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87화 (87/300)

# 87

87화

실제 역사의 42년은 여전히 독일군이 승승장구하며 진격했던 해였다.

41년 겨울, 그리고 42년 초 모스크바 방어전 승리로 고무된 스탈린은 월동 준비가 전혀 안 되었던 독일군을 상대로 전 전선에서 공세를 펼쳤다.

독일군의 약점을 찔러 일부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대표적으로 중부에서는 발터 모델이 이끄는 9군에게 완전히 막혀 버렸다. 그리고 이후에도 공세 지점을 집중하는 게 아니라 터무니없는 낙관으로 전 전선에서 공세를 펼친 끝에 예비대를 전부 꼬라박아 버렸다.

이렇게 생긴 전력의 공백은 42년 하계의 대패에 기여했다.

소련은 독일군이 41년에 무리하게 모스크바를 취하려 했음을 기억하고 모스크바의 전면에 꼬라박고 남은 예비대를 끌어모으고 있었다.

반면 히틀러는 국방군 장성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를 석권, 돈강을 넘어 볼가강과 코카서스 방면으로 진격할 것을 명령했다.

독일군의 공세 역량을 파쇄한답시고 무리하게 덤빈 소련군은 자기네들의 방어 역량을 파쇄하고 말았다. 여기에 주력은 다 모스크바로 가 있었기에 제대로 허를 찔려 버린 것이다.

독일군은 이렇게 생긴 기회를 활용하여 크림반도를 석권하고, 동부 우크라이나를 휩쓸어 버린 후 소련의 렌드리스 물자가 올라오는 볼가강으로 향했다. B집단군으로 스탈린그라드를 틀어막고, A집단군으로 소련의 석유 산지인 바쿠를 점령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서.

물론 이는 전적으로 실제 역사의 이야기이다. 남부로 내려가 세바스토폴과 케르치 반도에서 존버 중인 소련군을 갈아 버렸어야 할 만슈타인은 북부집단군 사령관이 되어 코네프와 일진일퇴의 공방을 거듭 중이었다.

남부집단군을 지휘할 보크 원수는 퇴역당했고, 그 자리에는 원래라면 르제프 돌출부에서 소련군을 분쇄해야 하는 모델이 들어가 있는 데다가 돈강과 볼가강은커녕 드네프르도 넘지 못한 상태였다.

중부집단군은 그나마 원래 역사의 전선에 가깝기는 하지만 스몰렌스크와 르제프는 300km는 떨어져 있었다.

전선으로만 보면… 매우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 실제 역사에서 획득한 지식, 독일군의 행동 방침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스타브카에선 독일군의 공세 의도를 파악하고 우리의 전략을 정하기 위해 밤낮으로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과연? 과연 독일군은 어디로 쳐들어올 것인가?

스타브카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중부냐 남부냐.

“파쇼 군대가 노릴 수 있는 목표물은 결국 두 가지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산업 역량이냐, 아니면 모스크바라는 정치적 상징성이냐. 저들은 중부집단군을 통해 모스크바를 취하려 했고, 남부집단군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취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둘 다 취하지 못했고 올해에는 하나에 집중하리라 생각됩니다만, 저는 그중 모스크바를 노릴 것이라 생각합니다.”

“모스크바? 여기까지 저들이 올 수나 있겠습니까. 저들은 모스크바까지 병력을 보급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당장 벨리키에 류키를 아군이 탈환할 판에… 양익이 불안한데 어떻게 중부에 공세를 취하겠습니까?”

“양익이 불안정한 것은 굳이 말하자면 남부가 더하지 않습니까? 아직 프리퍄티 습지의 철도 거점들은 아군이 점유하고 있습니다. 저들이 로브노 이상으로 진군하려 하거든 프리퍄티와 루마니아, 베사라비아를 모조리 쳐 없애야 할 것입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다지 유의미한 결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소련의 산업역량을 건드리기에는 점령해야 할 남은 우크라이나가 너무 넓었다. 그렇다고 모스크바로 밀고 오기에는 모스크바가 너무 멀었다. 둘 다 맞는 말인데….

샤포슈니코프는 회의에서 거의 발언도 하지 못하고 쿨럭거리고 있었다. 아재 괜찮수?

“아, 죄송합… 쿨럭, 으….”

1882년생이니까 이제 60세. 나보다도 4살이 젊었지만 이미 거의 죽어가는 듯했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제 역사의 42년, 올해에 공직을 사임하고 명예직만 가지고 있다가 45년에 죽으니까….

이제 슬슬 보내 줄 때가 되었나 보다.

샤포슈니코프는 러시아 제국군 대령 신분으로 시작해 붉은 군대에 합류하고 몇 안 되는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장교로서 쾌속 승진해 소련군의 중요 보직이란 보직은 다 해 본, 그야말로 원로 중의 원로라고 할 수 있었다.

