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46화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의 밤은 고요했다. 많은 청년들이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었고, 군사정권은 불만분자들의 소동을 막기 위해 엄격한 통금을 시민들에게 강요했다.
시민들은 군사정권의 총칼이 무서워서,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있는 독일의 위협 때문에 밤이면 밤마다 집에 꽁꽁 숨어 밖으로 발걸음도 내딛지 않았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존재하는 법. 국왕의 휘장이 그려져 있는 전용 차량을 막을 자는 없었다. 정문을 경비하는 경비병은 감히 국왕의 행차를 막느냐는 호위병 겸 운전기사의 엄포 앞에서 후들후들 떨며 문을 열어줄 뿐이었다.
지나간 자리를 향해서 굽신거리던 경비병은 또 다시 높으신 어르신들을 마주쳐야 했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비켜! 임마. 어디서 감히···"
"휘유, 개 같은 새끼들."
오늘따라 운수가 더럽게 없구만. 경비병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전선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이상하게 총사령부에 올 일이 없는 장성들과 고급 장교들이 갑자기 총사령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이 말을 유독 많이 듣는 것 같았다. 물론 경비병이 어떻게 다 알겠는가? 알 바도 아니고 알지도 못했지만 아무튼 성판이 달린 차량을 막아설 재주는 없었다.
"아, 아, 우리 교대 얼마나 남았습니까? 오늘 유독 이상하게 높으신 분들이 많이 드나드시는데..."
[두 시간은 남았다. 아직 한~차···]
콰콰쾅!!!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터져나왔다. 쾅! 쾅! 쾅! 폭음이 울려펴지는 동시에 총사령부 안에서도 총격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쾅!
"이게 무슨 일이야! 응답하라! 응답하라!"
도시 전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울리는 경적, 또 다시 터져나오는 폭음, 그리고 지켜야 하는 건물 내에서 벌어지는 듯한 총격전. 경비병은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어이, 대체 뭐야! 거기서 뭔.."
[치치칙···]
무전은 응답이 없었다. 때마침 저만치에서 기마경찰대가 총사령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전쟁 중인 국가, 그것도 군부정권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총사령부는 최 중요시설이기에 인근에 경찰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경비병은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기! 여기요! 얼른 오시오! 안에서 총격이.."
기마경찰의 선두에 있던 한 사람이 그에게 총을 겨누고 이내 발사했다.
탕! 경비병은 가슴이 화끈해지는 것 같았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물론 그는 영원히 무슨 일어나는 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피가 흐르며 의식이 흐려지는 동안 그는 계속 어리둥절해 있었고, 쿠데타군은 피흘리며 쓰러진 잡병 하나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소련군 특수부대의 대령은 국왕에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저희 특공연대는 네 개 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대대는 인원수는 적지만 일당백의 전사로서, 잠입할 수만 있다면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고 있을 중요 시설들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폐하, 부쿠레슈티에서 장악해야 할 시설 세 곳을 지정해 주십시오!"
"...총사령부, 안토네스쿠 장군의 관저, 그리고... 라디오 방송국인가."
이리하여 정해진 작전의 개요는 간단했다.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쪼개어 각 시설로 쳐들어가 시설을 지키는 경비대와 공성전을 벌이기보다는 일당백의 정예 특공대원을 투입하여 시설을 장악하는 것.
근위사단의 포병대대가 독재자 안토네스쿠 충성파 부대의 진지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국왕파 군부대가 소련군 특수부대 일개 대대씩을 선봉으로 하여 루마니아군 총사령부, 장군 관저, 그리고 중앙 라디오 방송국을 장악한다.
네 개 대대중 마지막 한 개 대대는 국왕과 쿠데타 수뇌부를 호위. 일이 틀어질 경우 탈출한다.
[친애하는 부쿠레슈티 시민 여러분! 지금까지 반역자 안토네스쿠의 탄압 아래 은인자중하던 저희 혁명사령부는 오늘 밤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였습니다. 혁명사령부 휘하의 4개 사단은 현재 부쿠레슈티 외곽을 포위하고 반역자 안토네스쿠에 호응하고자 하는 군대를 처단하기 위해 전투 대기 하에 있습니다]
난데없이 울리는 폭음에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조심스럽게 커튼을 들추고 밖을 둘러보고 라디오를 켜 보던 시민들은 뉴스 채널에서 나오는 쿠데타의 소식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혁명사령부? 4개 사단? 대체 어디서 그만한 병력이 나온단 말인가! 지금 부쿠레슈티에 있는 루마니아군의 정규 병력은 단 1개 사단도 되지 않았다. 시민들은 숨죽이며 뉴스에 귀를 기울였다.
