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100화 (100/300)

# 100

100화

하이드리히 암살 성공 이후 코민테른은 각국의 공산당에게 전면적인 투쟁을 명령했다.

[소련의 소리에서 알려 드립니다. 미국과 소련의 합작으로 파쇼들의 비밀경찰은 그 머리를 잃었습니다. 프라하의 교수인,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를 위대한 인민 대중이 처형한 것입니다. ]

“그자가 죽은 게 진짜인가?”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체코에서 날아오는 방송을 들어 보면….”

유럽 각지의 공산당원들은 위장된 동네 헛간이나 건물의 옥탑방 같은 곳에서 단파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수군거렸다.

독일인들이 적잖이 동요하는 중인 것은 사실이었다. 건물의 청소부나 급사로 숨어 들어간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그들이 매일 불안하게 수군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단파 방송이 위장이라면….”

“그건 아닐걸? 암호책에 따라 방송된 내용이 맞는데?”

“그런데 대체 어디서 방송을 하는 거지? 거점이 있다면 방송을 추적한 파쇼 놈들이 습격했을 텐데….”

레지스탕스들은 알 수 없었다. 동유럽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서유럽 국가마다 전쟁의 소식과 소련의 입장 등을 알리는 방송국이 하나씩 존재해 지하방송을 송출했다. 또, 언젠가는 수만 마르크에 이르는 돈뭉치를 던져 주고 가기도 했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같은 공산당임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신출귀몰한 소련의 행각에 이들은 감탄할 뿐이었다.

“맞다면… 진짜 때가 온 것인데?”

“하하하하, 돼지 같은 독일 파쇼 놈들. 주인이 없어지니까 겁에 질려 꿀꿀대는 꼴이라곤!”

프랑스 공산당은 크렘린의 장녀라는 별명답게 가장 적극적이고 강력한 무장 투쟁을 벌였다.

이미 비시의 고관들 중 암살시도를 당해 보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국가수반인 페탱 원수 역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겨야 했다.

대중들은 페탱 원수의 친독노선을 이해하면서도 경멸했으며, 프랑스의 아들들을 독일인의 명령하에 집어넣어 동부전선으로 파병하겠다는 결정에는 대대적인 반발을 했다.

이 뒤에는 레지스탕스의 연합전선이 있었다. 구 군부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우파 레지스탕스 조직과 시민, 대학생, 청년들 사이에 촘촘한 점조직을 만들어 둔 공산당은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협력했다.

“우리는 독일의 전쟁에 가서 죽지 않겠다! 프랑스 청년들이여 궐기하라!”

“일어나라 조국의 아이들아, 영광의 날이 왔도다!”

징병을 거부하는 청년들에 의해 각지의 헌병 주재소들이나 사무소들이 습격당했다. 틈만 나면 사제 폭발물 한 뭉텅이가 각종 관공서로 날아들었다.

심지어 어린애들마저 다 먹은 도시락통을 관공서로 던지며 어른들이 혼비백산하는 것을 깔깔거리며 지켜보았다. 물론 국가헌병대와 독일 비밀경찰들은 이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하지만 페탱 원수 역시, 독일인들이 프랑스에서 프랑스인과 전쟁을 벌이는 꼴을 좌시하려 하지는 않았다.

“프랑스군을 동부전선에 파견하는 결정을 저희 내각은 철회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무슨 폭거요! 페탱 원수! 그때 한 약속을….”

“하지만 프랑스군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의용군’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징병을 거부하는 청년들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자들로 군대를 꾸리는 것입니다.”

독일 군정청 사령관 디트리히 콜티츠는 페탱의 제안을 고심했다. 분명 지금의 사회 불안은 독일에 대한 거부감뿐만이 아니라 징병에 대한 거부감까지 같이 섞여 있기에 초래된 것이었다.

결국 생각을 마친 콜티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습니다. 프랑스 군에서도 자원할 사람이 많이 있겠지요?”

“내 그 점만은 약속하겠습니다.”

불만이 있어도 명령에 따를 장교들과 부사관들을 일부 차출하여 ‘의용군’에 참여시키고, 훈련은 덜 되었지만 의욕이 있는 자들을 모으면 병력을 어느 정도 채울 수는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상범으로 잡혀 들어온 이들이나 일부 범죄자들까지 감형을 미끼로 의용군에 몰아넣는다. 그것이 비시 정부의 계획이었다.

어차피 독일은 얼마 이상의 머릿수를 채울 것을 요구했지, 질적으로 얼마 이상의 군대를 보내라고 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프랑스 입장에서는 머릿수만 적당히 맞추어 보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들이 독일인들을 사보타주하든지, 아니면 소련으로 탈영하든지 그게 우리 잘못인가?