3명이나 숙청당해 이젠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밖에 안 남은 초기 5원수 다음으로 고참이라 할 수 있는 거물이었다. 하지만 보로실로프와 부됸늬는 사실상 핵심 보직에서는 밀려났고 쿨리크는 처형, 샤포슈니코프마저 물러난다면?

아예 세대교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세대 장교의 선두에는 얼마 전 원수로 진급한 주코프가 있었다.

북부전선의 공방전이 끝나면 코네프도 원수로 진급시킬 것이고… 다음 총참모장이 될 바실렙스키도 원수로 승진시켜 주고, 로코솝스키도 금방 원수를 달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고참들의 빈자리를 메워 가는 것이겠지.

“샤포슈니코프 동지. 괜찮소?”

“아, 서기장 동… 쿨럭, 쿨럭쿨럭….”

발작적으로 기침하는 샤포슈니코프를 모두 동정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만큼 존경과 인망을 얻은 것이겠지.

베리야만 빼고 다들 샤포슈니코프에 대한 일말의 존경 정도는 가지고 있는 듯했다. 저 오만하고 성깔 더러운 주코프까지도. 베리야는? 그 역겨운 미소를 계속 띠고 있었다.

‘야, 원수 자리 빈다고 너한테 원수봉 쥐여줄 일은 없으니까 빠져라.’

“대답하지 않아도 좋소. 건강이 너무 나빠진 것 같다면… 원한다면 명예로이 물러나는 것도 괜찮소. 그대는 지금까지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지. 이제는 편히 쉬어도 좋소. 내 동지를 위해 주치의들을 보내 주리다.”

샤포슈니코프는 기침이 멎지 않는지 계속 쿨럭거리며 물기 어린 눈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나는 말해놓고도 내심 이거 숙청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나 의심했는데 다행히도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나 보다.

간신히 기침을 멈춘 그는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음, 다만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마칠 때까지만은 수고해 주시오. 오랜 노고에 감사하오, 샤포슈니코프 동지.”

다시 기침이 나오자 그는 손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깊이 숙였다.

보로실로프는 눈가에 눈물이 어리는지 손수건으로 눈을 살짝살짝 찍고 있었다.

이제 ‘나’와 보로실로프도 늙었다. 아직도 적백내전 당시 일선 지휘관으로 전장을 누비던 기억이 선한데, 허벅지에는 살이 찌고 허리는 굽어 뒷방 늙은이 노릇이나 하게 되어 버렸다.

부됸늬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그런 감상에는 젖지 않은 것 같았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을 타고 전장을 달리다 와서 그런가?

“후임 총참모장으로는 바실렙스키 장군, 그대를 임명하겠소. 지금까지 부참모장으로 소련을 위해 열심히 일해 왔으니 총참모장의 직위를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소.”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서기장 동지.”

“부참모장으로는 그대가 생각하는 사람을 2인 정도 후보로 추려 보고하시오. 그중 적절한 이를 선정하도록 하겠소. 북부전선이 정리되고 샤포슈니코프 원수가 퇴임한 이후엔 바실렙스키 장군과 코네프 장군을 둘 다 원수로 진급시키도록 할 테니 그렇게들 알고 있으시오.”

“예! 서기장 동지!”

주코프는 어째 마음에 안 들어 하는 것 같지만 어쩌겠나.

주코프가 독주하도록 내버려 두기엔 소련 군부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는 베를린에서 귀금속을 약탈했다는 불명예스러운 혐의로 숙청당했다. 베리야는 실제 역사보다도 더더욱 주코프를 향해 이를 갈고 있었고, 언제든 그의 비행을 찾아내 보고할 것이었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경쟁자들이 존재하는 게 그를 위해 더 좋았다.

“스타브카는 독일군이 각각 중부와 남부를 주공으로 잡고 작전을 펼칠 때의 예상 진격로와 아군의 대책을 준비하도록 하시오. 그럼, 오늘 회의는 이쯤 해 두도록 하지.”

“예!”

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은 대대적인 징병령과 함께 서유럽 3국에서도 병력을 차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통의 육군 대국 프랑스, 그 수는 많지 않지만 내전을 겪고 실전경험이 있는 스페인, 허접하지만 아무튼 머릿수는 채워 줄 수 있는 이탈리아까지.

독일의 동원력에 서서히 한계가 찾아오고 있기는 했다. 서유럽 3국의 병력 상태가 얼마나 좋을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200만이라는 거대한 군대가 더 온다면 무게추가 상당히 무거워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봄이 오고, 눈폭풍이 그치면 소련군이 아직 압도적으로 열세에 몰린 공군 전력들이 대거 투입되기 시작할 것이고….

독일군을 괴롭히는 보급 문제 역시 많은 부분 해결될 것이다. 필요한 보급품도 줄어들고 도로 사정이 나아질 테니. 그 전에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올해의 공세 예측이 끝나야 했다.

괜히 엉뚱한 곳에 들이박고 기진맥진한 사이, 독일군이 예비대가 다 떨어진 아군의 약점으로 짓쳐들어오면 손해만 커지게 마련이니.

