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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85화 (85/300)

# 85

85화

중국 전선은 실제 역사보다도 더 처참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미국은 유럽 우선 노선하에 아시아와 태평양의 전쟁을 후순위로 미루고 있었고, 일본은 진주만과 인도차이나, 말레이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며 파죽지세의 진군을 이어가고 있었다.

히말라야를 넘어 버마 루트를 통해서 들어왔어야 할 미미한 규모의 지원은 영국령 인도가 자체 방위를 위해 더 이상 중국과 협력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치며 그나마도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소련은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미국이 전해 주는 렌드리스 물자를 독점했다.

“만약 미제 물자가 중국으로 우리를 통해 유입될 경우, 일본제국은 그들의 함대를 이용해 소련으로 오는 모든 렌드리스 물자를 끊어 버릴 것입니다. 이것은 소련의 안보를 위해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이 무슨…!”

“잘 생각해 보십시오, 장 총통. 우리 소련은 양면전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동에 30여 개 사단을 배치해 대독 종전 이후 대일 개전을 준비하고 있으며, 지금 당장 저들과 ‘원만한’ 관계를 가지고자 할 뿐입니다. 십여 년 전, 소련의 지원을 거부한 것은 각하 아닙니까?”

장개석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은 살갗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고, 공산당은 심장에 침투한 중병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공산당 적색분자들을 숙청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사용했다. 소련의 지원까지 포기해 가면서.

하지만 언제나 동맹일 줄 알았던 독일은 일본의 편을 들어 중화민국의 뒤통수를 쳤고, 멍청한 봉천군벌 장학량과 음흉한 쥐새끼 모택동의 합작하에 이제는 일본과의 전쟁에 코가 꿰여 버렸다.

이제 소련은 언제 국민당 내에서 사보타주를 도모했냐는 듯, 아직 일본과는 쎄쎄쎄 하며 손을 잡고 희희덕거리는 주제에 중국에게는 큰 소리로 너희들이 지원을 거부한 것이 아니냐며 을러대고 있었다.

그나마 믿을 만한 동아줄이던 미국은 독일, 일본과의 전쟁에 물려 대독전의 파트너인 소련에게 지원을 몽땅 퍼부어 주고 있었고, 소련 놈들은 그걸 돼지처럼 다 처먹으면서 체급을 불렸기에 중국은 말라 죽기 직전이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빨갱이 새끼들….’

아마 뒤로는 또 중국 공산당의 괴뢰들에게 이것저것 던져 주면서 국민당과 일본을 동시에 견제하도록 조종하고 있을 것이다. 러시아 놈들은 항상 그래왔다. 극동의 땅덩어리들에 욕심을 내며 북실북실하고 누런 손톱 돋친 손을 뻗쳐 오는 꼴이라고는….

* * *

몰로토프는 장개석의 고심하는 표정을 보며 내심으로는 그를 비웃었다.

‘제 밑의 부하들 하나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자가 중국 제일의 군벌이라고?’

장개석 휘하의 지역 군벌들은 소련이 내미는 손 앞에 희희낙락하며 들어오는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먹으려고 충성 경쟁을 펼쳤다. 중국 공산당 역시 그중 하나였고.

국민정부의 부패한 정치가들은 금과 달러, 미녀와 물자 앞에서 가장 내밀한 기밀들마저 충분히 값을 쳐주는 이들에게 팔아넘겼다. 그 정보는 이리저리 퍼져 나가 국민당의 참패에 기여했다.

요 몇 번 간은 어찌어찌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국민정부의 정예 사단들 역시 함께 녹아 버렸다.

서기장의 의중은 간단했다. 중국은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중화민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의 크기는 시베리아의 동토를 제외하면 드넓은 소련 영토보다도 넓었고, 인구는 두 배가 넘었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를 단 하나의 정부가 혼자 다 차지하게 된다면 소련의 안보에는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중국을 차지한 세력이 공산당 정부여도 그것은 마찬가지네!”

중국 땅덩이를 최대한 찢어 버려야 한다. 서기장은 강력하게 역설했다. 중국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중국은 많을수록 좋다. 만주, 동투르키스탄(신장위구르), 티베트. 모조리 갈가리 찢어 버려야 한다고.

“대신 저희 소련 정부는 국적을 식별할 수 없는 물자에 대해서는 국민정부를 지원할 계획입니다.”

“고맙소.”

“여기 물자의 리스트와 수량이 있으며… 대금에 대해서는 언제쯤 상의하실지?”

미국을 건드린 일본은 충분히 금방 패망할 것이며, 그동안은 국민당도, 공산당도 승리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전황을 배후에서 조종하기 위해서는 양쪽 모두에게 끈을 유지해야 하는 법.

