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화
하이드리히는 꽤나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 나치당이 선전하는 ‘이상적인 아리아인’의 외모를 가진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쾌속 승진을 해 벌써 국방군의 상급대장에 상응하는 자리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출세를 시기하고 경멸하는 사람들은 나치당의 내외에 차고 넘쳤다. 당장 그의 직속 상급자인 하인히리 힘러부터가 그가 휘두르는 막대한 권한을 경계해 견제하고자 했으며, 국방군의 정보기관 아프베어와는 그야말로 개와 고양이 같은 사이였다.
당내 정보력과 경찰력에 대해 발휘하는 막대한 영향력, 그리고 총통의 총애를 받아 수시로 독대한다는 점은 그를 쉬이 건드리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이미 여럿이 그를 상대로 칼을 갈고 있었다.
블롬베르크―프리치 사건으로 그를 혐오하는 국방군 고위급들부터 수정의 밤 포그롬(유태인 박해)을 당한 후 반드시 그를 처단하겠다고 벼르는 유태인들까지.
제3제국 내외의 많은 세력들이 그를 죽이고자 칼을 갈고 있었으며, 개중 가장 목표에 근접한 ―물리적으로― 이들은 바로 체코 내부의 반정부세력들이었다.
“프라하의 교수인 놈을 처치하겠다고 벼르는 이들은 많습니다만….”
그럴 만한 용기가 있는 자들은 그다지 많지 않겠지.
체코는 독일의 협박에 굴해 독일계 주민들이 많은 주데텐란트를 내주고, 결국 자기네 국가를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이라는 형태로 아예 가져다 바치기까지 했다.
독일은 체코 내부의 저항조직들을 잔혹하게 탄압했고, 철권통치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하며 레지스탕스는 뿌리까지 뽑혀 버렸다. 그러나 아직 공산당의 풀뿌리 조직들은 미약하게나마 숨 쉬고 있었다. 단지 무력도 기회도 없었을 뿐.
소련은 코민테른 소속이던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 조직과 접선해 스페츠나츠의 최정예 요원 4인을 침투시키는 데 성공했고, 공산당은 그동안 복수를 다짐하며 모아 왔던 하이드리히의 행동반경 및 동선에 관한 자료를 넘겨주었다.
‘대위’는 나머지 팀원 세 명과 함께 마지막으로 작전을 검토했다.
저격수 한 명과 행동대원 여섯 명.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서도 가장 굳은 결의로 무장한 행동대원 세 명을 차출해 지원하기를 결의했고, 만약 스페츠나츠 대원들이 일차적으로 하이드리히를 처치하는 데 실패할 경우 체코인 행동대원들이 두 번째 시도를 하기로 약속했다.
만약 스페츠나츠가 성공할 경우? 그렇다면 스페츠나츠의 후퇴를 체코인들이 엄호하기로 되어 있었다. 성공하고 ‘살아남을’ 경우에만.
작전은 프라하 시내, 하이드리히가 그의 관사에서 총독부 본부가 있는 프라하성까지 통근하는 길을 노리고 있었다.
그는 프라하 중심부에서 대략 14km가량 떨어진 관사에서 매일 메르세데스 카브리올레 오픈카를 타고 프라하성까지 출근하곤 했다. 하이드리히는 그를 보며 이를 갈고, 저주하는 이들을 비웃으며 독일의 철권통치의 맛을 즐기는 듯했다.
어찌 되었건 이 날씨에도 오픈카를 고집하고 있으니 저격과 척탄 테러에는 훨씬 더 취약한 것은 당연한 것. 암살팀은 시내의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하이드리히의 동선 바로 앞에서 길을 막아 차를 멈춰 세운 후 저격으로 그를 처치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들은 필요 없습니다! 단 한 발이면 충분합니다!”
“하하하하, 두고 보세나! 누가 그놈을 잡아 죽이는지.”
‘상사’는 단 한 발로 하이드리히의 머리통을 날려 버리겠다며 으스댔지만 대위는 어디 한번 두고 보자며 낄낄댔다.
