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78화 (78/300)

# 78

78화

“오늘이 공세 일시인 것은 다들 알고 있겠지?”

“예! 사령관 동지!”

루마니아―불가리아의 항복 직후 다음 주공 방향은 북부전구가 되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소련 장교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었다.

“레닌그라드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북부집단군을 몰아내야 하네! 마침 적의 세 집단군 중 가장 약한 것이 북부집단군이니, 봄이 오기 전에 끝장을 보도록 하세나.”

북부집단군 사령관 이반 코네프는 장교들을 단단히 단도리쳤다. 남부에서는 이미 그의 라이벌, 주코프가 승리를 거두었다. 주코프의 위상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그를 견제하기 위해 자신을 밀어준다는 소문도 간간히 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만큼 그에게 주어진 지원만큼은 탄탄했다. 수천 대의 전차들과 거의 1만여 문에 이르는 다양한 구경의 박격포와 야포들, 그리고 신식 훈련법으로 교육받아 배치되는 대규모 증원 병력들까지!

서기장은 확실한 승리를 원했고, 독일의 가장 거대한 집단군인 중부집단군에 공세를 가하는 것보다는 그 조공이라 할 수 있는 북부집단군을 꺾어 중부집단군 스스로가 충분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진격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길 바랐다.

“이참에 정치적 선택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저 파쇼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도록 하지!”

물론 정치적인 측면을 보기 전에 전략적으로도 옳은 선택이었다. 서기장은 소련군의 허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일전의 스타브카 회의에서도 그렇게 교시한 바 있었다.

“아직 우리 군대는 숙련도의 측면에서 파쇼들과 비교할 수 없네. 저들은 3년여간의 실전을 치러 온 베테랑들이고 우리는… 으음… 부족하지.”

“송구합니다!”

“아니, 아니, 그럴 것 없네. 아무튼 우리 군대의 전반적인 수준은 저들에 미치지 못하지. 그렇다면 압도적인 질량으로 압살해야 할 것인데, 그러려면 더 작은 쪽을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겠나?”

“반드시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북부에서의 반격 작전을 위해 스타브카는 배치된 각 부대들을 기계화하는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주요 상급 사령부에는 서기장의 교시에 따라 표어가 나붙었다.

<매 사단마다 기계화대대를, 매 군단마다 기계화연대를, 야전군마다 기계화여단을!>

“서기장 동지는 너무 기갑부대에 집착하시는 것 아닌가? 이거 그 반역자 투하쳅스키의… 읍읍!”

“이봐! 자네 감히 서기장 동지를 의심하는 건가? 아무튼 시키는 대로 하라고.”

서기장은 웬만한 사람들이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전차의 생산과 배치, 그리고 전차병의 훈련에 집착했다. 결과적으로 전선에서 싸워야 할 병사들에게는 참으로 다행이었다.

이렇게 배치된 직할 기계화부대들은 제대 지휘관의 가장 강력한 예비대이자 독일군의 역습을 막을 모루가 되었다. 처음에 각급 지휘관들은 처음으로 주어진 압도적인 화력에 당황했지만 몇 번의 교전을 통해 전차부대의 운용을 익혀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러지 못하고 처절하게 실패한 자들은 숙청, 강등당했기에 소련군의 고급 지휘관들은 필사적으로 기갑부대 운용을 익혀야 했다.

* * *

북부전구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레닌그라드와 그 근교의 열차역에는 새로 실려 온 전차들이 자력주행하여 시가지를 빠져나가느라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말끔하게 새로 도색된 짙은 카키색 전차들을 보며 시민들은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붉은 군대 만세! 전차부대 만세!”

거대한 주포를 자랑스럽게 쭉 내뻗은 채 우르릉거리는 엔진음을 내뿜으며 달려가는 수백 대의 전차들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저들은 붉은 군대, 소련 시민의 총칼이자 주먹이 되어 파쇼들을 박살 내리라!

공세의 망치인 전차군들은 남부에서 열차를 타고 올라와 전선에 배치되었다. 구형 경전차들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중량급 전차들로 무장한 그들은 의욕이 넘쳤다.

[북부전구는 계획대로 공세를 실시하라]

이제 스타브카는 최종 지령을 내렸다.

“붉은 군대 우라! 우라! 우라!”