그러기 위해선 약간의 당근이나마 던져 주며 지원에 굶주리도록 길들이는 게 나았다.

물자를 팔아먹으며 어느 정도 수익을 올릴 수는 있겠지만 이 정도로는 국민당과 공산당 내부의 프락치를 유지하는 비용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물자로 협력자들을 만들어 내고, 또 약간의 황금이나마 벌어서 미국에 보내 렌드리스를 받아올 수 있으니 좋지 아니한가?

‘장개석이나, 모택동이나, 아니면 일본제국이나….’

이들은 모두 서기장의 손바닥 위에서 춤추는 꼭두각시 어릿광대나 다름없었다.

장개석에게는 격을 맞추기 위해 자신이 왔고, 공산당에는 극동군구 사령관으로 영전한 추이코프가, 일본에는 콘스탄틴 스메타닌이 파견되어 각각 기름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물자의 리스트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장개석은 아마 의심 정도는 하고 있을 것이다.

소련 놈들이 공산당과 협력해 공작을 펼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국민정부의 고관들마저 개입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겠지. 일본에게 그들이 정보를 팔아먹고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중화민국 정부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처럼 정보와 자금이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서기장 동지의 의중에 따르면 이들은 남중국의 절반을 장악해 북중국을 손에 넣을 모택동의 공산당을 견제해 주어야 할 테니, 일단은 두고 보면서 지원도 조금씩은 해 주는 수밖에.

* * *

중국 공산당은 주어지는 당근 앞에 힘의 논리를 따르며 충실하게 복종했고, 일본군과 교전을 피하며 힘을 키우고 있었다.

주석 모택동과 총사령관 주덕은 코민테른이 파견한 볼셰비키 고문관들을 숙청해 버리고 집권한 주제에 소련이 주는 지원에는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를 취하며 받아먹었고, 추이코프는 이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추이코프 대장 동지, 여기 저희의 작전계획안이 있습니다. 인가를 부탁드립니다.”

소련군은 이들의 작전계획안을 보고 마음에 들 때만 작전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들을 지원해 주었다.

결과가 나쁠 경우에도 그다지 질책이나 자아비판 요구를 하지 않고, 그냥 자세하게 보고서만 제출하면 물자를 퍼다 주었기에 공산당은 지원을 받아먹기 위해 열심히 보고서를 써다 바쳤다.

그게 다 일본군에게 넘어가는지는 모르고 말이지. 추이코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서기장은 이들의 작전을 알아내어 일본군이 적절하게 공산당과 국민당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분명히 작전계획서를 낱낱이 다 알려 주는데도 가끔 패배하는 일본군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일본군은 중국군을 상대로 전반적인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음, 좋소. 필요한 물자는 극동군구에서 출발할 것이오. 승리를 비오.”

“감사합니다, 추이코프 동지.”

지원을 원하면 향후 종전상태에서 만주를 독립된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독립시키라는 요구 역시 이들은 순순히 받아들였다.

아직 만주는 일본의 괴뢰국 만주국이 장악한 상태였고, 공산당은 끽해야 섬서의 해방구를 근거지로 국민당 아래에서 반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니 당연히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직 손에도 넣지 못한 것을 준다고 약속해 놓고 지원을 해 달라며 손을 비비는 꼴이 우스웠지만 아무튼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비겁한 자가 어떻게 수백만 군대를 이끄는 장개석 총통을 상대로 승리한단 말인가?’

아무리 일본군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지만 광활한 중국 영토에서 그들은 고전하고 있었다. 주일대사 스메타닌이 보내오는 보고서에는 일본군의 한심한 상황들이 적혀 있었다.

일본은 이 상황에서 미국까지 적으로 돌렸으니 최후의 승리자는 장개석이 될 것이 뻔한데… 공산당이 승리한다고?

저기 남동쪽에서 중국 대륙을 반 바퀴 돌아 내륙까지 도망치는 데 성공한 저력은 인정할 만하지만 결국 그것뿐이었다. 설마 우리가 이 자가 중국 대륙을 반반 나눠 먹는 것을 도와주어야 하나?

“우리 연락장교들을 통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연락을 주시오. 코민테른 소속의 형제들에게 우리는 언제든지 도움을 베풀 준비가 되어 있소.”

“예, 예, 아무렴요, 사령관 동지.”

그는 ‘코민테른’에 일부러 강세를 붙였고,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공산당의 간부들은 굽실댈 뿐이었다.

속으로 실소가 나왔다. 부패한 국민당이나, 비겁하고 음흉한 공산당이나.

