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 우리 고국의 동포들을 위해 쓰일 것이다.”

어느새 연대 규모까지 확장된 조선인 포병대의 부대원들은 말단 병사 하나까지도 그것을 가슴 깊이 새겨 두고 있었다.

“일제하의 조국을 내 손으로 해방시키리! 내 손이 아니라면 내 피로!”

식민지 조선의 젊은 청년들은 만주를 거쳐 소련으로 도망쳐 소련 휘하 조선인 부대에 입대했다. 본국의 여운형, 박헌영 같은 운동가들은 젊은 청년들이 일제하에서 순응하며 썩어 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소련으로 가라! 저들의 기술과 능력을 배우라!”

“머리가 좋고 교육을 많이 받은 자들은 소련으로 가 정규 대학 교육을 받고 기술을 배우라. 그리고 곧 세워질 해방 조선을 위해 사용하라!”

“내가 싸우는 재주가 있다 하면 조선인 부대에 입대하라! 저들이 세우는 위대한 공훈을 보라. 그곳에서 반제 투쟁의 선봉이 되고, 또 조선 해방의 선봉이 되어라!”

무정은 뜬금없이 호탕하게 웃었다.

“으하하하하, 그 간나 새끼들이레, 이런 곳은 상상도 못 했갔지? 그 가야마 미쓰론가 밑으론가 하는 간나 새끼 말이지?”

“예? 가야마 미쓰로가 누굽니까?”

“그, 춘원 이광수 말이십니까? 으하하하!”

이광수는 이 시대에 향산 광랑(香山 光郞, 가야마 미쓰로)으로 창씨 개명을 하고 소위 ‘내선일체’를 설파하고 있었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 그 운명은 하나로 이어져 있으며 일본 제국의 승리가 곧 조선의 승리다!”

일본 제국이 영원하리라 생각한 많은 인사들은 일제에 협력할 것을 주장했다.

일제에 협력하여 우리 민족의 역량을 키우고, 대동아 공영권이 실현된다면 그 안에서 함께 번영을 나누자! 그렇기에 창씨를 하고 일본식으로 이름을 개명하고, 또 젊은이들이 일본을 위해 징용을 나가고 정신대에 갈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저들이 과연 몇 년이나 갈 것인가?

소련에 와서 본 세상은 좁디좁은 반도에 갇혀서 알 수 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소련군은 강대했고 일본의 최정예라는 관동군 따위는 한 손가락으로 압살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만주에 몇십만 군대가 있으면 무엇 하는가? 당장 일본군보다도 강대하다는 독일 육군이 100만 단위로 몰려와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것이 소련군이다. 그리고 소련은 지금은 일본과 협력하는 것처럼 보여도 단 한 번에 일본을 박살 내버리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다.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 온 만주 벌판에 벼락처럼 전차가 내달리고 천둥처럼 포성이 울리면! 일본군 놈들은 온통 나동그라지고 해방 조선의 깃발만이 휘날릴 그 날이 오면!

연대원들은 그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바리쉬(동지) 무정! 포격 지원 요청입니다!”

“아! 따바리쉬! 하라쇼! 하라쇼! 아그들아! 가자!”

“예!”

* * *

독일군은 그 혹독한 겨울 동안에도 방어선에 콘크리트 벙커를 축조해 소련군의 공세를 저지했다. 기관총에 대전차포까지 들어 있는 저 벙커를 깨부숴 버리려면 강력한 포격이 필요했다.

아주 강력한 포격이.

[201사단 방면에서 적 특화점에 대한 포병 사격 요청입니다!]

소련군의 일선 부대들은 전략 병기의 수준에까지 이른 조선인들의 중곡사포를 뻔질나게 이런 목적으로 불러댔다.

물론 조선인들은 아주 좋아하며 포격 지원에 응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신기술을 보여 줄 때라나?

이번 목표는 소련군이 계획한 공세 축선에 위치한 벙커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엄호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축조된 저 방어선들을 깨부수려면 정밀한 공격이 따라붙어야 했다. 항공기를 불러 벙커를 처리하기엔 소련군에겐 아직 정밀 폭격 능력이 부족했다. 여전히 매서운 독일 전투기들도 무서웠다.

