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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56화 (56/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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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화

루마니아 방면의 독일군 진영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모델 원수의 엄명에 의해, 루마니아인들에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장병은 재판 없이 즉결처형이 가능하게 되었다.

루마니아인 병사를 고문한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은 총살당했고 그들의 총살 장면을 촬영한 사진은 전 병영에 나돌기 시작했다.

전 장병들은 이제 그들이 일상적으로 저질러 온, ‘열등 인종’들에 대한 가혹행위가 더 이상 새로운 사령관의 휘하에서는 용납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습관은 어디 가지 않았다.

“뭐! 뭘 꼬나봐? 이 개새끼야!”

“너 지금 욕한 거냐?”

루마니아인들의 눈초리를 보고 한 독일군 병사가 독일어로 욕설을 지껄였다. 그러나 하필 상대 병사 무리 중에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섞여 있었던 바, 독일군 병사는 그들의 무시무시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뒤에 보고 있는 동료들이 있어 허세로라도 맞서 보려 했던 그는 결국 한 루마니아인 병사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루마니아 병사들과 독일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패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모두 멈춰라!”

“씨발! 헌병이다!”

수십 대 수십이 난투극을 벌이던 이 사건은 결국 완전무장한 헌병 중대가 몰려온 이후에나 진정될 수 있었다. 병사들 간의 적대감이 더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헌병대위는 이 사건을 묵인해 주고, 서로 ‘사과’하고 곱게 끝낼 것을 권하며 각자를 막사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사건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독일과 독일인들을 싫어했던 한 중사는 흠씬 두들겨 맞고 돌아온 병사들을 모아 공격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저 좆같은 독일 새끼들을… 콱 죽여 버리자고! 빌어먹을, 저놈들이 그렇게 잘났냐? 수류탄이 터져도 안 죽고 살게?”

“예? 그러면 그다음엔….”

“어쩌겠어? 저쪽이나 이쪽이나, 도망갈 곳은 많잖아? 막말로, 지금 우리 부대원들은 잡아가서도 곱게 돌려주는 판인데 저쪽으로 도망가면 안 되겠어?”

‘저쪽’은 소련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해당 부대는 소련의 공작에 의해 잡혀간 모든 부대원들이 소련군에게 푸짐한 선물을 받고 돌아온바 소련에 대한 감정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독일군은 ‘대등한’ 동맹국이면서 상전 노릇을 하려 하는 빌어먹을 이웃 새끼들이라면 소련은… 국왕 폐하가 인정하고 우리 편을 봐주려는 옛 적국? 국왕의 방송은 라디오로 방송을 들은 병사들에 의해 알음알음 병영 내에 소문이 나 있었다.

소련은 베사라비아와 트란실바니아, 도브루자를 우리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대 루마니아의 복원, 그리고 평화! 꿈에 그리던 평화!

“저쪽에서도 우리가 독일인들의 모가지를 따 가지고 가면 박대하는 일은 없을 거야. 그렇게 개처럼 두들겨 맞고도 가만히 있으면 여기서 또 개 취급을 당할 뿐이지!”

“…저도 동참하겠습니다.”

순식간에 병영에서는 탈주의 음모가 퍼져 나갔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식사 자리에서, 그리고 막사 안에서 탈주 계획을 논의했다.

일자는… 다음날 새벽.

“감시하는 독일군들은?”

“알아서… 알아서 ‘처리’해야지!”

한 루마니아인 하사는 자기가 관리하던 무기고의 열쇠를 몰래 음모에 가담한 병사에게 넘겼다. 전투 전에 보급되는 수류탄과 기관총탄들이 각 막사에 하나씩 숨겨졌다.

어떤 병사들은 탈주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들도 입을 다무는 데는 동의했다. 주된 이유는 자기네들이 보기에도 독일군이 아니꼬웠기 때문에. 소수의견으로는 저들의 계획을 누설하려 했다가는 자기가 먼저 변사체로 발견될 것 같았기에.

탈주 계획을 세운 이들은 유독 살기등등하게 참여하지 않으려는 장병들을 노려보곤 했다. 소총과 수류탄을 만지작거리며.

그러나 말이 길면 꼬리가 잡히는 법.

“저… 이봐, 한스?”

“무슨 일이야? 너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

루마니아군 병사 이온은 벌벌 떨며 친하게 지내던 독일군 병사 한스를 붙잡고 막사 속으로 숨었다. 주위를 두리번두리번하는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빌어먹을, 하느님 제발 저를 살려 주소서!