[저희 혁명사령부는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이 가망없는 전쟁에 동참하여,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궐기하였습니다. 백척 간두 끝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저희 장교들은 단결하였습니다.]
[혁명사령부는 이 나라 사회의 부패와 거악을 일소하고, 시시각각 가까워 오는 패전의 절망을 멈춰 민생고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안토네스쿠 반역 정권을 타도한 이후 저희의 과업을 성취하는 즉시, 양심적인 정치인들과 국왕 미하이 1세 폐하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본연의 임무에 복귀...]
그제서야 시민들은 알 수 있었다. 친위 쿠데타다!
안토네스쿠와 철위대는 독일의 지지를 받아 전 국왕 카롤 2세를 실각시키고 어린 꼭두각시 미하이 1세를 국왕에 올렸다. 이들은 루마니아를 군사국가로 만들고 '국민 군단국가' 라는 괴이쩍은 명칭 하에 철권 같은 군사통치를 휘둘렀다.
물론 철위대는 금방 숙청되었지만, 독일인들은 자기네들에게 안토네스쿠가 협력하는 이상 안토네스쿠의 집권을 지지할 것이고, 미하이 1세는 계속 꼭두각시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루마니아는 이 지옥 같은 전쟁에 끝까지 붙들려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하지만 참 다행이게도 미하이 1세를 지지하는 장군들이 있었는지, 저들은 막대한 병력을 동원하여 수도를 포위하고 벌써 라디오 방송국까지 장악한 듯 했다.
[혁명사령부의 정예 군대는 현재 스스로를 '콘두카토르' 로 참칭해온 반역자 안토네스쿠를 잡아 감금하고 있습니다. 안토네스쿠는 합법적인 재판을 거쳐 권력을 찬탈, 국가의 적들과 협력해 민족의 운명을 위기로 몰아넣은 데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새롭고 힘찬 역사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조국을 위하여 저희는 단결, 용기, 인내를 바칩니다. 전진! 전진뿐이다! 루마니아 왕국 만세! 혁명사령부 만세!]
쿠데타는 성공한 것 같았다. 안토네스쿠 휘하에서 그에게 협력하거나 부역했던 많은 사람들은 혁명사령부의 4개 사단이라는 병력 앞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독일군, 독일군은 어디 있는가?"
안토네스쿠 충성파 장군 하나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부하들을 다그쳤다. 물론 그 자신도 충성파 군부대가 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다. 대부분 저 멀리 플로에슈티 대폭격을 보고 소련군을 후퇴시키기 위해 전선으로 떠나 있었다.
그나마 남은 부대들도 혹시나 모를 소련군의 대대적인 상륙작전으로부터 제 1의 해군항인 콘스탄차를 지키기 위해 떠나 있었기에 지금의 사태를 아직 전해받지 못하고 있었다.
총사령부와 중앙 라디오 방송국이 혁명사령부의 쿠데타 성공 소식과 승리의 소식을 알림에 따라 장군들은 동요했다. 민중들은 환호했고.
‘안토네스쿠가 진짜 실각했나?’
실제로 국왕군은 4개 사단은 커녕 끽해야 4개 연대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각 연대는 가짜 사단기와 연대기를 훨씬 많이 만들어 차량에 매달고 주요 지역과 도로들을 휘젓고 다니며, 극히 소수의 병력만으로도 겁에 질려 항복하는 주둔군들을 제압하고 부쿠레슈티의 중요 시설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침이 되자, 시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국왕 만세! 루마니아 왕국 만세! 평화 만세!"
"멋지게 성공시켰군!"
"하하하하! 그러게요. 제가 봐도 멋집니다."
보로실로프는 루마니아의 쿠데타 성공에 대해 내심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보로실로프에게 전직 공수부대, 엔카베데, 혹은 최전방 수색대 출신의 특급 장병들을 맡겼고, 보로실로프는 본인의 경험과 부대 육성에서의 재능을 살려 멋지게 특수전 군단을 양성해냈다.
