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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65화 (6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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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영국의 육군은 이미 붕괴한바, 브리튼 섬의 전쟁은 독일군과 보급의 싸움이었다. 독일군은 영불해협을 건너 물자를 보급받아야 했으며, 전차의 수리소요, 정비 등을 현지에서 대부분 처리해야 했다.

독일의 전차들은 연료가 부족해서, 현가장치가 망가지고 궤도가 부서져 하나둘씩 정지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진격은 쾌속했고, 영국인들의 저항은 미미했다. 영국군은 대부분의 기갑전력을 이미 상실했고, 전차 차량이 있다 한들 이것을 운용할 줄 아는 병사와 부사관들이 극도로 부족했다.

영국군의 주력이 되어 버린 홈가드들 중 지난 대전기에 전차를 몰아본 소수가 수십 년 만에 다시 전차에 타고 저항을 시도했지만 상대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들이었다.

원정군의 보급에 난맥이 있을 것은 이미 예상되던바, 독일군은 최소한의 병력을 보내며 최대한 전투력을 낼 수 있도록 가장 정예부대들만을 골라 영국에 투입했고, 아마추어나 다름없는 영국군과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온다! 전차다! 대전차포!”

“대전차포 장전 완료! 발사!”

깡!

평균 연령 36세. 아직 얼굴에 솜털도 안 가신 10대들과 배불뚝이 50대 아저씨들이 모인 홈가드 병력들은 끙끙대며 2파운드 대전차포를 끌어가며 독일군 전차에 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별 보람도 없이 빗나가던가, 아니면 장갑에 맞고 깡 하는 금속음을 내며 튕겨 나왔다.

영국군들은 탄식했다. 전차의 주포가 대전차포병들이 매복해 있는 방향을 정확히 가리켰고, 영국군들은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하다가 쏟아지는 기관포와 고폭탄 앞에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 했다.

대전차 소총을 운용하는 몇 안 되는 현역 출신 병사들은 잘 엄폐한 상태로 전차의 측면을 겨냥해 장갑을 관통시키고 승무원에게 부상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전차소총은 수량도 부족했을뿐더러 측면을 정통으로 맞추지 않으면 그다지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피와 살로 된 인간들은 강철의 맹수 떼를 도무지 이길 수 없었다. 고향을 지키려는 불타는 감투정신도 침략자 나치들에 대한 증오심도, 살덩이와 쇳덩이의 충돌 앞에서는 그저 몇 초 더 알량한 생명을 연장해 줄 뿐이었다.

“국왕 폐하 만세! 브리튼이… 으아아악!”

“아저씨!”

“퇴각하라! 퇴각!”

몇몇 병사들은 전차를 저지하기 위해 화염병과 급조된 폭발물을 들고 전차를 향해 육탄 돌격을 펼쳤다. 대부분은 전차에 탑재된 중기관총이나 동행하는 보병들이 든 기관단총들에 의해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영국과 프랑스의 수뇌부는 여전히 소련이 겪었던 겨울전쟁의 악몽을 잘못 평가하고 있었다.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은 전쟁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는 최일선에 서 있는 용맹한 지도자이자 반공 십자군의 선봉으로 알려져 있었고, 사실 수뇌부들의 인식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만네르하임의 용맹한 지휘하에 핀란드군은 소련의 전차부대를 박살 내버렸으며, 스스로를 여전히 명장이라 믿고 싶어 하는 장군들은 대전차 무기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의지와 정신력이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보병들은 각 단위 제대장들의 독려 하에 화염병과 폭탄 뭉치들을 보급받았고, 가족들이 폭격 속에서 불타 버린 이들은 복수심에 이를 갈며 전차를 향해 돌격했다.