사령부에서는 이들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최고의 무기들을 어떻게 했는지 프라하까지 가져다주었다.
처음에 체코 공산당은 가지고 있던 스텐 기관단총 몇 정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사령부에서는 매번 재밍이나 걸려 망가지는 그런 구닥다리를 어디에 써먹냐면서 소련제 최신형 돌격소총인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 네 정과 저격수를 위한 시모노프 14.5mm 대전차소총 한 정을 보내주었다.
[저격으로는 처치할 가능성이 낮으니 대전차소총으로 차량을 맞추어 터트려 버리고, 그들이 혼비백산하는 사이에 총격과 척탄으로 처치하라!]
상부는 최대한 확실하게 하이드리히를 처치할 것을 명령했다. 물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는 모르는 일. 이들은 가능한 상황들을 모두 검토해보고 있었다.
* * *
얼마 전의 회의에서는 유태인에 대한 ‘최종 해결책’이 결국 통과되었다.
처음에는 소련을 끝장내 버린 이후 소련을 장악한 유태―볼셰비키들과 레벤스라움에 남아있는 열등인종들을 독일 및 서유럽, 남유럽에 살고 있는 유태인들과 한꺼번에 쓸어 버리려 했으나 당초 목표인 A―A 선까지의 진군은 이미 달성 실패한 상태.
이러한 상황에서, 제국령 안의 잠재적 반란분자들이자 열등한 피를 퍼트릴 수 있는 유태인들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나치당 내부에 널리 퍼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을 비시 프랑스령 마다가스카르나 ‘고향’ 팔레스타인으로 추방해야 한다는 의견 역시 존재했다.
그러나 마다가스카르는 인도양을 장악할 독일의 잠수함 기지로 선정되었고, 팔레스타인 역시 독일군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자 점점 그 땅을 유태인들이 살도록 내주기에는 아깝다는 의견이 널리 퍼져 나갔다.
독일에 우호적인 아랍인들이 살기에도 부족한 땅을 굳이 더러운 유태인들 따위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나? 시베리아같이 사람이 살기 어려운 땅으로 그들을 내몰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했으나 곧 넌 눈치도 없냐? 라는 말을 들으며 입을 다물어야 했다.
총통은 감히 제국 내에서 사보타주를 기도하는 이들을 가능한 한 높은 형으로 처벌할 것을 명령했으며, 이에 따라 몇몇 노동수용소들이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개조되기 시작했다.
SD, 제국보안본부의 총책임자이자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의 총독인 하이드리히는 이 안건을 해결할 책임자로 지목되었으며 그는 베를린 근교, 반제에서 회의를 열고 게슈타포와 SD의 요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재 설치된 노동수용소에는 ‘부속시설’을 설치해 제국을 위해 노동력을 바칠 수 없는 자들을 ‘해결’하도록 하라. 그리고 폴란드, 발트, 서우크라이나의 갈리시아 등 현재 점령한 지역에서 유태인들 및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사범 등 불순분자를 끌어내어 수용소로 이송하라!”
이를 위해서는 굉장히 정교한 행정 작업들이 필요했다. 수송열차를 확보하고, 부족한 물자와 병력들을 활용하여 ‘불안요소’를 관리하고, 또 이게파르벤과 계약해 불안요소들을 해결할 화공약품들을 납품받아야 했다.
독일인 장병들을 위한 방독장비의 생산과 공급 역시 하이드리히, 그가 처리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
“이게파르벤 놈들… 원료가 없다고 또 징징대는군?”
“그렇습니까 각하?”
“뭐, 놈들이야 항상 그렇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는 주제에, 전쟁에는 어떻게 끼어 한몫 잡아 보려는 것들.”
하이드리히 본인 역시 나치의 고관이었기에 작금 독일이 처한 원료부족 사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전쟁을 위한 금속류가 부족했고, 석유 공급 역시 부족했다. 점령한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땅을 파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야말로 맨땅의 삽질. 기대한 것보다 석유가 너무 깊은 지층에 있어 현재로는 채산성 있는 채굴이 극히 어렵다는 보고가 올라간 것까지 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화공산업이 흔들릴 정도로 물자가 부족하지는 않았다. 석탄은 독일, 프랑스 및 영국에서도 충분히 나고 있었고, 석탄을 액화해 석유로 만드는 공정은 효율이 높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건 산업의 피나 다름없는 석유를 공급할 수 있었다.