뭐, 말이야 군단급이고 실제 인원은 일개 연대 내지 여단급이지만 아무튼.
동부전선과 같은 거대한 전장, 전차와 자주포와 폭격기가 날아다니는 이 전장에서 일개 여단급 병사들이 더 참전해봐야 바꿀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루마니아의 쿠데타가 증명하듯, 이런 비정규 병력들은 정규전 병력들이 결코 할 수 없는-혹은 극히 어려운-일들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부쿠레슈티까지 진군한 우리 병력들은 도시를 포위하고 항복을 종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최소 수만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며 작전기간 또한 길어진다. 단지 400여명 정도의 특수부대를 돌입시켜 해결할 수 있다면 막대하게 남는 장사인 것이다.
"거길 어떻게 들어갔냐면 말이지! 우리 해군 잠수함을 타고 있다가 가져온 보트에 타고 해안으로 잠입해서..!"
그리고 보로실로프, '내' 친구가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까지.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 뿐만이 아니라 다른 효과도 있었다.
거의 모든 고참 볼셰비키들은 베리야와 엔카베데를 혐오했다. 제정 러시아 시절의 비밀경찰 오흐라나에 시달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그들을 연상케 하는 아군의 정보경찰마저 거부했다. 인민의 적과 싸운다고 하며 아무리 '배신' 했다지만 옛 동료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하며 범죄자로 만들어버린 데에 이르면 어떨까.
대숙청은 공식적으로 '예조프시나', 즉 베리야의 전임인 예조프의 범죄였으며 베리야는 예조프를 숙청한 공신이었으나 둘이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이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한 이는 없었다.
엔카베데는 경찰 병력을 손에 넣고 이들을 전투부대나 헌병대로까지 사용하며 스스로의 영향력을 팽창시켜나갔고, 무력까지 손에 넣은 베리야를 많은 이들이 경계했다. 다행히 베리야는 아직 '나' 에 대한 역심을 품지 않은 것 같지만 누가 그 속을 알리오?
그 와중 정보경찰과는 확실히 그 궤를 달리하는, 정통 군인이자 당료 출신의 보로실로프가 육성해 가지고 손에 쥔 특수부대 병력은 비밀경찰의 박해와 쿠데타 우려로부터 당을 수호하는 충신이 될 수 있었다.
최고권력자인 내 입장에서도 한쪽이 한쪽을 아예 압박해버릴 수 있는 규모 차이나, 서로를 불신하는 사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내 밑에 2인자는 없어야 했고, 항상 정보를 쥔 자는 2인자로 떠오르기 쉬웠다.
지금도 베리야의 기분은 어쩐지 좋지 않아 보였다. 터키와 이란에 대해서 정보를 건져온다 하더라도 진짜 나라 하나를 뒤집은 것은 보로실로프와 그 휘하의 스페츠나츠들이었으니.
"자, 루마니아는 수도를 장악했으니 반쯤은 성공시켰군. 영국은 어떻게 됐다고 하는가?"
"아직 상륙 교두보를 만들기 위해 전투 중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다만... 영국군은 지리멸렬하여..."
으으··· 이런. 히틀러는 원래대로라면 북아프리카 전선에 붙들려 있었을 병력을, 전선을 조기종결 시켜버린 후 영국으로 돌려 버렸다. 화려하게 국내 퍼레이드까지 하며 아프리카 전선의 승리를 자랑하기에 영국은 후순위인가 했더니 그 조차도 기만이었다.
처칠은 여전히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있었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영국 해군은 대서양과 지중해 속으로 사라졌고, 육군은 덩케르크에서 소멸했다. 공군도 지난 1년간 소모를 견디다 못해 처참한 상황이 되어 있었고. 정보부는 공통적으로 상륙만 성공한다면 몇 달 이내에 독일이 브리튼 섬을 석권하리라 예측했다.
"...어쩔 수 없군."
조급할 정도로 빨리 루마니아 쿠데타를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독일이 영국을 끝장낼 수도 있다. 그러지 못하면 가장 좋겠지만.
하지만 서부라는 수렁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선택지들은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공군의 엄호가 사라진 독일군을 유린하고 루마니아를, 그리고 곧 발칸을 석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완충지대가 사라진 이상 말 그대로, 가장 거대한 적이 이제 독일을 향해 나설 것이다.
바로... 미국이.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