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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10화 (110/300)

# 110

110화

사쿠라꽃 휘날리는 봄날, 연합함대 사령장관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휘하의 제독들을 이끌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무적 황군은 하와이의 미 태평양함대를 격멸하는 데 성공하고 파죽지세로 태평양을 석권하고 있었다. 하지만 충용무쌍하던 황군의 장병들이 모두 몸 성하게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미군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한 대응마저 졸렬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죽지 않을 리는 없었다.

“호국의 영령들께, 경례!”

척. 최대한의 경건함으로 제독들은 위패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제례를 주관하는 신관은 요상한 기도문을 읊었다.

야마모토 역시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지금까지의 작전에 참여했던 모든 장병들에게는 제각기 포상이 주어졌다.

특히 진주만 기습에 참여했던 모든 병사와 장교들에게는 1계급 특진이 주어졌다. 부상을 입은 자는 특진에 훈장, 그리고 사망한 자에게는… 무슨 쓸모가 있겠냐마는 전원 2계급 특진이 사후에나마 추서되었다.

이외에도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산화한 이들은 황국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호국신사, 그것도 도쿄에 위치한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이 얼마나 높은 영광인가!”

해군대신 시마다 시게타로는 주름진 목을 푸들푸들 떨며 그렇게 외쳤다.

“아아, 살아서는 공을 세우고 죽어서는 황국의 영령이 되어,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라를 수호하여라!”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신사에 안장된 영령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마음속으로 읽어 나갔다.

‘해군 중위 야마가타 히데츠구, 해군 오장 안자이 타카하시, 해군 일등병 우에가키 토모히로, 해군 상등병 오키 사다노부, 육군 오장 마쓰이 히데오….’

기자들의 플래시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퇴청하던 야마모토는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는 허름한 옷차림의 한 부부와 그들의 딸인 것 같은 어린 여자아이를 마주쳤다.

그를 향해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딱딱하게 굳은 채로 정면으로 그를 보는 부부가 인상 깊었던 그는 가족에게로 걸어갔다.

부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깊이 허리를 굽혀 절했다. 야마모토는 역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정중하게 물었다.

“혹시… 댁의 아드님께서?”

차마 뒤의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파는 여전히 그가 무엇을 하는지 잘 볼 수 없었기에 그저 환호할 뿐이었고, 기자들은 현직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자 해군 원수 대장인 그가 일개 시민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에 기삿거리를 찾았다는 듯 더 열심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부부 중 아내는 그 말에 울컥했는지, 애써 참으려 했지만 눈시울이 붉어진 듯했고, 남편은 억누른 듯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렇습죠. 아들 셋이 모두 저기 진주만에서 죽었습죠. 살아서는 그야말로 대 전과를 세우고, 죽어서는 나라님들께서 세우신 신사에 합사되었으니, 이야말로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으니, 사령장관 각하의 은혜에 감사할 뿐입죠.”

“아… 그… 렇습니까.”

어린 여자아이는 어머니가 왜 울먹이는지 몰라 끝이 해진 유카타 소맷자락을 톡톡 잡아당겼다.

부인은, 흠흠 목을 고르더니 짙은 사투리가 섞인, 가장한 기색이 역력한 높은 톤으로 야마모토에게 말했다.

“전사헌 즈이 막딩이가, 저번에 세운 공이 신문에도 났다 아잉교. 그 머시냐, 그… 해안가에 있든, 항공모함에 특공을 가해 가지구, 항공모함을 터트렸다꼬….”

“아! 그… 기타사토 사부로 병장, 아니 군조 말입니까?”

“워매, 워매, 워매, 어째 이래 높으신 분들도 아신당가…?”

연합함대 사령장관으로서 그는 수많은 보고서를 취합하여 읽고 처리했다.

그리고 그에게 올라온 보고서에는 몇 가지 특기사항이 적혀 있었다. 개중에는 전사한 이들 중 특기할 만한 이들에 관한 보고서도 있었다. 지체 높은 화족이나 공족의 자제들, 용맹하게 공로를 세우고 전사한 이들 같은.

전사한 이들 중 같은 항공전대나 함대로 배속된 형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삼 형제가 모두 한 작전에 참가해 셋 모두가 전사한 사례는 지극히 특기할 만했다.

