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99화
하이드리히의 사망 소식은 빠르게 알려졌다.
“프라하에서 하이드리히가 죽었다!”
소식은 늘 그렇듯 발 달린 말보다 빨라 사건이 발생한 지 수 시간 만에 베를린으로, 모스크바로, 그리고 그 밖의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프라하의 사형집행인이 죽었다. 독일의 총독이 죽었다!”
제3제국 치하에서 숨죽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쾌재를 불렀다.
저격총 한 방에 골통이 터져 나갔다더라, 용맹스러운 레지스탕스들이 그를 공개적으로 처형했다더라. 이제 나치의 고관들은 하나하나 죽어 나갈 것이며 독일은 머리를 잃고 몰락할 것이다!
하이드리히의 머리통이 터져 버린 것처럼. 하하하하!!
레지스탕스들은 삐라를 뿌렸다. 어디서 입수했는지, 턱과 얼굴 반쪽만이 남은 채로 흉물스러운 꼴을 한 채 수습되는 그의 사진이 삐라에 나붙어 돌기 시작했다.
“독일 놈들을 모조리 이렇게 만들어 버리자!”
파리에서, 런던에서, 로마와 마드리드에서 비슷한 범죄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저항조직들은 독일군이나 그들에게 협력한 자를 납치해 처형하며 왼쪽 머리통에 연속으로 총질을 해대 반쪽을 걸레짝으로 만든 채 시체를 유기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끽해야 제대로 된 경호를 받을 일이 없는 하급 관료들이나 말단 독일군들이었지만 이 잔혹한 살인은 명백한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었다.
‘꺼져라. 죽거나.’
* * *
베를린의 총통 관저에서 총통은 진실로 오래간만에 발작적으로 고함을 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반역자 새끼들! 모두가 반역자들이야! 다, 다 싸그리 잡아 죽여야 해!”
“….”
모여 있는 총통 친위대원들은 다들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많은 이들은 하이드리히의 고속 출세를 질시해 왔다.
이제 그가 독점하고 있던 으리으리한 관직들이 나눠져 내려올 것인바, 많은 친위대원들은 그의 죽음에 그다지 아쉬움이 없었다. 다만 하이드리히가 가져오던 정보를 지극히 소중하게 여기며, 그를 아끼던 총통이 발광하는 것에는 조금 짜증이 날 뿐.
총통은 숫제 이것을 무슨 거대한 음모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배후의 적, 배후에서의 중상. 그것에 대한 공포 때문에 총통은 늘 국방군과 독일 사회 전체를 감시하고 싶어 했다.
감시작업의 총책임자이자 비밀경찰의 총수였던 하이드리히가 살해당한 것 역시 체코인들의 테러리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제3제국의 깊숙이까지 뻗어 있는 어둠의 조직이 개입한 것이라고 총통은 믿는 듯했다. 그리고 총통이 ‘어둠의 조직원’으로 지목한 이는….
“아프베어, 그 새끼들이 반역에 개입해 있어. 라이헤나우도 그놈들이 죽인 게 틀림없다. 반드시 그놈들을 처단해야 해! 무장친위대는 지금 몇 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지?”
“총통 각하!”
“입 닥쳐! 닥치라고! 지금 동원할 수 있는 사단이 몇 개냔 말이다!”
“…당장 베를린 인근에서는 4만 명가량을 동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규 사단 2개와 사단 이하급 조직들을 다 합쳐….”
아프베어와 같은 방첩조직들은 단순히 병사의 머릿수로 찍어누를 수 있는 조직이 아니다.
누가, 그리고 어디서 그들에게 포섭당했는지 알 수도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그저 체포할 수 있을 것인가?
차라리 이 일은 수뇌를 잃은 게슈타포한테 맡기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물론, 그들마저 포섭당하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저렇게 모든 이들이 ‘어둠의 조직’의 손아귀에 들어 있다고 믿을 것이면 대체 우리를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뭐지?’
몇몇은 그렇게 조소했다.
하지만 친위대의 제국지도자, 힘러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총통 각하 만세!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저희 SS만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이 반란을 진압해 보이겠습니다! 하일 히틀러!!!”
우렁찬 목소리로 나치당식 경례를 붙인 그는 속사포처럼 명령을 내렸다.
“당장 사단들을 호출하게! 베를린을 포위하고 어떤 놈도 빠져나가게 놔둬서는 안 돼!”
