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104화
다음날 아침, 죽을 것만 같은 숙취 속에서 나는 머리를 붙잡고 깨어났다.
“으으… 빌어먹을 새끼들….”
러시아 놈들은 술 하나만큼은 더럽게 많이 처먹었다. 아마 지금도 몇몇은 해장술이랍시고 또 퍼마시고 있을걸?
알코올 중독자들을 숙청하고 각종 불이익을 가하려 해도 일단 수적으로 너무 많았을뿐더러, 폭음 문화는 이미 사회적으로 깊게 뿌리박고 있었다.
20년대 소련 공산당은 그야말로 어중이떠중이들의 소굴이었다. 페트로그라드나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 중심의 비밀조직이었던 공산당은 전국으로 지배력을 확대했지만 통치 역량은 갖추지 못했다. 자연스레 각지에서 혁명에 합류한 이들과 협조하여 드넓은 러시아를 통치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은 질적으로 형편없는 인간들이었다. 동네 친구들끼리 술이나 퍼먹다가 내전기에 총을 잡고 적군에 합류한 건달패들. 이런 이들이 그대로 공산당의 지역 간부들이 되고 승진해 모스크바의 눈을 가리고 저들끼리 짝짜꿍하며 각종 이권을 돌려 먹었다.
이 상황에서, 스탈린은 지역조직의 질적 향상을 위해 연간 30%씩을 당에서 내쫓았다. 주로 사유는 알코올 중독. 근무 시간에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인간들이라면 현대 한국에서도 공무원 파면 사유였는데 그런 인간들이 소련에는 ‘연간’ ‘만 단위로’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술주정뱅이 새끼들…. 스탈린의 몸뚱아리도 사실 그다지 다르지는 않아 한번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계속 더, 더 퍼부어 넣게 되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서기장 동지?”
“으… 그래….”
하… 머리가 아프다.
내 방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경호원이 인기척을 듣고 들어와 아침 인사를 했다. 이렇게 술에 곤죽이 된 날이면 이들은 또! 보르시치를 가져왔다. 해장 성능은 확실히 우수했다. 해장에 대한 막대한 수요가 만들어 낸 것인가?
하지만 알맹이는 한국인인바, 얼큰한 해장국이 당겼다. 아… 콩나물국, 북엇국, 선지해장국 먹고 싶다. 과음한 다음 날 아침,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순대국밥이나 한 그릇씩 하곤 했는데 1940년대의 소련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선짓국 비슷한, 돼지 피로 만든 소시지를 매콤하게 끓여 오라 했더니 꽤 맛있긴 했지만 그건 크렘린이고. 이 동네에서 그런 걸 찾았다간 괜히 여기 사람들만 불편해질라.
국물까지 훅 들이켜고 나니 조금 속이 나아졌다. 모스크바로 다시 올라가는 길에 몇몇 장소들을 들르겠지만 그사이에도 시간은 많으니 푹 자 두면 훨씬 낫겠지…. 나는 애써 그렇게 위안했다.
* * *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나를 배웅하기 위해 몰려나온 인파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기준에 비해서 못 먹고 헐벗은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저들은 내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선전, 선동의 결과물일까? 공산당이 가하는 위협 때문일까? 아니면 그 이전에는 이만큼도 안 되었기 때문일까. 아마 셋이 적절히 버무려진 무엇이 정답이 아닐까 싶지만… 우욱, 술 때문에 속이 메슥거렸다. 내 옆에 서 있는 몇몇은 해장술을 처먹었는지 술 냄새가 풍겼다.
저 새끼들 진짜 숙청… 후… 참자. 숙청을 속삭여 온 내 안의 스탈린도 이런 걸 가지고 그러진 않을 거야….
이렇게 온갖 잡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인파를 헤치고 한 노파가 걸어 나왔다. 꼬부랑 할머니가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헤치고 나왔냐고? 소 한 마리를 쭐레쭐레 끌고 왔거든.
나는 처음에 내가 술 때문에 헛것을 보는 줄 알았는데 소가 음머 울면서 똥을 뚝뚝 떨어트리자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아니, 이게 웬 소입니까?”
“암소입니다, 서기장 동지. 홀홀홀홀.”
이가 반쯤은 빠진 할머니는 암소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걸 왜 저한테 끌고 오셨는지….
소는 꼬리를 흔들며 주변의 파리를 쫓고, 계속 똥을 쌌다. 아… 제발….
