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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94화 (9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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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은 소련을 통해 막대한 지원을 얻어냈다. 전차, 장갑차, 비행기와 야포 등 본격적인 현대장비들이 ‘파르티잔’이던 이들에게 지급되었고, 파르티잔들은 독일군과 정면 교전이 가능한 수준의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해방구가 형성되었고, 독일군은 주전장도 아닌 발칸반도에 점점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쏟아부어야 했다.

물론 소련도 뭔가 얻어 가는 것이 있었다. 유고 파르티잔들이 뭔가 물질적인 것을 소련에 줄 수는 없었지만, 이들은 소련의 작전에 엄청나게 귀중한 것을 제공했다.

바로 추축국의 본토로 통하는 육상 교통로였다.

“자, 저 파쇼 놈들에게 제놈들이 그렇게도 좋아라 하는 돈다발을 안겨주시게!”

“하하하하! 이게 다 가짜 돈이란 말입니까? 진짜보다 더 진짜 같습니다!”

수백만, 수천만 마르크에 이르는 위폐들이 추축국으로 유입되었다. 루마니아에서 파르티잔이 점령한 유고슬라비아 영토로. 그리고 파르티잔과 추축국 간의 모호한 경계를 지나 크로아티아 괴뢰국을 통해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추축국 내에 거미줄처럼 위치한 소련 첩보망은 다시 이 자금을 반체제 활동을 벌이는 각종 지하조직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반체제 저항조직들은 소련발 자금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조직을 키우고 각종 테러를 저질렀다. 시대는 전쟁이 한창 휘몰아치는바, 군수공장은 밤낮을 모르고 돌아가고 있었고 적절한 돈만 쥐여 주면 얼마든지 공장에서 물자를 빼돌려 줄 만한 사람은 넘쳐났다.

물론 저항조직이라고 해서 테러와 폭력 활동만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었다.

더 위험한 일들에 개입할 뿐이었지만.

* * *

작금의 전쟁에서 주 전선은 누가 뭐라 하여도 동부전선, 대 소련 전선이었다. 천만에 이르는 인원이 어지러이 뒤엉켜 싸우는 전장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사람들의 관심마저도.

그 누구도 한참이나 남쪽의 발칸반도에서 독일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몇 명의 사내들이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향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소련군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츠에서 선발된 요원 4명은 이리하여 생각보다 순조롭게 임무에 투입되었다.

국경의 검문소에서는 이들이 보여 주는 가짜 여권을 쓱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통과!”

“고맙습니다.”

네 명 모두 키가 크고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전형적인 아리안족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넷 모두 유창한 독어를 구사했기에 독일제국의 하켄크로이츠 마크가 박혀 있는 여권을 본 검문원들은 의심조차 하지 않고 통과를 외쳤다.

“멍청한 놈들,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렇게 하면 베를린에서 총통 머리통을 날려 버리는 것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프라하로 가는 기차 편에서 4인용 열차 칸에 모여 앉은 요원들은 나지막한 러시아어로 그렇게 속삭였다. 상부에서는 넉넉한 공작자금을 내주었고, 1등 열차 칸은 사적인 대화나 중요한 비즈니스상의 대화를 해야만 할 승객들을 위해 충분한 프라이버시를 제공했다.

하지만 항상 예측기 어려운 곳에서 문제는 발생하는 법. 누군가 러시아어를 한다고 그들을 밀고한다면 그저 여권을 보여 주고, 유창한 독어 실력을 보여 주면 그만이다.

밀고당한 내용이 총통이나 나치 고관의 암살모의라면? 아마 꽤나 긴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변명으로 끝날 수 없을 수도 있고.

“아마 우리가 하이드리히 머리통을 날리는 데 성공하면… 총통에 대한 경호는 더 삼엄해지겠지. 이미 충분히 경호 수준도 높을 테고.”

“그도 그렇다만….”