“저… 저놈들, 우리 군 병사들이 오늘 대규모로 도망가려고 하고 있어. 그것도 너희들을 먼저 죽이고! 지금 무기고에서 이미 탄약하고 무기들을 다 꺼내 놨다고!”

“뭐? 하느님 맙소사! 너 이거 진심이야?”

이온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자 한스 역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당장 누구에게라도 보고해야 한다.

분대장 하사? 소대장? 중대장? ‘대규모’라 한다면 한두 명 정도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동맹국 병사들이 사보타주를 시도하고 있는데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당장 오늘 새벽에 탈주한다면?

“여기 잘 숨어 있어 봐. 난 이걸… 아무튼 누군가 윗사람한테 알리고 오지. 자, 너 지금 꼴이 말이 아니라고. 물 한 잔 마시고 있어 봐.”

“그래… 그래… 고맙다….”

한스는 허둥지둥하며 이온에게 물통을 건네주었다. 이온은 목이 탄다는 듯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저들의 탈주 일시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새벽이니 금방일 것이다. 그때 그들에게 독일군 막사에 숨어 있는 것을 발각당하면 끝장이다.

얼른 또다시 어디론가 숨어야 한다. 어디, 어디로 가야 하지?

한스는 헐레벌떡 소대장에게 뛰어가려 했다. 일단의 흉흉한 얼굴의 루마니아 병사들이 그를 막아설 때까지.

루마니아어를 잘할 줄은 몰랐지만 그들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이, 어이. 거기 잘나신 독일군 나리. 어딜 그렇게 가시나?”

“아… 아무것도 아니요!”

“그래? 그럼 잠시 이야기 좀 할까?”

그들이 건들거리는 태도로 다가오자, 한스는 총을 들었다.

“물러서! 물러서라! 이 반역자 놈들! 헌병은 어딨는 거야! 헌병!”

루마니아군 역시 한스가 적대적으로 나오자 휙 총을 꺼내어 겨누었다. 여덟 정의 소총이 한스를 겨누었고 그들은 싸늘한 표정으로 한스를 노려보았다.

“총 내리라고, 뒈지기 싫으면.”

이렇게 뒈지나 저렇게 뒈지나 똑같지 않냐고 한스가 반문하려 하자, 루마니아인들은 땅바닥에 침을 칵 뱉었다.

“셋 셀 동안 내려라. 안 그러면 쏜다. 하나… 둘… ㅅ….”

탕! 타탕!

한스는 눈을 질끈 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다다당! 루마니아군들도 총을 쏘기 시작해 곧 한스는 벌집이 되어 쓰러졌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는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빌어먹을 나치 새끼가 우리 병사를 쏘았다! 루마니아인들이여 일어나라! 독일군의 공격이다!”

“뭐? 뭐라고?”

탈주를 모의했던 병사들은 악쓰는 소리를 듣고 제각기 총을 잡았다. 발각되었나? 아니면 이제 탈주의 시간인가? 어느 쪽이나 당장 빠르게 행동해야 했다.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간 음모의 특성상 몇 명이 붙잡힌다면 모두들 걸려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실패한다면 뒤는 없었다. 성공해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패하면 확실히 죽고 성공하면 살 수도 있었다.

병사들은 각자 지정된 막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독일군의 막사들은 병영의 둘레로 불침번을 세웠을지언정 개별 시설에 세워 놓지는 않았다.

몇몇 독일군들이 와아아 하는 함성을 듣고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났지만, 그들은 곧 막사 안으로 하나씩 던져진 수류탄을 보고 깜짝 놀라다 죽어 갔다.

쾅! 쾅! 폭음이 들리기 시작하자 병사들이 밖으로 뛰쳐나왔다. 독일어를 할 줄 아는 루마니아군 병사가 소리 질렀다.

“소련군이다! 소련군의 기습이다!”

그것은 독일인들에게는 깜짝 놀랄 소식이었으나 루마니아군들은 침착했다. 암호로 지정된 것이 바로 소련군의 기습 신호.

우왕좌왕하는 독일군들을 상대로 그들은 놀랍도록 침착하게 기습을 가했다. 독일군들은 자기네의 가족들이 만들어서 자기네들의 철도와 트럭으로 보급해 준 무기 아래 죽어 가고 있었다.

대검이 가슴팍을 찌르고, 수류탄이 막사 안으로 퉁겨 들어왔다.