‘대체… 저놈들은 어느 쪽을 찌르려 하는 걸까?’

* * *

“북부, 우리는 레닌그라드를 노릴 것이오.”

“!!!”

총통의 폭탄 발언 앞에 다들 충격을 받은 듯했다.

기존 계획에서 진군하는 북부집단군과 호응하여 크릭스마리네 함대를 동원, 레닌그라드를 수륙 양면에서 공략한다는 것은 있었으나 북부집단군은 지금 레닌그라드 근처는커녕 노보고로드까지도 가지 못한 상황.

대서양을 텅 비워놓은 채로 전함 십수 척이 몰려가 레닌그라드를 때려 부순다 쳐도 점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닌 말로, 총통은 분명히 신묘한 방법으로 영국을 무너트리기는 했다.

기뢰를 이용해 해안을 봉쇄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방법이었으나 그것을 이용해 상륙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은 총통의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그걸 본 적들은 얼마든지 똑같은 방식을 써먹을 수 있었다. 만약, 만약에 아군의 대잠선을 돌파한 소련 잠수함이나 항공기가 기뢰를 부설하고, 만약 그로 인해 독일의 주력전함이 손실을 입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사태였다.

“총통 각하, 하지만… 만약 저들이 핀란드만을 같은 방식으로 봉쇄할 경우….”

“아군은 해당 지역에 대해 압도적인 해군력 우세와 공군력 우세를 가지고 있네. 육군력은….”

총통의 눈빛이 싸늘하게 육군 장성들에 가서 박히자 장군들은 다들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을 돌렸다. 북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안 그래도 나치들에게 저자세를 취하며 아부하던 만슈타인은 성과가 적자 더 움츠러든 것 같았다. ‘리버풀 학살’ 이후 냉소적으로 변한 롬멜이나 총통 앞에서도 마구 고함치며 직언하는 모델과 달리, 만슈타인은 점점 더 아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잠수함은 격침시켜 버리면 그만일세. 소련이 레닌그라드 방면에서 투입할 수 있는 잠수함이 몇 척이나 되는가?”

“….”

말이야 쉽지. 항공기는 요격하면 그만, 잠수함도 찾아서 격침시키면 그만. 아예 탐지하기 어려운 것은 아닌데 한번 놓쳤을 경우 타격이 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벌써 레닌그라드가 손에 들어온 것처럼 총통은 이야기했다.

“우리가 지금 소련의 전쟁 수행능력에 타격을 주기 위해 노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레닌그라드밖에 없잖는가!”

참석자들의 우물쭈물하는 반응에 화가 난 총통은 일갈했다.

뜨끔한 듯, 다들 다시 고개를 숙이거나 눈을 피했다. 무능하고 멍청한 놈들, 서유럽을 모조리 손에 쥐고서도 소련 하나 끝장내질 못해?

아예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총통은 해군과 공군을 틀어쥐고 신들린 듯한 전략과 전술을 동원해 마침내 지난 대전의 복수를 하고 영국과 프랑스를 굴복시켰다. 해군과 공군은 총통의 신묘한 능력을 거의 숭상하다시피 했고.

그에 반해 육군의 실적은 극히 초라했다.

소련의 공업지대는 크게 셋, 동부 우크라이나, 레닌그라드 일대, 우랄산맥이고, 여기에 서부 우크라이나의 대평원에서 나는 밀과 석탄, 카프카스에서 나는 석유가 소련의 생산력을 지탱했다.

하지만 독일은 이중 끽해야 서부 우크라이나의 극히 일부만을 차지했고 소련은 그 막대한 체구를 점점 일으켜 다가오고 있었다.

서유럽을 모두 손에 넣었는데도 독일은 아직까지 생산량 측면에서 그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점령국의 노동자들은 전반적으로 비협조적이었고, 독일 국민들의 여론 문제로 인해 3교대 전시 생산체제로는 아직 돌입조차 하지 못했다.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는 꽤 유능하긴 했지만 총통의 묵인하에 제3제국의 고위관료들은 제각기 영향력을 행사해 원활한 대량 생산을 가로막았다.

“괴링 원수, 그대는 우랄을 폭격할 수 있는 폭격기를 만들어 올 수 있소?”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총통 각하?”

“그게 없다면 육군이든 해군이든 가서 때려 부숴야 하는데, 그게 가능이나 한가? 지금? 가장 가까운 데 있는 목표부터 취하겠다는데 불만이 있는가?”

육군은 감히 입도 뻥끗할 수 없었고, 해군은 당장은 아조레스의 기지를 굳히며 진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에 항공전력이 아니라 전함이라면 차출할 수 있다고 동의를 표했다.

이번 기회에 항공모함을 실전에서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는 레더의 ok 사인을 받고 해군 제독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라스푸티차가 온다 해도 바다가 진흙탕이 되지는 않겠지. 가서 레닌그라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도록 하지. 당장 손에 넣을 수 없다 하더라도, 저 더러운 빨갱이들조차 손대지 못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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