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91화 (91/300)

# 91

91화

미국 사절단은 월리스만 온 것은 아니었다.

매번 몰로토프를 미국에 보내 뺑이치게 시킬 수는 없으니 미국 외교부 인사들도 데려와 기름칠도 해 주고 모스크바 구경도 시켜 주고, 혹시나 가능하다면 정보도 좀 캐 보고.

NKVD 요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뭔가 소득이 있을 수도 있다.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결정할 문제들은 정말 산적해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5개의 승전국이 유엔 상임이사국이 되어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그리고 중국. 그러나 이들의 운명은 극적으로 갈리고 말았는데….

“비시 프랑스가 전쟁에 참가한다면 프랑스를 대표할 정부로 우리는 어느 집단을 인지해야 하겠습니까?”

“프랑스에서는 전국 저항 평의회가 발족하여….”

영국이 몰락했고, 왕실과 정부는 캐나다로 도피했다.

당연히 연합국, 미국과 소련은 망명정부를 진짜 정부로 인정했고, 반대로 추축국은 자기네들이 세운 ‘정통정부’를 진짜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소련이 파시스트 괴뢰정부를 영국으로 인정할 일은 없으니 그렇다 치는데, 이제 문제가 되는 것은 프랑스였다.

자유 프랑스는 결국 영국 망명정부를 따라가기는 했지만 애틀리와 이든이 이끄는 이인삼각 정부는 결코 드골을 좋아하지 않았다.

루즈벨트, 애틀리, 이든 셋 모두 드골은 프랑스를 이끌기 적합하지 않은 인사라고 생각했으며 프랑스 내에서의 지지도 역시 없다시피 했다. 유일한 명분은 프랑스군의 잔해 비슷한 것을 이끌고 있다는 것뿐인데 이 역시 그다지 어필이 되지 않았다.

원래 역사에서 드골을 대신할 수 있었던 앙리 지로는 아직 독일의 감옥에 갇혀 있었고, 비시의 해군을 이끌고 연합국에 합류했어야 할 프랑수아 다를랑은 배신자인 채로 암살당했다. 결국 자유 프랑스의 영향력은 그야말로 형해화된 것이었다.

“차라리 전국평의회를 발족시킨 프랑스 레지스탕스가 더 믿을 만하고 정통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한 레지스탕스 전국평의회는 어디처럼 도망만 다니지는 않습니다.”

“맞습니다. 레지스탕스는 현재 사실상 반독 프랑스인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실적’으로 말했다. 해군장관 다를랑을 암살하는데 성공했으며, 페탱 원수 역시 폭살당할 뻔했다.

사보타주 활동을 벌여 프랑스 내 무기 생산을 막아 내고 있었으며, 전력시설을 공격해 파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 화재를 일으키기도 했다!

레지스탕스는 신나게 헌병군 사무소에 폭탄을 던지고 독일인들을 저격했으며, 연대급 인원이 모여 캐나다에서 찌질대는 자유 프랑스보다 내부 지지도도, 외적 명분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양대 열강 중 하나인 소련이 적극적으로 레지스탕스를 지지했다.

여기에 중국 역시 문제가 되었다.

우리 소련이 배후에서 조장하기는 했지만, ‘동맹국인 중화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한 군사 고문이 가져온’ 서류에는 국민당 정부의 부패 실상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누구는 미국이 지원해 준 물자를 얼마나 빼돌려 팔아먹었고, 또 누구는 일본군과 내통하다가 모가지가 날아갔고. 얼마나 돈과 인력이 줄줄 새고 그것이 장개석과 그 부패한 부하들, 유력 가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지가 살짝 과장을 더해 나열되어 있었다.

당연히 월리스는 제대로 빡쳤다.

“이 자식들, 제정신입니까? 감히 미국 시민들의 세금을 가지고 이따위로 제 배를 불려?”

씩씩대며 장개석의 어머니가 사실 식육목이고 부모님이 홀수가 아닌가, 하는 추측을 마구 내뱉는 걸 나는 다 들었다.