겨울전쟁, 계속전쟁에서 핀란드군은 추운 겨울 날씨와 빽빽한 삼림, 소련군의 엉성한 지휘관들과 아직 제대로 교리조차 확립되지 않은 전차들을 상대로 스키부대의 기동성을 살려 전차들을 저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화되지 않은 군대는 기계화된 군대를 완전히 이길 수 없었고, 군대의 1/4가 사상한 끝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고 영국군은 겨울전쟁 당시의 핀란드군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안개와 비로 시계가 불량할지언정 뻥 뚫린 중부 잉글랜드의 평야는 보병의 엄폐에 그다지 좋지는 못했다.

독일군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국군의 최고 베테랑들을 상대로 격전을 펼치던 바로 그 부대였으며, 이런 어설픈 시골 아저씨들을 상대로는 무쌍에 가까운 전투력을 보여 주었다.

소련의 10톤도 안 되는 T―26 경전차들을 상대하던 핀란드군과 달리, 독일군은 50톤에 가까운 신형 판터 전차들이나 그래도 T―26보다 두 배 이상 크고 강력한 4호 전차, 3호 전차를 굴리고 있었다.

“아… 하느님….”

“….”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려 질퍽해진 참호 속에서 아마 지난 대전기에 유행했을 것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은 영국군 하나가 신을 찾았다. 대부분 눈을 뜨고 싶지 않아 했다.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소름 끼치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것은 비슷했지만 춥고 비가 내렸던 요 며칠간 무거운 군장에 총기에 코트까지 걸치고 뛰어다녀야 했던 이들은 이미 지쳐 있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르지….”

정부는 시민들이 총을 잡고 저항할 것을 독려했다. 그러나 왕실이 캐나다로 피신했다는 것은 이미 알음알음 다 알려져 있었다. 내각은 아직 브리튼 섬 안에 있었지만 저 멀리 스코틀랜드로 도망쳤고 잉글랜드인들은 모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다― 라고 꽤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독일인들은 언제 그 본색을 드러낼지는 모르나 아직 신사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런던을 태워 버리고 처칠을 바짝 구워 버린 놈들치고는 시민들을 학살하거나 여자들을 겁간하는 일은 없었다.

롬멜 원수는 휘하 부대의 절대적인 충성과 존경을 얻고 있었고 그가 내린 명령, ‘비무장 민간인에게 적대행위를 하지 말 것’은 철저히 지켜졌다.

전장에서야 악귀 같은 광전사들이었고, 영국군 병사들이 본 것은 그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최소한 이들이 숙식을 의존하는 민간인들은 독일군의 적대행위에 대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항복하시오! 영국인들은 모두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시오! 독일군들은 아리아인 형제들인 영국인들과 싸우고 싶지 않소이다!]

“제기랄! 엿이나 처먹으라고 해!”

스피커를 매달고 항복을 권유하는 방송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대는 독일군 비행기가 저만치서 씽 날아갔다. 온통 붉은 도색에, 동체 양편에 검정색으로 하켄크로이츠를 그려 넣은 비행기는 어둑어둑한 와중에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한 병사는 격하게 욕설을 뱉으며 비행기를 향해 주먹 감자를 날렸지만, 다른 병사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 묵묵히 지켜보았다.

아리아인 형제들? 빌어먹을, 그래서 런던을 태워 버렸나? 아마 격하게 반응하는 저 병사는 런던에 살았거나 가족이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많은 시민들이 런던에서 대피했지만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남아 있었다. 독일인들은 두 시간의 여유를 주고 시민들을 소개할 것을 권했지만 군부는 그들이 하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짧게 공습이 임박했으니 대피할 사람은 대피할 것을 알린 영국군은 대공포와 방공 기구들을 띄웠지만… 그런 것들은 그닥 의미가 없었다. 불꽃과 폭풍 속에서 건물들은 무너졌고, 그 위에 소이탄이 뿌려져 폐허마저 다시 잿더미가 되었다.

늙은 처칠 수상은 다우닝가 10번지의 관저를 지키다 죽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함께 죽었다.

처칠은 그의 말을 충실히 지켰다. 자신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음으로 영국을 지키겠다고.

그래서 그는 죽었고, 대연정 내각의 2인자이자 처칠의 자리를 비공식적으로나마 승계한 애틀리는 처칠의 영웅적인 죽음을 알렸다.