그렇다고 일반 중곡사포들을 부르자니 저들에 따라붙어 있는 독일 곡사포들의 대포병 사격이 날아왔다.

이미 두 번이나 152mm 포로 포격을 퍼부어 보았으나 반격에 의해 사상자만 수십 명을 내고 돌아왔다.

그래서 사단장은 그렇게 신묘하다는 조선인 포병대를 부르기로 결정했다.

* * *

ISU―203 자주포 36문에는 실험적으로 제작된 탄약공급차가 따라붙었다.

203mm 화포는 그 구경만큼 탄약도 거대한 법. 한 발에 100kg짜리 고폭탄을 인간의 힘만으로 재장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자주포를 설계하며 포탑 및 탄약공급장치도 다시 설계가 된 만큼, 병기국은 자동장전장치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물론 100kg짜리 포탄을 몇 발 실어나를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안을 내놓았지만.

위대하고 현명하신 서기장 동지는 이에 자동장전장치를 ‘외주화’시키는 것은 어떨지, 참으로 놀라운 제안을 하셨다.

“어차피 자체 탄약 수송능력이 떨어져서 별도의 탄약장갑차가 필요한데 여기에 장전 능력까지 추가할 수 없겠나?”

탄약을 적재하고 자주포를 따라다니는 장갑차에 별도의 장치를 더하여 탄약 공급―장전 임무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일종의 컨베이어벨트를 자주포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물론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밤을 새 가며 서기장의 요구사항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지만, 아무튼 엔지니어들은 금방 명령받은 물건을 만들어 냈다.

“오, 이거 정말 괜찮습니다!”

100kg짜리 포탄을 낑낑거리며 옮겨야 했던 병사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로 인해 탄약의 재보급과 장전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물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갔지만. 하지만 이렇게 조커처럼 쓸 수 있는 전략무기에 몇 푼 돈을 아까워할 것인가? 서기장 동지가 흡족해하시는데?

아무튼 조선인 포병대원들은 이 새로운 무기에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신 전술을 개발해 윗선에 선보인 적도 있었다는데… 오늘 그걸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연대장 무정은 지도에 표시된 적 목표물의 좌표를 보며 뭔가를 어림하는 것 같았다. 다른 조선인 장교들도 머리를 맞댄 채로 토의를 하고 있었다. 소련군 장교들은 대체 뭘 하는 것인가, 신기하게 그들을 쳐다보았다.

덜커덩거리는 길 위에서 조선인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계획을 짰다. 단 한 번, 한 방에 독일군 진지를 박살 내겠다며 낄낄대기도 했다.

주판을 몇 번 튕긴 이들은 복잡한 숫자를 몇 개 집어넣은 후 탄약에 주섬주섬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장약량을 바꾸는 것인가?

“자, 됐다. 관측반!”

[예! 연대장 동지!]

“우리는 대포병 사격에 대비하여 포격 이후 바로 진지를 변경할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시오! 아그들아! 날래 쏘고 날래 내빼래잉!”

“예!!!”

다들 무슨 단거리 달리기라도 준비하듯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무전기로 관측반을 호출하는 등 몇 가지 준비를 마친 무정은 신나게 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섬세하게 조준을 마친 36대의 중곡사포는 교회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같기도 했다. 8개의 목표물에 4개 포씩을 할당하고 조준을 마친 포병대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 하나, 둘, 셋 하면 쏘는기다! 하나, 둘, 셋! 쏴!”

쾅! 쾅! 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이 울렸다. 각 자주포마다 세 발을 신속하게 연사했다. 매 발마다 각도를 조정했지만 막간의 작업은 워낙 신속하게 이루어져 보는 사람들은 대체 저들이 뭘 하는 것인가 고민할 여유도 별로 없었다.

“날래 내빼라잉!”

“예! 연대장 동지!”

연대원들은 웃으며 후다닥 철수를 시작했다. 탄약보급 장갑차들은 연결을 해제하고 부르릉하며 후퇴하기 시작했고, 그 뒤를 자주포들이 따랐다.

