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70화
동부전선에서 남부집단군이 대규모로 후퇴한바, 소련군은 전선을 정리하며 다시 거대한 규모의 전략예비대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이렇게 새로 편성된 예비 전선군, 소련군의 전략 예비대를 어디에 배치할지에 대한 갑론을박 중 뭔가 하나를 눈치챌 수 있었다.
소련군과 인민들을 한동안 괴롭힐 끔찍한 문제를.
실제 역사에서 소련이 겪어 왔던 문제들을, 우리는 나의 미래 지식과 발 빠른 대처, 그리고 관료 갈아 넣기를 통해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나비 효과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상상도 못 한 문제를 초래했다.
“아니, 주코프 원수. 왜 그렇게 울상인가?”
남부전선이 발칸 전선, 카르파티아 전선, 카프카스 전선, 남서전선군으로 나뉘고 스타브카의 직할 지휘하에 들어옴에 따라 주코프는 소련군의 가장 거대한 부대를 책임지는 위치에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
중앙으로 온 주코프는 이제 사실상 보직만 없을 뿐 소련군의 총사령관 역할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고, 갈수록 상태가 나빠져 가는 샤포슈니코프를 대신해 총참모장 직무까지 수행 중인 바실렙스키와 손발을 맞춰 전쟁을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별일이 없는데도 얼굴을 확 찡그린 그를 보고 내가 묻자, 주코프는 되도 않게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압도적인 턱을 가진 상남자 상을 한 주제에 내가 묻는 말을 듣고 얼굴 붉히지 말란 말이야….
“아… 별일 아닙니다. 서기장 동지.”
“별일 맞는 것 같구만 무슨?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인가?”
어물어물거리던 주코프는 결국 사실대로 실토해야 했다.
“저… 그게… 충치가 생겨서….”
“아니? 충치? 자네 나이가 몇인데 충치에 걸린단 말인가?”
“…송구합니다.”
그리고 내가 깜짝 놀라며 반문하자 몇몇 장군들이 흠칫했다.
당신네들도 충치야? 대체 여기가 스타브카야? 아니면 모스크바 제4초등학교 2학년 3반 교실이야? 나이 먹고 부끄럽지들 않나?
“다들 자기 전에 양치질도 안 한단 말인가? 으, 더럽군. 가까이 오지 마시오!”
“그… 그게, 저….”
아니, 말 안 해도 알 것 같았다. 주코프는 탁상 위에 올려진 미제 코카콜라 병을 슬그머니 숨기려 했지만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뭐, 주코프가 콜라를 좋아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실제 역사의 44년, 연합군 수뇌부와의 회담장에서 코카콜라를 맛본 주코프는 비밀리에 미국과 접촉해 콜라를 밀수할 정도로 콜라에 푹 빠져 버렸다.
혹시나 미제의 음료에 맛을 들인 친서방 반동분자로 몰릴까 봐 투명한 색으로 만든 전용 콜라로 받았다는 것까지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실제 역사에서는.
지금의 소련은 일선 장병 복지를 위해 미국에서 렌드리스를 통해 몇 년 일찍 초콜릿과 사탕, 콜라 등을 컨테이너 단위로 들여오고 있었다. 우크라이나를 지켜 냈기에 식량은 상대적으로 덜 부족했고, 인민들을 위한 일반적인 식량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달다구리한 간식들이었다.
단맛은 분명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효과가 있었고, 일선에서 열심히 노동과 전투를 하느라 칼로리가 많이 필요한 병사들에게 빠르게 칼로리와 행복을 주는 콜라는 굉장히 유용한 물건이었다. 내가 군대에 있던 시절에도 초코파이랑 맛스타만 있어도 행복했는데….
아무튼 이렇게 납품되던 군납 간식들을 하나씩 먹어 보던 주코프가 벌써 콜라에 맛을 들인 나머지 충치에 걸려 버린 것이다. 아무리 군바리라지만 원수씩이나 달고 부끄럽지도 않으쇼?