아마 중화민국은 나중에 미국과 다시 직접 연결이 된 이후에는 꽤 시달릴 것 같은데… 하하하.

미국이 중국 내부의 복잡한 정세에 질려 손을 뗀다면, 국민당이든 공산당이든 양쪽에 끈을 가지고 있는 소련이 중국 대륙을 손에 쥐고 주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일본과 싸우는데도 헉헉거리면서 버거워하고 있었으니 중일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래를 우리가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몇 가지 가정은 이미 해 두고 있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예측은 장개석은 힘겹게 힘겹게 일본군을 막아 내기는 한다는 것이었다. 역사에서 본바, 장개석은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결코 항복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중국 분할 플랜을 적용할 뿐이다.

이때 아마 상임이사국은 중화민국이 되겠지만, 영향력이 축소되어 미소의 대립에 영향을 가하지는 못하고 미―소 1대 1 구도를 만들어 낼 것이다. 최소한 핑퐁 외교, 데탕트랍시고 중국이 미국에 붙는 상황만은 안 나올 것이라 믿어 볼 만했다.

만약 장개석이 일본에 항복한다면 소련군과 중국 공산당이 함께 중국 대륙을 장악하면 되는 것. 이 경우, 중국이 너무 강해진다는 부작용이 있지만 상임이사회에서 친소파가 셋이 되는 이점이 있었다.

레지스탕스를 이끈 공산당 위주의 연립정권이 집권한 프랑스, 중국 공산당이 석권한 중국에 소련까지. 상임이사국에서 3:2에 비실대는 영국을 미국은 손절할 수도 없게 된다.

* * *

아직 전쟁이 끝나려면 멀었지만, 전후 세계의 재편을 위해 처리할 문제가 많았다.

중국과 프랑스는 분명 큰 ‘문제’였고, 얼마 전에 소련에 항복한 터키, 중동, 인도, 동남아, 아프리카 식민지들까지. 이제 막 운을 띄웠을 뿐이지만 수십 개 나라, 수억 명 사람들의 운명이 가벼운 농담거리처럼 지나가 버렸다.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인 곳들은 독립시키고, 어디는 신탁 통치를 하고, 어디는 즉각 독립시키고, 어디만큼은 구 제국들이 발광할 테니 용납하고 내버려 두고….

“우리가 이 회담에서 나눈 말은… 비밀로 하도록 합시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의 운명을 이렇게 좌지우지했다는 것을 들으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오.”

“그 점에는 동의합니다.”

월리스와의 긴 대담을 마치고, 나는 악수를 청했다. 월리스는 서글서글하고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꽉 쥐었다.

나 역시 최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리 선하게 웃으려 해도 굳어진 얼굴 근육은 음흉하고 사악하게밖에 웃지 못했지만.

내용물에 문제가 있는데 어찌하겠는가?

* * *

“작전명은… 똥칠, 어떤가?”

“으하하하하하! 서기장 동지, 유머 감각이 참 대단하십니다!”

“허허허허, 흐하핫, 흐흐흐흐흐.”

“아니 난 진심인데….”

유머인 줄 알고 웃던 사람의 분위기가 갑자기 싸해졌다. 베리야가 안경을 만지작거리자 웃던 이들은 모두 눈을 아래로 깔고 침을 꿀꺽 삼켰다.

“‘똥칠’은 아주 정확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요지는 저들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와 내통한 혐의를 씌워 저들의 뛰어난 장군들을 해임하게 하거나, 혹은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무리한 공세를 하게 만들거나….”

나는 독소전의 흐름을 바꾼 두 전투, 스탈린그라드와 쿠르스크 전투를 생각하고 있었다. 양쪽 다 독일군은 무리한 공세를 취했고, 소련군의 방어선을 뚫지 못한 채 교착상태로 들어갔다가 역공으로 인해 상당한 손실을 입고 후퇴해야 했다.

독소전쟁에서 스탈린과 히틀러는 양쪽 다 무리한 공세명령을 계속 내렸다.

