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72화 (72/300)

# 72

72화

“하일 히틀러! 아리아인에 영광을!”

“하일 히틀러!”

“하일 히틀러!”

비슷한 시각, 유럽 저편의 베를린에서도 장엄한 송구영신의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밤늦게까지 거대한 연회당에 집결한 제3제국과 그 동맹국에서 온 고관들은 총통이 입장함에 따라 오른팔을 들고 하일 히틀러를 외쳤다.

총통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손을 들어 답했고, 참석자들은 더 열렬한 환호로 답했다. 뚜벅뚜벅 중앙의 통로를 걸어 저 높이 있는 상석까지 그가 올라가는 동안 모두들 끝없이 박수를 쳤고, 총통이 앉아 손을 들 때까지 모두들 박수를 쉬지 않았다.

“모두들 잘 모였소. 우리 독일을 이끌어가는 여러 지도자들, 동맹국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영국, 핀란드와 헝가리, 발트와 크로아티아에서 온 형제 여러분들. 반갑소이다.”

“와아아아아!!!”

각 국가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해당 국가에서 온 이들은 일어나 청중들에게 인사했고, 박수와 함성과 환호로 독일인들은 먼 곳에서 온 전우들을 환영했다.

한 차례 각 대표단들을 소개하는 순번이 돌고, 크로아티아 우스타샤를 마지막으로 인사가 끝나자 총통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올 한 해, 우리는 승리했소! 승리 만세!”

“지크 하일! 지크 하일!”

“그리고 한때 적이었던, 한 뿌리에서 나온 이들이 이렇게 다시 뭉쳐 함께 나아가기로 맹세하였소. 그렇지 않소이까! 하하하하하.”

그 말에 비시 프랑스를 대표해 독일에 온 피에르 라발과 영국을 대표해 온 윌리엄 조이스 등 한때 ‘적국’이었던 곳에서 온 이들은 얼굴을 붉히며 머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프랑스와 영국은 치욕적으로 패배했다. 프랑스는 단 6주 만에, 영국은 항전을 이어가다가 몇 개의 주요 도시가 쑥대밭이 된 끝에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비시 프랑스와 영국 ‘정통’정부, 새로 세워진 이 정부들은 독일에 전면적으로 협력할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여기의 고관이라 하여 수치를 모르는 것은 아닌 듯했다.

물론 나치라 하여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종의 ‘길들이기’. 이러나저러나 반대파들은 그들을 배신자라 생각할 것이고, 반대파들을 억누르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반역자들은 독일과 협력해야 했다.

그리고 독일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 이들은 ‘영국 의용군단’과 ‘프랑스 국민군’을 편성해 전선으로 보낼 것을 약속하고, 국가의 핵심 산업시설들을 독일이 뜯어가는 것을 방조해야 했다.

이미 수십만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독일의 감독하에 각종 산업현장에 투입되었고, 독일인들이 들고 타고 싸울 무기와 먹을 식량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면? 최소한 영국인들은 나치의 감시를 받을지언정 먹는 것만큼은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해양 봉쇄는 풀렸고 북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식량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물론 식량의 대신이라고 하면 그렇지만 반독 성향, 친공 성향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많은 이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침묵했다.

“…우리는 저 오만한 신대륙의 양키들을 징벌하고 더러운 유태―볼셰비키들을 파멸시킬 것이오! 우리 모두 이렇게 이룩할 세계 공영권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합시다!”

신대륙의 양키들은 몇 척이고 군함들이 침몰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더 많이 찍어내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아조레스와 마데이라에 추축이 만든 항공기지들을 점령하기 위해, 그들은 상륙을 시도하고 공습을 가했지만 몇 번이고 실패하며 피 흘리고 손실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결코 굴하지 않았다. 한 번으로 안 된다면 두 번, 두 번으로 안 된다면 세 번.

미국의 막강한 경제력은 그들이 오만해도 될 만한 이유가 되어 주고 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도전하려 하는 우리들이 오만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로.

