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
47화
‘아, 맘모스 가져올걸.’
롬멜과 뤼첸스는 함대의 총기함, 티르피츠의 뱃전에 서서 저 앞에 보이는 브리튼 섬의 해안을 바라보았다. 롬멜은 내심 맘모스가 그리웠다.
기만 작전을 위해, 자신이 봐도 닮아보이는 자신의 대역에게-대역은 사실 빈 외곽 출신의 군화공장 노동자였다-맘모스를 타고 행진을 하는 임무를 맡기고 몰래 떠나왔지만 아늑한 그 차가 그리웠다.
영국 놈들이 차는 잘 만드는데 말이야?
"이제 슬슬 영국 공군 놈들이 마중을 나올때가 되었는데... 말이지요?"
뤼첸스가 어색한지 스윽 말을 걸었다. 롬멜은 그저 끄덕일 뿐이었다. 영국과 독일 점령하 프랑스 간의 거리는 워낙 가까워 프랑스 북부의 항구 브레스트에서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이 가시권 내에 들어왔다.
항모의 엄호도 필요 없었다. 육상 발진한 항공기들은 이미 해안가와 해안가의 방어진지를 초토화시키는 중이었다.
처칠 내각은 이미 국민들의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지브롤터와 알렉산드리아가 함락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기만작전에 속은 것을 어떤 황색 언론이 보도하자 신문들은 일제히 나팔이라도 빰빰 울릴 듯 그 기사를 받아썼다.
<내각의 독일 첩자들>
<해군성의 스파이들, 명문대학 출신의 친독 스파이 5인조!>
<처칠 수상, 치매인가? 무능인가?>
별의별 기사들이 기자들의 뇌에서 창조되어 지면을 장식했다. 국민들은 그걸 다 믿지는 않았지만, 모조리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처칠이 잘못했구나, 처칠이 잘못 판단해서 내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아무것도 없는 해안가나 지킨답시고 뺑뺑이를 치고 왔구나! 라고 생각할뿐. 심지어 그건 아예 틀린 인식도 아니었다.
"말하니까 나타나는구려?"
저만치에서 허리케인과 스핏파이어가 까마득한 거리를 신속하게 좁혀 오는것이 보였다. 독일 공군의 Bf109 와 Bf110 역시 지평선을 넘어 파공음을 내며 접근하고 있었다. 딱 보아도, 뒤쪽에서 오는 항공기들이 훨씬 많아 보였다.
괴링 원수는 영국에 대한 산발적인 공습 작전을 아주 효과적으로 지휘했다.
사실 그라기보단 그가 발탁한 공군 지휘관들이 잘 한 것이지만. 누가 됐거나 괴링 원수는 그 뚱뚱한 배때지 안에 가득 찬 욕심보를 최대한 굴려서 공군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어 주었고 그의 부하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기회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 덕분에 아프리카와 지중해 전역을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은 롬멜은 고소를 지을 뿐.
동부전선에 끌려가 안 그래도 부족한 자원을 해군, 공군에 영국 원정군까지 노나먹고 떨어지는 나머지를 줏어먹는 콧대높던 육군 최상층이 불쌍할 뿐이었다.
‘사실 별로 불쌍하진 않다만···’
내심을 말하자면 사실 그닥 불쌍하지는 않았다. 폰 자를 붙인 프로이센 융커 도련님들은 자기네들의 경력과 가문의 명예를 들먹이며 꺼드럭거렸다. 프리드리히 대왕이 어쩌구 빌헬름 황제 폐하가 저쩌고 힌덴부르크 각하가 이렇고... 병신 새끼들!
결국 원수봉을 쥔 것은 평민 출신에 전쟁대학도 못 나온 자신이었다. 아아, 아프리카에서 토인들과 투닥거리며 싸우러 가는 놈에게 원수봉을 쥐어 준다며 열심히 뒷담화를 까던 장성들의 얼굴이 보고싶었다.
그리고 늙다리 룬트슈테트의 아가리에 권총을 처넣었다는 그 친위대 병사도!
빌어먹을, 그 병사를 만나게 되면 일단 원수 각하의 권한으로 2계급, 아니 3계급 특진을 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항상 호위병으로 데리고 다닐 것이다. 기분이 나쁠때마다 룬트슈테트 아가리에 권총 쳐넣은 이야기나 들으면서 심심풀이 하게.
"전원! 전투 태세로!"
뤼첸스는 그가 신경쓰지 않고 있는 사이 명령을 내린 것 같았다. 함대 신호기가 발광하고 함교에서 쩌렁쩌렁하게 전투태세로 갈 것을 명령하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헛 하고 놀란 롬멜은 미끄러져 난간을 붙잡았다. 뤼첸스가 그를 휙 보자 무심코 부끄러워진 롬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크게 외쳤다.
"어~ 바람 시원하다!"
전함과 순양함들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이 먼 거리에서 보기에도 명백히 보이는 모래기둥들이 솟구쳤다. 전투기와 폭격기들을 노리는 대공포 사격이 번쩍거리고 함대의 주포들은 계속 불을 뿜었다.