“서기장 동지, 사실 주코프 장군뿐만 아니라… 일선에서 충치 발생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미제 간식들의 보급 이후 야전에서 장병들이 치과 치료를 받는 비율이 증가하여….”
“허어….”
아 시발 할 말을 잃었습니다
* * *
‘미제는 분명 사악한 반동들임이 틀림없다….’
니콜라이 병장은 도저히 말을 할 수 없었다.
단 음식들이 무더기로 병사들에게 배급되며 병영에는 충치가 생겨 버린 병사들이 대거 발생했다. 니콜라이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고.
난생처음 받아본 치과 치료는 그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마취제와 진통제는 야전 병원이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에게도 물량이 부족한바, 충치나 발치 정도를 받은 환자들에게는 충분한 진통제가 주어지지 않았다.
“으어어어어….”
“으어어? 으어… 어어….”
니콜라이의 분대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들은 모두 미제 초콜릿과 ‘마쉬멜로샤’를 먹는데 푹 빠져 있었고, 그리하여 각각 개인차는 있었으되 다들 한두 개씩은 충치를 얻고 말았다.
처음 이반이 제일 먼저 가서 이를 뽑고 와 끙끙 앓는 것을 본 분대원들은 진심으로 공포에 떨며 치과 치료를 거부했지만, 상부에서는 충치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후 모든 병사들이 군의관의 치과 검진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분대원들은 밀려오는 고통에 못 이겨 다들 막사 바닥에 아픈 쪽 뺨을 밀며 고통을 분산시켜 보고자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미 치과 치료를 받은 지 얼마 지난 이반은 조금 완화된 고통 덕분에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전우들을 보며 겔겔대며 웃고 있었다.
“흐흐흐흐, 그러게 빨리들 다녀오지 그랬냐… 흐윽….”
그리고 그 역시 웃다가 아픈 데를 건드렸는지 흐윽 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물론 그 와중에도 어떤 병사들은 끝까지 초콜릿의 단맛을 포기하지 못했다.
이들은 다양한 곳에서 연료를 구해 불을 피우고 대롱으로 빨대를 만들어 초콜릿을 녹여 쪽쪽 빨아먹곤 했다. 치과 치료의 공포를 맛본 장병들은 예전보다 훨씬 싼 교환비, 예컨대 담배 몇 개비나 두툼한 양말 한 켤레에 배급 초콜릿을 교환해 주었고, 이 초콜릿 광신도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초콜릿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몇몇 병사들은 군용 연료를 일부 횡령한 죄나, 지뢰를 해체해 안에 있던 폭약을 연료로 써 핫 초콜릿을 만들어 먹은 죄로 군사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위에서 정책을 만들면 아래에서는 대책을 만든다는 오랜 격언에 따라 병사들은 어떻게든 단 걸 섭취했다.
니콜라이는 담배도 피우지 않았으며, 양말도 어쩌다 보니 몇 켤레 남게 가지고 있었기에 그것들을 모조리 초콜릿으로 바꿔 오는 데 성공했다.
분대원들이 거부한 배급 초콜릿들까지 싹싹 긁어모아 매일 핫 초콜릿을 먹던 니콜라이는 어느 날, 이미 치과 치료를 받은 쪽의 이에서 격통을 느꼈다.
“흐윽…!”
“아니 병장님, 또 충치입니까?”
이미 한번 발치의 폭풍이 지나간 이후, 병영 바닥에서 고통에 꾸물럭거리던 인간 애벌레들은 다시 조금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들은 다시 뺨을 부여잡고 발만 동동 구르는 니콜라이를 군의관에게 끌고 갔다.
니콜라이는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이미 제 코가 석 자였기에 효과적으로 다수를 제압할 수는 없었다. 감히 분대장에게 하극상을?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열지 못했다.
“으으읍! 으윽…!”
“껄껄껄, 분대장님! 계속 충치 치료를 안 하고 계시면 나중에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릅니다! 빨리 군의관에게 가시죠!”