* * *

소련군의 교리는 항상 막강한 야포 전력을 남김없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일찍이 겨울전쟁의 전훈을 놓고 토론하는 자리에서 스탈린 서기장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

그 뒤에는 더 많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탄약을 조금만 사용한다면 더 많은 병력을 희생해야 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네. 병사를 아끼면서 총포탄을 더 많이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총포탄을 아끼면서 병사를 더 많이 희생시킬 것인지.>

<우리 포병이 승리한 이유는 하루 동안 23만 발의 포탄을 퍼부었기 때문이오. 어떤 사람들은 포탄을 많이 소모했다고 비난하기도 하더군. 나는 이런 자들이야말로 문제라고 생각하오. 이왕이면 23만 발보다 40만 발을 퍼붓는 게 낫지 않았겠소? (중략) 현대전에서 총포탄을 아껴서는 안 되네. 탄약을 아끼는 것은 범죄요. 총포탄을 아끼지 않고 퍼부었다면 인명 희생도 줄고 전쟁도 다섯 배는 빨리 끝낼 수 있었을 거요.>

그리하여 소총병의 진군이 시작되기 직전, 수많은 대포들이 불을 뿜었다.

* * *

쾅! 쾅! 콰쾅! 콰콰쾅!!

휘유우우우우우! 휘이이이익!

122mm M―30 곡사포, 152mm M―10 중곡사포, 그리고 다종다양한 구경의 로켓포들까지!

각각 제각기의 발사음을 내며 불운한 독일군을 향해 날아갔다. 꽝꽝 얼어붙은 땅을 허접한 삽 한 자루와 마찬가지로 꽁꽁 얼어붙은 손발을 가지고 파야 했던 그들이 보면 억울할 정도로 포격은 땅을 갈아엎었다.

“이런 제기랄! 공격이다!”

병사들은 피로에 지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지금이 몇 시쯤 되었는지, 손목시계를 봐도 이게 제대로 된 시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진다는 평범한 진리는 이곳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저 명령대로 움직일 뿐.

“제기랄… 지금이 몇 시인데… 저 새끼들은 잠도 안 자나?”

“몇 시긴. 정오인 것 같은데?”

“그런데 왜 하늘은 저따위야?”

프스코프가 북위 57도. 레닌그라드는 59도. 겨울 동안 해가 하루종일 떠오르지 않는 극야가 계속될 만큼 높은 위도는 아니지만 하루에 단 몇 시간을 제외하면 어슴푸레한 새벽이나 어두컴컴한 밤이 지속되었다.

여기에 북러시아의 1월은 눈보라만이 불어닥치는 그런 혹독한 계절. 추위와 피로 속에서 마모된 이들은 오래간만에 땅을 파기 위한 삽과 곡괭이가 아니라 총을 잡았다.

“윽! 손이 붙었어!”

“잘 불어서 녹여 봐. 제기랄… 무슨 이런 놈의 추위가….”

쇳덩어리는 꽁꽁 얼어붙어 약간의 습기도 허용하지 않았다. 맨살이 닿으면 그 즉시 꽝꽝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는 꼴을 보고서도 멋모르고 총을 집은 병사는 쌍욕을 내뱉으며 달라붙은 손바닥을 떼야 했다.

“그래도 오줌싸고 털다가 좆대가리가 얼어붙은 것보단 낫지 않냐?”

“어우… 그 무슨 끔찍한 소리를… 낄낄낄낄.”

“그놈은 거기에 동상을 입어서 잘라냈다는데?”

병사들의 농담은 그들이 판 참호 근처에 포탄이 떨어져 땅을 온통 흔들어 놓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칫하다간 형체도 찾을 수 없이 박살 나버릴 것이라는 공포감이 엄습했다.

포격은 마치 재앙과도 같았다. 일개 병사들로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손쓸 수 없는 재앙이 하늘에서 불벼락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며 병사들은 그저 기도할 뿐.

어느샌가 병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농담처럼 떠돌았다.

<포병은 전장의 신이다. 그러나 신들은 자기네들끼리의 싸움에 정신이 팔려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병사들은 그 말이 사실이기만을 바래야 했다. 어디선가 날아와 불운한 이들을 박살 내버리는 포탄의 직격이나, 비산하는 파편에 의해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 동료 병사들을 보면 그 누구나 그럴 것이었다.

화약의 비가 끝나면 그다음엔 강철의 파도가 몰아닥친다. 병사들은 포격이 점점 멎어 가자 숨을 고르며 다음 공세를 준비했다. 인간은 이런 가혹한 환경을 견딜 수 없었지만 병사는 견뎌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죽을 뿐. 견딘다고 죽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 * *

대규모의 포격과 제병합동전술로 돌파구를 열면, 그 틈으로는 기계화부대가 돌격했다. 붉은 군대는 가혹하고 힘든 곳이었지만, 인간의 맨몸으로 쇳덩이에 부딪힐 것을 명령하지는 않았다.

“우라! 우라! 우라! 돌격하라!”

