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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68화 (68/300)

# 68

68화

서부전선이 어떻든 동부에서 독일군은 지리멸렬했다.

남부전구에서 독일군의 후퇴로 여유가 생긴바 북부전구는 전선구를 개편하는 작업에 들어가 있었다.

북서전선군은 프스코프의 함락과 연이은 지연전으로 사실상 와해 상태에 처해 있었다. 바투틴 대장은 뛰어난 지휘력으로 산산이 부서지기 직전에 이르렀던 북서전선군을 부여잡고 재건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병력들의 피로도와 장비의 상실은 어쩔 수 없었다.

“코네프 장군, 그대는 구 북서전선군 휘하의 2개 야전군의 지휘권을 인수하시오.”

“감사합니다! 서기장 동지!”

북서전선군의 멀쩡한 일부는 이반 코네프의 북부전선군 휘하로 배속되었다. 코네프는 증원받은 북서전선군의 일부와 신규로 증원된 2개 야전군까지를 손에 쥐고, 주코프의 남부전선군에 이어 두 번째로 거대한 전선군을 지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관할해야 하는 전선이 너무 넓어진바, 코네프는 북부전선의 지휘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먼저, 소련군의 후퇴를 따라 슬금슬금 내려온 핀란드군과 대치하는 동카렐리야의 병력은 북부전선군 직할에서 독립 7군 관할로 이동시켰다.

라도가 호수 서편의 카렐리야 지협 및 레닌그라드의 북부방면은 14군이, 네바강 남안부터 시작해서 루가강에 이르는 습지대에는 23군과 21군이 배치되었다.

노보고로드의 수비를 위해서는 북서전선군 소속이던 8군과 신규로 증원받은 32군, 이에 협력하는 나르바 방면의 11군까지.

이제 온전히 북부 러시아 지역의 방어는 그의 어깨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스타브카에서 한 장의 밀서가 도착했다.

“만네르하임과?”

밀서에는 그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핀란드군과의 교섭? 핀란드에게 양 카렐리야를 모두 내줄 심산인가?

지난 전쟁, 그러니까 겨울전쟁에서 핀란드는 보로실로프 원수의 지휘하에 진격하는 소련군 100만 명을 3:1에 가까운 병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40만 명을 동토의 얼어붙은 시체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핀란드군은 7만 명, 전 병력의 20%에 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뒤 비푸리, 양 카렐리야의 공업지대를 양도하는 처참한 결과를 얻고 항복했지만 이들은 독일 파시스트들과 협력해 다시 소련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이들을 막기 위해 2개 야전군이라는 막대한 병력을 카렐리야 일대에 전개해야 했던 입장에서, 핀란드와 교섭해 이 병력을 독일군을 상대로 돌리는 것은 전선 사령관 입장에서는 고맙지만… 서기장이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

그가 아는 서기장은 단 한 치의 땅조차 포기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리고 핀란드에게 동서 카렐리야를 모두 내준다면? 소련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라 할 수 있는 레닌그라드가 차르의 신하이자 백색 독재자 만네르하임이 다스리는 핀란드의 사정권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그에게는 일단 진군하는 독일의 북부집단군, 그 이름 찬란한 명장 만슈타인의 군대를 막는 것이 더 중요했다.

“아마 기만책일지도 모르지.”

지금 카렐리야를 내줄 것처럼 핀란드군을 묶어 놓고, 독일을 제압한 이후 땅덩이를 되찾아오는 것은 어린애 팔 비틀기보다 쉽다.

이미 북부전선군은 전선에서 끊임없는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적은 한 명이라도 더 적은 게 좋았다. 특히, 독일 북부집단군의 전차전력이 별 볼 일 없는 수준까지 추락했다는 이유로 북부전선군은 기갑전력 할당에서 상당히 후순위로 밀려 있었기에 더더욱.

* * *

북부의 소련군은 ‘경’야포인 76mm 야포나 새로 개발된 휴대용 로켓포, 그도 아니라면 120mm, 152mm 곡사포를 이용해 밀고 들어오는 독일의 기갑전력을 상대해야 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니콜라이 병장은 온갖 쌍소리를 외치며 그를 여기로 보낸 신과 서기장을 저주하고 있었다. 서기장님, 어째서! 물론 당연히 서기장의 존함과 욕설을 같이 붙여서 입 밖에 낸다면 끔찍한 후과가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아무튼 욕‘만’ 하는 것은 자유로운 법.

여러 신병들은 분대장인 니콜라이 병장을 전설적인 인물로 만들어 준 그의 로켓포 사격 실력을 구경하기 위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참호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남부전구의 전역에서 당시 일병이던 니콜라이는 영웅적인 전과를 올린 볼로쟈 병장이 뛰어나가는 것까지를 보고 혼절했었다.

그가 깨어난 곳은 키예프의 야전 병원.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금 늦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니콜라이 일병, 자네가 바로 그 파쇼들의 신형 전차들을 세 대나 격파했는가?”

그의 부대원들은 대부분 독일군과의 교전에서 전사했다. 볼로쟈 병장 역시… 전사한 것 같았다. 중대장도, 소대장도 죽고 중대에서 살아남은 사람 중 최선임이 그저 일개 하사관이었던 그 전투에서 어린 미챠는 살아남아 전투의 경과를 보고했다.