* * *

프랑스인들이 테러와 파괴행각을 선호했다면, 영국인들은 기행의 민족이라는 별명답게 이상하고 창의적인 짓들을 저질렀다.

영국 공산당, CPGB(Communist Party of Great Britain)은 아주 창의성이 뛰어났다. 이들은 주로 지역의 클럽에 숨어 앞에서는 협력하는 척하며 뒤에서는 엿을 먹였다.

“자, 자… 준비하고… 던져!”

“하나, 둘, 셋! 발사!”

둥실, 기구들이 떠올랐다. 밤하늘 사이로 희미하게 멀어져 가는 기구를 보며 포트 탈보트 퓨질리어 클럽 회원들은 낄낄 웃으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검게 칠해 둔 기구들은 곧 어두운 하늘에 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고, 회원들은 트럭에 하나둘씩 올라탔다. 부르릉, 트럭은 매연과 엔진음을 내뿜으며 덜컹거리며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 곧 사라졌다.

이들이 날린 기구는 굉장히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풍선에 가스를 채우고, 아래에는 벽돌이나 적당히 무게추가 될 만한 것을 매달아 기구가 적절한 높이로 날아가도록 조절한다. 그리고 기구와 무게추를 철사로 연결한 아주 간단한 구조였다.

“하… 신이시여! 또 합선이라니!”

“자네들은 대체 발전소 경비를 어떻게 한 건가?”

이 물건은 아주 간단했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바람을 타고 날아간 ‘기구’는 발전소와 전선을 끊어 먹고 합선시켜 전력 생산을 마비시켰다.

철사가 전선에 파고들면 합선이 일어나기 일쑤였고, 이렇게 합선이 발생하면 나치가 점령해서 생산시설로 쓰고 있는 공장들을 중단시킬 수 있었다.

가끔은 발전소에 화재를 일으키는 데 성공하기도 했는데, 독일은 그래서 안 그래도 부족한 구리를 이런 전력시설을 보수하는 데 사용해야 했다.

“빌어먹을, 본국에서는 총포탄을 만드는데도 구리가 부족한데 우리는 여기서 전선 끊어먹고 구리를 보내 달라고 해야 하다니. 자네들 이렇게 하면서도 모가지가 온전할 것 같은가?”

“송구합니다….”

인근 야산에서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충 만든 물건으로도 전략 시설들을 때려 부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독일군은 대공기관총으로 수상한 물체들을 모조리 쏴 버리기 시작했다.

“그냥 쏴 버려! 씨발!”

투타타타타타타타! 타타타타타!

발전소 근처에 거주하는 기술자들이나 경비를 위해 차출된 병사들은 밤마다 들리는 총소리에 한숨도 못 잤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상부의 눈초리 때문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물론 영국인들이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흐흐흐흐… 이게 제놈들 눈깔에 보일까 몰라?”

“아무튼 던져! 우리 손해 보는 건 없어!”

영국인들은 다시 야밤에 검은색으로 기구를 칠해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카운터를 먹였다.

또 한 번의 발전소 사고 이후, 독일인들은 욱신거리는 정강이를 붙잡고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녀야 했다. 전기를 끊어 버리는 것으로 공장을 멈춰 세우고, 공장이 멈추면 생산성은 그 몇 배로 손해를 보아야 했다.

징발된 노동자들은 은근히 태업을 하는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했고, 독일인 감시자들은 악을 쓰며 이들을 갈궈야 했다.

“어우… 근데 왜 이렇게 속이 안 좋지?”

“그러게? 영국 놈들, 어떻게 이런 걸 처먹고 사는 거지?”

[병사들은 전원 의무실로 집합하라. 반복한다. 병사들은 전원 의무실로 집합하라.]

주요 공장마다 감시와 경비를 위해 수십 명의 독일인 병사들이 배치되어야 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인력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동부전선을 담당하는 참모본부에서는 히스테리를 부렸지만 별수가 없었다.

그리고 영국인들은 이들을 상대로 기상천외한 테러리즘을 저질렀다.

“장… 장티푸스란 말입니까?”

“아니, 그게 왜 여기서 돕니까?”

“개만도 못한 영국 놈이 사보타주를 저지른 것일세!”

영국 주둔 독일군을 위해 일해야 했던 한 영국인 요리사는 장티푸스에 걸린 자기 옆집 사람의 대소변을 가지고 와서 독일군의 짬밥에 섞어 넣었다.

이 시도는 짬밥에서 이상한 맛이 나서가 아니라 병영에 장티푸스가 돌고 위생실태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이 가해지며 발각되었다.

“이 반역자 새끼를 끌고 가!”

“퉷, 좆같은 독일 새끼들. 눈치는 또 빨라 가지고….”

요리사는 결국 가족들과 함께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영국인 보조원들이 해 주는 밥을 먹어야 하는 많은 독일인 병사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씨발! 저기에 뭐가 들어 있을지 알고 저걸 먹습니까?”

