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55화 (55/300)

# 55

55화

스탈린은 통이 컸다. 아니, 지금만 통 크게 구는것일지도 모르지. 미하이 국왕은 전선과 후방에 걸쳐 각 부대 지휘관들에게 소련이 제시한 제안들을 알렸다.

<이미 우리는 4개 사단에 이르는 강력한 정예 병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합류해야 장군의 위를 보장할 수 있다. 우리는 소련으로부터 막대한 선물-베사라비아, 트란실바니아, 도브루자 등 대루마니아의 권역-을 약속받았다. 국민들은 우리의 이 성과를 지지한다!

루마니아 정통정부에 합류하라! 반역자 안토네스쿠는 이미 사로잡혀 연금 상태에 있으며, 그동안 저지른 죄과를 회개하고 우리에게 충성할 경우 반역도당에 한때 몸담았던 죄과를 묻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각 부대의 지휘관들은 동요했다. 국왕의 서한을 독일군은 막으려 했으나 암암리에 서한의 내용은 군단장과 사단장, 그리고 연대장 급까지 골고루 뿌려졌다.

고위 지휘관들은 부하 지휘관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병력을 이용해 똑같은 반역을 저지르거나 자신을 속여먹을 것을 걱정했고, 하급 지휘관들은 상급 지휘관이 어떤 선택을 할 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불신이 상하에 만연했고, 소련군은 이를 유도했다. 루마니아군을 마주하는 남부전선군의 사령관 주코프는 휘하 지휘관들에게 어떻게 저들을 이간할 지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았다.

회의 중 한참 졸던 부됸늬는 고개를 꾸벅이다 후다닥 깨어나 물었다.

"으음, 그래서 나는 뭘 하면 된다고?"

부됸늬 원수는 애써 졸지 않은 척 하며 콧수염을 빙빙 꼬았다.

젊은 주코프는 성격이 불같기는 했어도 꾀돌이처럼 머리가 잘 돌아갔다. 부됸늬는 소련군의 차기 1인자로 내정된 이 젊은 친구가 부러웠다. 뭐, 이제 와서 권력이니 직위를 탐할 입장은 아니지만.

"예,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일종의 이간계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포로를 잡아온 뒤..."

소련군은 이 상황에서 적군의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아주 지극히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야밤에 루마니아군 진지를 기습한 소련군은 2천 명 가량의 포로를 잡았지만 그들의 일부는 조건 없이 석방해 버렸다.

부됸늬 원수 휘하의 제1 근위기병군은 관대하게도 800명의 포로를 루마니아군에게 되돌려주며, 따뜻한 식사와 옷가지, 한아름의 미제 초콜릿까지 들려서 보내 주었다.

"잘 가라고 친구들!"

"하하하하! 또 보세나!"

"...? 저 놈들은 대체 우리한테 왜 이렇게 하는거지?"

그리고 당연히도, 그들은 다 특정 사단 소속의 장병들이었다. 안토네스쿠 충성파 루마니아군들과 독일군은 해당 사단장을 의심하고 추궁했지만, 사단장은 이것은 저들의 이간 작전일 뿐이라며 눈물로 읍소했다.

"진실로, 진실로 제 충성심을 의심하신다면 차라리 저를 체포하시고 제 막사와 사령부를 모두 뒤지십시오. 내통은 말도 안됩니다. 단 하나의 증거도 찾지 못하실테니.."

중년의 사단장은 억울하다며 펄펄 뛰고 또 눈물을 흘렸다. 독일군은 차마 부외자로서 개입하기 어려워 루마니아군에게 이 사건의 처리를 맡겼고, 루마니아군은 사단장을 구금했다.

<사단장을 반역 혐의로 구금하였음을 알림. 이에 관하여 아는 것이 있는 자는 헌병대에 필히 신고할 것.>

헌병대가 붙이고 간 벽보를 보고 병사들은 수군거렸다. 내일 하루를 살아남을 수 있을 지 모르는 병사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재미있게 보내고 싶어 했으며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그러나 퍼져나간 소문에는 몇 가지 거짓이 섞여 있었다.