“예! 각하!”
몇몇 친위대원들이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총통의 집무실에서 달려나갔다.
분이 가시지 않는 듯이 총통은 쾅쾅 발을 구르며 고함을 쳤다.
“한 놈도! 한 놈도 남겨 두지 말고 모두 잡아 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쓰고 있던 안경을 내팽개친 그는 부관에게 명령했다.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베를린 경비 연대에게 연결하게. 그들이 진짜 국가에 충성을 바치는지, 아니면 배후의 반역자들에게 충성하는지 알아보도록 해!”
“예! 총통 각하!”
국방군 내 최정예 사단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은 SS 부대들을 제외하면 베를린 근교에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무력집단이나 다름없었다.
나머지 부대들은 보병의 행군 거리로 따지자면 최소 12시간은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들의 충성은 상관없이,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과 SS 사단들만을 동원하여 베를린을 제압한다는 것은….
‘친위 쿠데타?’
참석자들 중 둔한 이들은 조금 늦게, 그리고 기민한 이들은 즉시. 모두가 이것이 쿠데타임을 직감했다.
이미 나치당은 한번 수백 명에 이르는 반대파를 모조리 잡아들여 처형하고 유배시킨 전적이 있었다.
그때의 타겟은 돌격대를 중심으로 하는 나치당 좌파나 정계의 보수세력이었고, 이번에는 국방군 최상층부일 뿐. 총통은 이미 룬트슈테트와 할더를 비롯한 최고급 장성들 몇 명을 갈아치웠지만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듯했다.
거대한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총통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명령서를 작성했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을 체포할 것. 육군 원수 에르빈 롬멜, 해군 중장 빌헬름 카나리스….
흘끗 총통이 적어 내려가는 이름을 본 친위대원 하나가 허억! 하고 기겁을 했다.
‘롬멜? 카나리스?’
“이자들은 반역을 꾀했네. 하이드리히는 내게 그 반역의 사실을 알리려다 사살당한 것이 틀림없다! 라이헤나우가 죽어 버린 데에도 이들의 음모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모조리, 모조리 잡아들여 심문하게.”
“예! 총통 각하!”
이제 폭력이 지배하는 밤이 왔다.
지난 숙청이 장검의 밤이었다면 이번에는… 칼날의 숲 정도는 되려나.
‘벌써부터 겨냥한 자들이 국방군의 최상층부, 그것도 총통이 지극히 총애하던 롬멜 원수와 방첩국의 수장인 빌헬름 카나리스라면… 이들과 엮여 들어올 자들은 누구인가?’
누군가 으… 하는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이 사건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 * *
“와, 히틀러 진짜 미친 것 아닌가?”
“작전이 너무 성공해 버린 것 같습니다, 서기장 동지.”
대표적인 친나치 군인 중 하나인 라이헤나우는 역사대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자리는 그 유명한 스탈린그라드의 사령관, 파울루스에게 넘어갔다.
실제 역사라면 그가 있어야 할 남부집단군 사령관 자리에는 모델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그는 6군 사령관으로 죽었지만, 열렬한 나치당원인 고급 군인이 하나 죽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하이드리히가 암살당했다.
“라이헤나우는 우리가 건드린 게 아니지 않나?”
“예. 저희도 딱히 무엇을 한 것은 없습니다.”
히틀러는 이를 정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뭐, 내가 히틀러에 대한 쿠데타를 기획했더라도 국방군 내 친나치 세력들을 하나하나 찝어낸 이후, 정보조직을 무력화시키고 나치당에 대한 참수작전을 진행하는 식으로 했겠지만….
우리에겐 호재고, 저들에겐 문제인 점은 실제로는 별게 없었다는 것이다!
쿠데타군에게는 직접적인 물리력이 없었다. 아프베어가 거느린 무력조직은 없다시피 했고, 차라리 SD가 가진 치안경찰과 비밀경찰 병력이 훨씬 많을 지경이었다. ‘연루’ 된 ―것처럼 보이는― 국방군 고급 장성들 역시 직접적으로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은 거의 없었다.
딱 까놓고 생각해 보자. 쿠데타를 위해서는 세 가지 종류의 군인들이 필요했다. 얼굴마담을 해 줄 최고위층 장군, 실세 노릇을 하며 병력을 동원할 사단장~여단장급 장군들, 그리고 직접 병력을 이끌고 수도로 진입할 연대장이나 대대장급 실무 책임자들.