철저히 자신의 관점에서.

“그때 니콜라이 일병과 볼로쟈 병장이 있던 참호에서 로켓탄이 한 발 발사됐고, 그 이후로 둘이서 뛰어가다가… 아무튼 그 두 사람이 전차를 격파한 건 확실합니다. 누가 쐈는지는 저도 잘….”

“이 친구 말이 맞습니다. 그 둘이 격파된 전차 뒤에 숨는 것까지 보고 저희는 후퇴했습니다.”

“니콜라이 일병이 로켓포를 가지고 다니는 걸 보기는 했는데….”

그렇다. 볼로쟈 병장은 무겁다는 이유로 니콜라이에게 로켓포의 운반을 짬 때렸고, 니콜라이는 그런 이유로 적의 전차를 세 대나 격파한 영웅적인 공적의 소유자로 몰리게 되었다.

공적을 주장할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기에 니콜라이는 눈치를 쓱 보다 예! 제가 그랬습니다! 라고 낼름 전과를 삼켜 버렸다.

솔직히 볼로쟈에게는 미안했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리고 병장이 되면… 간호병, 마리아 이바노바에게 잘 보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의 ‘연적’, 정치장교 세묜? 같이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부대원들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아마 전사하시지 않았을까요…? 미챠는 그렇게 말꼬리를 흐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병장으로 승진도 했고 분대장도 달게 된 그는 원래 있던 부대가 재편성되면서 어느 순간엔가 북부집단군으로 오게 되었다.

그의 경력을 본 중대장은 그를 병사들에게 소개하며 엄청난 실력의 로켓포 사수로 소개했고, 고대하던 마리아 이바노바와의 재회는커녕 추운 북부로 차출된 그는 쌍소리를 내뱉으며 진군해 오는 독일군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로켓포를 겨냥해야 했다.

북부전역의 아군이 운영하는 포의 대다수는 평사포였다. 그것도 빈약한 76mm급.

화력은 120mm 곡사포나 152mm급, 혹은 203mm급에 비해 빈약한 주제에 끌고 다니자니 무거워 병사들의 허리만 휘는 그 76mm 야포는 독일군의 신형 전차에게 별 효과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한 발이 우연히 궤도에 맞아 기동하지 못하게 된 ―그리고 멀쩡히 기관총과 주포를 발사 중인― 전차 한 대를 제외하면 경야포들은 적의 전차를 저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명 로켓포 사수이자 무려 적성훈장을 수훈한 니콜라이 병장을 위해 로켓포탄을 몇 발이나 할당해 주었고, 이제 그는 적의 기관총 세례를 피해 로켓포를 쏴 맞추어야 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마리아 이바노바, 제발…!’

그의 가슴 속에서 이제 어디 갔는지도 모르는 마리아 이바노바는 일종의 승리의 여신이 되어 있었다. 승리의 여신님의 풍요로운 젖가슴을 망측하게도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다 하는 상상을 매일같이 하는 그를 과연 여신께서 어여삐 보실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는 돌격을 외쳤다.

“자… 돌격! 우라! 우라!”

“우라! 우라! 우라!”

곡사포의 사격은 멈춰 가고 있었고, 이제 보병 돌격의 시간이 왔다.

볼로쟈 병장이 그랬던 것처럼, 분대에 돌격 명령을 내린 그는 셋을 세며 로켓포를 발사했다.

“와아아아아아아!!!”

놀랍게도 로켓은 멈춰 서 있던 적의 신형 전차의 측면에 정확히 꽂혀 들어갔다. 컹, 하는 금속음이 들리고 나서 영원 같던 몇 초가 흘렀을까? 신형 전차가 폭발했다. 펑!

적의 전차 포탑 안에서 화염이 솟구쳤고,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이 붙은 채로 허우적거리다 포탑 위에 걸친 채로 축 늘어졌을 뿐. 그걸 본 병사들은 와아아아 함성을 터트렸다.

“역시! 영웅적인 우리 분대장 동지!”

니콜라이는 그를 향해 환호를 터트리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달렸다.

엄폐, 엄폐해야 한다. 이 신병들은 뭣도 모르고 좋아하고 있지만 적의 전차와 기관총들은 한 대가 아니었다.

“다들 엄폐해! 엄폐!”

볼로쟈 병장이었다면 그 뒤에 쌍욕이나 어머님의 성생활에 관한 아주 다채로운 상상을 덧붙여 주었겠지만 니콜라이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신병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재빨리 엎드려 돌격 소총을 타다다다 쏘아내거나 수류탄을 잡고 휙 던졌다. 오… 내 신병 시절보단 나은데?

그를 따라온 일병, 아직 이름이 가물가물했는데… 샤샤! 그렇지.

“이봐, 샤샤! 로켓을 줘 봐!”

“예! 분대장님!”