"독일군들이 우리 사단장을 감금해서 끌고갔다는데?"

"뭐? 독일 놈들이? 안 그래도 요새 저놈들 시선이 좀 달라진 것 같았는데..."

"맞아! 보급물자가 부족한게 저놈들이 우릴 못 믿겠다고 빼앗아 가서 그런 거라 하더라고!"

가장 큰 것은 루마니아군이 아닌 독일군이 사단장을 감금했다는 소식이었다.

루마니아 병사들은 독일군이 우월한 화력으로 소련군을 짓밟았듯 자신들까지 짓밟아버리지 않을 지 걱정했다.

부쿠레슈티의 후방부대들이 혁명사령부에 동조하여 줄어든 보급은 이제 모두 독일군 탓으로 돌아갔고, 병사들은 슬슬 그들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다! 소련군에게 우릴 내몰지 마라!"

"우리는 너희의 하인이 아니다!"

독일군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일이었다. 루마니아 놈들이 뒤에서 배신을 때렸다더니, 그게 진짜인가?

특히 독일 병사들은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였기에 루마니아 병사들을 더더욱 불신했다.

루마니아 라틴계, ‘열등 인종’들을 멸시하는 나치즘의 맹목적인 추종자들이 이런 상황을 조장했다. SS, 아인자츠그루펜 등 ‘특수부대’ 로 분류되어 우월의식을 품은 자들은 대놓고 툭툭 시비를 걸곤 했다.

"약해빠진 라틴 놈들, 언젠가 우리 뒤통수를 치려고 저렇게 야려보는거지?"

"워! 워! 꺼져 거지새끼들아!"

그들 입장에서 루마니아 놈들은 약하고, 무장도 별볼일 없는데다가 사실상 속국, 식민지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다.

슬라브족 운터멘셴(Under-man)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여전히 라틴-슬라브가 섞인 더러운 피인 것은 똑같았다. 이런 것을 나치의 고위층들이 들으면 어딜 감히 동맹국한테 그러냐고 했겠지만 그들이 병사들을 일일이 통제할 수는 없었다.

하사관들이나 하급 장교들 역시 이런 상황을 딱히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했다. 그들 입장에서 루마니아군은 물리적으로 전투력이 부족하고, 감투정신조차 부족한 어설픈 놈들이었다.

고위 장교들은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고, 모델 원수의 후퇴작전을 위한 작전계획에 여념이 없었다.

소련군은 산발적으로 전선에 걸쳐 공세를 펼쳐 왔다. 그리고 이 공세의 끝에는 항상 소수의 루마니아 포로 반환이 있었다. 독일군 포로는 단 한명도 돌아오지 못했고, 특정한 부대의 루마니아 포로들만이 다시 돌아왔다.

"콘스탄틴 바사라브 외 83명 복귀를 신고합니다!"

그리고 사령부는 이제 돌아온 포로들을 감금하여 취조하기 시작했다.

취조의 내용은 간단했다. 소련군이 전향을 종용했는가? 혹은 너희의 상급자들이 배반한 기미가 있는가? 동맹국 병사들이었고, 보는 눈이 있었기에 대놓고 고문과 가혹행위가 지시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항상... 도를 넘는 인간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말해! 말하라고, 빌어먹을 라틴 새끼야!"

"으... 아닙니다... 제발..."

"넌 이제 내가 원하는 말을 할때까지 입을 열지 마라. 알겠지?"

"으아아...허읍, 허읍..."

귀환 포로들이 많아진 바, 이들의 심문을 담당하던 헌병대는 휘하에 있는 SS 부대의 방첩대에게 귀환 포로들의 심문을 함께 할 것을 요청했다.

SS 사단과 함께 행동하던 방첩대, 공식 명칭 <보안경찰 및 보안국 특수작전 집단>, 줄여서 아인자츠그루펜은 기다렸다는 듯 심문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기네들이 루마니아인들을 '심문' 한 사실을 자랑하듯 떠들고 다녔다. ‘물은 진실을 알고 있다’, 아인자츠그루펜 고문기술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히 농담하듯 던지고 다녔다.

"빌어먹을 독일군 새끼들! 대체 왜 우리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책임자가 누구야!"

