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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66화 (6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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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리버풀을 공략하려는 롬멜은 꽤나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영국군은 시가전을 불사하고 필사의 저항을 계획하고 있었으며, 시민들 역시 무장하기 시작했다.

당장 그가 리버풀에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은 끽해야 10만 명 남짓. 결사의 항전을 각오한 도시를 점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병력이었다.

그러나 롬멜은 침착했다. 다른 모든 이들이 보기에 시간은 독일의 편이 아니었지만, 그만은 마치 곧 승리의 여신이 그의 손을 들어 줄 것처럼 행동했고,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롬멜 원수는 대체 무슨 생각이시지?”

다른 이들은 의아했다. 원정군은 리버풀을 포위하고 육상으로 공급되는 물자를 차단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리버풀은 영국 최대의 항구 중 한 곳. 끝없이 해상에서 물자가 공급될 수 있고 미군의 증원까지 도착한다면 빈약한 포위망 따위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멜은 침착했다. 그저 휘하 병력에게 리버풀을 포위할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령할 뿐.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견고하게. 그는 계속 견고하게 진지를 만들 것을 강조했다.

혹자는 의심했다.

“혹시 해군, 크릭스마리네를 믿는 것이신가?”

그들이 해전을 벌여 미군의 수송선단을 차단하든가, 아니면 그동안 영국의 목을 졸라 왔던 유보트 함대가 또다시 함대를 격침시키고 결국 리버풀을 굶겨 죽이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이 설명은 꽤나 그럴듯했다.

단지, 미국의 대서양함대가 크릭스마리네에게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것만 제외하면.

독일은 영국의 전력을 분산시키고 각개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장 한정된 전력으로 영불해협의 수송대를 지키고, 간절히 지원을 요청하는 터키를 구원하고, 또 전함 세 척으로 보강된 미국 대서양함대를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이미 미국 대서양함대는 지척에 다다라 있었다. 리버풀의 영국인들은 벌써부터 환호하고 있었다.

* * *

“미군이 온다! 미군이 온다!”

“와아아아아아아!!”

시체를 노리는 까마귀처럼 하늘을 배회하는 독일 공군기들은 더 이상 죽음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로 보이지 않았다. 정찰을 하려 고도를 낮추는 저 까마귀들에게 대공포탄을 한바탕 퍼부어 준 대공포병들은 곧 있을 반격작전에 대해 떠들어 댔다.

선발대 2만 명, 또 며칠 지나면 20만 명. 독일군 20만이라 해도 전투에 지치고 부상입은 이들과 쌩쌩하니 새로 투입된 병력과 홈그라운드의 이점까지 빌리면 패배할 리 없다.

독일은 멍청하게도 영국, 미국, 소련 이 세 나라와 모조리 전쟁을 벌이는 실수를 했고, 지난 대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시 양쪽에서 압박당해 굴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후우, 그나저나 언제쯤 입항하려나?”

“나도 모르지? 내일 중이라고 떠도는 소문은 들었는데….”

지난 대전을 겪어 본 중년의 홈가드 아저씨들은 오매불망 미군의 지원을 기다렸다. 지난 대전에서 미국은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되고, 독일이 멕시코에 참전을 종용하는 전보를 보낸 것을 빌미로 참전했다.

그러나 이번엔 제리 놈들이 제대로 미국을 건드리고 말았다. 감히 파나마를 건드리다니!

물론 애써 피하고 있지만, 영국이 졸전을 펼치기는 했다. 우리 대영제국이 이렇게나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되다니…. 왕립해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했고, 프랑스에서 대패한 육군은 아예 비난할 이들이 사라져 버렸다.

지난 대전에는 그나마 어떻게 대륙 영토, 프랑스에 발이나 붙이고 있었지만 이번엔 완전히 밀려나 본토까지 침공당해 버린 것이다. 말로만 전해 들은 갈리폴리의 악몽 같은 나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설마… 우리가 프랑스에 상륙하게 되진 않겠지?”

“카악 퉷, 불길한 소리 하지 말라고.”

이제는 전 수상이 된 처칠은 오스만 제국을 굴복시키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봉쇄로부터 해방시켜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해 갈리폴리 반도에 50만이 넘는 병력을 상륙시켰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독일군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해안선 일대를 강철같이 요새화했고, 이곳에 명령에 따라 돌격했던 수많은 영국과 영연방 출신의 젊은이들은 문자 그대로 분쇄당했다.

50만이 가서 절반이 죽거나 병신이 되어 돌아온 그 상륙작전을 생각하면 모두들 치를 떨었다.

“독일 놈들도 이렇게 쉽게 상륙했는데, 우리라고 못 할 거 있나?”

