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67화 (67/300)

# 67

67화

“기뢰? 기뢰로 봉쇄당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장군님. 현재 독일이 점령하지 않은 항구들이 대부분 기뢰로 인해 봉쇄당했다고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독일은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 영국을 말 그대로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항공기로 기뢰를 투하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직까지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하필 지금 막 보고된 것이다.

“허어….”

1차 영국 파견군의 지휘관 아이젠하워 임시중장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셜 참모총장은 그를 신뢰해 위기에 처한 영국을 구원할 선발대로 투입하였지만, 영국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된 것이다.

“소해는 언제쯤 완료될 것 같다고 하는가?”

무전을 통해 패닉에 빠진 영국 측에 캐물었지만 결국 그가 받은 답변은 ‘모르겠다’ 였다.

아이젠하워는 해군과는 그다지 인연이 없었지만, 소해정들을 투입해 기뢰를 제거하려 하여도 크릭스마리네의 함선들이나 루프트바페의 항공기들이 얼마든지 소해를 방해하고 기뢰를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우리가 상륙할 수 있는 곳은 없는가?”

묻고 나서도 스스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륙하면 뭐 하겠는가? 독일군이 다시 그 항구나 해변을 기뢰로 봉쇄해 버리면 그만인 것을. 시체를 노리는 독수리 떼처럼 독일군 정찰기들은 종종 나타나 미국 함대 근처를 선회하다 달아났다.

아마 미국 함대의 이동은 이미 포착되었을 것이다. 어디로 향하건, 느릿느릿한 배로 도착하기 전에 루프트바페의 항공기들은 와서 기뢰를 뿌릴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공습을 가하든가… 빠득.’

더러운 잽스들이 진주만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겁한 개수작의 선배 격인 독일이니 아마도 이 2만 명의 신병들을 기다리는 것은 항공 공습일 것이다.

후속하는 보급과 추가적인 증원 없이, 특히 공군 없이 신병 2개 사단만으로 나치 독일의 영국원정군과 싸워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예 대서양에 수장되지 않는 것을 고맙게 여겨야 했다.

‘애초에 지금 출발해 영국 코앞에 이른 2개 사단은 직접적으로 싸워 이기기 위한 병력이 아니지….’

이들은 미안하지만 일종의 버림패였다. 미국 본토에서 새로 편성 중인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영국이 완전히 밀려 버리지 않도록 시간을 버는 역할.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시간이 있다면 우리는 저들을 얼마든지 짓밟아 버릴 수 있습니다!”

마셜 참모총장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독일의 파나마 공격과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그는 밤낮없이 재무장에 몰두했다. 수십만, 수백만의 청년들에게 징집 영장을 보내고,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조직을 확장하는 거대한 사업에.

미국은 별도의 대륙에 있다는 이점 덕분에 해군력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해 영국에 뒤따르는 세계 제2의 해군국이었지 육군은 보잘것없었다.

물론 얼마든지 커질 수는 있었지만.

‘지금 미군은 끽해야 한 줌일 뿐이지만 내년, 내후년이면 충분히 수백만 이상으로 커질 수 있다.’

아이젠하워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체급부터가 미국과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현대의 전쟁은 기본적으로 국력의 싸움. 국력의 측면에서 유럽의 강국이라던 영국, 프랑스, 독일과 미국은 이미 몇 배나 차이가 났다.

그러나 영국으로 눈을 돌리면… 그들에게 내후년이 있을까? 아니, 내년까지 버틸 수나 있을까? 우리가 재무장을 마치고 몰려올 때까지?

* * *

[리버풀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영국 정부의 관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워낙 급속도로 독일군이 진군했을뿐더러, 애초에 영국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유보트의 봉쇄로 인해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 빠져 있었다. 자체적으로 식량을 생산하는 농촌들이야 어느 정도 버텨 볼 재간이 있겠지만,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식량 조달을 의존하는 대도시들은 그럴 여력도 없었다.

