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
42화
"그··· 분들은 준비가 되었나?"
"예, 서기장 동지. 하지만··· 지금까지 전례가 없었던 일입니다!"
몰로토프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비록 내가 직접 명령한 것이라지만 그동안 스탈린이 고수해온 노선을 직접적으로 어긴 것은 그로서도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지.
"대국적으로 생각하게, 대국적으로. 자네가 역사를··· 아니 시사를 조금이라도 주의깊게 보았다면, 극동에서 그 반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수 있겠네만."
"송··· 송구합니다, 서기장 동지."
너무 후들후들 떠는 몰로토프를 보며 어쩐지 미안해졌다. 솔직히 무슨 대단한 안배가 있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닌데. 역사적으로-그 시대를 직접 살았던 스탈린에게는 시사라고도 할 수 있지만-대륙국가인 러시아는 해양으로 진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통로를 찾으려 했다.
표트르 대제의 시대로부터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해 발트해로 나가려 했고, 19세기에는 영국과 그레이트 게임을 치르며 흑해, 지중해, 그리고 극동 태평양으로의 확장을 꾀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의 극동 파트너인 일본과 충돌한 게 러일전쟁이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최종적으로 한반도를 식민화하는 것을 열강들에게 인정받은 일본은 결국 조선을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자기네 군홧발 아래 짓밟고 만다.
"후우···"
‘회담장’의 문 앞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떨려오는 마음과 손끝을 부여잡으며, 비밀리에 준비된 회담실을 열자 아늑한 공간이 나왔다. 딱 네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기 좋은 정도의. 여기에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 제안은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거품물고 반대하는 장모씨의 영향도 있었을뿐더러.
"동지들, 반갑소!"
"아!"
이미 도착해 서로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고 있던 세 사람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익숙하지만 조금은 더 젊은 얼굴들.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셋의 손을 잡고 나도 마주 허리를 숙였다.
당황하며 나를 보는 셋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스탈린이 맞기는 하구나. 교과서 속에서나 보던 그 사람들이 내 앞에서 살아 숨쉬며 경의를 표하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몽양 여운형 동지, 약산 김원봉 동지, 그리고... 덕영, 덕영 박헌영 동지. 반갑소! 반갑소. 여정이 고되지는 않았소? 그대들의 영웅적 반제 반파쇼 투쟁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온 바 있소이다. 이렇게 만나보게 되어 진심으로 반갑소."
셋 모두 헉 하는듯 했다. 아니, 서기장이 어떻게 자기들의 호까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걸 부르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역만리 러시아 출신인데. '나'는 뭐 당연히 알 만했지만.
"아닙니다, 서기장.. 동지. 각별히 신경써주신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어찌 알고 이리 부르신 것인지?"
셋 중 가장 러시아어가 유창한 박헌영이 나머지 둘의 눈치를 쓱 보더니 내게 대답했다. 사실 김원봉이나 여운형이나 러시아어를 잘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소련의 서기장이 갑자기 남 눈치도 안 보고 우리말로 쏼라쏼라 떠들어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어찌 한반도 조선민족의 영도자가 될 이들을 모르겠소? 허허허."
조선민족의 영도자, 라고 박헌영은 둘에게 번역을 해 주었다. 그리고 둘의 표정은 기묘하게 변했다. 아차, 말을 잘못 했나? 잘못 듣는다면 소련이 이들을 조종해 조선을 자기네 위성국처럼 만들어 버리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사회주의 성향도 있지만 민족주의 성향도 있는 여운형 선생이 듣기에는 불쾌할 수도 있으리라. 나는 손을 홰홰 저으며 수습을 하고자 했다.
"소련은 조선 민족의 자주 독립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도울 것이오. 조선인들의 영웅적인 반파시스트 투쟁은 소련 인민들에게도 귀감이 되는 바, 우리 소련은 해방 조선을 앞으로 국가적인 동반자로 삼고 싶소."
"..."
김구 선생은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반공주의자였으며 소련을 끝까지 불신했던 그는 지금의 접촉이 소련의 외교적 수작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에 임정의 최대 파트너 장개석까지 개입해 어깃장을 놓았다.
물론 우리측에서도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골수 반공주의자를 돕는 것에 대해서 모두가 의문을 표하며 반대하는데다, 대체할 만한 사람도 있는데? 조선 내부에 아직도 살아있는 사회주의 조직을 대체 왜 버리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임정 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김구의 노선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던 바 우리는 임정 소속 조선의용대의 김원봉 같은 사람을 모스크바로 초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련과 일본은 현재 불가침 조약을 맺은 동맹국이 아닙니까? 또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 간 대립에 있어서도 국민당을 지원하신 바 있는데 이후에는 공산당을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전자는 여운형, 후자는 김원봉의 질문이었다. 각자의 성향이 너무나 잘 드러나는 질문에 나는 속으로는 즐거운 웃음이 나왔다.