"어째서! 우린 동맹군 아니었나? 우리는 소련과 싸우는 전우라고!"

루마니아 병사들의 불만은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심문' 당한 병사는 곧 혐의가 없음을 인정받아 풀려났고, 최고의 독일인 의사들이 치료하는 군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을 수 있었으나 어느 순간 병영에서는 그 병사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해당 병사가 소속되어 있던 사단장과 연대장, 그리고 휘하의 루마니아인 참모장교들은 지휘하는 부대의 병사들이 대규모로 송환된 바, 내통 및 사보타주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병사들의 불만이 급격하게 비등하기 시작하자 이들에 대한 조사는 더 가혹해졌다. 너희들 중 진짜 내통자가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지금 병사들이 저렇게 불만을 표시하고 있는 게 아닌가?

독일군 헌병 조사관들은 루마니아인 장교들에게 더 확실한 '심문' 을 할 것을 상부에 요청했다. 이 요청은 우연히 독일군 사령부를 방문하다 ‘요청 내용’을 전해들은 한 대령에 의해 루마니아군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는 말도 안 되는 폭거요! 사령관!"

"두미트레스쿠 상급대장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루마니아 3군의 사령관 두미트레스쿠 상급대장은 로브노에 위치한 모델의 사령부에서 펄펄 날뛰기 시작했다.

‘어떻게 감히 타 국가의 군대에서 장군까지 지내는 인물을 함부로 건드리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부하들의 폭주에 모델 원수는 관자놀이가 아파왔다. 동맹국 군대가 하등인종이랍시고 귀환한 포로에게 고문을 하질 않나... 당장 후퇴작전을 준비하는데 이렇게 삐걱거려서는 안된다. 실제로 잘못한 것도 있어 모델 원수는 지극히 저자세를 취했다.

"상급대장, 화를 푸시지요. 저희 군내의 일부 극단분자에 의한 일탈적 폭거로 저희에 대해 신뢰를 잃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소이다, 모델 원수. 크흠..."

불편한듯 자리에 앉는 루마니아 장군들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빌어먹을 나치당 놈들. 대체 군대에 뭘 던져 넣은거냐?

버팔로 작전, 즉 키예프로 돌출된 1기갑집단과 6군, 그리고 현지 협력 민간인들까지 수십만명을 대피시키는 작전이 바로 이틀 후에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어쩐지 불안한 시작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애써 불길한 예감을 지우며 이미 브리핑되었던 작전계획을 하나하나 전군의 지휘관들 앞에서 되짚어나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겨울은... 길고 추울 것 같았지만.

"대략 몇 개 부대가 우리의 지휘를 따르겠다 하던가?"

"삼분지 일은 전적으로 아군에 내응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머지 ⅔ 역시 동태를 살피고 있는 듯 하지만 하급 병사들의 분위기는 끓어오르기 직전이라고 합니다. 소부대 단위로 아군에 투항하거나 내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젊은 국왕은 NKVD의 모자를 눌러쓴 연락장교를 보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국민들이 전쟁에서 무익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기 싫어 그는 소련과 평화협정을 맺고 창끝을 바꿔 쥘 것을 결의했다. 반역자,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그 자신의 권력을 위해 수많은 청년들을 전장에 밀어넣었지만···

그 스스로도 비슷한 일을 해야 할 줄은 몰랐다. 생각보다 많은 장군들이 처벌받을 것이 두려웠는지 독일 편을 들기를 선택했고, 내응하는 부대는 예측보다 적었다.

소련군은 필승을 다짐했다. 어머니 대지에 발을 들인 저 침략군들을 분쇄할 것이라며.

힘없는 나라의 국왕은 그저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신이여··· 백성들을 지키소서.’

미하이 국왕은 스탈린 서기장이 부러웠다. 그는 유능했고, 소련 내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데다가 그 권력을 국민들을 위해서 철저히 효율적으로 사용했다. 국가의 모든 기관들은 그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국민을 위해 일했다.

힘, 힘이 필요하다. 그는 마치 갈망하듯 엔카베데 연락장교를 쳐다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