그나마 스탈린은 대전 후반기에 가면 본인의 전략적 능력을 과신하지 않고 휘하 장군들에게 군령을 맡겼다. 지휘에서는 한발 물러나 보급과 생산관리를 책임지고 관료집단의 수장으로서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대전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반면 히틀러는 끝까지 장군들을 쥐고 흔들려 시도하면서 나치 독일의 패망을 앞당겼다. 성채 작전, 아르덴 대공세 등 독일군의 역량을 과대평가하고 단 한 번의 공세로 전황을 뒤집으려는 도박은 41년이나 그 이전과 달리 계속 실패했다.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 바르바로사 작전까지 히틀러의 도박적인 전략은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에도 전략적 안목을 결여한 많은 국방군 장성들과 달리 히틀러는 전략적으로 옳기는 했다. 독일의 군사적 역량이 바닥나 버렸을 뿐.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선 공세를 취해야 하네. 하지만 아직 우리의 군사적 역량은 성숙하지 못했고, 저들이 무리한 공세를 하게 만든 후 그 빈틈을 찔러야 할 것이네. 유능한 장군들을 실각시키고 풋내기 지휘관인 히틀러가 실권을 잡게 만들든지, 아니면 장군들이 자기에게 씌워진 혐의에 겁나 무리한 공세를 하게 만들든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의도일세!”

그리고 하이드리히 암살 ‘따위’는 애피타이저나 다름없었다. 저들의 의심과 경계를 고조시키는 한편, 공작에 대응할 첩보 역량을 소진시켜 버리는.

“암살 계획의 대상으로 지정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는 제국보안본부장으로 친위대의 방첩 기능과 게슈타포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사람입니다. 독일의 두 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나머지 한 눈은 외국에 자기네 정보를 흘리는 스파이들이니 유일한 눈이라고 할까요? 하하하!”

베리야는 깔깔 웃었다. 아프베어는 내부의 ‘제5열’ 이었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제국보안본부였다. 실제 역사처럼 하이드리히의 모가지를 날려 버리면서, 아프베어를 반역 혐의로 끌고 들어간다면 독일은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어 버린다.

이때를 기하여 독일의 명장들을 사보타주 혐의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몰로토프가 확인하겠지만, 히틀러가 진짜 미래인이라면 국방군이 자기에게 반기를 드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그랬으니까.

실제 역사에서 반역의 선두주자였던 아프베어가 라이벌인 제국보안본부장을 살해하고 이 정권을 뒤집어 버리려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망상하지 않을까?

“자, 우리의 계획은 세 가지를 병행하여 진행할 것이오. 먼저 북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만슈타인은 이미 한번 SS에 잠입하여 나치당을 무너트리려 했던 ‘급진 중산층당’의 음모와 엮인 적이 있었다.

헬무트 밀리우스라는 독일 기업가는 급진 중산층당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SS에 침투, 히틀러의 동선을 파악하고 암살할 것을 꾀했다. 이 사건은 1935년에 발각되었지만 밀리우스는 친구인 만슈타인의 도움으로 별 처벌 없이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다.

그냥 흐지부지 지나가 버린 많은 사건 중 하나이겠지만 만약 만슈타인 본인이 암살음모에 연루된다면 그의 목을 조여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전 서부전선 총사령관 롬멜.”

롬멜은 실제 역사에서도 히틀러 암살 음모와 엮여 자살을 강요당했다. 그의 참모장인 한스 슈파이델은 국방군 내부에서 가장 강경하고 활동적인 반히틀러파였으며 43년에 우크라이나의 남부집단군을 방문한 히틀러를 체포, 처형하려고 계획을 꾸민 바 있었다.

지금 한스 슈파이델은 민간인 학살을 막으려다 보직해임당한 롬멜과 같이 물러난 상태였으며, 실제 역사보다도 더 의심을 사기 좋은 상태였다. 엔카베데는 이렇게 또 한 그룹을 엮어, 롬멜과 아프리카 군단의 유능한 장군, 장교들도 처리해 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남부집단군 사령관 모델.”