당장 독일이 비축한 유류만 해도 3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물량. 이게파르벤의 돼지 같은 윗대가리들이 징징대는 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총통의 재가만 떨어진다면 그들의 비리를 캐내 하나하나 모가지를 날려 버릴 수 있겠지만 총통은 내부에서 고위직들이 축재하고 비리를 저지르는 것에는 의외로 관대했다. ‘남자는 허리 아래로는 인격이 없다’던가?
총통은 휘하의 인사들이 비리를 저지르는 것 ‘따위’로는 그들을 처벌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치 독일의 고위 인사들은 제각기 봉건 영주나 다름없었다.
괴링은 공군과 항공산업이라는 영지를 가진 대영주였고, 괴벨스는 선전부를 장악한 영주였으며 하이드리히 본인도 SD, 비밀경찰, 보헤미아―모라바까지 광대한 영지를 가진 귀족이나 다름없었다.
총통은 중앙집권을 이야기했지만 그가 말하는 중앙집권의 형태는 각지의 ‘대영주’들이 총통이라는 군주에게 충성과 할당된 의무를 바치는 봉건제의 양태와 더 흡사했다. 대영주들은 총통의 총애와 신임을 놓고 싸웠고 이는 총통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했다.
이런 시스템이 딱히 하이드리히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는 총통처럼 관대한 이가 아니었으며 정보부와 비밀경찰의 힘으로 불순한 마음을 품은 이들을 철저하게 찍어 누르기를 원했다.
나라의 곳간을 좀먹는 부패한 하급 관료부터 새로 얻을 정복지를 식민화해 제 잇속을 채워 보려는 돼지 같은 기업가들, 서로 동성애나 저지르는 이전 SA의 고위직들부터 더러운 유태―볼셰비키까지.
“모조리 다 처단하고 매달아 골통을 부숴 버려야 해… 더러운 새끼들.”
순수하고 충성스러운 아리아인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 하이드리히는 그것을 원했다.
출세욕과 야심과 욕망이 그를 이끌었다. 서른여덟이라는 나이로 벌써 나치의 핵심 고관으로 부상한 그의 원동력은 바로 증오와 혐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할 생각이 없었다.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은 제3제국의 핵심 산업지대 중 하나였다. 체코슬로바키아는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세계 11위의 공업국이었으며 이 공업역량은 독일이 이 지역을 병합하며 고스란히 제3제국의 손에 넘어왔다.
하이드리히는 이 지역을 철권과 채찍과 당근으로 다스리고 있었으며, 사보타주가 가장 적게 발생하여 다른 지역의 총독들보다도 훨씬 우월한 실적을 내고 있었다.
행정장관으로서 이런 실적뿐만 아니라 국방군 상층부의 쿠데타 계획까지 SD를 통해 적발해 내 보고했으니, 앞으로 찾아올 정계 개편에서 그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음 SS의 제국지도자가 그가 될지도 모르지. 힘러는 총통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친다는 점 외에는 모든 면에서 하이드리히, 그 자신보다 열등했다. SS의 고관들은 농담처럼 뒤에서 이야기했다. 힘러가 총통의 총애를 받는 것은 총통이 좋아하는 일본인들처럼 생겨서 그럴 것이라고.
그는 무능했고, 전형적인 아리아인의 외모가 아니라 아시아인 같은 생김새를 지녔고, 이상한 오컬트 따위에 심취해 있었다. 괴링, 괴벨스, 보어만과 같은 다른 나치의 권력자들 역시 그를 멸시했다.
아프베어를 숙청하며 방첩조직들을 모조리 흡수하고, 친위대 제국지도자 직위를 차지해 무장친위대라는 무력조직을 확보하고….