해당 사례는 삼 형제의 막내가 올린 위대한 전과와 함께 황국신민의 충의를 대표하는 희생으로 대서특필되기까지 했다.

기타사토 삼 형제의 첫째 준이치로와 둘째 지로는 진주만 기습을 위해 출격한 전함 함대 중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에서 상등수병으로 복무 중이었고, 셋째 사부로는 항공모함 아카기 소속, 비행전대의 영식 함상전투기 조종사였다.

진주만의 목표물인 전함과 항공모함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해군항공대는 몇 번이나 뇌격을 가했다.

하지만 역시 두터운 강철 장갑으로 방비된 군함들은 빗겨 맞은 타격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고 반격을 했다. 전함에 수십 개씩 장비된 대공포대들이 일제히 불을 뿜은 것이다. 또한, 하와이 각 섬에 설치된 해안포탑들도 일본 함대를 향해 공격에 나섰다.

‘작은’ 항공폭탄으로는 콘크리트로 떡칠한 해안포대를 제거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미국 군함들의 숨통을 끊어줄 특공어뢰를 발사하기 위하여 해안포대의 사거리 안으로 들어가야 했던 일본 전함들은 갈팡질팡했다.

야마토의 18.1인치 포는 몇 발이나 16인치 해안포대를 맞추기는 했지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특공어뢰를 발사하기 위해 접근한 군함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가 해당 포대의 반격으로 인해 격침당했다.

기리시마는 탄약고의 유폭인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서서히 기울며 결국 오아후 앞바다에 침몰해 버리고 말았다.

해당 포대에서 올라오던 검은 연기로 인해 포대가 무력화된 줄 알고 접근하던 일본 군함들은 대번에 놀라 방향을 틀며 회피기동을 하기 시작했다.

미군 포대들은 저 거대 전함도 별 것 없구나! 하며 더 가열찬 반격을 시작해 전황은 미군측으로 뒤집힐 뻔했다.

그때, 자신의 두 형이 탄 배가 미군 포대에 의해 격침당하는 것을 본 셋째, 사부로는 기리시마의 특공어뢰가 공격했어야 할 항공모함에 특공을 가해 결국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구, 아이구, 이랴서 원수님도 아시는구마….”

“그만 됐소, 당신은. 사령장관 각하께서까지 이리 알아주시니 저희 아들놈들도 아마 편히 쉴 듯 합지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부로 병장, 이제는 군조가 탔던 비행기는 항공모함에 자폭 돌격해 결국 연료를 유폭시켜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한 척, 한 척. 미국 군함들은 진주만의 물살 아래로 사라졌다. 차가운 물살 아래서 특공어뢰에 탄 용사들은 군함을 들이받고 사쿠라 꽃잎과도 같이 장렬히 산화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먼저 간 선배의 예를 따라 항공모함에 일제히 돌격했다.

이 놀라운 전공을 세우게 된 조종사에 대해 야마모토를 비롯한 함대 사령부는 그의 신상을 수소문했고, 전후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그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화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그런 사정이… 라는 반응으로 두 부부에게 찬사를 던졌다.

“아, 실로 위대한 황국 신민의 모범이십니다!”

“진실로 만인의 귀감이 되시는 아드님들을 두셨습니다.”

기자들의 플래시라이트는 이제 전쟁영웅 삼 형제를 나라에 바친 부부를 향했고, 또 그들은 야마모토와 삼 형제의 아버지, 기타사토 씨가 악수를 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도록 포즈를 취해달라 청했다.

‘한날한시에 아들 셋을 모두 잃은 채로 나온 부모를 두고 뭣들 하는 짓인가!’

야마모토는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아무리 전쟁영웅인 그라도 찬물을 끼얹었다가는 당장에 생매장을 해 버릴 정도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이것이 광기인가?

아니면 이것이 승리인가?

눈이 멀 정도로 눈부신 플래시들이 팡, 팡 터지는 가운데, 영문을 모르는 소녀만이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어머니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아아, 이렇게 훌륭한 아드님들을 키워내셨다면 따님 역시 황국 여인들의 귀감이 될 만한 요조숙녀일 터, 저희 집안의 며느리로 삼고 싶습니다.”