“그건 처칠이 병신이라 그런 거지. 안 그래?”

“에라이, 뒈진 놈 이야긴 왜 꺼내?”

그때도 처칠은 고집을 부려 상륙을 밀어붙였고, 처참히 패배하고 돌아왔다. 이번 전쟁에서도 처칠은 독일군의 기만전술에 제대로 낚여 홈가드들을 데리고 삽질을 했다가, 또 낚여 순식간에 바다라는 천혜의 방어선을 내주고 말았다.

홈가드들은 처칠을 혐오했다. 그의 최후가 불쌍한 것은 맞지만… 지금 이 나이 먹고, 이렇게 타향에 와서 허공에 총질이나 해대는 꼬라지는 안 불쌍한가?

처칠 이야기가 나오자 심정적으로 보수당을 지지하는 몇몇은 그를 욕한 병사에게 눈을 흘겼지만, 대부분의 노동자 출신 병사들은 자식들 보는 앞에서는 결코 하지 못할 심한 말들을 했다.

“그 새끼, 애비가 매독으로 뒈졌잖아. 아마 날 때부터….”

“어우야… 그럼 애미도…?”

“거, 적당히 좀 합시다!”

부모의 성생활에 대한 다채로운 예측과 처칠이 뇌에 매독이 올라 그렇게 또라이 짓을 했다는 의학적 사고들이 난무했다. 처칠은 최소한 독일의 팽창야욕을 직감하고 강경책을 주장할 정도로 나름의 식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몇 번의 대삽질 이후 그런 평가는 모조리 날아가 버렸다.

알았으면 뭐 해? 알고도 발렸으니 더 병신이지.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그렇게 평가했다. 적잖은 수는 아예 독일과 동맹해서 프랑스와 그 식민지들을 나눠 먹는 게 더 좋지 않았겠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처칠을 존경해온바, 그에 대한 뒷담화를 참지 못한 한 홈가드가 이제는 음담패설로 주제가 넘어갈락 말락 하는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뭐래, 하는 표정으로 그를 흘끗 보는 병사들에게 포대에서 제일 어린 신병 하나가 말했다.

“어…? 저거 독일 놈들 아닙니까?”

저 높이, 저 멀리에서 독일군 비행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 대체 몇 대나 오는 거야? 병사들은 지레 겁부터 집어먹었다.

불타버린 런던과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처칠 수상에 대한 이야기들은 군 상층부들은 모두 쉬쉬했지만 그 뒤에서 마치 역병처럼 확대 재생산되며 번져 나갔다.

소이탄 폭격이 집중되어 녹아 버린 다우닝가 10번지에서 독일군은 처칠의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가 마치 오븐에서 너무 많이 구워진 로스트 비프처럼 검게 눌어붙은 그를 봤다더라, 같이 확인할 수도 없지만 매우 자극적인 소문들은 입에서 입을 타고 전달되었다.

“대공포! 대공포! 총원 전투 배치로!”

시시껄렁한 농짓거리나 하다 독일 비행기들을 목격한 이들은 잔뜩 성이 난 선임하사관의 고함과 함께 각자 전투배치로 달려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하늘을 향해 겨눠진 대공기관총의 방아쇠를 잡은 병사들은 명령이 내려지기만을 기다렸다.

“씨발, 씨발… 후… 하느님….”

병사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세 가지중 몇 개를 골라 이야기했다. 씨발, 하느님, 그리고 어머니.

조금… 이 아니라 많이 어린 병사들은 주로 엄마를 찾았다. 나이가 지긋해서 어머니가 하느님께로 간 사람들은 주로 하느님을 찾았고, 고참 병사들은 하도 어머니랑 하느님을 자주 찾아서 민망한지 그냥 씨발거렸다.

“저 씹쌔끼들이 사거리 안으로 들어오면 쏜다. 그전까지 탄약을 낭비하지 마라!”

“예!”

미군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한 상층부는 탄약의 사용에 그다지 제한을 두지 않았다. 제한을 두기에는 루프트바페가 너무 두렵기도 했고.

탄약을 소모시키려는 듯 하늘에서 깔짝거리다 다시 휙 날아가 버리는 전투기들의 뒤꽁무니에 잘 가라는 작별인사처럼 총탄을 퍼붓는 정도만 아니면 그다지 제한이 걸리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전투 직전에야 다음 순간 쓸 게 없을 수도 있으니 제한을 걸지만.

“어?”

“엥?”

“뭐야?”

그리고 허무하게도 대 편대를 이루고 날아온 독일 공군은 도시의 중심부는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대공포가 배치되어 있어서인가? 그런 것 치고는 아예 도시 근처를 지나가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항만 쪽으로 향하는데….

