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59화 (59/300)

# 59

59화

“런던은 불타고 있는가?”

“예, 총통 각하! 런던에서 저항하는 영국군의 잔당은 진압 과정 중에 있습니다. 다만….”

총통의 눈썹이 슬쩍 올라갔다. 다만, 일부 기갑부대는 공습에서 살아남아 북으로 패주하는 행렬에 참가했습니다. 국방군의 상황장교는 잔뜩 얼어붙어 딱딱하게 대답했고 총통은 푸하하, 광소를 터트렸다. 역시, 역시 도망갈 뿐이로군!

“짐승만도 못한 것들. 싸우다 아름답게 옥쇄하지는 못할지언정! 비겁하게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구만. 미군 놈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얼마나 오래 걸릴 것 같다고?”

옥쇄라는 기묘한 단어를 이야기하는 총통의 표정은 희열에 가득 차 있었다. 상황장교는 허둥지둥하며 총통의 질문에 답했다.

“해군에서는 4일 후에 카디프 혹은 리버풀에 미군 2개 사단 병력이 상륙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아직 아군의 육상 병력은 런던 및 점령 도시들을 평정하여야 하며 당장 상륙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할 병력이 부족하다는 롬멜 장군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4개 군단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막 상륙군의 2파가 북프랑스의 항구들에서 영국 원정군의 보급물자와 함께 출발한 참이었다. 2개 군단과 충원 장비라면 가능한가? 롬멜이라면 얼마든지 기적을 만들어내 줄 것이다.

이미 롬멜에게는 총통의 전서가 도착해 있었다.

승리하고 돌아오라. 그대를 위한 대원수 계급장과 황금 금강석 곡엽검 기사십자 철십자장이 준비되어 있으니! 국방군 전체의 수석인 괴링에 이은 차석의 계급장과 육군의 사실상 최고 지위가 개선장군 롬멜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이미 보급을 위한 항구는 확보된바 롬멜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제3제국은 자국과 동맹국의 해상 수송선을 모조리 긁어모아 영불해협 사이에 투입했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막대한 물자를 가까스로 공급할 수 있었다.

“미군은 상륙 과정에서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저들의 항공모함은 전함 전력을 대체하기 위해 태평양 방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상륙 및 전투에서 동원할 수 있는 항공전력은 극히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렇다. 아무리 선발대라지만 겨우 2개 사단, 겨우 2개 사단이 이 전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없다. 교두보를 형성하기 위함이라지만 그 정도는 너무 부족하다. 총통은 차라리 다른 역할을 예상했다.

바로… 불씨. 미국인으로 구성된 2만여 명의 젊은이들이 나치에게 사실상 학살이나 다름없는 패배를 겪는 것을 보며 기습적인 개전에 분노한 미국인들이 타오르도록.

학살당하라고 병력을 던져 준다면? 그에 걸맞은 학살을 해 주어야겠지.

“아프베어에서는 영국 왕실이 현재 캐나다로 도피를 준비 중임이 포착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각하. 이에 대해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각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왕실? 제 본거지를 버리고 달아나는 것도 임금이랍시고 국민들이 섬기던가?”

아마 그럴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하는 것은 상황장교의 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침묵했다. 국민 통합의 상징인 군주가 적의 침공을 피해 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총통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베를린에서 항상 스스로의 존재감을 과시하고자 했으며, 그 작전은 아직은 잘 맞아들어가는 듯했기에 상황장교는 더더욱 꾹 입을 닫고 침묵을 지켰다.

영국 파시스트 연합은 총통의 의중에 따라 런던을 버린 왕실에 대해 비난 성명을 냈다.

<왕실과 정부는 무익한 전쟁을 고수하였기에 국가에 씻을 수 없는 피해와 치욕을 입혔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무의미한 싸움을 그만두고 ‘국민들이 원하는 평화’를 얻고자 한다!>

물론 지금에 와서 거의 대부분의 국민은 나치에 대한 증오심으로 불타고 있었기에 성명은 그다지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대영제국의 심장 런던은 불타 버리고 적군의 군홧발 아래 짓밟혀 버렸다. 2파로 들어올 병력들, 비시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 출신 병사들 역시 그들이 그토록 멸시하던 유색인들이었기에 어쩌면 콧대 높은 영국인들은 더 반발할지도 몰랐다.