독일군은 리버풀로 가는 육로를 틀어막고 육상으로부터 물자가 공급될 수 없도록 봉쇄했으며, 이제는 바다까지 틀어막았다.

수십만에 이르는 인구에게 남은 식량은 며칠 분량도 되지 않았다. 원래 도시에 거주하던 시민들, 방어를 위해 몰려온 병사들, 그리고 병사들을 따라온 피난민들까지.

본래 거주하던 이상으로 인구는 불어났으나 식량과 물자가 공급될 길은 완전히 틀어막혀 버렸다.

[최소한도의 배급만 하더라도… 일주일이면 우리는 이제 장화를 삶아 먹어야 할 처지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독일군에게 저항을 할 수가 없습니다. 대공포탄은 아껴 쓴다 해도 몇 번의 공습을 막기에도 부족합니다.]

“상황은 알겠습니다만… 우리가 바다를 통해 들어갈 길이 막혀 있는 차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

아이젠하워는 골치가 아팠다. 상부에 보고를 올리기는 했지만 그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병사들은 항해에 지쳐 멀미를 하며 비실대고 있었고, 이들을 내린다 쳐도 똑같은 방법으로 고립당하고 굶어 죽을 운명에 처할 뿐이다.

마셜 참모총장이 아무리 많은 물자들을 본토에서 뽑아낸다 하여도, 그게 당장 필요한 이곳에 도착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인가?

[어쩌면 철수해야 할 수도 있겠군. 아이젠하워 장군, 자네는 명령을 기다리게.]

사령부는 어쩐지 전면적인 철수를 고려하는 듯했다. 전면 철수라기에는 전개된 것조차 얼마 없었지만.

아이젠하워는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인이었지만 그 명령만은 쉬이 용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에게 진지하게 묻는 윗선의 전화에 아이젠하워는 강경하게 대답했다.

“각하, 지금 우리가 영국을 지키지 못한다면 이후에는 형식상이나마 동맹군이 점거하고 있는 땅이 아니라 아예 적의 손에 넘어간 땅에 상륙작전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그 점을 유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자네 의견은 잘 알겠네만… 그럼 우리 병력은 어디로 가야 하겠나?]

“….”

이번에는 그가 꿀 먹은 벙어리 꼴이 되어버렸다.

대서양함대의 구축함 전력을 다 긁어모으면 수십 척이 나오기는 할 것이다. 대잠 임무에 종사해야 할 구축함들만 남겨두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겠지만 감수하면서 소해에 투입할 수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와 동승한 해군 제독은 아마 가능은 할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미 그때가 되면 리버풀은 말라 죽어 있을 것이다.

구식 구축함들이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북대서양을 가로질러 이곳에 도착하는 것도 한세월, 기뢰를 제거하는데도 한세월. 그 중간에 크릭스마리네 함대가 와서 공격을 가하거나, 루프트바페한테 다시 공격당한다면 또 그것대로 시간은 끝없이 늘어질 것이다.

수십만 시민과 수만 명의 병력은 갇혀 말라 죽거나… 아니면 지금 영국인들이 각오한 것처럼 독일군이 벌써 구축한 진지에 들이박아 포위를 해제하려 하는 수밖에.

‘어찌해야 하는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누구에게 호소할 수도 없었다. 작지만 일군의 사령관이라는 자리는 막강한 권한만큼이나 어려운 자리였다.

그의 선택에 수만 명 장병들의 목숨과 수십만 명 영국인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수천만에 달하는 브리튼섬 주민들의 생사가 걸려 있었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무리 답을 찾으려 해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이번 전쟁에서는 미국인의 피가 엄청나게 흐를 것만 같았다.

미국이 방심했다 변명할 수는 있으나, 저들은 상상도 하지 못한 수를 들고 와 미국을 괴롭히고 있었다.

영국을 사수하는 데에도 이렇게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데 프랑스나 스페인에 상륙한다고 하면 얼마나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미군이 상륙을 시도하는 해안에 기뢰가 쫙 밀려온다면? 그때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동부전선에서 소련군의 압박 때문에 독일이 그렇게 많은 전력을 브리튼 섬으로 투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네.]

