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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03화 (103/300)

# 103

103화

독일이 수용소들을 운영하는 것처럼, 소련에서도 굴라그에 수감된 이들이 있었다.

대놓고 죽이겠다고 절멸수용소를 운영하는 나치 독일보다 한 끗 내지 반 끗 정도는 나았지만 그렇게 주장하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대체 몇 명이나 들어 있다고?”

“…대략 350만 명 정도로 추정됩니다.”

냉전 시대 서방의 사가들이 덧칠한 것처럼 스탈린이 수천만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백만을 가둬 두고 수십만을 죽인 살인자라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베리야는 허탈해하는 내 눈치를 보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비굴하게 웃었다.

“그중 흉악범이 아니라 정치범, 즉 석방 가능한 이들은 얼마나 되겠나?”

“예? 정치범 석방이라뇨?”

음. 안 되려나. 사실 짧게만 생각해 보아도 이들을 다시 전부 사회에 풀어 주자는 주장은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굴라그에 사람들을 처박아 버린 것이 아무리 소련 정부의 잘못이라지만 어쨌든 아직은 전쟁을 이끌어 가야 했다. 정부에 원한을 가졌을 법한 사람들 수백만을 바로 사회에 풀어 버리는 것은 너무 급진적이었다.

“언젠가는 그들도 사회로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나?”

“…서기장 동지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베리야, 자네는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간단한 일이 아닐세. 우리는 앞으로 표면상이라지만 제국주의 국가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것이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우리 발목을 잡게 해서는 안 되네!”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그제서야 베리야는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항상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을 개인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비난했다. 수용소나 비밀경찰 같은 체제 유지수단은 서방의 주요 비난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지금도 미국의 반소주의자들은 이걸 가지고 끝없이 소련을 비난하며 칭얼거리는 중이었고.

“자기네들도 일본인들을 굴라그에 처넣는 주제에 무슨 그리 할 말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들에게 괜히 트집 잡힐 일은 하지 마세나. 도덕적 우월함은 우리의 좋은 무기지.”

“역시, 서기장 동지의 혜안은 뛰어나십니다! 저희는 감히 그런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게나. 저들과 또 한 번의 열전을 치르면 얼마나 많은 인민이 죽어야 하겠나? 저들의 쏟아져 나오는 무기와 정면 대결을 하다니. 실로 끔찍하지 않은가? 총칼로 무릎 꿇리기보다는 도덕을 통해 유리하게 판을 이끌어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사회주의를 버릴 수는 없다. 사회주의는 소련의 정체성 그 자체니까.

하지만 앞으로 소련의 사회주의는 스탈린의 강철 권력으로 반대파를 찍어 누르고 불도저처럼 반대파를 밀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여야 한다.

우리가 사는 국가가 조금 덜 풍요롭고 없는 것이 있을지언정 더 행복하고 ‘좋은’ 나라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시베리아 개발은 전문 숙련 노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지. 굴라그의 생활조건 역시 완화하는 것이 좋겠어. 베리야, 자네는 군말 말고 따르게. 당장 식량 사정이 나쁜 것도 아니지 않나?”

계획상으로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평균적인 소련인 수준의 대우를 받으며 볼가부터 카자흐스탄 지역에 투입될 것이다. 최소한 시베리아에서 혹독한 강제노역을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언젠가는 이 지역을 개발해야 하는바, 개발을 위한 인프라를 깔기 위해서는 막대한 규모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보타주 우려 때문에 이들을 당장 군수 생산에 투입하지 못한다면 이런 쪽에라도 쓰는 게 나았다.

“그나저나… 하! 정말 시원하군!”

“과연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전선에서는 산발적인 힘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전쟁 지도를 멈추고 빙의 이후 처음으로 모스크바에서 나와 현지 시찰을 하고 있었다. 바로 볼가와 카자흐스탄 일대의 ‘처녀지’에.

지평선까지 뻥 뚫려 있는 평원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듯 푸릇푸릇한 신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눈길이 미치는 그 모든 곳까지 굴곡 하나 없는 대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문득 살짝 떨어져 나를 수행하는 흐루쇼프가 눈에 들어왔다. 내 눈초리를 받자 그대로 움찔하는 것이 아직도 겁을 잔뜩 집어먹은 것 같았다.

흐루쇼프가 주장했던 ‘처녀지 개간’은 개소리와 진실이 절묘하게 짬뽕되어 있어서 그렇지,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종자개량을 거친 밀은 이 지역에서 충분히 잘 자랄 수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흑토 지대만큼은 아니지만 토질도 좋았다.