조심스럽게 그렇게 진언하는 카나리스를 총통은 비웃었다. 반발해 보라 하라! 영국은 이미 이빨이 뽑힌 사자나 다름없다. 그런 사자를 묶어 놓고 발톱과 이빨을 뽑아 버렸는데 무어가 두려울 게 있겠는가?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 출신 독립운동가 찬드라 보스는 이런 총통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인도에는 영국에게 보복하고자 하는, 증오심에 불타는 인도인 수십만이 있으며 이들을 데려와 영국인들을 ‘관리’할 수 있다고 그는 역설했다.

인도인들에게 대영제국의 몰락은 이번 세기의 최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인도인들은 능력이 있음에도 영국인 밑에서 가장 말단 지위밖에 차지하지 못했으나 기회가 주어진다면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인도 최고의 두뇌들은 영국에서 교육받았으나 차별받고 멸시받으며 인도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최고의 맹우’ 독일과의 협력하에 우리는 영국을 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찬드라 보스는 일장 연설을 했다. 많은 나치의 고관들이 하등한 유색인종인 그를 노려보았지만 또 몇몇은 그에게 찬동했다. 찬동파에 따르면 인도인들에게는 인도까지 이주해 간 위대한 선구자 아리아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그 피가 강렬히 발현된 것이 찬드라 보스 같은 영웅이었다.

형제 아리아인 간에 협력하는 것은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힘러는 보스를 위한 장황한 연설을 했으며 총통은 그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흥분된 분위기에 물을 뿌렸다. 소련으로부터 땅을 되찾겠다고 떠들 때는 언제고, 뒤통수를 콱 후려치고 도망가는 루마니아의 라틴족 배반자 놈들보다는 낫지. 나직한 중얼거림이었지만 회의장은 확 식어 조용해져 버렸다.

“분명히… 동부전선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지?”

“그…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빌어먹을 놈.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나 대답한 것은 알프레드 요들이었다. 그는 속으로 눈치 없이 말을 꺼낸 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따 나가면 진짜 걷어차 버려야지. 그런데 누구지?

“나는 최선의 지휘관들을 인선했으니 알아서들 해 보게. 토트 박사!”

“예, 총통 각하?”

“달라는 것은 알아서 만들어 주게. 전장에 나가 싸우는 제국의 용사들은 춥고 굶주리는데 국민들이 너무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좋지 않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고관들은 다들 긴장했다. 국가의 공금에 한 푼도 손대 보지 않은 자는 거의 없었고, 당연히 괴링처럼 물 쓰듯 사치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일정 정도 사치스러운 삶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토트는 굽실댔고, 총통이 퇴장하자 다들 그에게 몰려들었다.

“아니, 장관! 총통 각하께서 명령하셨다지만….”

“진정들 하시지요! 총통의 의중은 아마 경공업 소비재의 생산을 줄이고 중공업 분야에 투자하라는 것 아닌가 합니다만… 그렇게 걱정되신다면 다들 개인 재산에서 일정 부분 국가를 위해 기부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또 저렇게 말하자 그다지 할 말은 없어졌다. 다들 입맛만 쩝쩝 다시며 서로 눈치를 보았다.

제2인자인 괴링 원수가 내는 액수를 보고 정하려 했던 이들은 괴링 원수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30만 마르크를 불렀을 때, 다들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나는 30만 마르크를 이 도이치 민족의 위대한 군대를 위해 기부하겠소! 거 우리 선생들과 박사들은 잘 생각들 해 보시오!”

괴링은 그에게 아첨하는 한 무리를 이끌고 토트와 함께 퇴장했다. 괴링이 30만 마르크라면… 우리는 10만 마르크인가? 다들 그렇게 손가락을 꼽아보며 한숨을 쉬었다. 물론 회의장 밖에서 괴링과 토트가 한 대화를 들었다면 분개했겠지만.

“토트 박사, 내가 이렇게 30만 마르크를 불렀기에 모금액이 적잖이 될 듯한데… 그걸로 퉁칠 수 없겠소?”