아직 총통은 50대로 젊지만 하이드리히 본인은 30대로 더더욱 젊다. 총통이 사망할 때쯤 되면 괴링은 늙었고, 괴벨스는 위세는 막강하지만 정작 무력이 부족하며 국방군은 상층부가 모조리 쓸려 나가 허수아비만 남아 있겠지.
그렇다면 다음 총통은?
“흐흐흠, 흐흣.”
“각하,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 아니네.”
하이드리히는 다시 서류에 몰두했다. 최종 해결을 위한 수용소를 설치하는 것은 제3제국의 최고 기밀이었으며 신중과 엄밀함을 기해야 했다.
치클론 B는 마구간과 숙소의 방역을 위한 ‘살충제’라는 명목하에 조금 더 빨리 납기를 재촉할 수 있을 것이고, 모델 원수와 문제를 빚어 후방으로 돌려진 SS 전투부대들을 수용소의 관리인원으로 차출한다.
얇게 째진 눈으로 신속하게 서류를 훑어 내려가던 그는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달리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
2월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청명했고 태양빛은 구름을 뚫고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쩌면 좋은 징조일지도 모르지.’
하이드리히는 힘러의 오컬트 놀음에 질려 미신이나 주술적인 이야기들을 극히 배격했지만, 희망찬 미래를 꿈꾸던 시점에 비쳐오는 햇살은 어쩐지 기분이 들뜨게 했다.
제3제국의 두 번째 총통!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버러지 같은 유태인들을 싸그리 잡아 죽이고 순수해질 국가, 위대한 아리아인, 도이치 민족의 미래…
* * *
콰콰쾅! 14.5mm 대전차소총탄이 올리브색 메르세데스 카브리올레의 엔진을 터트린 것 같았다.
하이드리히는 늘 자기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듯 프라하에서 유일하게 올리브색 카브리올레를 타고 다녔고, ‘상사’는 사격 실력을 증명하듯 모퉁이를 돌며 속력을 줄인 차를 직격시켰다.
검은색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각기 도로의 저편에 서 있던 중위와 하사가 각각 긴 화구통과 서류가방을 뿌리치듯 던지며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을 꺼내 들고 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함성은 없었다. 기합도 없었다. 그저 이를 꽉 깨물고, 연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최대한 육박해 사격을 시도할 뿐.
가지고 있는 무기는 100발들이 드럼 탄창을 끼운 자동소총과 각각 가진 수류탄 한 발씩. 시야가 가려진 상황에서 상사가 다시 저격을 시도하기는 어려울 테니 저들이 실패한다면 남은 수단은….
“후… 빌어먹을.”
손에 땀이 잡혔다. 벌써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고 있었고, 저만치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경찰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오른손에 든 서류가방은 유난히 묵직하게 느껴졌다.
하이드리히를 반드시, 반드시 척살해야 한다며 상부는 최대한 강력한 위력을 가졌으면서도 결정적 순간에 제대로 작동할 신뢰성 있는 물건이라며 폭탄을 전해 주었다.
‘이거 한 방이면! 빌어먹을 프라하의 교수인 놈도 한 방이면 된단 말이야! 지금 땀에 젖은 손에서 미끄러지지만 않으면 말이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주변이 어수선한 틈을 타 바로 옆에 있던 골목에서 서류가방을 열었다.
신관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오른쪽 두 번째, 분명히 두 번째라고 했지. 오른쪽 두 번째의 핀은 어딘가 걸렸는지 덜커덕거리며 잘 뽑히질 않았다.
이것까지 연습해 볼 기회는 없었고, 그는 두 번째의 핀을 뽑으라는 지령만을 받았기에 낑낑대면서 나올 기미가 없는 핀을 뽑았다.
골목 밖에서는 하이드리히를 사살하는 데 실패했는지 돌격소총의 소리뿐만 아니라 생소한 권총 소리도 몇 발씩 들려왔다.
“제기랄! 신이시여!”
털컥, 데구르르….
뭔가가 빠졌는지 핀은 갑자기 쉽게 휙 뽑혀나왔다.