추이코프는 중국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왜소하고 용렬한 주제에 사납고 잔혹하기만 한 일본인들 역시 혐오스러웠다. 포로를 가지고 생체실험을 한다니! 제정신들인가?

서기장이 조선인들을 유독 편애할 때 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부전선에서 활약한다는 부대들은 직접 만나 보지는 못했으나 그들이 보여 주는 용맹함과 뛰어난 전공에 대해서는 신문들이 연일 대서특필 중이었다.

만약 거짓이라 해도 최소한 이 역겨운 놈들보다야 낫겠지.

추이코프는 대담하고 용감한 자들을 좋아했고, 비겁한 이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본 지배하의 만주에서 탈영해 수천 킬로미터를 헤쳐 와 소련군에 입대한 조선인들을 직접 만나 본 그로서는 굽실대는 중국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당당한 조선인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되었다.

* * *

일본 외무장관 도고 시게노리와의 회담 이후 주일대사 스메타닌은 대사관저로 향했다.

일본인들은 소련에 대해 도무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감정? 착각? 아무튼 뭐라 해도 좋았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를 모르겠단 말이야….”

저들은 소련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멸시하는 것인가.

그도 아니라면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인가? 혹은 이후 정복하려 하는 것인가?

소련이 지금 저자세를 취하는 것을 저들은 소련이 일본을 두려워한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다. 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물자가 일본에 의해 끊어진다면 유럽의 전쟁은 꽤나 어려워질 테니.

하지만 수합한 정보에 따르면 일본의 육군은 그다지 강군이 아니었다.

1백만이라 하는 ‘정예’ 관동군은 중국 대륙에서의 전쟁에 의해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동남아를 공격하기 위해 또 핵심 사단들이 차출되었고, 핵심 사단이라 해봐야 기계화율은 극히 낮았다.

이들이 소련군과 맞먹거나 압도할 수 있는 것은 파일럿의 숙련도밖에 없었다.

서기장은 유럽의 전쟁이 끝나가는 대로 일본제국과 그들의 식민지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극동군구의 전력을 암암리에 조금씩 증강하고 있었다.

배후의 공격을 예방하기 위해 극동지역에 박아 두었던 30개 사단을 50개 사단까지 증강시키고, 2선급 장비와 훈련도를 갖추고 있던 부대들에게는 장비와 편제를 몰래몰래 바꿔 주고 있었다.

일본은 아직까지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고,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이후 중국을 갈라 먹자고 순진한 제안을 하고 있었다.

“그게 기만인지 진짜 몰라서 그런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시게노리와의 대화록은 곧 타이핑되어 모스크바로, 크렘린으로 보내질 것이다.

서기장은 극동에서의 이권 분할에 대해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의 식민지인 만주를 반드시 소련의 영향권 안에 편입해야 했고, 조선반도는 친소 독립국으로 만들어 일본 제국주의자를 견제할 수 있는 전진기지로 삼는다.

지금 일본제국은 아마 전혀 소련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차하면 미국과의 평화협상을 주재해 주셔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일본 외무장관 시게노리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소련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스메타닌은 그 음흉한 웃음을 떠올리자 진절머리가 났다.

아니, 애초에 미국이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시간문제일 뿐.

일본이 지금 불의의 일격을 먹였을지언정 미국의 공업 능력은 소련보다도 생산력 측면에서 열등한 일본이 무시할 대상이 아니었다.

저 풍요로운 대륙에서 나는 물자들을 렌드리스로 받아와 인민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을 주재하는 외무인민위는 그것을 충분히 잘 파악하고 있었다.

서기장의 목표는 일본제국이 미국에게 무너지기 전에 독일을 먼저 무너트리고 일본제국의 식민영토들을 소련군의 손으로 해방하는 것.

“저놈들을 밟아 버리는 데에는 딱 2개 야전군이면 충분합니다!”

“추이코프 상장은 지금 과장을 하는 겁니다. 솔직히 1개 야전군이면 충분합니다! 으하하하하!”

극동군구의 추이코프 사령관은 2개 야전군만으로도 관동군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할힌골에서 일본군과 싸워본 주코프 원수 역시 1개 야전군이면 충분하다, 어디서 엄살을 부리느냐고 껄껄 웃으며 이야기했다. 물론 항상 충분한 병력을 투입해 빠르고 확실하게 적군을 압살할 것을 원하는 서기장은 4개 야전군 50만을 극동군구에 쏟아붓고 있었다.

아직 개전은 멀었고, 베를린까지는 1천 킬로미터.

1킬로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천 명씩의 목숨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소련 지도부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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