육군인 롬멜 입장에서 이런 포격 지원은 많이 겪어 본 것이 아니었다.
5인치 포, 그러니까 육군의 규격으로 따지면 12.7cm. 이정도 포는 사단이나 군단 포병대에서 직할로 운용하는 중포였지만 해군은 구축함에서나 5인치 포를 운용했다.
티르피츠가 운용하는 52구경장 38cm 주포에 이르면 육군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거나 전군에서 간신히 몇 대 운용하는 크기였다. 아드미랄 히퍼급의 20.3cm, 비스마르크급의 38cm, 상상만 해도 아찔한 거포들이 영국의 해안가를 향해 압도적인 포격을 쏟아부었다.
해안가가 가까워 옴에 따라 전차와 병력을 실은 상륙함들이 함대의 대오에서 약진하기 시작했다. 포격지원을 해줄 함대는 해안에서 거리를 두고 화력을 퍼부어 주고, 해안가를 순식간에 돌파해 항만 시설을 확보하면 본격적인 상륙이 가능해진다.
상륙군 1파의 주력은 포츠머스를 향하고 있었다. 이 지역의 항만 시설은 대규모 병력과 물자를 하역하기에 충분했고 프랑스 해안으로부터도 가까워 독일이 노릴 수 있는 최고의 요지였다. 총통이 직접 지시해서 만든 '조립식 항만' 시설 역시 후속하고 있었기에 2파로 도착할 병력을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포츠머스부터 런던까지는 고작 100km 남짓, 기갑사단으로 주파한다면 순식간에 런던을 봉쇄할 수도 있다.
이를 저지할 브리튼 섬의 육군 병력은 형편없었고, 아프리카 군단의 최정예 베테랑들은 코웃음쳤다.
"이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두 대륙을 정복할 자기네들에게 이 정도는 간단하다며, 그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총통이 할당해 준 최신형 전차는 기동성만큼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했지만, 100km 정도를 진군해서 영국의 심장을 찌를 정도는 되었다.
포츠머스를, 런던을 함락시키고 박살나버린 영국 육군의 마지막 잔해까지 분쇄해버린다. 브리튼 섬을 휩쓸고 버킹검 궁전에 독일의 국기를 휘날리리라!
지난 대전의 패배를 그야말로 몇 배로 되돌려 갚아줄 것이다. 베르사유에서 당했던 것을 되갚아주었듯. 롬멜의 이가 빠드득 갈렸다. 굴욕의 세월, 아! 그 기나긴 굴종과 치욕의 세월.
"이제는... 반격이다!"
해안선의 영국 병력들은 영웅적인 결사 항전을 치뤘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영웅의 시대가 아닌 바, 그들은 죽어 영웅들의 반열에 들었다. 부실하게 급조한 콘크리트 진지를 보급과 행정체계상의 문제로 또 얼마간 방치한 '해안요새'는 십수 척 전함들의 일제포격 앞에 산산이 부스러졌다. 안에 들어 있던 사람들도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이들은 용맹하게 저항했다. 개중 몇은 지난 대전에서 총을 잡아본 적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손주를 볼 나이의 중년 아저씨들이었지만 저 더러운 파시스트 군대가 이 땅을 밟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욕만은 똑같았다.
구형 카빈이나 엔필드 소총, 끽해야 미제 브라우닝 중기관총 정도가 전함의 함포와 나치의 최신형 5호 전차 판터에 대적하는 그들의 무기였다.
항복하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항복할 수 있는 사람이 적었기에. 공중전에서 영국의 전투기들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독일의 대지공격기, 슈투카들이 해안가에 기총소사를 퍼붓고 그 엄호를 받으며 진격한 전차들은 직사로 토치카에 고폭탄과 기관총탄을 퍼부어 넣었다. 항복한다 한들, 차라리 죽느니만 못할 정도로 영국군들은 찢겨나갔다.
"젠장! 저걸 어떻게 상대하라고!"
남은 영국 육군의 ‘잔해’들 중 많은 부분들은 전국에서 터지는 시위들을 진압하기 위해 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남은 잔해의 잔해들만이 남해안의 학살을 저지하기 위해 증원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대전차포! 대전차포 내놔!"
텅, 2파운드 대전차포는 허망하게도 전차에 맞고 튕겨나왔다. 묵직한 괴물 전차들은 대전차포가 발사된 방향을 향해 고폭탄을 발사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영국군은 전차를 상대할 대전차 화기가 부족했다. 고속 우회기동과 포위를 저지할 수 있는 기계화 제대는 아예 없다시피 했다.
처절하게 쫓겨갔던 영국의 전투기들은 다시 한번 더 많은 항공기들을 이끌고 돌아왔지만 갓 상륙한 함대는 먼저 8,8cm 대공포를 지상에 전개시켜 이들을 막아내었다.