“아주 좋은 암소입니다, 서기장 동지. 저희 농장에서 우유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소랍니다. 부디 이 소를 선물로 받아 주시지요.”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열심히 박수를 쳤다.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제발 내가 소를 받아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진심으로 나를 존경하는 사람이 있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상에서 내려와 할머니의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잡았다. 마디가 툭툭 불거지고 굳은살이 박인 농민의 손이었다.
할머니는 위대한 서기장이 무려 손을 잡아 주었다는데 감격해 눈시울이 붉어져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만 같았다.
“어머님,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아유, 아유, 어머니라니….”
“그러나 저는 농장이 없어 소가 필요 없습니다. 저는 완전히 국가에 고용된 사람이라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지만, 고용된 사람은 농장이 없답니다. 어머님, 제 생각에는 제게 소를 선물하지 말고 계속 기르면서 저를 기억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소는 말이라도 알아듣는지 음머 울었다. 할머니는 이제 펑펑 울며 주저앉았다. 사람들은 더욱 열렬히 환호했다.
나는 저 소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은 국민들이 나를 지지하고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의 피로가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서류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회의감이 들었었다.
‘내가 하는 일을 국민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고 있나?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까? 혹여나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평가를 받을 방법도 없고, 그저 개인적인 확신만으로 결단을 내리는 것은 너무나도 피로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소한 이 할머니만은 날 진심으로 존경하는 것 같았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지역당의 기관지 기자들은 할머니를 조심스럽게 껴안는 나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 댔다. 아마 얼마 후면 ‘현지시찰에서 인민들을 지극히 사랑함을 보여 주신 스탈린 동지’ 같은 제목으로 각지의 신문에 실리겠지.
그런 쇼가 되어도 좋다.
내가 이 나라를, 그리고 미래를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은 거짓 없는 진실이니까.
* * *
완전무장한 무장 SS 소부대들이 베를린 시가지를 위협적인 태도로 누비고 다녔다. 시민들은 다시 한번 공포에 떨어야 했다. SS는 장검의 밤에서의 숙청을 통해 SA(돌격대)를 대체하고 나치당의 정치깡패가 되었으나 일반 시민들 입장에서 그 둘 간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돌격대와 정치깡패들이 날뛰며 바이마르 공화국을 좀먹어 가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무장친위대가 베를린을, 그리고 여러 도시들을 활보하는 것은 그 불안했던 시대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걱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민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것일까?
SS는 사회에 불만을 가진 어중이떠중이들이라는 SA와 그다지 출신성분 면에서 다르지는 않았으나 더 무자비해진 나치의 철권통치에 따라 조금 더 규율을 갖춘 집단이었다.
물론 그 폭력이 향하는 이들에게는 훨씬 잔혹했지만. 이들은 ‘반국가적’으로 지목된 장교와 장성들의 가택을 습격하고, 그들의 가족들을 잡아들였다.
대부분은 가장이 전선에 나가 있던 터라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울부짖었다.
“저희 아들은 모범적인 군인입니다! 철십자 훈장을 두 번이나 받았고… 아흑!”
“닥쳐, 할멈. 당신 아들내미가 뭐 하는 새낀지는 관심 없어. 반국가 음모를 꾸몄다는데 그게 중요해?”
백발이 성성한 노파를 검은 제복을 입은 SS 대원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노파는 끙끙 신음을 흘리며 길바닥에 엎드러진 채 일어나지 못했다. 다른 SS 병사들이 노파의 양팔을 잡고 일으켜 세운 후 다시 트럭에 던져 넣었다.
한 번도 이런 것을 겪어본 적 없었을, 곱게 나이든 그녀는 저항도 하지 못하고 짐짝처럼 다뤄졌다.
밀폐된 트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갇혀 있었다. 문이 열렸다 쾅 하고 닫히는 사이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최소한 십수 명은 되는 이들이 안에 있는 것을 보았다.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했지만.
“뭘 보는 거야! 반국가단체에 개입한 자들이다. 너희들도 국가반역죄로 체포되고 싶어? 엉?”
“….”
시민들은 고개를 돌렸다. 노골적인 폭력 앞에서 이들은 조용했다.
어차피 우리 가족 중에는 반국가 음모를 꾸밀 만큼 잘난 사람도 없으니까. 우리 아들은 그냥 평범한 노동자이니까. 사람들은 누군가가 잡혀갔다고 할 때 그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아니니까. 나와는 관련 없는 일이니까.
먼저 공산주의자들과 유태인들이 끌려갔다. 골수 사민당원이던 이웃집 공장 노동자도 끌려갔다. 독실한 카톨릭이던 앞집 아주머니와 교구 목사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독일은 공포가 지배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크게 외쳤다.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승리 만세!”