소련에 이르면?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몰려오는 붉은 해일과 같이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베를린을 향해 불길한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소련의 지령을 받는 공산주의자들 역시 사보타주와 테러리즘으로 사회를 위협했고, 아무리 짓밟으려 해도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사회를 이끌어야 할 대학생들은 비밀 서클을 조직해 암살과 선전 활동을 벌였고, 공장 노동자들은 결사단을 조직해 군수품의 생산을 사보타주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렇게 양면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저 동쪽에서 밀려오는 수백만의 붉은 군대와, 우리 안의 기생충 같은 점조직들이 안팎으로 국가를 좀먹었다.

비시 정부의 고관들은 다들 몇십 명씩의 호위를 대동해야 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고급 폭탄과 총기류를 손에 쥔 공산주의 레지스탕스들은 중앙정부의 고관을 척살하기 위해 폭탄 투척과 폭파공작, 저격을 일삼았다.

다행히 총통은 SS의 정예 멤버들을 각국 고관들의 호위를 위해 차출해 주었지만 그건 이미 비시의 해군장관, 프랑수아 다를랑이 저격당해 사망한 이후였다.

“승리 만세!”

“와아아아아아!!!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총통의 길고 장황한 연설은 그렇게 끝났다. 추축국에 가담한 여러 나라들의 국기가 펼쳐진 아래에 성조기와 낫과 망치 깃발이 불타는 연출에 사람들은 감탄하고 환호했지만….

‘그들은 알까. 우리가 처한 상황을?’

벌써 독일은 삐그덕대고 있었다.

롬멜 원수는 리버풀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반발하여 총통에게 항의하다 보직 해임 후 가택 연금에 처해졌고, 모델 원수 역시 유태 여인들을 종군위안부로 딸려 보낸 본국의 처사에 분노해 ‘포주’들을 모조리 잡아 영창에 처넣고 늑대굴에서 펄펄 날뛰었다. 요들 참모장과 북부집단군의 만슈타인 원수가 그가 총통 앞에서 버럭버럭 화내며 난리를 치는 것을 애써 말려야 할 정도로.

룬트슈테트를 비롯해 구 독일의 명장들은 줄줄이 퇴역당한 후 어디론가 사라졌다. 총통이 총애해 전격 발탁한 이들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놀라운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최고위층과 불화를 빚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것은 태평양의 동맹국, 일본이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진주만의 대승 이후 일본군은 쾌속 진격해 서태평양의 연합군 세력을 하나하나 말려 죽이고 섬멸하고 있었고, 미국은 대서양에서도 부족한 해군 전력을 태평양을 위해 할당해야 했다.

“건배!”

“건배! 하하하하하!”

연회에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을 술과 음식, 그리고 여흥으로 풀어버리려는 듯했다.

아름다운 독일 여인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제복을 입고 거품이 가득한 맥주와 큼지막한 소시지, 거대한 거위 구이와 달콤한 설탕이 가득 뿌려진 페이스트리 등이 높이 쌓인 은쟁반을 날랐다.

“마셔라! 취해라!”

그리고 잊어라! 영광스러운 세계제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사람들은 계속 떠들어 댔다. 애써 불길한 예감을 잊으려는 듯. 일선의 병사들에 대해서, 오늘도 추위에 떨고 있을 그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 * *

전선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혹은 연말연시 선물을 겸하여 독일군에게 ‘선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독일군들이 말 그대로 좋아 죽을 것만 같은 선물들을.

지난 겨울전쟁에서도 소련은 핀란드 영토에 항공폭격을 가하며 핀란드 인민들에게 빵을 공수해 주는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댔다. 그중에서도 안에 유탄을 한가득 채워 넣은 집속폭탄을 핀란드인들은 빵을 공수해 준다는 발언에 빗대어 ‘몰로토프의 빵 바구니’라고 부른 바 있었다.