영웅적인가? 병사들은 고민했다. 그렇게 죽어서 책임조차 따지지 못할 꼬라지가 되었다면, 남겨진 우리는 어찌하란 말인가.

“항복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살려는 준다던데? 들어 보니.”

“아니, 항복이 말이나 됩니까? 저것들을 몰아내야지요! 조금만 있으면 미군들이 도착합니다! 아직도 식민지에는 병력이 수만 명은 있을 텐데….”

주먹 감자를 날리던 병사가 반발했지만, 많은 이들은 입 밖에 내지는 않더라도 항복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고, 고향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 도리가 없다. 부인과 자식들은 잘 있을까? 독일 놈들에게 혹시 대들다 다치지는 않았을까.

미군 놈들 역시 못 미더웠다. 끝까지 전쟁에서 한 발 빼고 있으려 하면서 영국인들만 피 흘리는 것을 뒤에서 한 발짝 물러서 지켜보다 자기네 영토에 불벼락이 떨어질 것 같으니 그제서야 참전하는 꼴이란!

미국에서 보내 주는 밀가루와 스팸을 먹고 버티던 이들이었지만, 그것 몇 개 가지고 미국에 굽실거릴 영국인들은 아니었다. 대영제국이 패배할 수 있다는 상상조차 몇 년 전까지는 해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기에, 미국인들이 영국 땅에서 영국인 대신 싸운다는 것에 더 수치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리고 2개 사단뿐이라니! 이미 브리튼 섬에 발을 디딘 ‘20만 원정군’ ―독일인들은 롬멜 원수가 지휘하는 정예 20만 군대에 대해 스피커로 떠들어 댔다― 을 겨우 2만 명을 가지고 막으려 하다니! 대육군을 자랑하는 프랑스인들도 단 6주 만에 박살 나버린 저 군대를 겨우 2만 명?

“그네들이 온다 했소? 올는지 안 올는지도….”

“….”

일단 온다는 미군은 2만 명뿐.

항상 영국의 것일 줄 알았던 세계의 바다는 어느샌가 독일 놈들의 손에 들어가 있었고, 수상함대가 전멸하자 유보트들은 더욱 설치고 다녔다. 곳곳에서 식량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들렸고, 군인들 역시 제대로 한 끼를 배급받기조차 어려웠다.

“지난 대전기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반쯤 머리가 벗겨지고, 남은 반 중 다시 절반은 흰머리인 중늙은이 한 사람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난 전쟁을 겪어 본 영국인들은 무제한 잠수함 작전과 그로 인한 굶주림을 도무지 잊어버릴 수 없었다.

굶주림과 공포의 기억, 사지 중 몇 개 정도 잃어버린 채 돌아온 형제들과 증발해 버린 동네의 청년들. 한꺼번에 전사통지서 수십 장이 마을로 날아왔고 어머니들은 울부짖었다. 아들들을 돌려달라고.

“좆 됐다!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뭐? 제길!”

멀리에서 아스라이 들리던 엔진음이 점점 가까이 들리기 시작했다. 참호의 벽에 기대어 축 늘어져 있던 병사들은 화들짝 놀라 참호를 기어올라 실눈을 뜨고 어디쯤 적이 있나 둘러보았다.

그리고 개중 눈이 좋은 하나는 독일군의 사단기를 볼 수 있었다.

“저거… 유겐트 애새끼들 아니야?”

“유겐트라고? 허… 참….”

영국군들은 술렁거렸다. 미친 듯이 싸우고 파괴하고 진격하는 독일군들 중에서도 가장 독하고 미친 새끼들. 그리고 끽해야 자기네들 조카나 아들들 나이밖에 안 될 어린애들.

물론 요즘 어린 것들은 대체 뭘 먹고 자랐는지 덩치도 크고 키도 큰 데다가 훈련도 열심히 받아서 가장 잘 싸우는 축에 든다는 것도 문제였다.