루마니아인들은 철저한 수적 우세를 가지고 있었다. 설령 충성파 루마니아군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도무지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누가 아군이지? 누가 적이지? 반란파들은 각자 흰 띠를 왼쪽 어깻죽지에 감고 있었고, 흰 띠가 없는 사람에게는 무차별적으로 총질을 가했다. 소련군이 쳐들어왔다는데 소련군은 보이지 않고 아군이 아군에게 총질을 하는 꼴을 본 이들은 얼어붙었다.

“빠져라! 빠져라!”

이제는 도망가야 했다. 진지 바깥에서는 차량의 엔진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군이 장악한 트럭이든, 진압하러 오는 이들이든 일단 이제는 도망갈 시점이다.

헝겊을 누덕누덕 기워 만든 큼지막한 백기를 들고, 반란파들은 소련군 진지 방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지에 남아 있던 이들은 소련군의 소요를 진압하러 온 병력들에게 멋도 모르고 당해야 했다.

“반역자들을 진압하라!”

“우린 아니야! 우린 아니… 으아아악!”

이는 비단 한 곳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다수의 루마니아군 병사들이 집단으로 한밤에 독일군들을 공격한 이후 소련군 진지 쪽, 혹은 혁명사령부가 있는 부쿠레슈티 방면으로 도망쳐 버렸다.

독일군들은 루마니아 군복을 입은 소련군들이 침입했다고 생각해 충성파 루마니아군들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사격을 가했고, 몇 시간 동안 전선은 대혼란에 빠졌다.

그나마 사령부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정찰병이 보고한바 소련군의 공세는 전혀 그 근거가 없었기에 이를 병사들의 소요사태라고 판단한 지휘관들은 헌병대를 주축으로 하는 진압병력을 투입했다.

아군 간의 교전을 막기 위해 명령을 받은 진압부대는 모든 병사들에게 즉시 땅에 엎드릴 것을 명령했다.

“모두 엎드려! 엎드리지 않으면 반역자로 간주한다!”

“뭐야! 무슨 일이야?”

타타타타타타,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눈치 없이 일어나 있던 사람들을 찢어발겼다.

독일군 중에서 얼이 빠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이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결국 땅에 엎드린 시체가 되었다.

독일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충성파 루마니아 병사들도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동료를 공격하는 것을 본 몇몇 병사들은 저들이 침략군인 줄 알고 방아쇠를 당기다 역으로 사살당하거나, ‘적군’을 몇 명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 * *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대오를 독일군 사단들은 대부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극히 소수의 루마니아인들만이 배속되었기에, 그들을 제압한 이들은 병영에서 대혼란이 벌어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루마니아군 부대를 습격해 반란 진압을 시도했다.

“아, 아, 전군에게 알린다. 투항병이 도착할 것이다. 투항병이 도착하는 대로 계획한 공세를 실시한다. 전군 준비 태세로!”

그리고… 소련군의 진짜 공세는 이제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소련군 진지에서는 곡사포대들과 카츄샤 로켓포들, 그리고 고폭탄을 한가득 담은 승리 미사일 포대들이 사령관의 발사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 동지! 투항병들이 도착했습니다!”

“그래? 각 포대에 전달하게. 지금부터… 30분 후에 전 포대 발사 시작할 것!”

“예! 사령관 동지!”

‘오냐, 네가 너희 총통의 소방수라면 나는 소련군 최고의 명장이다.’

주코프는 오만한 웃음을 지었다.

남서전선군을 지휘하는 키르포노스는 충분히 잘 해 주었다. 그는 제한적인 공세만으로 ‘감당 가능한’ 피해만을 입으며 저쪽 사령관의 이목을 붙들어 놓는 데 성공했고, 이제 루마니아 방면의 추축군은 붕괴 직전이었다.

독일군은 루마니아군이 담당한 전선에서 구멍이 숭숭 뚫리는 바람에 충분히 잘 싸우면서도 포위당해 포로가 되었다. 루마니아인들은 소련군을 만나자마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치거나 전향하겠다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

소련에게는 새로운 전쟁의 국면이 열리고 있었다. 루마니아를 거점으로 불가리아를 압박하고 유고 파르티잔과 연계하며, 추축국의 본토 이탈리아와 직접 연결되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서기장은 이 국면을 위한 또 새로운 작전을 보로실로프 원수와 함께 직접 준비했다고 각 부대 사령관들에게 자랑했다.

새 작전에 대해 혼자 전해 들은 주코프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런 짓을?’

그는 작전이 꽤 마음에 들었다. 역시 전쟁은 나만 때리고 저쪽은 손도 못 쓰는 게 제일 재미있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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