옆에서 듣던 전투기 총감 베르너 묄더스와 해군항공대 사령관 아돌프 갈란트는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딱 벌렸다. 아니, 그렇게 잘난 척하던 우리 원수님이? 괴링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경악할 수 없었던 토트는 마찬가지로 어이가 없었지만 허허 웃으며 그를 달래야 했다.

“하하… 뜻에 따르겠습니다 대원수 각하.”

껄껄 웃으면서 돌아서는 괴링의 뒤로 묄더스, 갈란트와 눈빛이 마주친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갈란트는 부끄럽다는 듯이 얼굴을 손에 푹 파묻었다.

아주, 가지가지 하십니다.

토트 박사 역시 그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군수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총통과 고관들의 허무맹랑한 요구를 그는 어떻게든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가며 실현시켜야 했다.

4호 전차의 두 배 가까운 무게인 7호 뢰베 전차, 1만 km를 날아 10톤짜리 폭탄을 떨어트릴 수 있는 중폭격기, 100대의 전투기를 탑재하고 대양을 항해하는 항공모함들…. 총통은 이 모든 것을 요구했지만 토트는 군부 내의 젊은 합리주의자들과 함께 총통의 요구안들과 타협해 나가는 데는 성공했다.

거대한 수상함대 대신 두 척의 항공모함과 150척의 유보트를 중심으로 하는 잠수함대, 5톤짜리 그로서 융에 폭탄을 떨어트릴 수 있는 4발 중폭격기, 그리고 기존 모델에서 성능 조정을 거친 판터 전차까지.

그러나 이제 동부전선은 끝없는 자원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었고, 토트는 제3제국, 아니 전 서유럽의 전력을 동원해서 그 구멍을 메워야 했다.

소련과의 전쟁에 전 역량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마당에 총통은 영국을 몰락시켜 한 전선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 전면적인 기습을 가해 악몽 같은 양면 전선을 연장했다. 수십만의 유태인들과 폴란드인,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의 반역자들을 추가로 공장으로 보내도 못 따라잡을 생산력을 가진 그 미국과.

이에 더해 총통은 동부전선의 난국을 타개할 단 하나의 ‘필살 병기’를 요구했다. 독일의 최고 지성들은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토트가 원했던 항공 엔진 연구나 로켓 연구는 거의 진척이 없이 지지부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 <슈판다우>는 요구하는 막대한 자금에 비해 무슨 결과가 있는지 의아했다. 프로젝트를 이끄는 젊은 천재, 서른한 살의 나이에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는 기밀이라며 결과도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예산과 지원을 독점했으며, 총통은 그런 그에게 성과를 독촉할지언정 예산은 오히려 더 지원할 정도였다.

그가 보기에 하이젠베르크의 연구는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 돈이면 대체… 유보트가 몇 척인가!

“그 잘난체하는 어린것이 예산의 용처를 실토하지 않으면….”

총통의 명령으로 신형 유보트 엔진을 연구하기 위해 배당되었던 우라늄이 모조리 하이젠베르크의 손에 넘어간 이후로 되니츠는 이를 박박 갈고 있었다.

하이젠베르크를 옹호하는 총통과 분통을 터트리는 되니츠 사이에 끼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 되었다가 배수량 2천 톤급의 거대한 14형 유보트 12척을 취역시켜 주는 것으로 갈등을 중재해야 했던 토트 역시 프로젝트 슈판다우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부전선은 소련의 막대한 인구와 생산력을 상대해야 하는 전쟁이었다. 총통은 공상적인 신무기가 아니라 건실한 군수공업과 철저한 징병 및 인력 동원으로 난국을 타개해야 했지만 신묘한 지도력으로 압도적인 전략적 승리를 이뤄낸 그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투덜거리면서 괴링이 ‘모금해올’ 금액을 그는 계산했다.

“이 정도면… 전차를 몇 대쯤 더 생산할 수 있을까?”

* * *

그 시각, 하이젠베르크는 화가 나 책상을 내려치며 발을 구르는 총통 앞에서 벌벌 떨고 있어야만 했다.