<유인원 작전>의 대상,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겁대가리 없는 놈이었다.

사전에 접선한 현지의 협력자들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그는 방탄복도 입지 않고 천장이 뚫린 자동차로 프라하를 누비고 다닌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프라하의 시민들은 두려움과 굴욕감에 떨어야 했다. 자기네들을 짓밟은 이들은 저렇게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는데 무력한 대중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기에.

반대로 독일인들은 자기네들의 지배가 얼마나 공고하고 강력한지 만천하에 선전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잘났어도 수류탄 한 방 먹으면 꼼짝 못 해! 낄낄낄.”

요원들은 그렇게 농담 따먹기를 했다. 이들은 이미 암살에 대한 혹독한 훈련을 거치고 실전에 투입되는 길이었다.

비무장에 맨몸을 하고 있다면, 수류탄을 던지고 총질을 해서 확인사살하면 그만이다. 프라하는 상대적으로 ‘평화롭게’ 병합되어 시민들의 저항도 프랑스나 영국에 비하면 훨씬 적었고, 그만큼 경찰들의 경계 수준도 낮다고 했다.

온 사방에 무기가 굴러다녀 헌병들이 완전무장한 채로 4인이 조를 이뤄 순찰을 도는 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평화로운 곳. 그래서 암살용 무기를 구하는 것은 더 어려웠지만 그 이후에는 더 쉬울 것이라 체코 공산당원들은 장담했다.

“그나저나… 아, 아닙니다.”

“싱겁기는.”

“끌끌끌끌….”

넷 중 하나가 살짝 심각해진 표정으로 뭔가 말을 꺼내려 하다 그만두었다.

요원들 중 가장 계급이 높은 ‘대위’가 피식 웃으며 핀잔을 주자 나머지 둘은 끌끌 웃었다. 물론 핀잔을 주고 웃으면서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다들 대강은 알고 있었다.

암살을 성공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넷 모두 잠입과 암살에 대해서는 충분히 훈련을 받았다. 장거리 저격과 투척 훈련 등, 표적의 숨통을 확실히 끊어 놓기 위해 이들은 몇 번이고 모의전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훈련에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바로 탈출 훈련.

탈출은 그때 상황이 어떠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교관은 일축했다. 하지만 요원들은 알 수 있었다.

그런 건 애초에 계획상에 없다는 것을.

‘혹시나’ 붙잡힐 것을 대비해 자결용 청산가리 캡슐까지 지급된 마당에 무엇을 더 기대하랴? 확실히 목표를 사살하기 위해, ‘가급적’ 목표의 지근거리까지 접근해 확인사살을 하라고까지 명령받았다.

그 이후 탈출이 가능할 것인가? 상부에서는 과연 이들을 위한 퇴로를 준비해 놓았을까?

교전 중 사살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다… 나라를 위해서. 그렇지 않습니까?”

“…암, 그렇고말고.”

* * *

상부는 이 작전의 자원자를 모집하며 처음에는 연금을 제시했다.

“귀관들 중 한 가지 특수 작전에 지원할 자를 모집하겠다.”

그들의 훈련을 담당했던 콧수염쟁이 대령은 항상 그랬던 꺼드럭거리는 태도로 스페츠나츠 요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이 작전에 지원한다면 막대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귀관과 귀관의 가족들에게는 법정 최고액의 연금이 지급될 것이다! 우리 위대한 소련이 존속하는 한, 귀관들의 자녀와 손자와 그 이하 후손들은 이 연금의 수혜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북러시아의 평원에서 독일군의 방어선을 뚫고 후방에 잠입하는 임무를 명령할 때에도 저만한 보상을 제시한 적은 없었다. 공중에서 적지로 강하해 소총 한 정으로 적들과 싸워야 했을 때도 그러지 않았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작전보다도 더 위험하다니. 특수부대라 해도 돈 몇 푼에 자기 목숨을 팔아넘기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대령은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그다음으로 그는 명예를 제시했다.