“맛도 좆같은데 진짜로 좆같은 게 섞여 있는 것 아닙니까?”

몇몇은 급식 거부를 했고, 결국 총을 든 병사들이 조리실을 지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들은 식재료를 흙 묻은 신발로 밟거나 고의적으로 더러운 손으로 조리를 하는 등 사보타주를 가했다.

* * *

“…와 같은 보고들이….”

“멍청한 놈들.”

총통은 나직하게 그들을 질책했다. 준동하는 저항세력들은 독일제국의 생산력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두 가지를 놓고 딜레마에 시달려야 했다.

‘아리아인’, 그러니까 독일인은 많은 점에서 나머지들보다 우월했다. 독일인 군인들은 동맹국 군인들에 비해 압도적인 역량을 자랑했고, 충성심이나 체력, 그리고 의지와 감투정신 측면에서 훨씬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 주었다.

또한, 독일인 노동자들은 학대당하며 일하는 열등인종 노예노동자들이나 사보타주에 시달리는 동맹국 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비해 훨씬 높은 생산성을 자랑했다.

그러나 제국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했다. 더 많은 독일군 병사를 전선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독일인 노동자의 숫자는 필연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는 전우들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기에 전선의 장병들과 지휘관들은 더 많은 독일인 보충병을 원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보급과 물자를 요구했다. 양자가 서로 상충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전선의 요구를 맞추어 주기 위해 노예노동자들에게 3교대 근무를 강요하고, 열등인종에게 돌아갈 배급을 최소한으로 줄여 물자를 짜내고는 있었지만 그렇게 한다고 보급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크롬과 철광의 수급이 어렵습니다, 총통 각하. 터키는 소련과의 휴전 이후 크롬 광산을 소련군에게 장악당했으며 스웨덴은 소련의 강력한 압박과 내부 파업, 사보타주로 철광석 수출을 점차 줄이고 있습니다. 이를 어떻게….”

보급은 대략 세 단계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원료의 수급, 물자의 생산, 그리고 전선으로의 전달.

그리고 작금의 독일은 세 단계 모두에서 곤란을 겪고 있었다.

석탄, 알루미늄, 마그네슘같이 독일 내에서 생산되는 원료들은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터키와 발칸 반도를 모조리 소련에게 상실하며 크롬의 공급이 끊겼고, 핀란드 전선이 교착상태가 되고 북부집단군이 후퇴하면서 스웨덴이 소련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립국의 지위를 악용하여 독일에게 철광석을 팔아먹던 그들이 슬슬 미국과 소련에게 알랑거리며 생산비가 올랐다고 철광석 가격을 살금살금 올리질 않나, 노동자들이 파업한다 갱도가 무너졌다 하며 공급 물량을 줄이질 않나.

독일이 사용하는 철광석의 3할가량은 스웨덴산이었는데, 이쪽의 공급이 오락가락하니 군수부는 생산계획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하향 조정해야 했다.

물자의 생산은 노동자들의 사보타주로, 전선으로의 전달은 부족한 트럭 및 수송수단과 개판이 난 현지 도로 및 철도 사정으로 인해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혁신적 수단은 도저히 감도 잡히지 않았다.

제3제국의 최고 두뇌들이 이 일에 뛰어들었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크롬 비축분은 이제 16개월이 남았을 뿐입니다. 이는 현재 생산량을 가정한 상태이며 군수물자의 생산량이 증가한다면 그 이하로….”

“지금이라도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어떻게….”

특히, 크롬의 문제가 그러했다.

크롬은 산업의 비타민과 같아 소량이 필요하지만 그 소량이 없다면 산업은 전체적인 기능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마모성 베어링, 전차나 항공기의 강판 및 장갑재, 엔진 등에 크롬이 없다면 질적인 하락은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크롬은 크게 세 곳, 소련, 영국령 아프리카, 그리고 터키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며 세 곳 모두 독일의 손에서 벗어나 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체품으로 쓰던 발칸산 크롬 광석의 공급마저도 파르티잔들의 활약과 불가리아의 배신으로 끊겼기에 독일은 이제 철저하게 비축된 크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비축분이라고는 고작 16개월 분량. 16개월 만에 소련의 숨통을 끊고 발칸 파르티잔들을 짓밟고 터키까지 가려면… 국방군의 장군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총통은 그들을 짜증 난다는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별안간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네놈들까지 모조리 수용소에 쳐넣기 전에 내게 승리를 가져오란 말이야! 무능한 새끼들, 반역도 놈들. 저 러시아 열등인종들을 짓밟으라고!”

이제 곧 결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5월이 되어 땅이 굳어지면 더 이상 전투를 회피할 명분이 없었다.

장군들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총통의 분노가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