모델은 끝까지 충성을 바쳤지만, 미래 지식을 가지고 있을 히틀러가 가장 두려워할 만한 사람을 옆에 두고 있었다. 바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원래 역사에서는 지금은 남부전선군에 있다가, 튀니지에 연합군이 상륙했을 때쯤 아프리카 전선으로 갔어야 할 텐데 아프리카 전역이 조기종결되는 바람에 남부전선군에서 모델의 부관으로 있었다!

이걸 알아냈을 때는 무릎을 탁 쳤다. 모델은 참군인이었고 슬라브인과 유태인들에게 유화적이고 신사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역으로 모델이 소련과 내통했다는 증거로 쓰일 수도 있었다.

다른 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히틀러가 보기에 슈타우펜베르크를 중용한 모델이 과연 온전히 믿음직할까? 방어의 사자는 순식간에 후퇴밖에 모르는 겁쟁이, 배신자로 전락할 것이다. 총애할 때에는 ‘전술적 후퇴’였겠지만 총애에서 벗어나면 ‘적전도주’ 아니겠나.

사실 스타브카의 다른 장군들도 왜 슈타우펜베르크가 그렇게 중요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그가 반히틀러 음모의 중추적 인물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때웠지만… 내가 보기에 그럴듯하면, 미래에서 온 히틀러가 보기에는 더더욱 그럴듯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군수장관 슈페어요.”

실제 역사에서는 독일의 군수공업을 책임져 대전 후반기 총력전 태세로의 돌입을 진두지휘했던 슈페어까지 엮어 버린다면? 그야말로 독일 수뇌부의 등뼈를 부숴 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도 히틀러 암살 음모에 한때 엮였었다. 쿠데타군은 그의 뛰어난 능력을 보고 반드시 ‘포섭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정하고, 쿠데타 내각의 멤버로까지 지정해 놓았다.

쿠데타 진압 이후 이 문건이 발견되어 슈페어 역시 쿠데타의 동조자가 아닌가 몰린 적도 있지만 ‘포섭해야 할 대상’으로 명시되어 있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미 포섭된 것처럼 가짜 서류를 만들어 내 슈페어까지 독일 정권의 중심부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계획되었다.

“이 음모를 꾸민 중심으로 지목당할 곳은 바로 독일 방첩국이오. 아프베어 국장 빌헬름 카나리스, 부국장 한스 오스터는 아마 저들 손에 숙청당하게 될 것이오.

대대적인 숙군 작업도 있겠지. 이는 SS와 국방군 간의 갈등을 키우는 매개체가 될 수 있으며, ‘검은 오케스트라’의 빈자리를 우리 스파이들이 채우는 기회가 될 수 있소.”

아프베어 부국장 한스 오스터는 반히틀러 음모를 38년부터 꾸미고 있었고, 국장 빌헬름 카나리스는 그걸 알면서도 묵인해 주었다.

지금 저 히틀러가 이걸 알까? 모를까?

아무튼 44년 7월 슈타우펜베르크 암살시도 이후 오스터가 연루되었던 것이 발각되었고, 아프베어의 권한을 이용해 유태인을 빼돌리다 직위해제되었던 그는 암살시도를 했던 자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43년 직위 해제 전까지 그는 헤닝 폰 트레츠코프, 프리드리히 올브리히트 등 국방군의 중요 장성들과 접선해 비밀조직 검은 오케스트라(Schwarze Kapelle)를 만들었으며 역사대로 흘러갔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있기는 할 것이다. 카나리스는 여전히 이를 묵인하는 중일 테고.

그러나 검은 오케스트라는 반공 이념에 투철한 군인들이 모여 있는바, 소련이나 엔카베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음모의 근원으로 조작해 명장들과 함께 날려 버릴 생각이었다. 월리스는 순순히 독… 까지는 아니지만 사과를 받아들였다. 하이드리히를 모가지해 버리고 방첩국까지 날려 버리는 1타 2피.

“아무리 잘 싸우면 뭐하나! 내부 단속도 못 하는 것들. 으하하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