하지만 이제 독일의 좋은 친구들에게는 항공기가 아니라 V1 미사일로, 몰로토프가 아닌 스탈린 서기장이 친히 선물을 듬뿍 보내 주고 있었다.

“온다! 좆대가리다!”

“빼애애애애애애액!”

하루에도 전선에서는 수백 발씩 승리 미사일을 쏴 날렸고, 이들은 독일군에게 적잖은 피해를 입히고 있었다.

눈보라가 하도 몰아쳐서 제대로 명중률도 안 나오지만 눈보라는 저쪽에도 해당하는 법. 승리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항공기의 출동 역시 제한되었고, 대공포의 시계 역시 한계가 생겨 방어 측 역시 적잖은 애로사항을 겪었다.

무엇보다 소련은 진짜 항공기에 비하면 0에 가까운 비용으로 이걸 날리고 있었고, 점점 개량을 거쳐 명중률을 높이거나 근접신관을 박아 넣는 등 피해를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개발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이제 저 승리 미사일을 ‘스탈린의 좆대가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길쭉하고 소시지처럼 생긴 것이 꼭 음경과 상당히 흡사했기에, 또 입에 착착 붙는 욕설이었기에 이 명칭은 빠르게 전군으로 퍼져 나갔다.

핀란드인처럼 빵 바구니라고 부르기에는 빵은 너무나 병사들에게는 희귀한 무엇이 되었다. 수시로 날아오며 기괴한 소리를 내는 것에 빗대기에 버터를 듬뿍 바른 흰 빵은 추억 속의 물건이 되어 버렸다.

“하… 망했다….”

미사일에 직격당해 불타오르는 보급창을 보며 병사들은 절망했다.

스탈린은 그 음경에 다양한 것들을 넣고 날려 댔다. 그의 좆 안에는 화끈한 소이탄을 넣고 날리기도 했고, 전통적인 집속탄, 터지면 어마무시한 고폭탄 등 각종 흉악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병사들은 날이 갈수록 날씨와 도로, 소련군의 폭격 때문에 나빠지는 보급 상황에 욕설을 내뱉었다. 애꿎은 스탈린의 성기를 가지고 씹어 대며, 그의 아내와 어머니, 자식들을 향하여 독일군 병사들은 아주 다채롭고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휴… 스탈린 개 씨발 새끼….”

“좆대가리로 아무거나 쑤셔대는 꼬라지를 보면 그 어미도 아마… 흐흐흐.”

크리스마스 만찬으로는 쇼카콜라 2인에 한 통씩과 말고기 몇 점, 그리고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엇이 대량으로 들어간 멀건 스프를 먹고, 신년 기념으로는 엄지손톱 정도의 버터를 배급받아 먹은 독일군들은 고픈 배를 잊기 위해 농담 따먹기를 했다.

물론 소련 스파이들은 군진에 떠도는 이 내용을 굳이 보고하지 않았기에 서기장은 이 수많은 모욕적인 내용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소련도 솔직히 충분히 치사하게 굴고 있었다. 군대와 군대가 정면으로 맞붙어 싸우는 ‘정정당당한’ 방식이 아니라 미사일 공격, 보급창 테러, 특수부대의 철도와 교량, 도로 폭파 같은 치사한 전술을 사용하며 대독일의 아들들을 굶기고 괴롭혔다.

가장 운 좋은 이들은 후방으로 후송될 수 있었지만, 아직 싸울 수는 있는 정도의 의학적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병사들은 끝까지 전선에서 버텨야만 했다.

죽어서 레벤스라움이 될 광대한 동유럽의 대지에 묻히든가, 어디가 한 짝 병신이 될 때까지 추위에 시달리든가.

병사들이 입을 놀리는 것은 일종의 자비일지도 몰랐다.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을 부족한 보급으로 난다는 것은 이미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잔혹하고 흉악한 스탈린이라도 사형수에게는 마지막 자비 정도는 베풀어주는 법.

비참한 운명을 마주한 이들은 오늘도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여흥거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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