제복을 입고 완장을 찬 어린 유겐트 대원들은 꽥꽥대는 어린 오리 떼들마냥 떼로 몰려다니며 구호를 외쳤다.
SS는 체포 활동에 유겐트 대원들을 동원하곤 했다. 그리고 폭력을 행사할 때면 항상 그들을 동반해 어떻게 인간을 꺾어 놓는지를 교육시켰다.
“자, 보라고. 이렇게….”
퍽! 퍽! 발길질에 얻어맞은 청년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입술에서 피를 흘리며 길바닥에 쓰러진 그를 아무도 일으켜 세워 주지 못했다. 백주대낮에 열대여섯 명의 SS 대원과 유겐트들이 청년들을 린치하고 있어도 그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바로 옆의 사거리에서 호각을 물고 있는 교통경찰은 그들을 본체만체하며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전쟁과 히틀러에 반대하는 삐라를 뿌렸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걸 기획한 모임에 소속되어 있다는 이유로 끌려 나온 대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초법적인 폭력 앞에 굴복해야 했다.
“그래! 좋아, 더, 더 짧게 해 봐.”
“으하하하하!!”
이렇게 체포된 대학생들은 강제로 전방 입대가 결정되었다.
동부전선에서는 진짜 전쟁이 몰아치고 있는 만큼, 병사로 전방에 끌려가는 것은 사실상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여대생들조차 입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최전방의 소총수로, 야전병원의 종군간호사로, 반체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즉결처형은 할 수 없으니 소련군의 총에 죽게 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어린 유겐트 소년 하나가 가위를 들고 대학생 청년의 머리채를 붙잡은 채 아무렇게나 머리칼을 난도질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친위대원들은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참는 청년을 비웃었다. 입대하려면 머리를 깎아야 했으니 미리 공짜로 깎아 주겠다고 하며 그들은 광장에서 체포된 이들을 조롱했다.
“다음!”
한창 머리를 난도질해 놓고 나면 그들은 질질 끌려 구석으로 내팽개쳐졌다. 완장을 찬 유겐트 대원은 자기가 휘두르는 ‘권력’에 만족한 듯 실실 웃으며 또 한 명의 머리채를 붙잡고 썩둑썩둑 잘라 나갔다.
“페터! 거기서 뭐 하는 거니!”
“!!!”
삭발식을 지켜보던 군중 중에서 한 여인이 소리치며 뛰쳐나왔다. 푸근한 인상의 중년 여인은 쇼크에 빠진 듯 창백한 표정으로 삭발식이 진행되던 단상 위로 달려 나왔다.
“대체, 너 요새 뭘 하고 다니나 했더니 이런….”
“엄마….”
“이봐! 너도 반국가단체냐?”
친위대원들은 위협적으로 그녀를 가로막았지만 마찬가지로 하얗게 질린 유겐트 소년의 표정을 숨길 수는 없었다.
유겐트 지역대장을 표시하는 완장을 자랑스럽게 차고 있던 소년은 몇 발짝 뒤로 물러나며 가위를 떨어트리고 말았다.
“페터 슈미트, 자네는 이따 나와 면담하도록 하지. 저 여자는 끌어내!”
“페터! 페터!”
“….”
유겐트 소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어머니는 끌려 나가며 울부짖었다.
아들아! 아들아!
강퍅한 인상의 젊은 친위대원이 떨어진 가위를 집어 들고는 남은 자들의 머리칼을 신속한 손놀림으로 잘라냈다.
다음! 다음! 대열의 옆 사람을 부르며 그는 삭발당한 사람의 등짝을 군홧발로 콱 차서 이미 당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밀쳐냈다. 대학생들은 증오가 섞인 눈초리로 친위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왜? 꼽냐?”
“…대단하군 그래.”
한 무리의 친위대원 사이에서 옛 급우를 발견한 한 대학생은 쓰게 웃었다.
반에서 유명한 사고뭉치였으며 선생을 늘 골머리 앓게 하던 열등생과 늘 선생들의 사랑을 받던 우등생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구도로 재개되었다.
친위대원은 낄낄 웃었다.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너지! 나는 이제 총통의 친위대원이고 너는 전방에서 이등병이 될 테니. 네 엄마가 이걸 보면 참 좋아하시겠어?”
대학생은 입을 꾹 닫았다.
