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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95화 (95/300)

# 95

95화

“뭐? 초콜릿을 먹은 군견들이 다 죽었다고?”

“그… 그렇습니다. 사령관 각하.”

“더러운 소련 놈들….”

모델 원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전 협상이다, 생일 선물이다 친한 척은 다 해놓고 이렇게 얕은수를 써? 전장에서 정정당당하게 이겨 볼 수 없으니 이렇게 나오는 것인가?

젊은 전선군 사령관, 체르냐홉스키라고 했던가. 정직하고 착실한 인상이었기에 그다지 의심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몰라 군견 몇 마리와 포로들에게 먹여 본 것인데 군견들이 떼죽음을 당하다니.

“소련 놈들이 얕은수를 쓰는군…. 아직 초콜릿을 먹은 병사들은 없는 게 확실한가?”

“예, 아직까지 병사들에게 배포하지 않고 철저한 감시하에 보관 중입니다.”

“음. 좋네. 아껴 놨다가 소련군을 낚는 미끼로 쓰든가 할 수 있으니 굳이 폐기할 것은 없겠다만… 죽은 군견들은 무슨 독에 중독되었다는 것 같은가?”

“아, 그것까지는 아직 보고받지 못했습니다. 수의장교들에게 검시 명령을 내리시겠습니까?”

모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무슨 독을 이렇게 대량으로 썼나 알아나 보자. 자기네들이 독가스와 생물학 무기를 쓰지 말자면서 선빵을 갈겨? 괘씸한 것들….

“그리고 초콜릿 역시 본국으로 보내 분석해 보도록 하게. 뭘 썼는지 알아보도록.”

“예! 알겠습니다. 사령관 각하.”

소련군은 혹여라도 우리가 그걸 가지고 실험을 해 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던 건가?

멍청하고 악랄한 놈들… 괜히 애꿎은 군견을 5마리나 잃어버린 꼴이 되었다. 뭐, 150톤의 보급용 초콜릿과 군견 5마리를 교환한 것이라면 나쁘지 않은 교환이지만 죽은 군견들에게는 미안해졌다.

* * *

“어이, 너희들! 그거 먹으면 안 된다던데?”

“뭐? 웬 참견이야! 상관 말고 꺼져!”

국방군 병사 하나가 외치자 한 무리의 SS 병사들이 위협적으로 맞받았다.

포로들에게 실험을 위해 나누어 주었어야 할 미제 초콜릿 한 박스를 뜯어 우걱우걱 먹고 있던 SS 병사들은 황당해하는 국방군 병사를 보며 낄낄 웃었다.

“이봐, 촌뜨기! 포로수용소는 우리 SS 관할이야. 네놈은 여기서 얼쩡대지 말고 가서 폰 자 붙는 도련님들 똥꼬나 열심히 닦아 주라고!”

“빌어먹을 새끼들, 알려줘도 지랄이네.”

SS 병사들 중 제일 선임자로 보이는 하나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국방군 병사를 쫓아냈다.

어이가 없다는 듯 국방군 병사는 코웃음을 치며 중얼거렸다. 다 들리라고 중얼거린 것이기에 SS 병사들은 국방군 병사가 지껄이는 욕설을 다 들어 버렸고,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목을 두두둑 꺾었다.

“허허… 이 좆만 한 새끼가….”

국방군과 SS의 사이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었다. SS 병사들은 ‘친위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거들먹거렸으며, 지휘관들은 합법 비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보급품을 SS부대를 위해 빼돌렸다.

또한, 포로수용소 관리나 심문, 민간인 처리 같은 상대적 ‘꿀보직’들이 이들을 위해 배당되었다. 국방군은 이에 대한 피해의식 반, 그리고 SS가 보여 주는 광기어 린 짓에 대한 경멸 반인 눈초리로 SS를 바라보았다.

반대로 SS는 나치당의 이념에 강력하게 동조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국방군을 구성하는 프로이센 군인 귀족들을 혐오하고 경멸했으며, 우리가 진정한 ‘독일 민족―대중의 군대’라고 자부했다.