하지만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곡물을 기껏 생산하면 뭐 하나? 그걸 먹을 사람들에게 실어 보낼 수 있어야지.

“이 드넓은 땅을 전부 이을 만큼 철도를 언제쯤 다 깔 수 있겠나?”

“최… 최대한 빨리 완수하겠습니다!”

지역 당서기는 사색이 되어 확 허리를 숙여 사죄했다. 굳이 불가능한 일을 당장 이뤄내라고 할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적당히 웃으며 손을 내젓고 말았다.

그러나 수송을 위한 철도는 반드시 필요했다.

실제 역사에서 이 지역은 워낙 넓은 데다가 인프라 자체가 거의 깔려 있지 않았다. 카자흐스탄에서 곡물을 유럽러시아의 인구 밀집지대로 실어 보내는 비용이 그냥 미국 곡물을 수입해 레닌그라드 쪽으로 하역해 보내는 것보다 비싸게 먹혔다.

“일단 우리 소련은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은 철도가 필요하네! 이 넓은 대지를 하나의 국가로 연결시키는 것은 오직 철도뿐이네!”

굴라그 수감자들을 시켜서 열심히 깔고는 있지만 최소한 수만 킬로미터는 더 깔아야 할 정도로.

철도가 있어야 지방의 물자가 중앙으로 올라올 수 있었고, 중앙의 통제가 지방에 효과적으로 미칠 수 있었다. 비효율적인 소련의 중앙집권은 사회 전반에 부패와 비효율이 만연하게 했고, 결국 제 몸뚱이조차 가누지 못하고 쓰러지게 했다.

“더 많은 철도! 더 많은 강철! 더 많은 기계! 이것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줄 것이네. 인민의 헌신과 피땀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 이제는 기계가 인민을 구원할 차례야. 인민이 흘린 피와 땀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인민을 위해 쓰이도록 해야 하네.”

“예!!!!”

나를 호위하는 엔카베데 요원들은 흰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요 얼마간 인민의 피땀을 착복한 것이 발각된 관료들은 ‘전통적인’ 굴라그로 끌려갔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누군가를 무서워해야만 했다. 그것이 국가의 주인인 인민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안 된다면 비밀경찰이라도 무서워해야겠지.

엔카베데의 정보력이 인민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감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다.

* * *

예컨대, 농기계와 비료가 너무 부족했다.

전쟁 때문에 그렇다는 변명은 가능했다. 트랙터와 콤바인을 찍어내야 할 공장들은 전차 공장이 되었고 비료 공장은 화약 공장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 다시 전환하겠지만. 기계와 산업화를 끝없이 외쳐 댄 소련이라도 아직 인력 및 축력(가축!)만으로 굴러가던 농가가 40%를 넘기고 있었다.

그 유명한 소련의 집단농장은 기계를 이용해 분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인력이나 말, 소 몇 마리 정도를 동원해 굴러가고 있었다.

이래서 비효율적일 수밖에! 누가 제 몸 상해 가면서 제 것도 아닌 땅에 농사를 짓고 싶어 하겠는가. 차라리 농기계를 몇 대씩 쥐여 주고 기계만 딸깍거리며 굴리라 하면 모를까.

“전쟁이 끝난 후의 일이겠지만, 농업용수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곳들을 중심으로 철도를 깔도록 하지. 철도 주변에 현대적인 저장시설도 설치하고.”

현지 관료들은 내 한마디 한마디가 신탁이라도 되는 양 열심히 받아적고 있었다.

비전문가인 내 의견을 이렇게 절대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튼 내가 뇌피셜로 생각해 낸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니 괜찮겠지?

“철도에 인접한 구획에 위치한 집단농장에 먼저 농기계와 비료를 분배하도록 하지. 비효율적인 곳에 균등한 지원을 한답시고 소중한 자원을 낭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먼저 효율 좋은 땅을 중심으로 농기계와 비료, 그리고 새로운 종자로 무장한 열성 당원을 투입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후 복구에 대한 청사진 속에는 이런 모습들이 다 들어 있었다. 농촌의 기계화, 비료 및 살충제의 공급, 새로운 종자의 도입, 대규모 농촌 주택 건설 같은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이미 전쟁 후를 바라보며 기획 단계에 있었다.