"먼저··· 우리는 지금 유럽의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일본과 불가침을 맺고 있지만, 잘 알다시피 파쇼, 제국주의자들과 우리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사이요. 늦어도··· 45년이면 전쟁에 돌입하여 극동을 해방시킬 것이오."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고, 지금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은 소련으로서도 무리였다. 당장 렌드리스의 태평양 루트가 끊기면 전쟁물자 생산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으니.
독립운동가들이나 중국 측에서 즉시개전을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직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나라고 우리 민족이 겪는 고통을 연장시키고 싶을까? 하지만 일본군은 아직 실제 역사의 45년 수준으로 약체화되지도 않았다.
또한, 미국과의 전쟁도 아직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소련과 미국이 한편으로 두 열강-독일과 일본-을 상대하면 모를까, 소련 혼자서 양면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버거울 것으로 정보국은 평가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중국과의 관계 말인데··· 이는 대단히 복잡하오."
"그럴 것 같습니다."
박헌영이 추임새를 넣었다. 비단 소-중관계뿐만 아니라 김원봉과 중국 공산당 간의 관계도 상당히 복잡했다.
1927년의 난창 봉기에서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가 실패했다. 중공은 애써 이 사건을 인민해방군의 창설일으로 기념하며 미화하려 했지만 실패한 봉기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무튼 이때 중공은 조선인들을 토사구팽했고, 김원봉을 비롯한 많은 사회주의자들은 감탄고토하는 그들의 행태에 분노를 품고 있었다.
물론 국민당을 따라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며 무장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임시정부의 노선에도 많은 이들이 실망한 바 있었다. 이들은 중일전쟁이 격화되는 40년대에 이르면 연안에서 게릴라 무장투쟁을 하는 중공에 합류한다.
"먼저··· 우리는 중국이 보이는, 그리고 보일 수 있는 패권주의적 행태를 극히 경계하오.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 노선을 따르지 않고 독자노선을 고집하며 잠재적인 우경화의 가능성을 갖추고 있소. 국민당에 이르면 말할 것도 없겠지. 지금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아군일 수 있으나 영영 그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소."
실제 역사에서도 그랬다. 하나된 중국은 항상 밖으로 뻗어나가 자기네들의 ‘천조 질서’를 유지하고 싶어했다. 한반도, 몽골, 베트남 등이 그 희생양이었고. 중국 공산당이나 국민당이나 그 점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었다.
소련 서기장으로서나 한국인으로서나 그런 중국의 노선은 달갑지 않았다. 일국일당을 내세우는 코민테른은 일단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조국이자 사회주의 국가 ‘모임’인 소련 외의 다른 위계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중국 공산당이 보일 수 있는 민족주의-반동 행태를 경계하며, 그런 우경화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조선인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으음···"
미래를 아는 나와 모르는 이들은 생각의 방향 자체가 다르다. 그 누구도 지금 시점에서 15년 후 전 중국이 모택동과 공산당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벌써부터 패권을 잡은 중공이 반동적 행태를 보이리라 말하는 것은 우스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감히 스탈린 앞에서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튼 조선인들이 소련의 대등한 파트너로서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은 어필이 된 것 같았다.
아예 집어삼켜서 적색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느냐, 아니면 말 그대로 좋은 이웃이 되느냐. 이 측면이 문제였지만.
"한반도의 독립을 열망하는 본인의 심정을 알아주었으면 하오. 소련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미치고자 할 지 여러분들은 의심할 수도 있소. 아니, 의심하여도 좋소."
목이 말랐다. 탁자에 놓여 있던 물컵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당연히 의심해야지.
내가 여러분들보다 대충 80년 후에서 온 한국인 대학생이라고 알면 모를까.
"소련은 한반도의 삼천만 인민을 우리의 우애 있는 이웃으로 두기를 바라오. 원한 품은 삼천만 국민보다 우애 있는 삼천만 이웃이 낫다. 조선의 독립운동가가 한 말이 아니오?"
이쯤 되니 셋 모두 진심으로 놀란 듯 했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사용할 수 있으면 조금은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박헌영이야 순혈 국제주의, 사회주의자인 만큼 나를 전적으로 따르겠지만 여운형과 김원봉 둘에게는 꽤나 설득력 있게 다가온 듯 했다.
"우리는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가 있어 태평양으로 진출할 수 있소. 일본은 곧 미국과 개전해 태평양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이오.
그런 일본을 우리 소련은 미국과 분할 점령할 계획이오. 굳이 한반도를 집어삼키려 할 필요가 없소. 다만... 나뉘어 있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반도가 우리 쪽에 더 무게를 실어 주었으면 할 뿐이오."
한번 더, 세 사람 모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이 얼마 남지 않았다. 태평양 전쟁의 광기 속으로 동아시아를 끌고 들어갈 일본의 광기도 범인으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울 뿐더러, 일본과 중국이 나뉘게 된다니.
앞일이 어떻게 될 지는 모르나 소련이 가지고 있는 계획은 그것이었다. 중국과 일본을 분할하여 향후 있을지도 모르는 대립의 최전선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는 양쪽으로 흔들릴 수 있는 묵직한 무게추였다.