워낙 높이 날고 있어 기종이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약간 뚱뚱해 보이는 게 폭격기 같았다. 이 고도에서 폭격해 봐야 제대로 맞기는 하나? 항만 방향으로 날아가 그쪽에 뭔가를 떨어트리기는 했는데, 항공폭탄이 아닌 것 같았다. 낙하산이 달려 있는데… 공수부대를 여기에 떨어트릴 리도 없고….

“저게 뭐지?”

둥그스름한 무언가가 작은 낙하산에 달려 떨어지기 시작했다. 수천 개쯤은 되어 보이는 물체들은 대부분 도시가 아닌 항만 방향, 바다 쪽에 떨어졌다. 대공포 요원들은 안심했다.

“쟤들, 무슨 뻘짓 하는 거여?”

“낸들 알까?”

몇 번이나 루프트바페 편대들이 ‘공격’을 가해 왔고, 대공포는 불을 뿜었다. 그러나 낙하물체는 도시에 떨어지지 않았고, 대공포는 그다지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뭔지 몰라도 돈 주고 만들었을 저 물건을 바다에 버리는 독일 놈들이 무슨 속셈일지는 몰라도, 이제 너희는 뒤졌다. 영국인들은 이를 갈았다.

* * *

“작전, 성공적이라고 합니다. 총통 각하!”

“그러한가.”

어두컴컴한 집무실에서 푹신한 의자에 몸을 깊게 파묻은 총통에게 보고하는 부관의 표정은 사뭇 굳어 있었다. 작전명 ‘기아’는 분명히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이제 영국에게 남아 있는 희망의 줄이 한 가닥 더 끊어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인들은 이제 리버풀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수백 대의 루프트바페 폭격기는 항공폭탄이 아니라 기뢰 수십 개씩을 탑재하고 아직 점령하지 못한 영국의 주요 항구 앞바다에 그걸 모조리 뿌려 버렸다.

에딘버러, 글래스고, 리버풀과 그 일대, 뉴캐슬 어폰 타인까지 추축군이 ‘아직’ 점령하지 못한 영국의 주요 항구들은 이제 항공기에서 투하된 기뢰 수백 발에 의해 봉쇄되었고, 그걸 소해할 전력은 최소한 리버풀 앞바다에는 없었다.

기뢰는 함대가 항구를 이용할 수 없게 아예 막아 버리는 최상의 수단이었다. 단 한 발의 기뢰라도 군함이나 수송선을 박살 내버릴 수도 있으니, 그 해역을 샅샅이 소해해 안전을 확인할 때까지는 섣불리 진입할 수도 없었다.

함대는 단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항구에 붙어 있는 수밖에.

그리고 아직 항구에 들어오지도 못한 미국 함대는 이제 상륙할 곳을 찾아 헤매야만 할 것이다. 분명 출발할 때는 리버풀이라는 거대 도시의 항만을 사용할 것을 전제하고 출발하였기에 그냥 모래사장에 상륙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반드시 어딘가의 항만을 찾아야 하는데 주요 항구들은 다 봉쇄당했다. 뭐, 영국 정부가 도피한 글래스고나 에딘버러라면 금방 소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동안 영국군의 전력이 집중된 리버풀은 꼼짝없이 굶어 죽어야 하는 것이다.

이 구상에서 바로 작전명 ‘기아’가 나왔다. 도시에서 완강하게 저항한다고? 그럼 굶겨 죽여 버려라!

신병들로 이루어진 미군 2만을, 전투와 전투를 거쳐 단련된 독일군 베테랑들은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장 그들이 저기 어디 뉴캐슬이나 에딘버러에 상륙한다 쳐도, 수백 킬로미터를 행군해 내려와야 했다.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독일군이 구축한 방어진지에 들이받아야 했고. 사실 상륙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몰랐다.

기뢰로 항구를 봉쇄함으로써 롬멜은 견고하게 요새화된 도시에 병력을 밀어 넣어야 하는 상황을, 적들이 기관총 진지 앞에 돌격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꾸어 버렸다. 머릿수의 이점과 방어자의 이점을 믿고 있던 저들에게는 아마 치명타가 되었을 것이다.

총통은 나른한 듯 의자에 앉아 보고사항을 들었다.

뭔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그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롬멜이 필승을 장담한다는 대목에 이르자 어쩐지 기분이 좋은 듯 히죽거렸다. 이내, 광기에 찬 외침을 터트려 버리기 전까진.

“좋아, 좋아. 모조리… 굶겨 죽여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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