“적기훈장, 적성훈장, 레닌훈장, 소비에트 연방영웅까지 귀관들은 말만 하시오! 성공한다면 소련 최고 영웅이 될 것이고 실패해도 귀관과 가족들은 훈장 수훈자를 위한 혜택을 모두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요원들은 아무 말 없이, 아무런 표정도 하지 않고 그저 15도 상방을 응시할 뿐이었다.

또 아무도 자원하지 않았다. 작전에 참여할 이들을 모집하던 대령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는 자포자기한 듯 그렇게 말했다.

“나라를 위해서, 소비에트 연방의 운명을 위해서. 조국과 미래에 그 안에서 살아갈 이들을 위해서.”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자원할 자 없소이까?”

* * *

대위는 갓 태어난 어린 아들이 있었다.

소위는 늙은 어머니와 전선에 나간 동생이 있었고, 상사와 중사 역시 각자 가족들이 있었다.

대령은 그들에게 ‘혹시나 모르니’ 유서를 남길 것을 권했다. 머리카락 한 줌을 잘라 동봉하고, 유서를 남기고, 훈장과 그에 따른 보상금을 수령할 자를 지정하는 문서에 각자 지장을 꾹 눌러 찍었다.

결국 네 명의 요원은 목표지점의 문턱까지 와 있었다.

[이제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합니다. 내리시는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각자 두고 가시는 물품이 없는지 주의하시기 바라며….]

“내리도록 하지. 우리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겠어.”

“그래야겠군요. 다들 빠트린 것 없는지 보… 어이! 자네 여권!”

“어, 어? 아…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다들 과장된 웃음과 제스처를 하고, 또 소리높여 웃었다. 누가 보면 유쾌한 희극의 주인공처럼 보일 정도로.

하지만 넷은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었다. 나라를 위해서. 조국의 운명을 위해서. 파시스트들을 단죄하기 위해서!

언젠가 공보물 신문에서 그런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스몰렌스크를 끝까지 사수하다 죽어 간 병사가 남긴 말이라며, 각 신문사들과 선전기관들은 동네방네 이걸 떠들어 댔다. 어린 군악병 알렉산드르 아키모프는 권총 한 정으로 스몰렌스크를 향해 짓쳐 들어오는 독일군들을 향해 끝까지 저항했다.

거동할 수 없는 부상병들을 지키고, 어머니 조국의 대지를 범하려는 파시스트들을 몰아내다가 그는 결국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지켜 내려던 야전병원의 벽에 자신의 피로 글을 남겼다.

<나는 죽어가지만 항복하지 않는다. 조국이여, 안녕!>

그래, 조국이여 안녕. 가족들에게도 안녕.

대령은 이야기했었다. 이 작전은 미국인들과 체코인들이 한 것으로 알려질 것이라고. ‘상당한’ 시간이 흐를 때까지 네 명의 스페츠나츠 용사들의 공적은 숨겨져야만 할 것이라고.

‘조국을 위해서.’

아마 암살작전의 실제 시행까지는 꽤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대위는 문득 그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유리와 라라에게 쓸 편지를 완성할 수 있겠네….’

아들 유리는 이제 막 석 달이 되었다. 요람에서 강보에 싸여 꼬물거리던 그 발그레한 어린 것이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고, 아마 제 아비의 얼굴조차 모른 채 클 것이다. 제 아비가 어디서 무얼 위해 죽어 갔는지도.

사랑스러운 그의 아내 라라는 유리를 훌륭한 소련의 아들로 키워 낼 것이지만… 어쩌면 자기들을 버리고 간 비정한 남편이라 원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 아비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체코 공산당 친구들의 수완이 좋다면 유고와 루마니아를 통해 그의 가족들에게 편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체코가 해방되는 날에 우리 군대가 획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도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내 아들, 안녕.”

대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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