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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101화 (101/300)

# 101

101화

부우우우웅, 부르르릉.

명령이 떨어지자 기갑부대가 요란하게 시동을 걸었다.

정전협상은 14일간으로 약조되어 있었으나, 정확히 몇 시에 끝난다는 것 없이 ‘~일에서 ~일까지’와 같은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쓰여 있었다.

상부는 그 점을 이용, 내지는 악용하고자 했다.

마지막 날의 저녁부터 전선의 전투부대들은 공세 준비를 마치고 각자 위치로 달려갔다.

12시가 되는 순간 정전이 끝난 만큼, 그때부터는 독일군을 공격해도 되는 것이었다. 포병과 로켓군 역시 사전에 관측해 둔 목표물에 정확한 조준을 마치고 발사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미리 계측해 둔 독일군의 진지, 특화점 및 야포 포대에는 불벼락이 쏟아질 것이었다.

“11시 53분에 발포한다. 반복한다. 11시 53분에 발포한다.”

“예! 대대장 동지!”

독일인들이 아무리 지금 내부적 사정으로 혼란스럽다고는 하지만, 비슷한 수를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기에 상부에서는 12시가 되기 조금 전, 일찍 발포할 것을 명령했다.

“독일이 따지면 어쩔 것인가? 전쟁 중인데.”

독일이 한 더러운 짓들에 비하면 7분 정도 일찍 공격을 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솔직히 발뺌만 해도 되었다. 우리 시계는 그때가 12시였는데? 라며. 뻔뻔하게 구는 데 장사 있겠는가.

병사들은 이를 앙다물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한 듯 동동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번 공세의 준비포격시간은 짧았다. 포병의 역량이 향상되어, 필요한 지점에는 충분히 짧은 시간 내에도 포격을 때려 넣어 줄 수 있다고는 하지만 독일군의 진지는 항상 그랬듯 견고했고 보병은 항상 그렇듯 나약했다.

누군가는 돌격소총의 손잡이를 꽉 쥐었고, 누군가는 로켓포 발사관을 마치 묵주를 들듯 감싸 잡았다.

“….”

정치위원은 병사들의 그런 ‘비과학적, 반소비에트적’ 태도에 대해서 이번만큼은 묵인했다.

죽고 나면, 무엇이 있을 것인가?

레닌 동지와 스탈린 동지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한 바 있었지만, 사후세계에 대해서는 별달리 교시한 바가 없었다. 병사들은 항상 그것을 궁금해했지만, 공산당의 노선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정치장교들이라고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펑, 퍼펑, 콰콰쾅. 휘유우우우우!!

포격이 시작되었다.

76mm 경야포의 빈약한 발사음이 아니라 묵직하고 거대한 발사음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비명 지르는 듯한 300mm 중로켓이 날아가며 어둑어둑한 하늘을 밝게 타오르는 빛으로 수놓았다.

도무지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은 포탄과 로켓과 미사일들. 저걸 얻어맞아야 하는 독일군이 어쩐지 불쌍했지만 그들 역시 기관총과 대포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기관총과 대포 역시 소련군을 찢어놓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돌격은 정확히 한 시간 삼십칠 분 이후에 시작된다. 현재 시각은 12시 3분이므로 각자 가진 시계를 내 시계에 맞추어 놓도록!”

“예!”

니콜라이는 트럭에 앉아 초조하게 다리를 떨었다. 몇 번이나 전투에 참가했지만 전투 전에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선임 분대장으로 트럭에 빼곡하게 차 있는 열아홉 명의 병사들을 이끌어야 했다. 하급 병사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는 것을 깨달은 니콜라이는 애써 명랑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이봐! 다들 뭘 그렇게 쫄아 있는 거야!”

“분대장 동지도 쫄아 있는 것 아니셨습니까?”

저만치에서 한 병사가 그렇게 말하자 트럭 안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와락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조금 낫구만. 웃음은 공포를 몰아내는 좋은 친구였다.

물론 이 친구는 쉽게 떠나가고, 그다음에 오는 것은 복종, 혹은 광기.

병사들은 내려진 명령만을 생각하며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앞으로 뛰어가거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광기에 들려 미친 듯이 뭔가를 외치며 총질을 해대곤 한다.

신병들은 주로 그렇게 죽었다.

운이 좋아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면 웃음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배우게 되었다.