“아니, 저희 집안은 어떠십니까? 저희는….”

아직 한참 어린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목을 잡아 보려는 손길들이 사방에서 뻗쳐 오자 그녀는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듯 어머니에게 더욱 꼭 안겼다.

‘울어서는 안 돼, 울어서는 안 돼. 오빠들도 울지 않았을 거야. 우리 사에도 용감해야지.’

아까 어머니는 한참 울어 부은 눈으로, 소녀, 사에에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 운 거 아니에요? 사에는 그렇게 되묻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태도가 하도 단호했기에 물어볼 수가 없었다.

‘울어서는 안 돼.’

무서웠다. 당장이라도 울어 버리고 싶었지만 사에는 아까부터 어머니가 계속 속삭여 준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울어서는 안 돼.’

* * *

물론 먼저 간 이들을 위한 복수심에 불타는 것이 일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주만 공습 이후 당분간 미국 태평양 함대의 유일한 항공모함이 될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CV―6 엔터프라이즈는 그야말로 일본을 회쳐먹기 위해서 이를 갈고 있었다.

“쪽발이들을 죽이고! 더 많은 쪽발이들을 죽이고! 더 더 많은 쪽발이들을 죽이자! 저 개새끼들이 그만하자고 해도 몇 명만 더 죽이자!!!”

“와아아아아!!! 좆 같은 쪽발이들을 죽이자!”

항공모함 전대장 윌리엄 홀시 제독은 다른 사람들이 봤으면 경악할 만한 발언을 좔좔 쏟아냈다. 항복할 때까지 쪽발이(Japs)를 죽이자는 것은 전시라는 상황에서는 납득 가능한 수위였지만 항복하고 나서까지도 죽이자는 것은 국제법 위반으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에 반론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태평양 함대는 상부의 명령에도 불복종해 가며 더 싸우고자 했다.

기습당해 전력을 무의미하게 잃어버린 수치를 씻기 위해서라도.

조종사들은 귀환하라는 명령에도 연료가 떨어지기 직전까지 일본 전투기들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몇몇은 아예 잔뜩 폭탄을 탑재하고 일본 항공모함에 가서 들이박겠다고 주장하며 출격을 허가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태평양함대는 귀관과 같은 귀중한 조종사를 그런 업무에 낭비할 수 없다.’

유일하게 침착함을 지키고 있던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이 광기에 제동을 걸면서도 합리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

“오늘 살아서 또 하루를 싸우게. 그게 자네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야.”

그리고 싸워야 할 마지막 하루가 다가왔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연합군은 파푸아 뉴기니의 수도이자 비행장이 위치한 포트 모르즈비를 막대한 피를 쏟으면서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감투 정신에 적장인 야마모토조차 감탄할 정도로. 아마 그들도 위기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포트 모르즈비를 일본군이 차지할 경우, 호주 북부가 일본군의 공습 반경 안에 떨어진다. 또한, 제로센처럼 엄청난 항속거리를 자랑하는 기종들을 동원해 미국과 호주 간의 연계를 끊어 버릴 수 있었다.

“자, 그동안 전장에서 죽고자 하는 장병들은 많았다. 그리고 본관은 본관의 직위와 권한을 이용해 그런 이들을 최대한 막아 왔다.”

훈시를 듣는 장병들은 놀랍도록 고요해졌다. 홀시의 연설에 환호하던 것이 아까 전인데도.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는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적들은 우리 코앞까지 다다랐다. 더 이상, 한 걸음도 물러설 곳이 없다. 우리는 이곳을 지켜야 한다! 반드시!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자유 만세! 미국 만세! 신이여 우리를 도우소서!”

“만세! 만세! 만세!”

병사들은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쳤다. 그의 주변에 도열한 늙수그레한 제독들과 장교들 역시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이곳을 지켜야 한다.’

엔터프라이즈를 위시한 미국 태평양 함대의 마지막 전력은 이제 포트 모르즈비를 지키기 위해 집결했다. 대서양의 아조레스를 공략 중인 해병대 전력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도 이곳을 사수하기 위해 모였다.

결전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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