베를린에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뮌헨과 슈투트가르트, 함부르크, 프랑크푸르트. 독일 전역의 도시들에서 비슷한 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체제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하는 현역/예비역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 대학생 및 노동자들, 지식인들이 대거 친위대들에 의해 습격당했다.
원래는 건달이나 깡패들이었던 친위대원들은 제복을 입고 완장을 차고 돌아다니며 거들먹거렸다. 우리가 국가의 반역자들을 잡았다! 배후로부터의 중상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알고 있었다. 사적인 원한에 의해 습격당한 이들도 있었고, 그저 혐의만으로 끌려간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다음 습격대상이 자신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리고 약삭빠른 소수는 이것을 이용하기도 했다.
“한스 게오르크! 당장 튀어나와!”
“뭐, 뭐요! 으억!”
아비가 끌려가는 것을 본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아이들을 감싸던 아비는 뺨을 얻어맞고, 군홧발에 채여 자기 집 바닥에 쓰러졌다. 문을 걷어차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온 친위대원들은 그를 마구 구타했다.
“네놈이 반국가 음모에 가담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당장 끌고 가!”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희 남편은 그럴 사람이 아니… 꺄악!”
“엄마!”
황급히 달려 나온 여자의 뺨을 유겐트 하나가 후려쳤다. 끽해야 아이들보다 대여섯 살이나 많을까? 표독스럽게 독을 품은 표정으로 유겐트 대원은 외쳤다.
“감히! 국가 반역자를 옹호하는 것이냐! 너도 반역죄다!”
“한스! 한스!”
주저앉아 우는 어머니와 아이들, 난장판이 된 집. 이런 비슷한 일들이 전 국가적으로 벌어졌다.
약삭빠르고 비열한 이들은 평소 싫어했던 사람들이나 경쟁자를 친위대에 제보했다.
한창 기세등등하게 ‘공적’을 세울 수단을 찾고 있던 각지의 지역당조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적발’해내어 체포하느냐를 두고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거짓 제보에도 모르는 척 시민들을 체포했다.
“저는 아닙니다! 한 치의 거짓도 없… 으아악!”
“쿨럭, 쿨럭… 제발….”
물론 상급 당 조직들도 완전히 바보는 아니었기에 대다수는 석방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진짜 ‘문제’ 있는 이들과 여차저차 엮여 있는 이들이었다. 유태인 기업가들과 친했다든가, 반체제 음모를 실제로 꾸미던 사람의 친척이라든가, 물증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튼 심증 정도는 할 수 있을 만한 이들은 가혹한 심문을 당했다.
전선에 있다가 돌아온 무장친위대원들이나 노동수용소를 경비하던 이들, 혹은 수장을 잃고 잔뜩 독이 오른 게슈타포들은 이런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상당히 많은 심문관들은 근대 국가의 ‘일상’에서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던 나머지 어떤 감각을 상실한 듯했다.
무죄 추정, 인신에 대한 고문 금지와 같은 근대 형법의 원칙은 이들에겐 먼 나라의 일인 듯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재소자들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고, 고문에 못 이긴 이들은 ‘증거’를 스스로 만들어 냈다.
비극은 반복되었다. 다양한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몇은 체포당한 다른 이들을 팔아넘기는 증언에 지장을 찍고 도망쳐 나왔다.
또 몇몇은 자기를 밀고했으리라 생각한 이들의 이름을 무차별적으로 불러 댔다. 고문과 심문의 악순환이 돌았고, 눈덩이는 커져만 갔다.
* * *
“숨길 것이 없다면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 제5열, 붉은 유태-볼셰비키의 수하들은 우리 사이로 숨어들지만 우리는 결단코 그들을 박멸할 것입니다!”
괴벨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라디오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제5열 박멸작전은 나치 정권의 기준에 따르면 성공적인 듯했다. 그들의 기준이 국민을 겁주는 데 있었다면 더더욱.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군부 내의 총통 암살음모와 관련해서 체포당했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각지에서 반체제 음모와 관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당해 심문을 받았다.
국방군의 전현직 장성들은 가족 단위로 증발해 버렸고,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최소한 그런 척했다.
“항상 적은 혼노지에 있게 마련이지.”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총통 각하?”
총통은 절레절레 손을 내저었다. 친위대원들은 그저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할 뿐이었다.
이제 총통에게 감히 반기를 들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럴 만한 배짱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모조리 끌려갔다. 꺾이는 자들은 풀려났고, 그럴 것 같지 않은 자들은 저기 제국의 동방 어딘가에 있는 ‘해결사’들에게 보내졌다.
물론 한때 총통의 총애를 받던 몇몇에게는 그런 잔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