저 ‘음모자’들 중 최고위층은 몇몇 끼어 있었다. 아프리카의 정복자 롬멜 원수라면 나치 정권을 끝장내고 새 정권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인물이기는 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종류가 극히 부족했다.
당장 베를린 근교에 있는 부대들은 나치당에 대한 광신적인 충성심으로 무장한 SS 부대들이나 연대급 병력인 그로스도이칠란트 사단 정도.
이들을 장악하지 못하는 이상 쿠데타가 성공할 확률은 0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것을 히틀러도 모르지 않을 텐데 이렇게 편집증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대체….
“이거, 너무 고맙군 그래! 한동안 저쪽도 시끌시끌하겠군? 육군 고위층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벌어져 줬으면 훨씬 더 고맙겠다만….”
롬멜, 만슈타인, 구데리안, 모델, 그리고 군인은 아니지만 슈페어까지.
이 다섯 명 중 한 명은 아쉽고, 두 명이면 그럭저럭이고 세 명 이상이라면 크나큰 호재다. 여기에 아프베어는 갈려 나갈 것이 뻔하고, SD는 조직이 갈가리 찢겨 나가는 와중 업무에 차질을 빚을 것은 명약관화니….
“이제 우리가 작전을 벌일 때이네. 공세는 준비가 되었는가?”
“예! 서기장 동지. 2주간의 휴식으로 저희 장병들은 최선의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었지만 소련군은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보급과 정비를 받아 작전을 위해 완벽한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마침 날씨도 점점 나아지면서 땅도 굳어지고 있었다. 공세에 딱 적절할 정도로.
“파쇼 군대는 여전히 보급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영웅적인 파르티잔들과 특수부대원들의 게릴라 전투 덕에 전방에 전해지는 물자는 필요량의 8할 전후라고 합니다.”
“으음… 더 낮출 수는 없겠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물론 말이 8할이지 전투력은 8할 미만으로 추락했을 것이다. 20퍼센트의 물자가 없다고 딱 모든 것이 균등하게 없는 것은 아니니.
예컨대, 전차 부품이 20%가 없다는 것은 20%가 가동불능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 전차들은 대체 왜 그렇게 설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비가 상당히 불편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변속기를 정비하기 위해서는 묵직한 포탑을 들어냈다 끼웠다 해야 했는데, 변속기는 전차에서 가장 고장이 잘 나는 부분 중 하나였고 포탑은 졸라게 무거워서 크레인이 필요했다.
그런데 변속기 같은 소수의 중요한 부품이 정비소요와 보급난항 때문에 모자라다? 그렇다면 그 부대의 전차들이 모조리 멈춰 버릴 수도 있었다.
“너무 큰 희생을 감내하면서 무리하게 할 필요는 없네. 저들 후방에 있는 부대들은 그 누구보다도 귀중한 자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정전협정은 소련군과 독일군 사이의 것이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소련군이 아닌 ‘파르티잔’이나 위장한 특수부대들은 신나게 날뛰고 다녔으며 그리하여 독일의 보급은 차질을 빚었다.
이것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적 배후의 아군은 살려 두어야만 했다.
독일군의 보급 난항과 별개로 소련군 진지까지 복구된 철도는 보급의 효율성을 수직 상승시켰다.
철도선과 부대를 연결하는 말단 수송수단인 트럭의 보급부문 수요는 감소했고, 미국에서 떼온 장비들로 찍어내는 두돈반 트럭들과 모스크바의 스탈린 자동차 공장에서 찍어내는 ZiS5 트럭들은 이제 전투용으로 전용될 수 있게 되었다.
차량화보병을 실어나르든, 박격포나 곡사포를 실어나르든, 그도 아니라면 후방에서 더 많은 물자의 생산에 투입되든. 소련은 점점 규모의 성장을 이뤄 나가고 있었다.
“저들이 내부적으로 혼란에 빠진 틈을 타 단 한 번의 결정적 공세로 저들을 분쇄하시오. 알겠나?”
“예!!!”
그날로 독일 육군의 허리는 꺾일 것이다. 뭐, 히틀러가 자기 손으로 꺾어 버리고 있는 것 같지만! 낄낄낄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