신관이 이제 활성화되었으니 서류가방은 충격을 받으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킬 폭탄이 되었고, 대위는 그걸 하이드리히에게 던져야 했다. 조심조심 서류가방이 폭발하지 않도록 닫고, 숨을 고르고 골목에서 고개를 내밀어 바깥을 보았다.
“더러운 반역자 놈들! 클라인, 저 새끼를 죽여!”
중위는 피범벅이 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하사는 총을 놓친 채 수류탄을 들고 달려가다가 하이드리히의 운전병에게 다리를 맞아 엎어졌다.
하이드리히는, 빌어먹을… 똑바로 서서 권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왼손으로는 배 오른편을 감싸고 있었지만 치명상은 아닌 것 같았다. 운전병은 확인사살로 하사의 머리에 권총을 두 발 쏘았다.
탕! 탕! 머리통 뒷부분이 깨지고 멀리서 보기에도 희멀건 것과 시뻘건 것이 튀었다.
“제기랄… 체코 놈들은 뭐 하는 거지?”
체코인들은 네 명의 스페츠나츠가 모두 실패한 이후에 돌입하기로 하였으니 이제는 그가 폭탄을 던질 차례였다. 거리는 대략… 30미터.
최대한 접근해서 가방을 던져야 했다. 그의 무지막지한 팔 힘으로도 이 무거운 물건을 이 거리에서 던져 적중시킬 수는 없었다. 하이드리히는 여전히 반대편을 보고 있었고, 경찰들은 호루라기를 불며 하이드리히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차의 엔진에서는 여전히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바, 아마 차를 타고 그가 현장을 탈출할 수는 없을 것이리라. 경찰들이 몸으로 그를 감싸기 전에…!
손에 땀이 가득 잡혔다. 이러다가는 가방을 던지는 손이 미끄러질 것 같았다. 최대한 그에게 달려가 터트려야 한다. 하나, 둘….
“각하아아아아! 하이드리히 각하! 부디 조심하십시오오오오!!”
그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최대한 정확한 독일어 발음으로, 대위는 외치기 시작했다.
서류가방을 끌어안고, 뭐지? 하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는 하이드리히에게 달렸다.
“조심하십시오! 조심!”
뭐를 조심하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옆을 휙 쳐다본 하이드리히는 날아오는 서류가방을 보고는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휙 몸을 움츠리고 그를 향해 권총을 탕, 탕 발사했다.
‘빌어먹을, 저 새끼가 사격의 달인이라는 말은 없었잖아!’
허벅지가 화끈거렸다, 어깨도 화끈거렸다. 아마 가슴을 노려 쐈겠지만 허벅지와 어깨만 해도 치명상이다. 가슴팍에 숨겨 둔 수류탄에 맞아 터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인데… 화끈거리던 곳에서 찢어지는 듯한 격통이 뇌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를 수는 없다. 너무 힘을 주어 던졌나? 서류가방은 하이드리히의 오픈카를 넘어가 반대편에서 터졌고 제때 고개를 숙였던 하이드리히는 별 피해가 없는 듯했다. 여전히 왼손으로는 붉은 피가 배어 나오는 오른 배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는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간신히, 간신히 전신의 근육을 쥐어짜 그를 올려다보았지만 하이드리히는 씨익 웃으며 권총을 그에게 겨누었다. 몸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말을 들었다면 수류탄을 까서 던졌겠지만….
“잘 가라, 반역자 새….”
퍽, 붉은 안개가 튀었다. 잔인한 웃음을 짓던 그의 머리통 왼쪽이 마치 수박이 터져 나가듯 깨져 나갔다. 남아 있는 그의 몸뚱어리는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총탄 자국이 곰보처럼 난 차 안으로 쓰러져 갔다.
‘하, 상사. 성공했구만.’
의식이 흐려 왔다. 사람들이 기겁하며 고함을 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것은 ‘소리가 들렸다’ 같은 희미한 느낌일 뿐 그에게 더 이상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찰들이 총을 쐈는지 등허리가 화끈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