어떻게든 우스운 점을 찾고, 메스꺼운 농담에도 웃으려 노력하다 보면 상이용사가 되거나, 전장에서 썩어 가는 시체, 혹은 운이 좋다면 부사관이나 장교가 될 수 있었다.

“포탄에 맞으면 그 힘 때문에 몸은 산산조각 나고, 아예 핏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이거지? 아, 사실 그게 네 것인지 남의 것인지 알 수도 없다고. 하하하하!”

“으….”

“푸하하하하하핫!”

“너는 그쯤 해 둬라. 괜히 겁먹게들.”

한 고참병은 양옆에 앉은 신병에게 전장에서 포탄에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양한 형용사와 손짓발짓을 곁들여 설명하다가 니콜라이의 꾸중을 들어야 했다.

고참병들은 낄낄 웃으며 얼굴이 하얘진 신병들을 더더욱 얼어붙게 했다.

“뭐, 너무 걱정들 하지 마. 죽을 놈은 뭔 짓을 해도 죽고, 안 죽을 놈은 뭔 짓을 해도 사니까.”

“분대장 동지… 그다지 도움이 되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도움 되라고 한 말은 아닌데?”

크하하하하하핫, 끄윽, 푸훕.

고참병들은 다시 왁자지껄한 웃음을 터트렸다. 신병들 중 하나가 저어하다가 무언가를 물어보려 하는 듯했지만, 시동을 걸고 대기 중이던 트럭이 부르릉하는 엔진음을 터트리며 이동하기 시작해 신병은 다시 움츠러들었다.

트럭 수십 대가 눈 덮인 평야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다지 빠른 속도가 아님에도 휙휙 지형지물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덜컹, 덜컹, 트럭은 흔들렸고 병사들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자들, 품속에서 사진이나 편지를 펴 보는 이들, 그리고 한가롭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담배를 쭉 빨아들이고는 꽁초를 밖으로 내던지는 고참병 하나.

“각자 임무는 숙지하고 있겠지?”

“예!”

“그럼 됐다.”

신병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저렇게 긴장하면 제 일을 못 할 텐데… 어쩔 수 없지.

기관총이나 로켓포 같은 중화기들은 어느 정도 전투를 겪어 보고 실전경험이 있는 고참병들 위주로 배분되었다.

신형 돌격소총도 한 번 정도는 전투를 겪어 본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지급되었고 생짜 신병들은 구식 모신나강이나 SVT―40을 들고 있었다.

무전기에서 이제 하차하라는 교신이 도착했다. 적이 충분히 가까워진 것 같았다. 병사들은 우르르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기관총 사수, 부사수, 탄약수까지 문제없지?”

“예! 분대장 동지!”

“내가 죽으면… 저쪽 분대장이 선임이다. 알겠냐?”

“예!!!”

하이고, 목소리는 더럽게 크네.

내가 죽는다는 소리를 하니까 대답이 커지는 게 괘씸한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니콜라이는 분대원들을 인솔해 명령이 내려진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포탄이 파 놓은 구덩이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중대장은 여전히 용감한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의 전투를 경험했을까?

독일인들의 진지는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2주란 시간을 준 게 잘못일까?

‘윗분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기관총의 십자포화에 걸린 소대 하나가 증발했다. 조금 많은 잔해를 남기고.

니콜라이의 분대에 들어온 신병들은 그 광경을 보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잘 은폐된 채로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발톱처럼, 기관총이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는 불운한 소련군들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았다. 기관총 진지는 곧 박격포탄이 날아들어 박살을 내버렸지만 통상적으로 그런 진지에 배치된 인원은 대여섯 명이나 될까.

대여섯 명을 잡아내기 위해 박격포 십여 발을 발사하고, 결국 뒤에서 76mm 야포까지 끌고 와 몇 번이나 사격을 해야 했다.

종국에 진지를 박살 낸 것은 결국 박격포였지만, 저들이 만든 진지를 넘어가면 다시 그 뒤로도 몇 개나 될지 모를 기관총 진지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전장의 신이라던 포병들은 자기네들끼리의 혈투를 벌이는 데 정신이 팔려 보병의 진격에는 딱히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독일 포병대가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만 해도 어디냐 싶겠지만 항상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법.

하지만 소련군은 지금 정도인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그래도 슈투카가 없는게 어디야… 안 그런가?”

“그… 그렇군요.”

운이 좋게도 아직 슈투카는 니콜라이가 있는 전장 쪽으로 날아오지는 않았다.