사실 그냥 내 고향 내 나라라서 일부러 이런 점을 역설했지만.
"우리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피억압 민족의 해방을 지원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오. 레닌 동지가 그랬듯."
"...감사합니다!"
먼저 박헌영이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도 마주 고개를 숙이자 박헌영의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조직은 풍비박산나고 어디 산골짜기에 숨어서 당조직의 재건을 꾀하던 그에게는 아마 소련이 구원의 빛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다른 둘도 비슷한 것 같았다. 다만 너무 좋은 조건에 의심하는 것 같았지만.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릴 의심해도 좋소. 하지만 조선 인민들을 위해서 우리가 주는 ‘선물’들은 받아가시오. 먼저··· 김원봉 동지!"
"예?!"
내가 탁자를 탕탕 두드리자 밖에서 휙하니 내 비서가 들어왔다. 봉투 세 개를 들고. 각자의 봉투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는 셋에게 각자 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먼저... 김원봉 동지. 무장 투쟁에 나서는 조선의용군의 투쟁을 위해 우리는 군자금과 군수 물자들을 준비했소. 봉투에 들은 것은 우리가 지원하고자 하는 자금과 물자의 수량, 그리고 접선 방법이오. 지원은 몽골 공화국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오."
김원봉의 눈이 커졌다. 소련제가 아무리 성능이 개판이라 해도 중국제, 특히 그네들이 수작업으로 만드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떨리는 손으로 꺼내 본 리스트에는 온갖 차량과 총기, 그리고 군수 지원 물자들이 적혀 있었다. 칼라시니코프가 만든 신형 돌격소총 1천 정과 그 탄약 몇십만 발부터 대전차 로켓포 수천 발과 장갑차량 500대.
아마 지금쯤 몽골 접경지역에서 트럭 수백 대 분량이 내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원한다면 극동군구에서 지원을 받아 조선의용대를 훈련시켜도 좋소. 대략... 5천 명쯤 되나? 그 5천여 명이 알보병인것보다는 전차병 5천 명, 혹은 조종사 5천명이 낫지 않겠소? 꼭 사회주의자들이 아니어도 되니 조선인 군대를 조직해 만주와 한반도 해방 작전에 참여하는 것이 어떻소? 모든 지원은 우리가 담당하겠소."
우리 민족의 분단은 사실 부분적으로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한 점에 있었다. 프랑스는 자유 프랑스의 군대가 직접 파리를 해방시켰지만 우리는 미국의 핵폭탄으로 인해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면서 받아온 독립이기에 그들에게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명목상이라도 선봉대로서 만주와 한반도를 해방하는데 앞장선다면? 충분히 제 목소리를 내는 독립적인 정권을 세워볼 수 있다.
김원봉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개석이나 모택동이나 자기 밑에 독립적인 '군벌' 이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조선인 부대들은 계속 그들의 견제와 눈치를 받아야만 했다. 이런 규모의 지원은 꿈도 꿔보지 못한 채.
무장투쟁 근처에도 못 가는 임시정부를 떠나 연안으로 간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원들도 아마 소련이 이런 지원을 해 준다고 하면 이쪽으로 올 것이다. 아니라면 중공에 우리가 압력을 넣어도 되고.
변변한 전차도 몇 대 없는 중국 전선에 5천 명 규모, 혹은 최전성기의 8천 명 정도. 소련 기준으로 기갑사단급의 전력을 투입하면 어떨까?
우리가 수천 대씩 찍어내는 T-34/85나 오브젝트 240 중전차로 한인 기갑사단을 무장시킨다면 일본 육군의 최정예부대조차 이들 앞에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태극기를 휘날리는 조선 기갑사단이 위풍당당하게 서울로 입성해 일본 총독부의 항복을 받아내고, 서울을 해방시킨다!
김원봉은 그런 구상에 감동한 것 같았다.
"여운형 동지와 박헌영 동지를 위해서는... 조직을 운영할 자금과 유학생을 보낼 루트를 알려드리겠소. 여운형 동지는 일본인들도 존경한다고 알고 있소. 유사시, 일본 제국을 소련이 점령한 이후 총독부로부터 행정 체계를 인수할 수 있도록 음... '건국 준비위원회' 를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소? 이를 위해 조선 내의 민족주의자나 보수주의자와 협력하여도 좋소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뜻대로 하시오."
"박헌영 동지는 조선 내의 동지들을 다시 규합하고, 일본과 만주의 사회주의자들까지 모아 현 일본제국령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을 만들어 주었으면 하오. 이들은 일본 제국의 패망 이후 혁명을 전개해나가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꽤 많이.
또 얼마전 비밀리에 성공한 프로젝트로 인하여 우리는 돈이 꽤 많았다. 그리고 소련 서기장이 꽤 많다고 하면 웬만한 사람들이 보면 눈이 뒤집어지게 많은 돈이다.
적힌 액수를 보며 눈이 휘둥그레해진 그들을 보며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가슴 속으로 꾹 누르며, 외치고 싶은 말을 삭였다.
대한 독립 만세!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