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
84화
실제 역사였으면 지금, 42년 초의 소련군은 비참한 처지였을 것이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티며 독일군에게 조금이라도 더 피해를 입히기 위해, 지휘부의 낙관 때문에 무리한 공세를 펼치는 처지.
하지만 지금의 소련군은 남아도는 역량으로 서서히 질적 증강을 꾀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선 전공을 세우고 높은 전투효율을 보인 부대들은 있으나 마나 한 ‘근위’ 칭호를 받고 공세에 투입되어 끝없이 소진되었다. 고참병이 죽어간 자리로 어제 처음 총이란 것을 잡아 본 신병들이 던져졌고, 이들은 독일군에게 학살당하다시피 하며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병사들의 목숨을 아껴야 하오! 저들은 소중한 우리 인민들의 아들딸이며, 새로이 올 프롤레타리아트 국가의 내일을 만들 일꾼들이오!”
나는 독소전쟁에서 2천만 소련인이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인명 손실을 가급적 최소화한다, 이러한 기조하에서 병력의 기계화, 그리고 정예화 작업은 진행되었다.
피해를 크게 입고, 재편성이 필요하게 된 정예 근위사단들은 연대, 여단급으로 쪼개어 새로 창설되는 부대의 기간병력으로 배치되었다. 이들은 각기 한두 계급씩 진급하여 신병들을 이끌고 교육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들이 무참하게 학살당하지 않도록.
전선에는 충분히 많은 예비부대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아직은 일선부대들을 무장시키는데도 신형 소총이나 야포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새로 징집된 신병들은 충분한 물자가 보급되기 전까지 근위사단 출신의 고참 병사들 밑에서 죽어라 전투 훈련을 받아야 했다.
“오늘 흘린 땀 한 방울이 전투에서 흘릴 피 한 방울을 줄여 준다! 하나! 둘! 하나! 둘!”
“씨발… 내 피보다 오늘 흘린 땀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조교는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딴생각을 하는 병사들을 지적해 냈다. 끝없는 훈련에 기진맥진한 병사들은 마지막으로 힘이 남은 입을 나불거렸다가 혹독한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거기 아직도 잡담할 기운이 있습니까? 팔굽혀펴기 100회 추가! 하나는 인민 둘은 만세! 하나!”
“인민!”
“둘!”
“만세!”
불평하는 이들은 있었지만, 그들은 최소한 아무 대비도 못 한 채 전장에 끌려가 죽는 이들보다는 훨씬 나은 처지였다. 죽은 이들은 불평도 할 수 없었기에.
또한, 소련군은 이 시대 기준으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1중대! 1중대!”
타탕, 타타타탕, 펑!
예하 중대는 하나하나 무전이 끊기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움츠러든 채 장갑차 뒤로 엄폐하는 척 숨어들며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팔뚝에 흰 완장을 두른 채 필기판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던 장교는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지휘장갑차, 폭파!”
“으음… 아쉽습니다.”
대대장의 지휘장갑차 안에 타고 있던 장교 하나가 씩 웃으며 어색한 러시아어로 그렇게 말하자, 대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때 적이었던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경험과 기술만큼은 배울 만했다.
“역시, 독일 장교들의 경험이라는 것은 대단합니다. 우리 병사들은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군요. 무장이 대등하다면….”
“하하… 과찬이십니다.”
그의 부대는 새로 만들어진 ‘모의전투 훈련단’의 최초 상대 중 하나였다.
“파시스트 군대를 상대하기 위해선 그들의 전술과 교리 등을 연구해야 하고, 실제로도 우리의 전술을 실험해 보아야 하네! 병사들의 피를 최대한 덜 흘리면서!”
서기장은 그렇게 엄명을 내렸다. 그래서 후방사령부는 그래서 독일군 포로 중 협조할 의사가 있는 이들을 차출해 소련군 정예 병력과 함께 모의전투 훈련단을 창설했다.
이른바 ‘전문대항군’이 창설된 것이다.
이 전문대항군은 포로가 되었던 독일군 장교들이 철저히 독일식으로 지휘했고, 소련군 정예 병력의 기본적인 역량과 합쳐져 높은 전투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들과 실전 같은 훈련을 치르기 위해 차출된 부대 역시 적잖은 전투 경험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결국 참패해 버렸다.
“괜찮습니다. 승리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지금의 훈련으로부터 당국은 양질의 자료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하하하하! 지금까지 단 한 부대도 전문대항군을 상대로 승리한 적이 없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아무튼 이 정도면 충분히 잘하신 겁니다.”
대항군과 소련군 부대들의 전투 경과는 철저하게 기록되어 분석을 위해 총사령부로 보내졌다.
총 12개 부대. 여단급 2개, 연대급 4개, 대대급 이하 6개로 구성된 대항군 부대들은 매일같이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전투 이후 손실을 보충하고 편제를 고치기 위해 후방으로 보내진 부대들이 대항군의 상대역으로 참가했다.
“빌어먹을, 저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군! 다음에는 내가 꼭 이겨 보이겠네.”
“하하하하! 아주 좋은 결의이십니다.”
나름 자기네들이 군의 미래라고 자부하던 소련군 장교들은 독일군의 정예 장교들에게 탈탈 털리고는 이를 갈며 저들의 전술을 배우고 또 파훼할 방법을 찾아냈다.
* * *
“독일군의 소부대 보병교리는 기관총을 중심으로 편제되어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입니다.”