항공전력만큼은 독일이 압도적으로 우세한데, 그것이 전장에 없다면 당연히 유리한 쪽은 소련이다.

부족한 항공전력을 보충하기 위해 대공화기를 최대한 편제한 소련군은 이제 비행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병을 갈아 버리기 위해 대공화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투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타!

지금도 저만치 멀리에서는 보병전투차에 실린 대공기관총이 독일군의 기관총 진지 위로 마구 총탄을 긁어 대고 있었다. 대공포 역시 직사포로 동원되어 보병들의 머리 위로 포격을 퍼부었다.

쿠콰쾅! 쿠콰쾅!

중포의 압도적인 포격음이 터져 나왔다. 포탄은 허공에서 폭발해 독일 진영의 저편에서 쾅 하고 파편을 흩뿌렸다.

“으으, 끔찍하군… 신이시여 저들을….”

어떤 병사가 중얼거렸다.

니콜라이 역시 저런 포격의 끔찍함을 잘 알고 있었다. 가끔은 포탄에 직격당해 사망하는 불운한 이도 있지만, 포격은 대부분 파편을 흩뿌려서 사람을 죽여 댔다.

그리고 그 파편을 터트리기 위해선 주로 땅에 떨어져 터지는 방식을 사용했지만, 오함마에서 쏘는 거대 포탄은 저렇게 허공에서 터져 더 넓은 범위에 효과적으로 파편을 뿌렸다.

땅에 박혀서 터진다면 폭발의 많은 부분은 땅으로 들어가 흡수되었으나 허공에서 터지면 온전히 폭발의 힘을 사람에게 꽂아 넣는다던가?

“휘유….”

병사 하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 녀석은 아직 슈투카의 무서움을 맛보지 못해서 그런가, 전장이 항상 이렇게 쉽고 편한 줄 아는 것 같았다.

“야! 우리 때는 말이야….”

“우리 때는! 전차도 구닥다리 카베 전차에 그마저도 얼마 없고, 보병전투차는 개뿔이, 저거 다 ‘경전차’였는데 별 쓰잘데기도 없었고! 하늘에서는 슈투카랑 전투기들이 날아다니면서 아군 전투기는 다 격추당해서 떨어지고!”

니콜라이가 그렇게 썰을 풀자 신병들은 흥미로운 듯 그의 이야기에 몰두했다.

고참병들은 하, 그랬던 때가 있었지 하는 식으로 떠들며 몇 달 되지도 않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았다.

로켓포로 적의 전차들을 몇 대나 잡아낸, 훈장까지 받은 니콜라이가 이제야 조금 위대해 보였는지 신병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심하며 니콜라이의 무용담을 들었다.

사실 고참병들도, 살아남기는 했는데 니콜라이만큼 위대한 전과를 올린 적은 없었기에 아닌 척하면서도 귀를 기울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알아서 몸조심들 하고, 괜한 공명심에 헛짓거리하지 마라. 알겠냐?”

“예!”

아니, 이런 반응을 기대한 적은 없었는데…. 신병들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겠지! 라는 기대와 용기로 가득 차 당장이라도 돌격할 것 같았다.

소대장과 정치위원은 흐뭇한 눈초리로 전투의지에 불타는 병사들을 보며 니콜라이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주 좋아!

하지만 니콜라이는 자신이 없었다.

분명 그는 전차를 격파하기는 했다. 하지만 훈장을 수훈할 만한 전과는 죽었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를 볼로쟈 병장이 세운 것이었고, 기왕에 훈장이 손에 들어온바 진짜 인민영웅처럼 행동하기로 마음먹기는 했지만….

그가 한 말 때문에 병사들이 죽는다면? 새파랗게 어린 이 신병들이? 저 앞에 가던 부대가 돌격을 외치며 달려나갔다. 니콜라이는 생각을 멈추어야 했다.

“돌격! 돌격! 소비에트 우라!”

“우라! 우라!”

병사들은 함성을 외치고는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능선을 넘어가려다 힘없이 무너지는 병사들, 토카레프 권총을 하늘에 쏘며 독전하는 중대장과 정치위원. 뒤편에서 쏘아대는 포탄의 콰쾅거리는 발사음이 합주곡처럼 울려 퍼졌다.

뜬금없이 의무병 소녀가 떠올랐다.

‘카티아, 카티아 파블로브나라고 했었지.’

앞장서서 달려 나가며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이 정도 용기면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 달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힘찬 함성의 그의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우라! 우라! 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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