다음 로켓포를 장전했다. 샤샤는 그래도 총은 꽤 잘 쏘는 편이었는지 연기를 뿜어내는 포탑 뒤편에 착 붙어 독일군에게 한 발씩 총탄을 먹여 주고 있었다. 그래, 고맙다… 다른 사람이 너무 관심을 가지면 부담이 되었다. 다음 목표는… 조금 편한 것으로. 저 3호 전차를 한번….

“에잉!”

중간에 멋모르고 돌격하던 독일군 병사 하나가 휘이잉 날아가는 로켓포의 진로에 끼어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다. 니콜라이는 로켓포가 사람에 맞는 것을 처음 봐서 구역질이 나려 했다. 빌어먹을. 그리고 로켓의 궤도가 틀어졌는지 전차를 맞추지 못하고 날아가다 자폭한 것 같았다.

그는 그날 더 이상 전차를 격파하지는 못했지만 누구나 첫인상이 중요한 법. 그가 신형 전차 한 대를 격파하는 것을 본 분대원들은 제각기 적성훈장을 수훈한 인민 영웅이자 명사수 니콜라이 병장에 대한 소문을 중대에서 떠들어 댔고, 이제 그의 대대, 아니 연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중대장은 그를 이제 하사로 승진시켜 주겠다고 손을 꽉 잡고 흔들며 약속했다.

“빌어먹을….”

중대장의 막사를 나오며 그는 중얼거렸다. 하사고 지랄이고 다 좋으니 이 추워 뒈질 것 같은 곳에서 제발 날 꺼내 주면 안 될까?

신형 동계 외투와 장화를 그는 누구보다도 일찍 배급받았다. 영웅적 무훈을 세운 장병에게 대부분의 장교들이 그러는 것처럼 사제 옷가지를 좀 더 껴입어도 그다지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 겨울의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두툼한 양모로 된 미제 양말을 신고 있는데도 엄지발가락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어이, 샤샤. 오늘 잘 해줬어.”

“아! 분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대단하시더군요?”

대단한 건 너지 인마. 너 총 엄청 잘 쏘던데? 그렇게 서로 공치사를 하며 분대원들을 불러모았다.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자 했는데 찬 바람이 불어 잘 되지 않았다.

“제길, 이거 핫 초콜릿은 물 건너갔구만?”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상부는 단것과 기름진 음식을 꽤나 잘 배급해 주었다. 미국의 돼지들은 대체 뭘 먹여서 어떻게 자라는 것인가? 그는 이제 미국에서 온 베이컨에 푹 빠져 있었다.

‘미국, 미국은 정말 위대해!’

우리 소련만큼은 아니지만. 이렇게 맛있는 걸 만들다니… 후송되었던 병원에서 먹어 본 콜라가 생각났다. 이런 날씨에는 콜라보다는 초콜릿을 녹여 만드는 핫 초콜릿이 더 좋았지만, 아무튼 엄청났다!

“이거… 불을 누가 좀 피울 수 없겠어?”

“예, 분대장님, 제가 이걸… 하하하.”

분대원 하나가 허리춤을 뒤지더니 라이터를 하나 꺼냈다.

“우와, 그거 독일제 라이터인가?”

분대원들이 다들 감탄했다. 꾀돌이 이반은 헤헤 웃으며 자랑하듯 라이터를 딸깍거리며 번쩍이는 은빛 광택을 뽐냈다.

“파시스트 병사 포로들한테 ‘받은’ 건데 아주 쓸모가 많습니다.”

“나중에 그런 거 생기면 나도 하나 줘. 이름이 이반이랬지?”

“어유, 아무렴요 병장님. 제 목숨줄만 붙여 주신다면….”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었다. 오늘도 또 살아남았다. 살아남아 핫 초콜릿을 마시고, 또 신기한 라이터를 하나 보게 되었다.

병장의 월급이라 해도 그다지 별 볼 일은 없었지만 하사가 되면 저런 걸 얻어 볼 수 없을까? 몇몇 독일군들이 차고 다니던 시계를 노획해 몰래몰래 거래하는 병사들이 있었지만 당장 니콜라이는 시계가 그다지 탐나지는 않았다.

“아 혹시 이건 드셔보셨습니까?”

“어? 그건 뭔가?”

“이게 그… 뭐라더라… 마….”

허연 빵 비슷한 것이 몇 개 들어 있는 봉다리를 이반이 또 꺼냈다. 저 친구, 아주 쓸만한데? 어디서 저런 걸 다 구해왔는지.

아무튼 니콜라이는 후송되어 있는 동안 미국 알파벳 읽는 방법을 대충 배웠다.

“마… 쉬… 멜로샤?(키릴 문자의 Ш는 ‘샤’ 다. W와 착각한 것)”

“아! 뭐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걸 이렇게 초콜릿과 같이 먹거나… 나무에 꽂아 불에 데워 먹는 거라고 했습니다.”

“오오, 정말 맛있는데 이거?”

빵 비슷하게 생긴 주제에 입에서 살살 녹는 달콤함이 살아 있었다. 초콜릿의 진한 달콤함이나 사탕의 새콤달콤한 단맛과는 또 다른. 아아… 이게 행복이란 건가? 그는 오늘 행복했다.

“소련 만세! 미국과의 동맹 만세! 위대한 우정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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