만능의 8,8cm 대공포는 여기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다. 하늘에 대고 쏘아도 좋고, 적 병력과 토치카에 대고 쏴도 좋았다. 그다지 표적을 잘 맞추는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압도적인 화력의 우세로 저들의 전투 의지를 꺾는 데에는 충분했다.
정신적인 측면에서도 추축은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제6 SS사단 히틀러 유겐트의 소년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사탕과 초콜릿을 배급받아 마음껏 먹던 그 손으로 영국군의 가슴에 총탄과 대검을 박아넣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천진난만하게 군가를 부르던 입에서는 욕설과 광기넘치는 전투함성이 터져나왔다.
"총통 만세! 독일 제국 만세! 만세에에에!!!"
"아리아 인에게 영광을! 총통을 위하여!!!"
"빌어먹을··· 저 꼬맹이들 대체···"
듣고 있던 고참병들이 두려워질 정도로.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만들었는가? 그들 자신이라는 해답에 이르렀을 때에는 고참병들 스스로가 죄책감과 광기에 물들 뿐이었다.
항상 약군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이탈리아인들은 최소한 지금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프리카 전역을 견뎌온 최고의 베테랑으로 구성된 폴고레 공수사단, 아리에테 기갑사단, 그리고 베르살리에리 연대를 증편한 베르살리에리 사단, 이 세 사단은 각자에 대한 경쟁의식과 독일인들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누가 누가 더 앞서 가나, 사단장들은 경쟁을 은근히 조장했고 군단장은 아예 포상까지 내걸고 적극적인 진격을 유도했다.
운이 좋아 가장 저항이 덜한 지역에 상륙하기는 하였으나 그리하여 가장 먼저 포츠머스의 항만시설을 장악한 것은 폴고레 공수사단의 예하 2대대였다.
전장에서도 꾸미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는지,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을 상징하는 검은 셔츠를 군복 밑에 받쳐 입고 공수부대의 베레모를 눌러 쓴 이들은 항만 관리사무소에 폴고레 공수사단의 사단기를 내걸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추축군의 함성이 터지자 영국군들은 설마 하면서도 뒤를 바라보고, 급격히 사기를 잃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 왕국의 깃발과 폴고레 사단의 낙하산 깃발을 휘두르는 일단의 병력들이 곳곳에 올라서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자기 앞의 적군들은 그저 빙산의 일각일 뿐. 포위당했다는 공포가 용맹을 잠식했다.
용맹을 잃은 일부는 항복했다. 이성적 판단력을 잃은 일부는 광적인 결사항전에 들어갔다.
"파시스트 놈들 뒈져라아아아아!!"
그렇게 고함치며 기관총을 갈겨대던 영국군 하나가 집중적인 총격을 받고 참호 속을 구르는 시체로 화했다. 겁 많은 자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항복했지만 히틀러 유겐트의 병사는-방금 동료를 잃은-그의 가슴을 총검을 콱 찔러버렸다.
"흐억, 흐억, 흐억."
가슴팍을 찔리면 사람은 숨을 쉴 수 없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대검이 동맥을 찔렀는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나왔지만 그 피를 뒤집어쓴 유겐트 병사는 마치 자기가 북구 신화의 버서커라도 되는 마냥 피칠갑을 한 채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유겐트의 교육 과정에서 이들은 전통적인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티즘 신앙 대신 북구의 옛 신화들을 교육받았다. 아직 덜 여문 이들의 마음 속에서 총통은 주신 오딘이 되었고, 자신들은 지상에서 신을 위해 싸우는 버서커이자 에인헤랴르가 되었다.
그리고 내심, 아리안 족의 지상왕국 레벤스라움이 오고 발키리들의 인도 하에 천상의 발할라를 약속받으리라 생각했다. 이런 인식은 유겐트 병사들 속에서 은근히 권장되어 만연히 퍼져나갔다.
"총통 만세에에에!!!"
"총통 만세!!!"
마치 조건반사처럼 주변의 유겐트 병사들이 천둥같은 함성으로 응답했다. 총통 만세! 독일 제국 만세! 아리아 인에게 영광을!
이탈리아 병사들은 그들을 징그럽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잊어버리고 진격했다.
일단 저 빌어먹을 롬바르디아 놈이나 밥맛없는 나폴리 촌닭, 혹은 얼어뒈질 에밀리아-로마냐 새끼보다는 내가 앞서가야 했기에.
"이탈리아인들! 진격! 진격!"
항만시설을 장악할 기술자들은 가장 중무장된 장갑차로 조심조심히 옮겨졌다. 이들이 하루 늦게 항만을 장악한다면 하루 늦게 우리 병력이 도착한다. 그리고 하루 더 아군의 피가 무익히 뿌려진다.
마치 예포를 쏘듯 8,8cm 대공포는 영국군의 전투기들을 내쫓아 이들의 행차를 엄호했다.
함대로 발광신호와 무전이 쏟아졌다.
<작전 성공. 본국에 승리를 알려라!>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