소련군은 유럽의 저편에서 독일군을 상대하며, 겨울의 이점을 빌려 느리지만 앞으로 진군하고 있다고 했다.

소련 외교관들은 그러나 여름이 오고, 독일군이 겨울에 적응할 수 있는 내년이 되면 다시 전선이 밀릴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것은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내기 위해 과장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서부에서 미국과 영국이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의 대군이 서유럽을 비우고 동부전선으로 몰려간다면 소련인들은 엄청난 피를 흘려야 할 것이었다.

후우… 아이젠하워는 다시 깊은 한숨만을 쉬었다.

그의 옛 직속 상관 맥아더는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대대적인 침공을 맞이해 필리핀 주둔군을 이끌고 필사적인 저항을 하고 있다고 했다. 패배의 충격에 휩싸인 국민들을 고무하기 위해서 그의 선전은 영웅적인 결사항전으로 그려지고 있었지만 한때 그의 부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상황을 뻔히 알 수 있었다.

미군은 이미 제해권을 상실했고, 일본인들은 각자 육지에 고립된 연합군 병력들을 손쉽게 각개격파하고 있었다.

바탄반도에 갇혀 항전하고 있다지만, 그곳에는 현대전에 필수적인 비행장이 없었다. 맥아더 원수는 언론에 비치는 스스로의 모습에 신경 쓸지언정 작전계획은 적당히 부하들에게 맡겨 두는 편이었고, 항상 예산에 쪼들리는 필리핀 주둔군은 비행장 같은 시설을 만들 시간도 돈도 없었다.

여기에 한 줌 필리핀 주둔 미군과 3류 군대인 필리핀군을 끼얹는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 전차도 야포도 없는 3류 군대를 엄연한 열강국인 일본군을 상대로 배치하다니. 직접 그들을 다루어 본 아이젠하워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빌어먹을 고립주의 같으니라고….”

미국은 머뭇거리다가 제대로 선수를 빼앗겨 고생하고 있었다. 과감한 기동이 필요했다. 마치… 저 소련의 스탈린처럼.

저들은 벌써 루마니아를 항복시키고 핀란드를 멈춰 세우며 주변을 정리해 나가는 것 같았다. 미국이 손발이 묶인 채, 태평양함대가 갈려 나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익한 피를 뿌리는 동안….

* * *

희망은 순식간에 절망으로 뒤바뀌었다. 바다가 열려 있음에 안도하며 항전을 준비하던 영국 정부는 물자가 끊기자 패닉하는 시민들을 제어하지 못했다.

도시는 봉쇄를 버틸 만한 식량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1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먹이기에 당장 가진 것은 몇 달은커녕 몇 주 분량도 되지 않았다. 롬멜과 그의 원정군을 보급을 끊어 고사시키고자 했던 계략을 그대로 돌려받은 영국은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당장 공세를 통해서 육로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공세를 치르기에는 탄약도, 화기도 부족하오. 저 견고한 독일인들의 방어선에 우리 병사들을 그저 가져다 바치자는 말입니까?”

“하지만 여기 있으면 굶어 죽을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공세를 통해 난국을 타개해야 합니다!”

사령부에서는 주전론이 우세했다. 가만히 있는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리란 것은 누가 봐도 명백했다. 충분히 오래 기다린다면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 충분한 시간 이전에 수십만 명이 굶어 죽으리라.

“…그렇다면 시민들만큼은 대피시킵시다. 비무장 민간인들, 늙었거나 어리거나, 여자들만큼은 전장에 휘말리지 않도록.”

“독일군에 교섭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믿을 구석은 있었다. 독일은 영국을 이미 점령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온건하게 대하며 반발을 최소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롬멜은 신사다.’

전쟁에 예의와 도리가 어디 있겠냐만, 롬멜은 최소한 비무장 민간인들마저 학살하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의 수뇌부들은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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