‘아니야 이 개새끼들아! 날 그냥 내버려 두라고!’
물론 분대원들은 니콜라이의 그런 마음속 외침을 처절하게도 못 들은 척하거나 무시했다. 애초에 안 들렸지만.
야전 진료소로 끌려 들어가자, 접수를 받는 여군 병사 하나가 몸부림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아니, 우리 분대장님이 그만 충! 치! 에 걸려 버리셨지 뭡니까? 하하하하하하핫!”
“그러게 말이지요? 이미 한번 이도 뽑으신 분이 왜 그러셨을까?”
여군 병사는 꺄르르 웃었다. 짙은 밤색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굽어지는 눈 사이로 사라졌고, 가냘픈 목에 비해 통통한 복숭앗빛 뺨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하하하하, 아니 충치에 또 걸리셨어요? 군의관님은 지금 진료 중이시니까 몇 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할 거예요.
니콜라이는 할 말을 잊어버렸다.
“가디…아 바…블로브나?”
“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를 대기 의자에 강제로 앉힌 분대원들은 희희낙락하며 휭하니 나가 버렸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그들에게 관심을 잃어버렸다.
진료실 앞에 앉아 있던 여군 행정병, 카티아 파블로브나는 깡총깡총 뛰는 어린 사슴마냥 군의관의 진료실 안을 빼꼼하니 들여다보다가 니콜라이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니콜라이는 손을 홰홰 저었고, 그녀는 특유의 초승달 같은 눈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지만 카티아 파블로브나는 접수 업무가 지루했는지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조잘조잘 자기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매일 이렇게 환자들만 보느라 너무 지루해요. 다들 어딘가를 부여잡고 와서 제발 안 아프게 하는 약을 달라고 징징댈 뿐이죠. 군의관님은 그러면 이걸 해라, 혹은 저걸 해라. 그렇게 근엄하게 말씀하시지만 사실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몇몇 병사들이 군의관님이 돌팔이라고 떠드는 걸 들었거든요?”
니콜라이는 여자 앞에서 그다지 말재주도 없었을뿐더러 통증 때문에 도저히 말을 할 수가 없어 그녀의 밤색 눈과 찰랑거리는 갈색 단발을 보며 끄덕일 뿐이었다.
“아! 진료가 끝나셨나 보네요. 이제 들어가 보세요!”
또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그녀는 또 꺄르르 웃었다. 몇 살쯤 되었으려나? 이제 막 10학년, 혹은 11학년을 끝마쳤을까?
서기장은 소년 소녀들은 국가의 미래라며 미성년자의 징집을 엄격히 금지했다. 그러니 아무리 행정병이라지만 이렇게 전선 가까이에서 병사로 일하고 있다면 성년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진하고 천진한 웃음만으로 본다면 도무지 나이를 알 수 없었다. 막 사춘기나 되었을까? 펑퍼짐하고 체구보다 큰 군복 아래에 있는 날씬한 체구가 짐작되었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린 채 니콜라이는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했다.
그의 입 안을 구석구석 살펴보던 군의관은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큰 소리로 밖의 카티아를 호출했다.
“이봐! 행정병! 이 친구… 차트 좀 가져다주겠나?”
“네!”
잠시 밖에서 부스럭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녀는 몇 장의 종이가 엮여 있는 판때기 하나를 가져왔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또 깔깔 웃은 카티아는 다시 쪼르르 밖으로 나가 버렸다. 군의관은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니콜라이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다시 차트를 보던 군의관의 얼굴이 점점 심각해졌다.
“니콜라이 병장? 다시 입 좀 벌려 보게나.”
턱이 빠질 것 같아 다물려 가던 입을 그는 다시 최대한 크게 벌렸다. 아아아아… 군의관은 면밀히 그의 치아를 조사하더니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거, 충치가 있는 이가 아니라 멀쩡한 이를 뽑았던 것 같은데? 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