유태인이나 슬라브 열등인종에 대해 온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국방군들은 그저 융커들의 사병일 뿐이었다. 또한, 싸워 이기는 것도 아니고 족족 깨져서 돌아오는 주제에 뭐 얼마나 잘나면 잘났다고 꿀보직이 어쩌니, 전투가 어쩌니 떠드는 꼴 역시 아니꼬워했다.

“어이, 거기 서 봐. 너 지금 뭐라고 지껄였냐?”

“빌어먹을 새끼라고 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씨이팔, 이 새끼가 어디다가 욕지거리야? 유태 돼지 새끼 피가 섞여서 낄 데 안 낄 데 모르고 꿀꿀 우나?”

모닥불에 모여 초콜릿을 까서 냠냠 먹던 SS 병사들 십수 명이 우르르 일어서 국방군 병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SS 병사들은 아직 초콜릿을 먹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을 전달받지도 못했거니와, 포로들이 멀쩡하게 먹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들에게 실험용으로 주어진 초콜릿을 모조리 빼돌려 이미 충분히 먹은 후였다.

국방군 병사는 초콜릿에 독이 들었다는 말만 듣고 맛도 보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알려 주려 한 것이지만 이미 상황은 이렇게 꼬여 버린 후였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벌벌 떨며 빌기에는 가오가 떨어지는 노릇.

국방군 병사는 씨발 씨발 속으로 중얼거리며 허리춤에 찔러 놓았던 권총을 꽉 쥐었다.

“씹새끼들아! 다 꺼져!”

“어? 이 새끼가?”

권총을 겨누자 슬금슬금 다가오던 SS 병사들은 다시 뒷걸음치기는 했지만, 그들이라고 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두 명이 자기네 권총을 꺼내 들었고, 또 몇몇은 설마 아군끼리 총을 쏘겠어? 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냥 몇 대 두들겨 패고 어디 한 곳 병신 만들어 놓는 정도로 끝내 주자고!”

자기네들끼리 떠드는 것을 들은 국방군 병사는 후들후들 떨면서 권총을 잡고 있던 두 명 중 하나를 겨누었다.

“안 빠져? 안 빠져? 쏜다!”

“쏴 봐! 좆만아!”

“어이 거기! 뭐야!”

지나가던 국방군 병사들 한 무리가 누군가를 에워싼 SS를 보고 소리치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딱 보아도 수가 많아 보이는 국방군 병사들에 쫄아든 SS는 다시 슬쩍 권총을 숨기며 아무것도 아닌 척하려 했다. 물론 국방군이 그런 것에 속을 정도로 병신 집단은 아니었다.

“이 새끼들이 절 다굴빵 놓으려고 했습니다! 총까지 꺼내 들고…!”

“개소리하지 마! 씨발 새끼가….”

“하이고… 너희들은 다 체포다. 루마니아군하고 그 지랄판 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또, 또!”

이들은 어디 작전 때문에 가던 길이었는지 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교도소 경비대라는 특성상 경무장에다가, 근무도 아니라 삥땅 친 초콜릿이나 쳐묵하고 있던 SS 병사들과는 무장수준이 질적으로 달랐다.

그러나 SS라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었다.

“권총 뽑아! 야! 야! 공격이다!”

“이, 이 무슨….”

이제 왜 시비가 붙었는지,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SS 병사들 입장에서는 자기네들을 싫어하는 국방군, 특히 장교들에게 끌려가면 실제 뭘 했던지 그 이상의 처벌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령관 모델 원수를 비롯한 장군들부터 시작해 일개 소위까지, 국방군 장교들은 SS를 지극히 혐오했다. 각자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군기문란 사태를 일으켰다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최소 영창, 아니면… 총살까지. 이미 명령을 어기고 물자를 빼돌린 적도 있었으며, 사령관이 직접 금지한 포로들에 대한 가혹행위도 밝혀질 수 있었다.

그걸 막기 위해선 일단 순순히 끌려가서는 안 되었다. SS 병사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면 지금 이놈들도 어쩌진 못하겠지.