포격이 파헤친 땅을 전차의 무한궤도가 한 번 더 갈아엎었다. 혹한의 추위는 기계가 가동하기에 최적의 환경은 아니었으나, 묵직한 전차가 충분히 기동할 수 있을 정도로 땅은 얼어 있었다.

소련군의 전차는 병사들이 불운하게도 포격에 직격당한 덕분에 열린 돌파구를 향하여 진격했다.

[중전차 앞으로! 전진하여 적의 대전차포 진지를 파쇄하라!]

[명령받았습니다. 3중대, 전진!]

육중한 카베 전차는 독일군의 1차 방어선을 돌파하여 대전차 화기 등 중화기가 설치된 2차 방어선으로 진격했다. 조향 성능과 기동성, 파괴력 면에서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하기 어려운 구식이었지만 그 장갑 하나만은 실로 탁월했다.

깡! 깡! 독일군의 PaK 36 대전차포는 경쾌한 금속음을 내며 튕겨져 나갔다. 독일 병사들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중전차다!”

“하하하하!! 돼지 새끼들, 받아라!”

대전차포에 대한 답례로 소련군 중전차들은 고폭탄과 기관총탄을 퍼부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배치되었던 독일군 대전차진지는 순식간에 침묵하기 시작했다.

“어? 적 전차 엔진음입니다.”

[2차 방어선에서 막 적 전차를 마주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3중대, 3중대!]

경전차의 140마력 엔진이 내는 날카로운 소리와는 사뭇 다른, 적 중전차의 묵직한 600마력 엔진음은 이제 숙련된 소련군 전차병이라면 얼마든지 알아챌 수 있었다.

“철갑탄, 장전!”

“철갑탄 들어갑니다!”

41.5구경장 76.2mm 포로는 적 신형 전차의 전면을 근접거리에서 관통한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신형 철갑탄이라면 모를까… 물론 이들이 걱정해야 하는 것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눈보라가 여전히 몰아치는 하늘은 적 공군기가 뜰 수 없는 환경을 제공했다. 마찬가지로 목재나 캔버스로 된 소련 항공기들 역시 뜰 수 없었고, 독일군은 대공포를 대신 소련군 전차에 퍼부어 댔다.

“으아아아악!”

“빌어먹을! 2시 방향에 대공포!”

카베 전차 한 대가 대공포탄에 맞아 연기를 뿜어내며 주저앉았다. 내부 화재가 발생했는지, 몸에 불이 붙은 채 해치에서 튀어나온 전차병 하나가 땅 위를 굴렀다.

다행히도 나머지 전차들은 희생해 준 전우 덕분에 위협을 경계할 수 있게 되었다.

투투퉁! 퉁! 퉁!

중전차의 부무장으로 장착된 유탄발사기가 퉁퉁거리는 발사음을 내며 대공포가 엄폐한 것으로 추정되는 관목림 쪽을 향해 불을 뿜었다. 다른 전차들 역시 각자 무장한 중기관총이며 고폭탄을 쏘아 댔다.

[방어선을 돌파한 2중대가 합류한다! 전황 보고 바란다!]

“적 중전차 3대! 엄폐한 대공포를 찾고 있다.”

독일군은 여전히 강력한 적수였다. 소련군이 성장했듯, 독일군도 어떻게 하면 소련 전차들을 잡아낼 수 있는지 지난 6개월간 배우고 익히며 성장해 나갔다.

물론 항상 압도적인 수의 적 앞에서는 무력할 뿐. 카베 전차 중대를 상대하던 적 중전차들은 결국 T―34 중대가 합류하자 아군 방어선을 뒤로하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파쇼 새끼들아! 뒈져라!”

[적들이 후퇴한다! 만세!]

땟국물이 좔좔 흐르는 회색 제복을 입은 독일군 병사들이 하나하나 참호를 버려두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소련군 전차들은 그들의 등 뒤로 신나게 기관총을 쏘았다.

“한 놈도 남겨 두지 마라! 어머니 조국을 짓밟은 자들은 돌아가지 못 한다! 우라! 우라!”

“붉은 군대 우라!”

쾅! 쾅!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버려두고 같이 죽으라는 뜻인지. 독일군의 포격이 저 멀리서 날아와 전차들 근처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포격. 전차병들은 그렇게 되뇌며 지그재그로 전차를 몰았다. 참호선을 넘어, 설치한 철조망을 무한궤도로 짓밟으며, 그들은 독일인들이 만든 두 번째 방어선을 넘었다.

적의 포병 사격을 견제하려는지 아군의 포성도 아스라이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곧, 전장의 신들은 자기네들끼리 싸우기 시작할 것이다.

전차병들은 신나게 진격했다. 신이 없는 인간의 전장에서는 전차가 최고였으니.

“쏴라! 쏴! 조국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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