팔을 붕대로 묶고 있는 독일 장교 하나가 소련군 장교들 앞에서 독일군의 보병전술에 대해 칠판에 적어 나가고 있었다. 수십 명의 소련군 장교들은 그 강의를 들으며 각자의 노트에 사각사각 필기를 해 나갔다.
“완편 기준 9명의 분대는 분대장, 1번, 2번… 같이 번호가 붙여집니다. 이 소총분대는 MG34 경기관총 1정과 반자동소총 및 기관권총 각 1정씩을 휴대하게 됩니다. 나머지 분대원들은 Ka로 무장하고….”
그가 강의함에 따라 옆에 있던 소련군 병사는 언급된 무기들을 하나씩 들어 강의를 듣는 소련군 장교들에게 보여주었다.
독일군의 소총분대 전투방법과 교리가 자세히 열거되었고, 각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하게 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교범 역시 하나하나 나열되었다. 소련군 장교들은 때로는 손을 들어 질문을 하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박격포의 경우에는 어떤 규모에서,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게 됩니까?”
“좋은 질문입니다. 박격포 중대는….”
독일군 장교는 그렇게 질의응답을 마치고 강의실 한구석으로 다시 돌아가 앉았다. 그는 소련군에 협조하는 대가로 자기 부하들이 가능한 한 최선의 처우를 받을 것을 약속받았다.
적국에 협조하여 자국민을 더 많이, 효율적으로 죽이는 법을 가르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자신과 부하들을 사지로 던져 넣은 상부와 정권에 대한 미움이 더 큰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두꺼운 안경을 쓴 소련군 소령 하나가 나와 그의 안경처럼 두툼한 책자를 각 줄마다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이 책자에는 지난해, 각 개월 별로 아군의 사망원인을 집계한 데이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북부, 중부, 남부전선 별로 주요 교전과 사망 통계를 봐 주시기 바랍니다.”
사망원인에 대한 통계 자료와 그에 대한 분석이 이어졌다. 기관총, 박격포 등이 주요 원인으로 제시되었고, 시가전에서는 유탄에 의한 사망이 많았다며 하나하나 숫자를 읽어 가며, 소련군 장교들은 어떻게 병력을 조직하고 무장시킬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면 시가전에 투입되는 병력에는 유탄발사기를 들려 주면 될 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병사 1인당 담당해야 할 중량이 너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유탄발사기를 장착할 경우 다른 무장을 갖추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이 장교들은 일선에서 용맹과 지휘능력을 인정받아 차출된 이들이었다.
프룬제 군사대학 출신의 엘리트 대령도 있었고 병사 출신에서 순식간에 진급해 갓 중위를 단 새파랗게 어린 청년 장교까지. 그러나 이들은 지금만큼은 서로 대등한 상태에서 의견을 듣고 있었다.
“독일군 기관총조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에 대해선 나보다 당신이 더 잘 알 것 같소. 하하하!”
까마득한 윗 계급이었지만, 대령은 중위의 의견에 결국 동의를 표하며 껄껄 웃었다. 계급보다 경험이 낫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 이들은 열려 있었다. 때때로,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있던 독일군 장교들에게도 이들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상황이 가장 골치 아팠습니까? 예컨대, 보병전에서 말이지요.”
포로 출신의 장교들은 어눌하지만 담담한 러시아어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곤 했다.
“기관총은 분명 높은 화력을 투사할 수 있습니다. 저희의 통계에 따르면 Kar98 소총 30정에 필적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요. 하지만 기관총 사수에게 계속 총격이 가해질 경우 집중된 화력을 투사해야 하는 기관총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소련군 자동소총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자동소총은 상당히 골치 아픈 상대였습니다. 저희가 가을, 겨울에 마주쳤던 소련군은 높은 자동화기 비율로 훨씬 높은 보병 화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보병부대의 교전에서 최우선 목표, 기관총을 제거한 이후에도….”
강의와 토론은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다.
소대장 이상의 경력을 가진 위관장교부터 대령까지. 각 계급과 군종, 병과 별로 상이할 수 있는 경험을 수집하여 공유하기 위해 각지에서 차출된 이들은 이렇게 토론을 이어나갔다.
독일군 포로 출신의 장교들을 불러 질문을 던지고 강의를 듣기도 했고, 때로는 육군 상층부의 장성들이 와서 강의를 참관하기도 했다. 격주마다 토론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그룹마다 묶어 제출하는 과제도 있었다.
대략 열댓 개의 그룹마다 번갈아 가며 자유토론, 지정토론을 했으며 몇 개의 그룹이 모여 그동안 논의된 것들을 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시간도 주어졌다.
“강의실 안에서만은 가장 하찮은 의견이라도 다들 곰곰이 생각하시오. 또, 실제 상황에서라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자는 반동일 수밖에 없지만 토론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문제점을 찾아내 지적할 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오.”
이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한 서기장은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친히 강의실을 방문한 서기장은 조곤조곤 어떤 방식의 토론이 좋은 토론인지에 대해 교시했고, 장교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리트 장교와 병사 출신 장교는 분명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서로의 의견을 듣는 것은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툭 던진 말에 깊은 통찰이 들어 있는 경우도 꽤 많았다.
새벽까지 강의동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다양한 출신 배경과 다양한 경험을 한 이들이 모여 있었으나, 단 한 가지만큼은 모두가 동의했다.
“내가 더 잘해야, 인민 하나가 덜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