뒤틀린 전우애로 뭉친 SS 병사들은 결코 ‘전우’가 이런 하잘것없는 일로 끌려가 처벌받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상급자, 친위대 집단지도자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흐스키는 자기 부하들을 국방군이 건드리는 것에 대해 경기를 일으키며 반응했고, 포로수용소에서 일어나는 가혹행위를 장려할 정도였다. 일단 이 상황만 넘겨 보자. SS 병사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방에서 SS 병력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장교 계급에 상응하는 돌격지도자들도 끼어 있었다. 끽해야 병사들 수십 명인 국방군으로서는 개기지 못할 만큼.

“씨발… 착검!”

* * *

“자네는 제정신인가? 제정신이냐고 물었다!”

“죄… 죄송합니다, 사령관 각하.”

모델 원수는 펄펄 뛰었다. 평소에도 불같은 성격에, 약자에게 함부로 가학행위를 하는 것을 경멸하는 모델 원수의 성격을 잘 아는 여러 장군들은 자기네들이 걸린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자기가 아니고 남이 걸리면 그걸 구경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특히 그동안 혐오해 왔던 SS 집단지도자, 에리히 폰 바뎀―첼레흐스키가 조인트를 까이고 있었다면 더더욱.

“우리가 병사들 간의 불화로 무슨 일을 치렀는지 벌써 잊어버렸나? 그런데도 휘하 병사 관리를 못 해서 서로 총질을 하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사령관 각하.”

“죄송해? 죄송하면 군 생활 끝나나?”

“아… 아닙니다 사령관 각하.”

“여기가 안이지 그럼 밖이냐?”

아오 쌤통이다.

대부분 그런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폰 바뎀―첼레흐스키는 혐오스러운 SS 장성급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파르티잔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민간인들을 하도 쏴 죽여 멀쩡하게 협력이 가능했던 이들도 협력하기를 포기하고 파르티잔에 참가하게 만들질 않나… 루마니아 병사들과의 충돌에서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부대가 바로 그가 지휘하는 SS 경비사단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S 제국지도자 힘러의 총애로 국방군 중장 계급에 준하는 집단지도자 계급을 달았고, 장군들도 그를 감히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요새는 약간 소원해졌다고 해도 모델 원수만큼 총통의 총애를 제대로 받고 있는 이가 있겠는가? 전공 측면에서도, ‘빽’ 측면에서도 감히 그와 비견할 이는 몇 없었다.

“썩 꺼져라! 빌어먹을 놈. 넌 군법재판이다 군법재판!”

모델 원수는 그렇게 폰 바뎀―첼레흐스키를 한동안 갈구더니 꺼지라고 고함을 치고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폰 바뎀―첼레흐스키는 바람같이 도망가 버렸다.

“후… 빌어먹을 새끼. 수의장교, 보고해 보게.”

별들의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는 표정으로 앉아 있던 젊은 소령이 벌떡 일어나 관등성명을 붙였다.

가장 낮은 계급장이 별 한 개인데 자기는 일개 소령 나부랭이라 눈을 어디다 둬야 하는지, 숨은 쉬어도 되는지 고민하다가 비로소 허락을 받아 그는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예, 각하. 저… 군견에게 복용시킨 초콜릿에는 인간에게 유해한 성분이 전혀 없었습니다.”

“뭐?”

지친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수의장교를 바라보던 사령관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SS 병사들이 초콜릿을 잔뜩 처먹었는데 평소 하던 것마냥 미쳐 날뛰는 것 외에는 별문제가 없더라니….

“그러면 군견들은 왜 다 죽은 건가?”

“예, 각하. 군견병들은 수의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 몰랐을 수 있으나… 원래 초콜릿은 개에게 유독한 물질입니다. 군견들을 부검한 결과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는데, 초콜릿 안의 성분이 개의 심장에 좋지 않아….”

“허어….”

“그, 그런가?”

“먹여 봤어야 알지….”

탄식하는 소리들이 이곳저곳에서 새어 나왔다.

이 사단이 난 것 자체가 개에게 초콜릿이 유독하다는 것을 모르고 개와 포로에게 먹여 보라고 명령을 내린 그 자신 때문이란 것을 깨달은 모델 원수는 손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이런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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