특히, 유전학자 바빌로프는 내가 지정한 난쟁이 밀을 개량하는 연구에 매진하는 중이었다. 이미 이탈리아 등지에서 개발이 되었으니 소련 환경에 맞추어 개량하는 정도는 빠르게 할 수 있겠지.

소련은 인구의 20%가량이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스스로 소비할 농축산물을 항상 충분히 생산하지 못했다.

부족분은 유럽에서, 미국에서 수입되었으며 끝까지 소련을 괴롭히는 목줄이 되었다. 단 5%대의 인구만으로 세계를 먹여 살리는 미국 농업과는 천지 차이가 있었다. 그중에선 일단 기계화가 주요 변수라 할 수 있었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선 소련이 국가적 역량을 모조리 털어 넣은 중공업을 활용해야 했다.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르게, 현대에 와서 농업과 중공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다. 소련 정도로 중공업에 편중된 사회에 이르면 어지간한 소비재는 수입으로 때우고 중공업에 계속 투자하는 것이 나을 정도로.

“현재 지역별 집단농장의 농기계 보유 현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농업부문을 담당하는 관료는 현지 시찰을 나온 나와 정치국원들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한 장 한 장 발표자료를 넘겨 갔다. 하위 행정구역의 콜호즈(집단농장)와 소프호즈(국영농장) 별로 가진 농기계의 수를 각종 도표를 통해 보여 주고 있었다.

딱 봐도 농기계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전쟁이 끝나고 3년 내로 이 땅을 뒤덮을 만큼 많은 농기계를 생산해야 할 것이네.”

“아….”

사람 수십 명이 달려들어 일하는 것보다 농기계 한 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

가축과 비교해서도 농기계의 파워는 압도적이다. 우리가 현대에 사용하는 허접해 보이는 경운기 엔진이 8~10마력이다.

이 시대의 농마(農馬)가 6~8시간 일할 때 1마력쯤 내니 경운기 한 대가 말 8마리 이상의 성능을 내는 것이다. 사람은? 지속적으로 일하는 능력으로 보면 0.1마력도 안 된다!

심지어 기계는 기름을 먹기는 하지만 말같이 까다로운 생물들보다 훨씬 손이 덜 간다.

동력원(트랙터, 경운기)에 보조장치를 붙이는 것으로 더 범용성 높게 활용할 수도 있고, 더 오랜 시간 일을 시킬 수 있다.

그리고 기계를 다뤄 본 사람들은 현대적인 업무에 다시 투입할 수 있다. 현재 소련군 전차병의 중추를 이루는 이들이 집단농장 출신으로 트랙터 운전을 하다 온 이들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농기계의 보급이 얼마나 산업사회에 필요한지를 알 수 있었다.

“물론 단순히 기계 생산에만 투자하면 안 되겠지. 그것으론 한계가 있어.”

본질적으로 군대를 경영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끽해야 몇백만 규모의 군대를 보급해 주는 것보다 규모가 몇십 배로 커지고, 또 훨씬 다양한 요소들이 개입된 것일 뿐.

정치국원들은 이를 잘 이해하고 있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들도 지겹게 해 봤으니 알겠지? 아니면 조금 더 일을 시켜 주지. 으하하하하하!”

“하, 하하하… 하하하! 그,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농기계를 공급하고, 정비할 수 있는 시설을 배치해야 한다.

시설이 있다면 인력도 있어야 할 것이고, 인력을 양성하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투자해야 할 분야가 증가했고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도 늘어났다.

다행인 점은 전쟁이 이를 돕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차가 대거 전장에 공급되며 차량 운전과 정비를 배운 병력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차후 산업현장에서 귀중한 역군이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일세! 전쟁은 비록 참혹한 비극일 수 있으나, 우리 소련 인민들은 전쟁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일세.”

보로실로프는 군략가로서는 빵점짜리였지만 군정가로서는 나름대로 기대 이상의 재능을 갖추고 있었다.

적백내전 당시 붉은 군대의 기병대를 지휘한 것이 부됸늬였다면 그걸 뒤에서 조직해 내고 군대로 만들어 낸 것은 보로실로프였다.

지금도 특수부대 스페츠나츠를 양성하고, 또 군대 내부의 지원병과의 양적,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 데에도 보로실로프는 톡톡하게 기여하고 있었다.

피 튀기는 전쟁 속에서 살아남은 전차병들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산업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군대에서 배운 재주를 가지고.

이 시대에 운전은 귀중한 재능이었다.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것 역시 엄청난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근대적인 전쟁, 우리가 겪고 있는 총력전은 아직 전근대 시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새로운 인간상으로 조직해 냈다.