고대의 바이킹 전사들이나 북구의 광전사들이 그랬을까? 얼굴에 마치 야만인 같은 워 페인트를 칠하고, 유겐트의 완장을 찬 채 총통 만세! 함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저들은 독일 같은 문명국의 청소년이라고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온다! 온다! 전투 준비!”

“씹…!”

퇴각이라고 쓰고 도망이라고 읽는 과정에서 대전차포와 야포는 대부분 유기되었다.

안 그래도 장비가 부족해 지난 대전기에나 쓰였을 장비들을 닥닥 긁어 끌고 나왔지만, 별 쓸모가 없었기에 병사들은 대부분 그냥 중장비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상부에서 알았다면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윗대가리들도 다 죽고 나라가 뒤집힐 처지인데, 그런 것이나 신경 쓸 처지인가?

몇 정 안 되는 대전차소총을 병사들은 꽉 쥐었다. 몇몇은 신을 찾았고, 몇몇은 누구에게 하는 것일지 모를 욕설을 내뱉었다.

* * *

형편없는 전투력의 홈가드들이 추축국의 최정예들을 막아서지는 못했다.

영국의 저항군은 방어선의 처절한 붕괴를 겪으며 브리튼 섬 중부의 대도시인 리버풀까지 후퇴하고 말았고, 독일군 역시 순식간에 그들을 따라잡아 진군할 수 있었다.

<항구를 사수하라! 나치는 이곳을 지나가지 못 한다! >

리버풀은 한때 전 세계 무역 물동량의 4할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거대한 항구였으며, 나치 독일의 폭격이 가해진 중심 산업도시 중 하나였다. 그리고 미군의 지원은 리버풀을 통해 도착할 예정이었다.

곧 징집될 수십만 병력이 영국에 상륙하고, 이들을 유지할 물자를 감당할 수 있는 거대한 항구는 이제 몇 개 없었다.

나치 독일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가용 병력 전부를 리버풀 방면으로 집결시키기 시작했다.

원정군 사령관 롬멜의 손에 쥐어진 패들은 크게 두 종류. 하나는 독일 본토와 이탈리아에서 온 기갑―기계화 부대들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식민지에서 모아 온 식민군 보병들이었다.

선전하는 것처럼 20만은 안 되었고, 그 병력들 중에서도 다시 쪼개고 쪼개어 점령한 지역들의 치안유지를 위해 배치해야 했기에 롬멜이 가지고 있는 전력은 리버풀을 정면으로 뭉개기에는 빠듯한 수준이었다.

“조종사들을 사지로 밀어 넣는 것은 거부하겠습니다! 리버풀의 방공망은 너무 강력합니다!”

“나 역시 루프트바페의 정예들을 마구 던져 없애 버릴 생각은 없네.”

롬멜은 공군의 항의 앞에 담담하게 대처했다. 독일 공군은 쾌속 진군을 보조하기 위해 조종사들과 기체들을 혹사했다. 런던을 공략했을 때처럼 프랑스에서 출격하는 중폭격기들을 동원하기는 어려웠다.

또한, 한번 공습에 뜨거운 맛을 본 영국군 수뇌부들은 철저한 방공대책을 세워 놓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은 대공포와 기관총들이 건물마다 배치되었고, 미군 전함들의 대공포 사격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에 더하여, 영국군의 수적 열세 역시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양측은 서로의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지만, 영국군 정보부는 독일의 병력을 아무리 많아도 20만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리버풀은 인구가 80만이 넘는 대도시였기에 겨우 20만의 병력을 투입해 봐야 바다에 던져진 소금처럼 병력이 녹아내릴 뿐. 더 많은 병력을 가져와서 포위하고 말려 죽이든가, 혹은 도착하는 미군의 증원 앞에 돌파당해 결국 브리튼 섬을 다시 내주든가.

“롬멜 장군은 대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신 거지?”

“낸들 알까? 하지만… 뭔가 한 수를 감추고 계시지 않을까?”

참모들과 장병들은 롬멜의 대처를 기대하고 있었다. 시간은 독일의 편이 아니었고,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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