총통은 다른 이들 앞에서는 냉정하고 싸늘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하이젠베르크가 비밀리에 보고할 때면 항상 성과를 독촉하며 이렇게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그것이 총통의 원래 성격과 더 가깝다는 것을 아는 가장 내밀한 비서관과 호위병 각 한 사람씩만 재석할 뿐.

하이젠베르크는 어찌할 줄을 몰라 안절부절못했다. 총통의 땡깡이 끝나자 그는 늘 하던 대로 총통을 달래 줄 만한 말을 꺼냈다.

“총통 각하, 원하시는 무기의 개발은 반드시 45년 이전까지는 완료될 것입니다.”

“그래, 그래, 꼭 45년 전까지는 개발해야 하네! 반드시! 우리 추축국의 미래가 박사가 개발하는 이 무기에 달려 있소. 저렇게 바퀴벌레처럼 바글바글하게 몰려오는 소련 놈들의 수도에 한 방 먹여 모조리 불살라 버리고! 짐승, 귀신만도 못한 미국에게도 몇 방 먹여 주고! 대 독일제국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최대한 빨리 무기를 개발해야 하오. 알겠소?”

“예, 예, 물론입니다 총통 각하! 제 최선을 다하여 반드시 성과를 내놓겠습니다!”

총통은 더러운 열등 인종들을 끝장내기 위해선 프로젝트 슈판다우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해군과 공군으로 대서양을 틀어막고, 시간을 번 후 <필살 병기>로 소련과 미국을 끝장낸다!

그것이 가능할는지 나치의 고관들이나 하이젠베르크 같은 사람들은 확신하지 못했으나 총통은 그야말로 강철같은 신념으로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 보라는 총통을 뒤로하고, 하이젠베르크는 총통의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심장마비에 걸릴 정도로 거대하고 위압적인 복도의 조각과 그림이 그를 짓누르는 듯했다.

처음 이 임무를 받아들였을 때는 세상이 그의 재능을 인정한 것 같았다.

그의 나이 이제 마흔 살. 그보다도 일찍 노벨상을 탄 선배 과학자들을 제치고 그는 이 초거대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지명되었고 영광스러운 임무라고 생각하여 기꺼이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나…… 점점 본질에 가까워져 가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폭탄, 폭탄, 폭탄. 그것이 저들이 원하는 전부지….’

프로젝트 슈판다우가 진행됨에 따라 총통이 원하는 것의 윤곽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도시를 하나 통째로 태워 버리고 증발시켜 버릴 수 있는 폭탄. 이미 수십, 수백 대의 폭격기를 통해 도시를 몇 개씩이나 폐허로 만들고 파괴한 독일 공군이지만 총통은 더 엄청나고 강력한 것을 원했다.

총통의 공상 속에서는 단 한 발의 ‘핵 폭탄’으로 도시를 증발시킬 수 있었고, 그런 것을 수십 개씩이나 만들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연구가 진행될수록 실제로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 하이젠베르크는 두려웠다. 총통은 미국을 극히 경계하며 그들이 이 폭탄을 개발하기 전에 반드시 실전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광적인 히스테리를 부렸고, 그 말은… 미국이 독일을 불태우기 전에 미국을 불태워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우리가 저들을 불태운다 치자. 그렇다면 저들은 우릴 불태워 버리지 못할까? 베를린의 상공에 마치 태양과도 같은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고 이 영광스러운 도시를 모조리 열폭풍으로 잿더미를 만들어 버리는 환상이 그의 눈앞을 스쳤다.

그가 받은 편지 한 장이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대체 어떻게 그를 알아내고 찾아낸 지는 모르겠지만… 소련에서 온 편지에는 그가 두려워한 모든 것을 다 담고 있었다.

인류와 도시를 불태우고 지구상을 싸그리 폐허로 만들 수 있는 폭탄들과 그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할 우리의 다음 세대들, 아이들.

이제 세 살인 마리아와 볼프강, 두 살인 요헨과 꼬물거리는 갓난아기인 마르틴이 눈에 밟혔다. 그는 고작 결혼 4년 차였지만 네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였으며,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좋은 곳이기를 간절히 바라 왔다.

독일에서 살아야 할 이 아이들을 위해 그는 국가의 부름에 응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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