지켜보는 소련군 장교들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관측사도 없었고, 그냥 세 발을 연속으로 쏜 채 바로 후퇴하다니?’

물론 대포병 사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자주포는 이렇게 운용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불발탄이라도 났는지 발사한 포탄(108발)에 비해 착탄음은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관측반과 통신하는 무전기는 저기 무정 연대장이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내막을 알 수 없었다.

[…? 포마다 3회씩 사격한 것 아니십니까?]

“이거이 바로 ‘동시 탄착 사격’이라!”

동시 탄착 사격, 영어로 하면 Time on Target(TOT). 각 포에서 발사하는 포탄이 동시에 한 목표에 명중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벙커마다 지정된 4문의 포, 그리고 포마다 발사한 3발의 포탄은 정확히 동시에 목표물에 명중했다. 첫 발의 포탄은 발사각을 높이 잡고, 점점 발사각을 낮추어 차례차례 발사한 3발이 동시에 적중하도록 조율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야포에서는 장전속도나 숙련도 때문에 감히 따라 해 보기도 어렵겠지만, 자주포의 뒤에 따라붙은 탄약공급 장갑차로 인해 자동장전이 가능해졌기에 이런 ‘묘기’도 할 수 있었다.

갑자기 날벼락처럼 2개 포대급의 일제사격(12문*1발)을 얻어맞은 독일군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을 것이다. 관측반은 전탄 명중, 목표물은 파괴되었다는 짤막한 보고를 올리고 자기네들도 기가 막힌지 말이 없었다.

“실전에서는 처음이구만 기래?”

“그렇습니다! 저기 파쇼 놈들은 뭐가 일어난 지도 모를 것 같습니다, 하하하!”

조선인들은 기분이 좋은 듯 다들 껄껄 웃고 있었다.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소련군 장교들은 입을 딱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뭘 그리 보고 있소? 당신네들도 배워 볼랍니까?”

“예? 예! 당연하지요! 꼭 가르쳐 주십시오!”

“고것이… 자주포처럼 신속하게 포각이 조정되는 게 아닌 이상에야 조금 어렵긴 한데….”

‘조선인들이 말꼬리를 흐리는 것을 두고 소련군은 알 수 있었다.

‘더 많은 자주포가 필요하다.’

동시탄착사격의 막대한 화력은 금방 상부에 보고되었다.

그게 말이 되느냐, 그게 되느냐, 묻던 사령부에서는 조선인 포병대가 하던데요? 라는 대답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럼 더 많은 자주포를 생산하면 되는 것인가? ISU―203으로?”

“그… 그렇습니다! 이번 교전에서 아군의 피해는 전무했으며, 그동안 제거하는데 골머리를 썩이던 벙커들이 한 번에 싹 쓸려나갔습니다!”

“…내 상부에 보고해보겠네.”

소련 포병의 한계에 대해 항상 대책을 고민하던 사령부에서는 즉각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야포의 문 수는 많으나, 화력의 투사 면에서 소련군은 항상 비효율적이었다.

무전기가 대규모로 배포되어 필요한 곳에 필요한 화력을 투사하라는 명령과 피드백은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하지만 포병의 숙련도나 독일군과의 실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는 여전했다.

소련 포병이 열심히 목표물을 향해 펑펑 쏴제끼고 있으면 독일은 기다리다가 관측 정보를 확보, 그냥 소련 포병대를 향해 일제사격을 갈겨 제거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했던가!

하지만 한 대의 야포에서 발사한 여러 발의 탄이 동시에 떨어질 경우 탄착을 확인하기도 어렵고, 탄도를 계산해 적의 위치를 역산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이렇게 방어적으로도 유리할뿐더러, 동시에 포탄이 떨어지는 것은 산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강력한 화력을 냈다. 12발의 203mm 포탄을 동시에 얻어맞은 피해량이라면 아마 몇 시간 내내 경야포를 두들겨 맞는 것보다 더 피해가 컸을 것이다.

이제 붉은 군대는 엄청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보고를 받은 서기장은 이 깨달음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더 많은 자주포를 생산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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