한국 사회에서도 한때 군대는 그런 역할을 했다.

해 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 먹고 해 지면 자던 농촌 청년들은 5분, 10분 단위의 빡빡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군대의 스케줄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군대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해 좋은 노동자가 될 수 있었다. 군대의 작동 방식은 본질적으로 공장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내’ 조부님도 그랬었다.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할아버지는 하사관으로 재직하며 차량 정비를 배웠다. 그리고 군대에서 배운 가락으로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네 자식들을 길러냈고.

문득 아버지를 생각하니 그루지야 고리의 술주정뱅이 제화공과 인자한 회사원의 이미지가 겹쳤다 사라졌다. 그 기괴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 * *

“어쩌면 전쟁이 난 것이 잘 된 것일지도 모르지… 코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런가…?”

그날 저녁, 지역 당조직이 만들어 내 온 만찬에서 보드카를 몇 잔 들이켠 보로실로프는 얼근히 취한 표정으로 내게 그렇게 물었다.

나는 이 늙은 몸뚱아리의 건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반 잔 정도나 마셨지만 대부분은 부어라 마셔라를 반복한 끝에 곤드레만드레 취해 있었다.

전쟁… 실제 역사에서 독소전의 참혹함을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저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보로실로프는 다시 보드카를 한 잔 쭉 들이켰다.

“그래! 잘 됐지. 우크라이나 반동분자들도 한번 데어 보니까 깜짝 놀랐을걸? 집단농장화가 문젠가? 지금 저기서 우릴 다 싸그리 죽여 버리겠다는 새끼들이 바글바글한데….”

스탈린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두르며 불만 세력을 찍어눌렀다.

‘우리는 자본주의 열강에 한 세기에서 반세기 이상 뒤처져 있다. 10년 안에 이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주의 조국의 미래는 없다. 그들을 따라잡을 것인가 그들에게 잡아먹힐 것인가?’

1931년 스탈린은 저렇게 이야기했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고 굴라그로 끌려가고 굶어 죽었다.

하지만 진짜 딱 10년 만에 전쟁이 터진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었다. 보로실로프는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당장의 안락함을 위해 스탈린 동지의 혜안을 무시했지. 하지만 보아라! 우리가 옳았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쓰레기를 집어 던져 왔지. 하지만 봐! 시대의 바람이, 역사의 바람이 그걸 쓸어내 주겠지. 코바, 한 잔 받으라고.”

“….”

‘나’는 아마 실제 역사의 스탈린보다 훨씬 더 호의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실제 동부전선에서의 참극은 훨씬 규모가 줄어들었고, 소련의 국력은 더 효율적으로 성장했다. 나를 비난할 반공주의자들의 수괴, 처칠은 훨씬 강력해진 독일군이 노릇하게 구워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을 막아서는 것은 우리 소련뿐.

부분적으로는 문화―사회적 탄압과 감시도 줄였고….

아마 스탈린의 많은 과오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줄어들었으니 후대인들은 ‘나’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나름의 문제가 있었다.

스탈린 체제의 신화적인 성공은 후대 지도부들이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체제의 문제점이 도저히 숨길 수 없을 만치 두드러지기 시작한 80년대에 와서나 쭈뼛거리며 시작했지.

스탈린이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야 고르바초프 같은 개혁가들이 본격적으로 문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서툴고 나이브하게 접근하다가 소련을 해체시키고 말았지….’

노동자들과 인민의 피로 세워진 나라는 그 위에서 스스로 봉건 귀족이 되고자 했던 빈농의 자식들에게 해체당했다. 그리고 시작된 혼란.

내 머릿속의 건조한 기억을 떠올리다 보면 이상한 울분이 솟구쳤다.

‘이 세계에선… 스탈린 격하 운동이 가능은 할까?’

실제 역사에서 그걸 이끌었던 흐루쇼프는 내게 잔뜩 야단을 맞고 찍 소리도 못 하고 있었다.

끝까지 스탈린에게 충성할 몰로토프는 반쯤은 2인자 자리를 공인받았다. 무력을 손에 쥔 군부의 고급 장성들은 내가 직접 기용하고 출세시켜 주었기에 거의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다.

지금의 성공이 이후의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인민의 목숨을 가지고 실패할 수도 없는 노릇.

머리가 복잡해 보드카를 들이켰다.

그래, 내가 죽고 나서의 일까지 어떻게 책임지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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